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말씀: 요한복음 15장 1~11절
서론: 인생의 진정한 갈망과 '에고 에이미'의 선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뿌리를 두고 살아가는가? 나는 무엇으로부터 생명을 공급받고 있는가?"
우리는 저마다 인생이라는 밭에서 풍성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 위해 부단히 애를 씁니다. 때로는 밤잠을 설쳐가며 노력하고, 성공이라는 열매, 인정이라는 열매, 행복이라는 결실을 거두기 위해 쉼 없이 달립니다. 그러나 우리의 내면을 솔직하게 들여다보면 어떻습니까? 조금만 가뭄이 찾아와도 금세 시들어 메말라 버리고, 거센 비바람이 불어닥치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연약한 가지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자화상이 아닙니까?
이러한 인생의 목마름과 방황 가운데 계신 우리를 향해, 주님께서는 오늘 요한복음의 가장 깊고 풍성한 자기 선언을 들려주십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께서 구약 출애굽기 3장 14절의 모세에게 주셨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I am who I am)"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계승하신 일곱 번의 장엄한 자기 선언(에고 에이미, Ego Eimi)이 나옵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는 양의 문이다."
"나는 선한 목자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그리고 오늘 본문 15장 1절에서, 그 일곱 번째이자 마지막 자기 선언의 문이 열립니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주님은 그냥 '포도나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참포도나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구약 이사야 5장과 예레미야 2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극상품 포도나무인 '소레크'로 심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악취 나는 들포도 '바우쉼'을 맺으며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인간 스스로는 아무리 좋은 토양에 있어도 죄의 본성으로 인해 들포도밖에 맺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절망의 역사 한복판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실패한 우리 인간을 대신하여, 하나님이 찾으시는 온전하고 참된 생명의 근원이신 '참포도나무'로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주님은 우리를 향해 선언하십니다. "너희는 내 가지다. 그러니 내 안에 거하라."
본론 1: 농부이신 아버지의 다듬으심(가지치기)의 은혜
주님은 포도나무이시고, 우리는 가지이며, 하나님 아버지는 그 밭을 가꾸시는 '농부'이십니다.
농부이신 하나님께서 가지인 우리를 바라보실 때 가장 원하시는 것은 단 하나, 바로 '풍성한 열매'입니다.
그런데 2절 말씀을 보십시오.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여기서 '깨끗하게 하신다'는 헬라어 '카다이로(kathairo)'는 정원사가 나무의 불필요한 잔가지를 사정없이 잘라내는 '가지치기(전정 작업)'를 의미합니다. 농사를 지어보신 분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봄이 오면 탐스럽고 무성한 잔가지들을 아낌없이 잘라내야 합니다. 가지가 무성하면 보기에는 울창해 보이지만, 영양분이 분산되어 정작 맺혀야 할 열매는 손가락 한마디만 해지고 햇빛을 받지 못해 썩어버립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안에는 하나님께로 향하지 않는 무성한 욕심의 가지들, 세상의 헛된 자랑들, 그리고 혈기 어린 모난 '성질'들이 자라납니다. 사람은 누구나 타고난 천성이 있습니다. 그것이 다듬어지지 않고 거칠게 뻗어나갈 때 우리는 그것을 '더러운 성질'이라고 부릅니다.
농부이신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가 그 거친 성질 그대로 들포도를 맺으며 인생을 낭비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때로는 시련이라는 전정가위를 드십니다. 고난이라는 칼날로 우리의 교만을 깎아내시고, 아픔을 통해 모난 자아를 다듬으십니다.
잘려 나갈 때는 피눈물이 납니다.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시는지 이해할 수 없어 원망의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그것은 우리를 베어버리려는 저주가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영광스러운 성령의 성품, 하나님의 참된 성품의 열매를 맺게 하시려는 농부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의 손길입니다. 잘려 나가는 아픔 뒤에 비로소 참된 열매가 맺히기 시작합니다.
본론 2: '거하라(메노)' – 열매는 노력이 아니라 관계의 결실입니다
본문 1절부터 11절까지 쉼 없이 메아리치는 두 개의 핵심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거하라(Meno)'와 '열매'입니다.
주님은 4절에서 분명하게 못 박아 말씀하십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종종 치명적인 착각에 빠집니다. '열매를 맺어야지, 열매를 맺어야 구원받고 칭찬받지' 하며 내 힘과 의지로 선행의 열매, 인내의 열매를 맺으려고 바둥거립니다. 그러나 가지가 나무를 떠나 허공에서 끙끙 앓는다고 포도송이가 맺힙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열매는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관계'의 결과입니다.
가지가 할 일은 단 하나뿐입니다. 뿌리로부터 올라오는 진액과 수분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줄기에 '붙어 있는 것', 주님 안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안에 거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합니까?
첫째, 말씀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7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내 생각과 가치관과 삶의 중심에 깊이 박혀 있어, 말씀이 나를 이끌어가도록 내어드리는 삶입니다.
둘째, 사랑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9절에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하셨고, 12절에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주님 안에 머문다는 것은 추상적인 종교적 사색이 아닙니다. 말씀의 진액을 공급받아, 주님이 목숨 버려 나를 친구 삼아주신 그 십자가의 큰 사랑을 힘입어, 내 곁에 있는 지체를 용서하고 품어주며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첫 번째 열매이자 모든 열매의 본질인 이 '사랑'이 우리 안에서 흘러넘치게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주님 안에 거하는 자의 삶입니다.
결론: 예화, 간절한 호소와 삶의 적용[예화] 폭풍 속의 덩굴손과 수액의 신비
어느 유명한 원예학자가 거센 태풍이 지나간 다음 날 포도밭을 둘러보았습니다.
온 밭이 쑥대밭이 되었고, 주변의 단단해 보이던 아름드리나무들도 가지가 꺾이고 뿌리째 뽑혀 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연약하기 그지없는 가냘픈 포도나무 가지들은 놀랍게도 그 모진 비바람 속에서도 떨어지지 않고 나무에 굳게 매달려 있었습니다.
원예학자가 그 이유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더니, 작고 여린 포도나무 가지 끝에서 돋아난 미세한 '덩굴손'들이 참포도나무 본 줄기를 수십 번, 수백 번 휘감고 있었습니다.
비바람이 불어닥칠 때 가지가 한 일은 스스로 바람을 이겨내려고 버틴 것이 아니었습니다. 비바람이 거세질수록 덩굴손은 본 줄기를 더욱더 파고들며 처절하게 감아쥐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단단한 줄기로부터 한순간도 끊이지 않고 솟구쳐 올라오는 풍성한 수액을 받아 마셨습니다.
가지 자체에는 폭풍을 이길 힘이 없습니다. 꺾이지 않는 줄기의 생명력이, 그 안에 온전히 잇대어져 매달려 있는 연약한 가지를 살려낸 것입니다.
[호소] 스스로 맺으려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영혼은 무엇에 매달려 있습니까?
혹시 주님이라는 참된 줄기에서 떨어져 나간 채, 바싹 말라버린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메마른 가지를 쥐어짜며 열매 없는 인생을 한탄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왜 내 삶에는 평안이 없을까? 왜 내 가정에는 기쁨이 없을까? 왜 내 안에는 여전히 시기와 분노와 미움의 가시만 돋아날까?"
주님이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내 자녀야, 너를 떠나서는 네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스스로 열매 맺으려 헐떡이지 말고, 내 안에 머물러라. 나의 십자가 사랑에 네 온 마음을 기대어라."
우리가 감당하는 삶의 무게와 환난이 아무리 거칠어도, 십자가에서 목숨을 내어주신 우리 주님보다 크지 않습니다. 주님은 이미 세상을 이기셨고, 우리를 종이 아닌 가장 친밀한 '친구'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내 의지와 노력을 내려놓고, 참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여러분의 영혼을 온전히 맡기십시오.
[적용] 일상에서 '거함(메노)'을 살아내는 세 가지 결단
이번 한 주간, 우리는 어떻게 주님 안에 깊이 거할 수 있겠습니까? 삶의 자리에서 다음 세 가지를 결단합시다.
말씀의 진액을 흡수하십시오 (매일 말씀 묵상).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세상의 뉴스나 염려의 소리에 마음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단 한 구절이라도 생명의 말씀 앞에 머물러 그 말씀을 씹어 삼키십시오. 말씀이 내 안에 거할 때, 내 생각이 주님의 생각으로 물들고 기도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가지치기를 신뢰하며 감사하십시오 (상처와 모난 성질의 정돈).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답답한 환경, 나를 힘들게 하는 주변 사람들을 만날 때 "하나님, 왜 나를 괴롭히십니까?"라고 원망하지 마십시오. '아, 농부이신 아버지께서 내 거친 성질을 다듬어 그리스도의 성품을 맺게 하시려고 전정 작업을 하시는구나' 깨닫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십시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사랑의 열매를 맺으십시오 (서로 사랑의 실천).
주님 안에 머무는 삶의 최종 증거는 '사랑'입니다. 오늘 집으로 돌아가셔서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교회 지체에게 따뜻한 격려의 말 한마디를 건네십시오. 도저히 용서하기 힘든 그 한 사람을 향해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의지하여 덩굴손을 내미십시오.
우리가 주님께 단단히 붙어 있을 때, 농부이신 하나님의 때에, 풍성하고 탐스러운 기쁨과 사랑의 열매가 우리의 삶과 가정과 교회 가운데 주렁주렁 맺히게 될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가 성도 여러분의 삶 가운데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