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네 고향 아나돗으로 가라 너는 마땅히죽을 자이로되 네가 내 아버지 다윗 앞에서 주 여호와의 궤를 메었고 또 내 아버지가 모든 환난을 받을 때에 너도 환난을 받았은즉 내가 오늘 너를 죽이지 아니하노라 하고 아비아달을 쫓아내어 여호와의 제사장 직분을 파면하니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엘리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함이더라 (왕상 2:26~27)
대제사장 아비아달은 다윗과 깊은 인연이 얽힌 사이이다. 다윗이 그를 죽이려는 사울을 피해 음식도 무기도 챙기지 못한 채 도망 길에 나서 놈에 이르렀다. 거기에는 실로에서 옮겨 온 성막이 있었다. 다윗은 거기서 아비아달의 아버지 제사장 아히멜렉을 만나 진설병을 얻어먹고 거기 보관된 골리앗의 칼을 받는다(삼상 21장). 그러나 이 일이 화근이 되어 아히멜렉 가문의 제사장 85명이 죽임을 당한다. 이때 유일하게 목숨을 건진 이가 바로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이었다. 아비아달은 다윗 때문에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하고 다윗의 진영에 합류하였다(삼상 22:20~23). 그런 아비아달이기에 그를 향한 다윗의 심정은 깊을 수 밖에 없다. 두 사람은 그야말로 피로 맺은 친구인 혈우友)였다. 아비아달은 사울의 칼을 피해 살아나올 때 에봇을 가지고 왔다(삼상 23:6).그리고 다윗은 그 에봇으로 인해 두 번에 걸친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원함을 받는다(삼상 23:9; 30:7).
다윗이 즉위한 이후에 아비아달을 제사장으로 임명한 것은 너무나당연하였다. 그는 사독과 함께 다윗 정부의 중심인물이 된다. 다윗이예루살렘을 정복하여 도성을 삼은 이후 법궤를 옮겨 올 때에 제일 먼저부른 사람이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대상 15:11)이었다. 아비아달은다윗이 임명한 국가관리 명단에 사독과 함께 공식적으로 등장한다(삼하 8:17). 아비아달에 대한 다윗의 신임은 압살롬의 반역 때에 나타난다.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이 평정될 때까지 전 과정 동안 사독과 함께아비아달에게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긴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피신할때 그들에게 언약궤를 도로 메어 가라고 지시하였다(삼하 15:29). 또 후새에게 예루살렘에 남아 압살롬의 모사 아히도벨의 계략을 물리치라는 미션을 줄 때에도 반드시 사독과 아비아달과 의논하라고 지시하였다(삼하 15:35). 그만큼 사독과 아비아달을 신뢰한 것이다(삼하 17:15;19:11). 그렇게 아비아달은 다윗 정부의 핵심 인물이었다. 이런 그가 다윗이 늙자 그가 왕위를 물려주기도 전에 그의 뜻에 반하여 스스로 왕이 되려고 일어난 아도니야의 반역에 동참하였다. 왜 그랬을까? 재림교회 성경주석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런 그가 변절한 이유는 분명하지 않지만 아도니야의 행동을 사실상의 반역으로 보지 않았던 것 같다. 다윗이 솔로몬을 세자로 책봉한 것은 그에 대한 지나친 사랑 때문이며 큰아들이 왕위를 물려받는 것이 정당하고 합법적이라고 보았던 것 같다(재림교회 성경주석, 4:289).
정말 그럴까? 아비아달이 정말 아도니야의 행동을 사실상의 반역'으로 보지 않았기에 반역 모의에 동참하였을까? 고대의 왕정에서 그런 판단과 행동이 가능한 일일까? 오히려 그에게 남몰래 키워 온 역심이 있지 않았을까? 다윗 정부에서의 그의 역할과 관련하여 깊이 주목할 것이 있다. 그것은 아비아달이 사독과 함께 언급될 때는 언제나 사독 다음이라는 사실이다. 즉 언제나 '사독과 아비아달'(삼하 8:17; 15:29, 35; 17:15; 19:11; 20:25; 왕상 4:4; 대상 15:11; 18:16; 24:6)이지 단 한번도 '아비아달과 사독'이 아니다. 이것은 제사장으로서의 영향력이나 위상에 있어서 아비아달이 사독 아래에 있었음을 의미한다. 다윗 정부의 제사장 지위에 있어서 아비아달은 2인자였던 것이다. 사실, 다윗의 진영에 합류한 순서로나 기여도로나 아비아달이 사독보다 위였다. 아비아달은 다윗의 도피 시절에 합류했지만(삼상 23:6), 사독은 사울이 죽은 다음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의 왕으로 통치할 때에 합류하였다(대상 12:23~28). 아비아달은 다윗을 돕다가 멸문지화를 당했고 두 번이나 결정적 위기에서 그를 구해 주었다. 그런데 사독이 합류한 이후 언제나 그의 자리는 사독 다음이었다.
이런 입장이 아비아달의 내면 의식에 어떤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다윗의 힘이 강할 때에야 잠재되어 있었지만 다윗의 힘이 빠지면서 어떤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았을까? 그런 그의 마음이 아도니야의 반역에 동참하는 동기가 되지 않았을까? 아비아달이 진정으로 아도니야의 행동을 반역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사독을 향해 아무런 내재된 감정이 없었다면 평생을 함께 다윗을 섬겨 온 동료인 사독에게 틀림없이 자기 생각을 털어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사독과 다른 판단을 하고 있었다. 그의 내심에서는 사독에 대한 경쟁심과 질시의 감정이 차오르고 있었음에 틀림이 없다. 그런 마음이 다윗의 시대가 밝을 때에는 억눌려 있었지만 이제 저물기 시작하자 기회를 잡아 자연스럽게 분출된 것이다. 솔로몬이 왕이 된다면 변화를 기대할 수가 없었다. 아비아달은 아도니야의 반역 음모에 가담함으로 일등공신이 되어 사독을 넘어서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반역은 실패하고 만다. 그리하여 아도니야도 죽고 요압도 죽임을 당한다(왕상 2:25~34). 그리고 아비아달은 제사장 직분을 삭탈관직당하고 낙향 조치를 당하고 만다. 솔로몬은 "제사장 사독으로 아비아달을 대신하게"(왕상 2:35) 한다. 이후로 대제사장 직분은 사독 가계로 고정된다(겔 44:15). 솔로몬은 이런 조치를 내리면서 아비아달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네 고향 아나돗으로 가라 너는 마땅히 죽을 자이로되 네가 내 아버지 다윗 앞에서 주 여호와의 궤를 메었고 또 내 아버지가 모든 환난을 받을 때에 너도 환난을 받았은즉 내가 오늘 너를 죽이지 아니하노라(왕상 2:26).
이런 조치는 어떤 도전도 용납하지 않는 절대 권력의 속성에 비추어보면 놀랍도록 관대한 것이다. 동서고금의 역사는 누가 보위에 오르느냐를 놓고 벌어진 권력 싸움에서는 그것이 형제지간이든 심지어 부자지간이든 패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아비아달은요압과 같은 무인(武人)이 아니라 제사장으로서 율법을 가르치는 일종의 문인(人)이었기 때문에 그런 조치를 받았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그러나 왕위에 대한 도전 여론을 형성할 수도 있다는 이유만으로 수만의 무고한 문인 유생들을 생매장하고 엄청난 양의 서적을 불태운 분서갱유焚書坑)의 만행을 저지른 진시황(秦始皇)의 경우를 생각하면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러므로 권력의 속성으로만 생각하면 아비아달의 귀향 조치는 대단히 예외적인 관대한 조치이다. 솔로몬의 말 그대로아비아달이 아버지 다윗을 위해 충성하며 함께 고생한 점을 높이 평가해준 것이다.
아비아달이 제사장 직분에서 파면된 일에 대해 성경은 "엘리의 집에대하여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함이더라”(왕상 2:27)라고 하였다. 이는 백여년 전, 홉니와 비느하스의 죄로 인해 하나님께서 엘리에게 하신 "보라 내가 네팔과 네 조상의 집 팔을 끊어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일으키"(삼상 2:31~35)겠다고 하신 말씀을 가리킨다. 이다말의 후손인엘리 가문 제사장직은 이렇게 끝난 것이다. 이제부터는 엘르아살의 후손인 사독 계열만 제사장직을 독점한다. 아비아달은 잘못된 판단으로 다윗과 나눈 그 긴 우정과 봉사를 모두 잃고 말았다. 그렇게 오랜 세월 다윗의 곁에서 그를 섬겨 온 아비아달 그 다윗이 아직 생존해 있는 그런 상황에서 삭탈관직削奪官職)을 당하고 낙향하는 처지에 이르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