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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 특강
시와책그리고우체통 ・ 2022. 12. 23. 18:38
한국의 미 특강 저자 오주석 출판솔발매 2003.02.05.
♠《오주석의 한국의 미특강》_(처음~p.79)
1. 첫째이야기 ● 옛그림 감상의 두 원칙
옛사람의 눈으로 보고, 옛사람의 마음으로 느낀다
저는 선인들의 그림을 잘 감상하려면 첫째, 옛 사람의 눈으로 보고 둘째, 옛 사람의 마음으로 느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눈이란 똑같은 것인데 옛날 사람의 눈은 현대인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가, 옛 사람 마음은 또 어떻게 다른가, 의아하시지요? (p.17)
예술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머리로만 아는 것도 아니고 가슴으로 느끼는 것만도 아닙니다. 온몸으로 즐기는 것입니다. 온몸이 즐긴다고 할 때 기실은 우리의 영혼이 깊이 감동받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술입니다. (...)
세상을 살다 보면 정말 가장 중요하고 꼭 필요한 내용들이 정작 책 속에는 안 적혀 있구나 하는 일을 새삼 깨닫게 되는 일이 많습니다. (p.18)
예술품이란 누가 뭐라 하든 내가 좋아서 보는 것이고, 또 내 맘에 꼭 드는 작품 한 점이 있으면 그것 하나 잘 감상한 것으로 충분히 보람이 있습니다. (p.23)
- 그림의 대각선 길이 1~1.5배 거리엣 천천히
일반적으로 그림을 볼 때, 사실 다른 미술품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만, 그 대각선의 1내지 1.5배 정도를 유지해서 거리를 두고 왠지 마음이 끌리는 작품을 느긋하게, 천천히 마음을 집중해서 감상하시는 것이 좋다. (p.24)
- 오른쪽 위엣 왼쪽 아래도 쓰다듬듯이
우리 옛날 그림을 보실 때에는 전혀 다르게,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보셔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해 말씀드립니다.
- 그림을 찬찬히 봐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작품을 찬찬히 오래 보는 분이 사실 참 적습니다. (p.31)
예술 작품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특별한 지식이 없어도 마음을 기울여 찬찬히 대하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그 속내를 내보입니다. (p.33)
우리가 작품을 올바르게 감상하기 위해 신경을 썼던 것은 다만 세 가지 기본 상식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첫째, 작품 크기의 대각선 또는 그 1.5배 만큼 떨어져서 본 것 둘째,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도 쓰다듬듯이 바라본 것 그리고 셋째,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세부를 찬찬히 뜯어 본 것뿐입니다. (p.79)
♣짧은 생각
홀딱 반한다는 것,
전시회를 다시면서 홀딱 반해버렸던 그림들 아니 작품들이 있었는지 떠올려본다.
당연 없었다.
작품을 올바르게 감상하기 위해 필요한 세 가지 기본 상식에 대해 다시 되새겨보고 보러가서도 잊지않고 실천해야 하는데.......
한 작품을 물끄러미 10분, 20분 이상 볼 수 있는 마음의 태도, 그런 태도를 가져본 적도 없22었다. 솔직히 고백하면.
이제부터는 좀 의식적으로 노력이라는 것을 해봐야겠다.
♠《오주석의 한국의 미특강》_(p.83~p.153)
2. 둘째이야기 ● 옛그림에 담긴 선인들의 마음
자연의 음양오행에 기초한 우주관, 인생관
- 옛 사람의 마음으로 보아야
옛 사람의 마음이라니 원, 마음이란 것은 지금 마주 대하고 있는 앞사람의 속도 열 길 물속보다 알기가 어렵다는데 말이지요.
그래도 그림은 마음을 그린 것이니, 그 마음을 찾아내야 합니다. 고구려 고분벽화를 잘 보려면 거기 깔려 있는 도교 사상과 조상들의 토착 신앙을 알아야 하고, 고신라 이래 1000년 불교 왕국 동안 만들어진 불교 문화재의 감상은 당시 사람들의 불교적 심성을 이해해야 가능하고, 또 조선시대 그림은 성리학의 영향 아래 만들어진 작품인 만큼 사서삼경 정도는 대충 이해하는 교양이 있어야 그림의 진정한 뜻이 보입니다. (p.85)
- 탑의 층수는 홀수, 땅에 닿는 면은 짝수
1·3·5·7·9는 홀수요, 양수요, 하늘의 수니 그 합이 25이고, 2·4·6·8·10은 짝수요, 음수요, 땅의 수니 그 합이 30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니 땅에 닿는 평면도는 짝수, 하늘로 향하는 층수는 홀수를 쓴 것이 아닐까요? (p.89)
옛 분들은 시간과 공간을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동서남북 공간이 동시에 춘하추동 시간이라는 생각······ 엉뚱한 듯하지만 사실 이것은 대단히 합리적인 생각입니다. (...)
옛분들은 동쪽은 봄, 남쪽은 여름, 서쪽은 가을, 북쪽은 겨울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p.91~92)
- 오행은 시공時空이자 도덕
◉동쪽=봄, 봄이 되면 눈이 녹고 보슬비가 내리고 햇볕이 따스해지면서 만물이 모두 파릇파릇 새싹을 틔워 피어나고 자라납니다. 어질다, 仁, 어진덕을 일으킨다=동대문=흥인지문興仁之門
◉남쪽 =여름, 禮, 여름이 되면 모든 초목이 아주 우거지고 부쩍 웃자라서 일시에 무성해집니다. 함부로 남을 헤치고 분수를 벗어나질 않습니다. 禮, 예를 높이는 남대문을 숭례문崇禮門
◉서쪽 = 가을, 義, 서대문을 돈의문敦義門
◉북쪽 =겨울, 智, 북대문, 알지 자에 엄숙할 숙자를 써서 숙지문肅智門, 이 지혜라는 게, 씨앗이 땅 속에 숨어 있는 지혜이고 밖으로 나대는 성질이 아닌 까닭에, 또 사람의 지혜도 인의예仁義禮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지혜란 드러내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처음엔 숙청문이라 했다가 나중에 중종 때에 ‘고요하고 안정되어 있다’ 는 정靖자로 바꾸었습니다. (p.93~94)
지금 일주일 주기를 일월화수목금토로 말합니다. 일정하게 반복되는 시간의 주기는 인간에게 굉장히 중요한 것 아닙니까? 일월은 음양이고 화수목금토가 곧 오행입니다. (p.97~98)
예술 작품엔 위대한 작품이 있고, 또 사랑스러운 작품이 있습니다. 위대한 작품이라는 것은 정색을 하고 똑바로 서서 박물관 같은 곳에서 바라보기에 걸맞은 것이라면, 사랑스러운 작품은 이를테면 나만의 서재에다 걸어 놓고 늘상 바라보면 마음이 참 편할 것 같은, 그런 그림을 말합니다. (p.101~102)
우리 조상들은 인물을 그릴 적에 항상 우리 자신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점잖고 공부 많이 한 학자들은 상체가 길고 다리를 짧게 그렸지만, 거꾸로 말구종 같은 아랫사람은 머리는 작고 다리는 길게 그렸습니다. (p.115)
- 세계 최고의 호랑이 그림
첫째는 조선 호랑이 자체가 지구상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동물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생태 면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과거 호랑이가 지천으로 많았던 나라입니다. 아름다운 호랑이가 그토록 많았고 또 역사적·문화적 연원까지 깊다 보니, 조선 사람이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랑이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는 조건은 다 갖추어진 셈입니다. (p.118)
조선 사람의 ‘엽전 의식’은 순전히 일제가 날조한 것입니다. 사실은 전혀 다릅니다. (p.123)
호랑이는 《주역》에 의하면 ‘큰사람’, 즉 대인大人을 뜻합니다. 온 세상을 진정 아름답게 변화시킬 큰 덕을 펼칠 사람을 상징하는 그림인 까닭에 이토록 아주 정중하고 치밀하게 그린 것입니다. (p.126)
정통 회화가 제대로 공부 많이 한 사람의 그림이라고 하면, 이것은 마치 착한 동네 슈퍼 아저씨 같은 그림이죠. 많이 배우신 것은 없지만 인간적으로 사람이 참 따듯하고 좋아서, 퇴근 후 피곤할 때 그 양반하고 그냥 객쩍은 소리나 하면서 막걸리 한잔 나누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은, 그런 식의 아름다움을 보여 줍니다. (p.140)
- 대상을 사랑하는 눈이 중요
공부 더 한 사람이 그림을 더 잘 보는 것이 아닙니다. 대상을 사랑하고 생태를 알고 찬찬히 눈여겨보는 것이 더 중요해요. (p.152)
♣짧은 생각
지금까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부분을 알게 되었다.
그림에 대한 사전지식이 필요해서 공부를 하고 그림을 보는 것이 도움이 반드시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상을 사랑하는 생태를 알고 찬찬히 눈여겨보는 눈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찬찬히 사랑하는 마음으로 느긋하게 그림을 감상하는 자세도 필요하다는 것.
사람도 오래보아야 되듯이 그림도 마음으로 찬찬히 봐야한다. 마음이 가 닿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는 저자의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오주석의 한국의 미특강》_(p.157~)
3 셋째 이야기 _옛 그림으로 살펴본 조선의 역사와 문화
- 일제는 감영 건물까지도 죄 부셔
일제강점기에 일본 사람들은 아예 헌병을 세워 놓고 개성 왕릉이며 강화도의 분묘를 도굴해 갔지요. 기록을 보면 태평양전쟁 말기, 즉 1941~1943년 무렵에 우리 국보급 문화재가 한 해에 만 점 이상 씩 A급만 쏙쏙 뽑혀서 일본의 도쿄, 교토, 오사카3대 도시의 백화점이나 호텔에서 경매되었답니다. (p.159)
역사 전체를 놓고 보면 우리는 중국보다 전쟁이 훨씬 적었지요. 중국은 큰 나라만 어림잡아 세어도 25사史라 합니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 남북국시대, 고려, 조선이 끝입니다. (p.162)
- 성리학국가에서 백성은 하늘
- 조선은 문화와 도덕이 튼실했던 나라
지금 종묘가 ‘세계 인류가 보존해야 할 유네스코 지정 문화재’로 되어 있는데, 한번 가셔서 찬찬히 보십시오. 임금이 제사 지내는 마당의 돌, 박석을 보십시오. 이걸 네모반듯하게 다듬지도 않고 물갈이도 안 한 채 그저 까뀌로만 툭툭 쳐서 깔았습니다. 3정승 6판서 노인들이 지나다니다 넘어지면 어떻게 하라고 대충대충 다듬었어요. 이건 뭐냐 하면 맨 위에서부터 솔선수범해서 검소함을 표방한 것입니다. 그건 궁궐 정전도 마찬가지죠. (p.167)
- 인류 회화를 통틀어 최정상급 초상화
숙종 때의 대학자 이재 라는 분의 초상화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초상화, 아까 제가 호랑이 그림이 전 세계 최고의 작품이라고 단언했듯이, 이 역시 인류 회화를 통틀어 최정상급 초상화입니다. 렘브란트가 최고의 초상 작가라는 것은 서양 사람들의 생각일 뿐, 실제로 그의 초상이 이 그림보다 낫다고 볼 근거는 전혀 없습니다. 렘브란트는 4000억 원씩 하는데 우리나라 옛 그림은 최근 7억 원에 경매된 것이 가장 비싼 값입니다. (p.171~172)
옛 그림은 형태는 물론 각각의 선이 성질을 음미해야 참맛을 볼 수 있습니다. 복건이 꺾어진 선의 성질을 음미해야 참맛을 볼 수 있습니다. 복건이 꺾어진 선은 마치 생철을 접은 듯이 굳세고, 아래 드리운 천이 접혀서 생긴 선은 굵었다 가늘었다 하며 휙 하고 속도 있게 펼쳐진 기세가 참으로 활달하고 탄력이 넘칩니다. 획 하나하나가 긴장돼서 고르게 흐르는데, 굵기의 변화가 없는 아주 점잖은 선으로 마치 철사인 양 굳세게 이어집니다. 그러니까 이 그림은 사실화이면서도 추상화인 셈입니다. (p.174)
속눈썹이며 눈시울이 동공의 홍채까지, 서양화에서도 보기 어려운 극사실묘사입니다. 언뜻 서양화가 굉장히 사실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세부는 우리 옛 그림이 더욱 사실적입니다. (p.177)
-초상화를 극사실로 그린 이유
조선은 성리학 국가였기 때문에 군사부일체, 즉 임금과 스승과 부모가 하나였습니다-여기서 부를 부모로 해석하는 것은 한문을 약간이라도 공부해 본 분들은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p.177)
우리 옛 그림에는 왜 추상화라는 것이 없을까요? 추상화가 정말 없습니까? 기가 막힌 추상화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서예입니다. 천변만화하는 선의 움직임을 따라 글 쓰는 사람의 순간순간의 감정이 배어 있고, 또 인격의 기운을 드러내는 서예가 있습니다. (p.179)
- 검버섯도 진실대로 그린 엄정한 회화 정신
이런 극사실 초상화에 보이는 회화 정신을 뭐라고 했느냐 하면, 옛날 분들은 그 마음을 일러 ‘일호불사一毫不似 편시타인便是他人’이라고 했습니다. 즉, ‘터럭 한 오라기가 달라도 남이다’ 라는 것이죠. 참으로 엄정한 회화 정신입니다. 그럼 보기 싫은 검버섯이나 부종 같은 환부까지 왜 그토록 정확히 그렸는가? 진선미眞善美 가운데 예쁜 모습이 아니라 진실한 모습, 바로 참된 모습을 그리려 했기 때문입니다. 즉, 외면이 아닌 정신을 그리려고 한 것입니다! (p.190)
- 초상화에 쓰인 글은 주인공의 삶의 정신
사실 퇴계 이황 선생께서 가장 중시했던 글귀가 바로 이 ‘무자기', 즉 ’나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 는 말이었습니다. (p.193)
그런데 손은 좀 잘못 그렸습니다. 부채까지도 참 멋들어지게 그렸는데, 특히 부채 바깥쪽에 색을 좀 어둡게 칠해 가지고 도드라져 보이도록 서양화법으로 잘 그렸는데, 손을 못 그렸죠! 제가 우리나라 옛 그림이면 무조건 좋다, 훌륭하다고 국수주의적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p.195)
- 예쁘지만 정신이 빠진 그림
호암미술관에 가 보시면 또 <황후대례복>이란 그림이 있는데, 황후 옷을 입혀 가지고 부인을 황후로 만든 것도 있습니다. 더 안 좋은 점은 김은호라는 분이 친일 경력이 있었던 화가란 점이에요. 일본인 조선 총독에게 한복 입은 아녀자들이 금비녀를 뽑아 바치는 그림을 그려 대동아 전쟁 선전에 앞장선 사람입니다. 그런 이에게 부탁해서 춘향이도 만들고 논개도 만들고, 심지어 이순신 장군도 만들다니······ 이런 일을 하는 나라는 세상에 원,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p.201)
부인을 모델로 황후대례복을 입혀 그림을 그려서 부인을 황후로 만들었다는 발상은 가히 신선하다고 보아야 할까 과대망상이러고 보아야 할까 정확히 판정하진 못하겠지만 정상적인 비유는 아니다. 부인을 모델로 하거나 주변인을 모델로 한 그림이 그려진다고 해서 그 모델의 신분이 바뀌는 일은 없었으니까. 그럼 부인을 황후로 만들었으니 화가가 황제가 되려고 역모를 꾀했다고 주장하고 싶은 걸까? 이건 다분히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악의적인 표현으로 사실을 왜곡한 것이다.
일본인 조선총독에게 한복 입은 아녀자들이 금비녀를 뽑아 바치는 그림을 그려 대동아전쟁 선전에 앞장 섰다는 말도 나쁜 마음을 먹고 쓸 수 있는 표현일 뿐 사실을 정확하게 전하지 않고 있다. 우선 한복입은 아녀자들이란 모든 조선 아녀자들을 통칭할 수 있는 표현이지만 사실 그 사람들은 총독부 통치 시절에 이왕직 장관등을 지낸 고위 공직자들의 모임인 동요회 59명의 부인들로 구성한 애국금차회라는 59명의 아녀자들일 뿐이고 모든 조선 여성들은 아니다. 그들이 금차회 창립식에서 금비녀를 뽑아 그걸 용산의 심택 중장에게 바치는 모습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남겼는데, 후일 애국금차회 회장인 윤덕영의 처가 지인인 이당에게 부탁하여 마지 못해 그린 것이고 애국금차회에서 이를 총독에게 바쳤는데, 이런 사실은 쏙 빼고 이당이 그려 바쳤다고 하는 건 주객이 전도된 악의적인 왜곡이다. 학교에서 부탁한 그림을 그렸다고 해서 내가 학교장이 되거나 학교의 교사가 되는 것도 아니며 학교에서 교육부에 바치고 말고는 화가가 관여할 일은 못 된다. 교회 다니는 조각가가 단군상을 만든다고 기독교인이 아니라 할 수 없고 손기정 남승룡이 일장기 달고 마라톤 메달을 땄다고 해서 일본인이 될 수도 없다. 이당은 37년에 우여곡절 끝에 금차봉납도를 그렸지만 대쪽 같은 언행으로 당시 불교계에서도 이방인처럼 생각했던 대쪽같은 만해 한용운 선사의 1939년 환갑기념연 축시첩인 만해선생송수첩에도 첫장에 축하그림을 올릴 만큼 만해가 인정하던 독립정신이 강한 화가였다. 일제시대 그 수많은 화가 중에서 3.1운동에 참여해서 서대문 형무소에서 1년동안 감옥살이를 한 화가가 누가 있으며 윤덕영과의 인연 때문에 피치 못하게 그린 금차봉납도 외에 전쟁관련 되는 그림이나 일본을 미화하는 선전도구용 그림을 한 장도 그린 적이 없는 항일정신이 누구보다 강했고 둑립운동에 끝까지 깊숙이 참여했던 화가이다. 의친왕의 차남으로 1945년 히로시마에서 희생당한 독립정신이 강한 이우공의 초상을 그린
<논개>나 <춘향>, <이순신 장군> 이런 그림은 겉보기에는 좋은 듯하지만 그저 예쁘기만 한 것은 장식품이지 예술품이 아닙니다. 더구나 작가는 이런 그림을 그릴 명분이 없는 분이었습니다. 아름다움이 아니라 참을 그린 옛 초상화에 담긴 정신에 대해서는 나중에 좀 더 부연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p.205)
일제강점기 때 나라가 망한 후 기생들은 조합을 만들었습니다. 일패, 이패, 삼패 기생이 있었는데 일패, 이패 기생은 서로 양산 색깔부터 달랐다고 해요. 가령 일패 기생을 길에서 만나면 이패 기생은 스스로 양산을 접고서 상대가 가길 기다렸다가 지나갔다고 합니다. (p.209)
- 초상이 아니라 사진
찬문을 보면, ‘기진자사’ 즉, 참 지 자, 그릴 시자를 써서 초상화를 그리는 걸 ‘사진’이라 표현했습니다. 옛날 분들은 초상이라고, 닮을 초 자를 쓰지 않고 ‘사진’이라고 얘기했던 것입니다. (p.218)
- 외형이 아닌 정신의 문화, 안목의 문화
국왕과 3정승 6판서가 엄숙한 의례를 행하는 종묘 마당을 이렇듯 소박하게 마무리한 나라였기 때문에, 그런 나라였기 때문에 거꾸로 500년이나 간 겁니다. 사실 그래서, 실제로 가 보면 별 것 없는 듯하면서도 무언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반듯한 정신미가 느껴집니다. 지금의 문화 상황은 어떠냐 하면, 여기 종묘 칸칸이 신실의 문을 채우고 있는 좌물쇠가 모두 미제 밀워키 회사 자물쇠입니다. 정말 기가 막히는 일입니다! 동시에 너무나 상징적입니다! 아무리 도둑이 걱정되더라도 이런 식으로 대처한 것에는 너무 자존심이 상합니다.
종묘는 애초 선왕 일곱 분 정도를 모시게끔 일곱 칸을 지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라가 오래가면서 자꾸 선왕이 많이 생기거나 그대로 잇대어 증축을 했다고 그러죠. 그러고도 더 많은 선왕이 자꾸 생겨나니까 영녕전이란 건물을 하나 더 지었습니다. 외형이 아닌 정신의 문화, 그리고 높은 안목의 문화, 이게 바로 조선의 정신이었습니다. (p.229)
♣짧은 생각
이 책은 소장 가치가 있는 책 같다.
책을 읽다보니 강의식으로 들었다면 훨씬 더 집중도 있게 그림들의 설명들이 와 닿았겠다 싶다가도 강의를 듣고 있으면 이런 좋은 내용은 책으로 나와야 되는데 했을 법한 내용이다.
강의를 들으면서도 기억하고 꼭 기억하고 싶은 그림의 설명들이 아쉬워 또 검색을 하게 될지도 모를 내용. 나같은 사람 때문에 책으로 나왔나보다.
이렇게 자세히 우리 그림에 대해 설명이 나와있는 책은 이 책이 처음이다.
그리고 저자가 알려준 대로 그림을 보는 태도를 꼭 실천해보고 싶고 아는 지인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
한국의 미 특강 잘 보고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