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01
- 규제 사각지대서 큰 공매도
- 개미들 의문 제기하며 논란
- 투자자 간 '시장균형' 맞추려면
- 매수세력에도 대응수단 줘야
'공매도'는 기업인과 같이 세상을 실물경제 중심으로 보는 사람에게는 뚱딴지 같은 괴물이라 할 수 있다. 기업이 돈을 빌릴 때는 부채비율과 같이 '내 돈'으로 빚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는지 철저히 검증받는다. '자기자본 확충안'을 내라는 요구도 받는다. 그런데 공매도는 내 돈을 들이지 않고 남의 주식을 빌려 판 뒤 차익을 챙긴다. 부채비율 무한대다.
공매도를 하는 주체는 헤지펀드 등으로 한정돼 있다. 연금이나 뮤추얼펀드 등 기관투자가에게는 금지돼 있다. 왜 극소수에게 이런 특권이 주어지는가. 뚜렷한 이론이나 실증은 없다. 헤지펀드는 처음에 일부 부유층 자금을 모아서 굴리는 '개인 투자'로 시작됐고 미국 금융당국이 거기까지 개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컸다. 그 후 빌 클린턴 정부에서 금융산업을 육성한다며 1996년 '국가증권시장개선법(NSMIA)'을 통과시키면서 탄력을 받았다. 그 전에는 개인 100명 이내에서만 자금을 모을 수 있었는데, 인원 제한을 없애고 기관투자가의 자금도 무제한 '대체투자'받을 수 있도록 허용했기 때문이다.
투기가 물건이나 증권의 가격을 발견해내는 데 도움을 준다는 사실은 경제학계에 오래전부터 확립돼 있다. 물론 투기가 경제 전반에 얼마나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끝없는 논쟁이 벌어진다. 그렇지만 공매도가 왜 좋은지, 왜 극소수에게만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확립된 이론이나 실증이 없다. 헤지펀드를 연구한 데이비드 데연은 NSMIA가 "월가(街)의 폭넓은 지지를 받아 제안됐고 의회에서 아무런 저항 없이, 국민 대부분이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통과됐다"고 지적한다.
최근 국내의 공매도 논쟁은 개인투자자들의 문제 제기에서 비롯됐다. 주가가 오를 만하면 공매도 때문에 주가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공매도가 왜 경제에 필요한지는 명확히 밝히지 않고 선진자본시장의 '글로벌 스탠더드'이기 때문에 공매도 금지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얘기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균형'을 맞춰준다며 개인투자자들도 공매도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한다. 이것은 매도 세력 간에 '정치적 균형'을 맞추는 것에 불과하다. 투기의 가격 찾기 기능이라는 '시장 균형'이 작동하려면 매수·매도세력 간에 균형을 맞춰야 한다. 그렇다면 매수세력에 '공매수'를 허용해야 한다. 왜 매도세력에만 공매도를 허용해 시장 불균형을 만들어내는가.
필자는 당국이 공매도 금지와 허용을 판단하기보다 이해당사자들에게 맡겨 해결하기를 권한다. 공매도의 출발은 기관투자가가 주식을 빌려주는 것이다. 대여수수료라는 추가 수익을 올릴 수 있으니 군침이 당기는 일이다. 그렇지만 기관은 자기 돈을 굴리지 않는다. 고객이 맡긴 돈을 굴리는 '자금관리수탁자'이고, 고객에 대해 '신의성실의무'를 진다. 고객 동의는 그동안 간과되고 있었지만 필수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공매도세력은 자신이 빌린 주식의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고 믿는 '확신범'이다. 옆집의 화재보험을 사놓고 옆집에 불나기를 기다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방화할 유인도 갖고 있다. 헤지펀드들은 실제로 주식을 빌린 뒤 그 회사의 주가가 고평가돼 있다거나, 걸레 같은 회사라는 얘기를 대놓고 한다.
주식 대여에 동의하는 고객은 공매도가 벌어져도 주가가 떨어지지 않거나, 곧 회복된다는 확신을 갖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동의하지 않는 고객은 공매도로 주가가 부정적 영향을 받고, 그럴 바에야 대여수익을 포기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일 것이다. 주식을 대여하려는 기관투자가는 "아무리 공매도가 벌어져도 주가가 까딱없을 것"이며 "따라서 대여료라는 추가 수익을 확실히 올릴 수 있다"고 고객을 설득하면 된다. 이보다 더 간단한 해결책이 어디에 있겠는가.
신장섭 / 싱가포르국립대 교수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