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에 보내는 편지 (더불어민주당 전 국회의원 문학진)
올 8월말로 예정돼있는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또다시 당헌·당규를 손보고자 하는 움직임이 노골화되고 있습니다.
그 움직임의 핵심의도는, 제가 지난 2월 공천파동 와중 적시한 바 있는 이재명대표의 ‘당권 재장악->대선 재도전’ 프로그램 실행입니다.
정치인으로서 권력장악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은 전혀 지탄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과정들이 누가 보아도 순리에 닿지않고, 당을 주머니 속의 공깃돌 정도로 여기는 행태로 비쳐진다면, 그것은 지탄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지난번 제가 지적한대로 ‘실패’로 귀결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2022년 3월 대선 패배 후 8월 전당대회에서 이 대표는 대선 패배의 아쉬움을 몰아 당권을 거머쥡니다.
전당대회 직전 이대표 측은 ‘부정부패혐의로 기소된 자’의 당원권 정지 조항(당헌 80조)에 ‘당무위 의결’이라는 단서를 달아 예외로 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둔 바 있습니다.
‘검찰독재’ 프레임이 당내에서 절묘하게 먹힌 겁니다.
그 즈음부터 ‘민주당의 이재명’이 아닌 ‘이재명의 민주당’이라는 슬로건이 버젓이 내걸리기 시작합니다.
‘윤석열 검찰독재’를 분쇄하려면 ‘이 길밖에 없다’는 외골수 논리가 당내를 휘저으면서 마녀사냥이 일상처럼 벌어집니다.
누가 보더라도 정상은 아닌 ‘광기’같은 것이 당내를 횡행하는 가운데, 지난 22대 총선 공천이 이루어집니다.
이 대표는 ‘외골수’와 ‘광기’를 교묘히 활용해가면서 공천에 전권을 행사합니다. 이대표 공천의 일관된 기준은 ‘충성심’이었습니다.
이대표와 그 주변은 첩첩산중이랄 수밖에 없는 사법리스크에 일사불란한 대오로 임할 호위무사들이 무엇보다 필요했고, 그들과 함께 2027년을 도모하고자 했던 겁니다.
국민들도 그런 상황을 눈치챘습니다. ‘민주당 왜 저러나’했습니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이 한술 더 뜨기 시작했습니다. 민주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윤석열이, 국민의힘이 너무도 형편없었기 때문에 야권의 승리로 총선이 끝난 겁니다.
총선 승리 이후 민주당 원내대표와 국회의장 선출 과정은 ‘이러다 큰일 내겠구나’ 싶은 광경들을 보여주었습니다.
원내대표·국회의장 뛰겠다던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지더니 하나는 추대, 하나는 선출이후 ‘색출작업’이 벌어졌다는 겁니다.
이게 뭘까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때 생각나지 않습니까. 절대권력자의 뜻대로 가는.
권력자와 그 맹목적 추종자들은 호흡을 맞추어 국회의장, 원내대표 선출시 당원 몫으로 20%를 반영키로 했다고 합니다. 국회를 장기판의 졸로 만들겠다는 발상이지요.
자! 이제 8월 전대가 다가옵니다. 이것을 앞두고 당헌·당규를 또 바꾼다는데, 핵심적 이유는 ‘이대표의 당대표 연임->지방선거 공천권 행사->2027년 대선출마’ 프로그램에 장애가 되는 것들을 모두 치우겠다는 것입니다.
먼저, 대표 연임은 이미 당내에서 여러 사람이 군불을 때어 기정사실처럼 되어있는데, 대선 1년전 대권-당권 분리 조항(대선에 나가려는 자가 대표직 갖고 있으면 당내에서 공정한 대선후보경선이 어려움)에 또다시 예외조항을 두어 이대표가 2026년 6월 지방선거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현행 조항대로 가면 2026년 3월에 대표를 그만두어야 대선후보가 될 수 있으니, 그 조항을 걷어내겠다는 거죠.
왜 이걸 하려고 할까요. 22대 총선 민주당 공천을 통해 국회에 본인의 아성을 쌓았으니, 지방선거 공천을 통해 지역에 마저 본인의 철옹성을 쌓겠다는 겁니다.
정당에서 공천권은 그 무엇보다 막강한 권력입니다. ‘친명횡재 비명횡사’란 말을 낳은 것이 22대 민주당 공천이었고, 다음 지방선거에서도 그렇게 줄을 세우고 싶은 것입니다.
또 하나, 지난 전당대회 전에 예외조항을 끼워넣었던 당헌 80조 ‘기소시 당원권 정지’는 아예 삭제하겠다는 거죠. 이대표의 사법리스크와 관련한 어떤 논란도 원천봉쇄하겠다는 의도입니다.
이런 일련의 상황과 관련해 당내에서 의미있는 논쟁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거의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이 당이 정녕 이재명 ‘개인’의 당입니까.
이 당이 이대표의 ‘대선 캠프’입니까.
이런 문제제기를 하면 ‘대안이 없지 않으냐’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재명이 언제부터 유일무이한 존재였나?”
22대 국회의원들에게 한말씀 드립니다.
여러분은 국민의 뜻을 받들어 발언하고 실천하라는 국민의 명령을 받은 분들입니다.
국민 상당수가 곱지않게 바라보는 일들이 당내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눈치만 살필 겁니까. 용기를 가지고 발언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아침 산책길에서 공연포스터 한 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꼼수 위에 묘수’. 꼼수는 실패로 가는 길입니다. 묘수는 ‘정도(正道)’입니다.
2024년 6월 9일
문 학 진(前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