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의안(按)을 부(附)하다
설씨(薛氏)가 어떤 남자(男子)를 치료(治)하였으니, 평소 각기(脚氣)가 있어 협하(脇下)가 작통(作痛)하고 발열(發熱)하며 두훈(頭暈)하고 구토(嘔吐)하며 퇴(腿)가 비(痺)하여 불인(不仁)하였다.
소독음(消毒飮) 호심산(護心散) 등의 약(藥)을 복용하였으나 응(應)하지 않았다.
좌관(左關)의 맥(脈)이 긴(緊)하고 우관(右關)의 맥(脈)이 현(弦)하므로, 이는 역시 각기(脚氣)이었다. 반하좌경탕(半夏左經湯)으로 치료(治)하였더니 나았느니라.
어떤 남자(男子)가 각연(脚軟) 종통(腫痛)하고 발열(發熱) 음냉(飮冷)하며 대소변(大小便)이 비(秘)하고 우관(右關)의 맥(脈)이 삭(數)하였다.
이는 곧 족양명(足陽明)의 경(經)에 습열(濕熱)이 유주(流注)한 것이었다. 대황좌경탕(大黃左經湯)으로 치료(治)하였더니 나았느니라.
어떤 부인(婦人)이 지절(肢節)이 종통(腫痛)한데 경족(脛足)이 더 심(甚)하였으며 시(時)로 혹 자한(自汗)하거나 두통(頭痛)하였다.
이는 태양경(太陽經)의 습열(濕熱)의 소치(所致)이다. 마황좌경탕(麻黃左經湯) 2제(劑)를 썼더니 나았느니라.
어떤 남자(男子)가 양퇴(兩腿)가 종통(腫痛)하고 맥(脈)이 활(滑)하면서 삭(數)하였다.
이는 습담(濕痰)의 소치(所致)이었다. 먼저 오령산(五苓散)에 창출(蒼朮) 황백(黃栢)을 가한 것 2제(劑)를 썼더니 조금 나았느니라.
다시 이진(二陳: 반하 진피) 이출(二朮: 창출 백출) 빈랑(檳榔) 자소(紫蘇) 강활(羌活) 독활(獨活) 우슬(牛膝) 황백(黃栢)으로 하였더니 다 나았느니라.
습담(濕痰)의 증(證)은 반드시 먼저 행기(行氣) 이습(利濕) 건중(健中)을 위주로 하여야 하니, 중기(中氣)가 화(和)하면 담(痰)이 저절로 소(消)하면서 습(濕)도 용납(:容)할 곳이 없게 된다.
어떤 남자(男子)가 우퇴(右腿)가 적종(赤腫)하고 흔통(焮痛)하며 맥(脈)이 침삭(沈數)하였다.
당귀염통탕(當歸拈痛湯)을 썼더니 사지(四肢)가 도리어 통(痛)하였다. 이는 습독(濕毒)이 옹알(壅遏: 막다)한 것이고, 더구나 하부(下部)에 약(藥)이 쉽게 도달(達)하지 못하여 그런 것이니, 약(藥)이 증(證)과 대(對)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에 환처(患處)에 폄(砭)하여 독혈(毒血)을 거(去)하고 다시 앞의 약(藥)을 썼더니, 1제(劑)에 갑자기 감(感)하고 4제(劑)를 더 썼더니 소(消)하였다.
어떤 부인(婦人)이 각기(脚氣)를 앓아 시(時)로 퇴(腿)가 종(腫)하고 근련(筋攣)하며 복(腹)이 작통(作痛)하였고 제약(諸藥)이 응(應)하지 않아 점차 위독(危篤)에 이르렀느니라.
여러 서(書)에 이르기를 "팔미환(八味丸)은 족소음(足少陰)의 각기(脚氣)가 복(腹)에 들어가 동통(疼痛)하고 상기(上氣) 천촉(喘促)하여 욕사(欲死)하는 것을 치(治)한다." 하였다. 이를 투여(投)하니 1번 복용하였더니 갑자기 퇴(退)하였고 또 복용하였더니 다 나았느니라.
신경(腎經)이 허한(虛寒)한 사람들에게 이 질환(:患)이 많이 있는데, 곧 신(腎)이 심(心)을 승(乘)한 수극화(水剋火)의 증(證)이다. 조금만 완(緩)하였으면 사(死)하여 발길을 되돌릴 수 없었으니(:旋踵) 마땅히 급히 이를 복용하여야 한다.
어떤 부인(婦人)이 퇴(腿)가 통(痛)하여 굴신(屈伸)하지 못하고 풍한(風寒)을 만나면 통(痛)이 더욱 심(甚)하게 되며 제약(諸藥)이 응(應)하지 않아 심(甚)히 고(苦)하였다.
먼저 활락단(活絡丹) 1환(丸)을 사용하였더니 갑자기 퇴(退)하고 또 복용하였더니 다 나았느니라.
다음 해에 다시 통(痛)하길래 이에 1환(丸)을 복용하게 하였더니 또 대반(大半: 2/3 이상)이 퇴(退)하였고 다시 독활기생탕(獨活寄生湯)으로 4제(劑)를 복용하였더니 다 나았느니라.
어떤 남자(男子)가 평소 각기(脚氣)가 있었고 또 부골옹(附骨癰)을 앓아 작통(作痛)하였다.
활락단(活絡丹) 1환(丸)을 복용하였더니 두 가지 증(證)이 모두 다 나았느니라.
상사(上舍: 생원) 유노월(兪魯月)이 평소에 산(疝)이 있어 낫지 않고 있다가 이로 인하여 퇴(腿)의 통(痛)을 앓게 되었다.
활락단(活絡丹) 1환(丸)을 썼더니, 퇴(腿)의 질환(:患)에 유효(有效)할 뿐만 아니라 산(疝)도 같이 나았느니라.
유도(留都: 남경)의 김이수(金二守)의 딸이 경풍(驚風)을 앓아 심(甚)히 위(危)하였는데 제의(諸醫)가 모두 구(救)하지 못하였다.
스스로 활락단(活絡丹) 1환(丸)을 썼더니 바로 나았고, 다시 작(作)하지도 않았다.
병사(病邪)가 내(內)에 심복(深伏)하면 이 약(藥: 활락단)이 아니면 통달(通達)할 수 없다. 단지 근대(近代)에 '이 약(藥)은 풍(風)을 인(引)하여 골(骨)에 들어가게 하니, 마치 유국(油麵)과 같다.' 라는 설(說)이 있었으므로 후인(後人)들이 대부분 이를 복용하기를 꺼려하였다.
대체로 이 병(病)에는 마땅히 이 약(藥)을 써야 하니, 어찌 그 말에 구애(:泥)되어 병(病)이 낫기 어렵게 만들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