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대순진리회는 증산 강일순(1871 ~ 1909)의 가르침을 시원으로 해 탄생된 민족종단이다.
1909년 증산 강일순이 화천(사망)하자, 증산을 신앙의 대상(교조)으로 해 1925년 정산 조철제(1895 ~ 1958)가 무극대도를 세웠고 해방 후에는 부산 감천에서 태극도로 개명했다. 부산 감천동의 태극도촌에 10만명 이상의 도인을 둔 신앙촌을 형성했다.
1958년 도주인 정산 조철제가 화천하자, 당시 종통을 계승받은 우당 박한경(1917 ~ 1996) 도전은 1969년 서울 중곡동에서 태극도를 이은 민족종단 대순진리회를 창설했다.
대순진리회는 출범 이후 정신개벽과 지상천국의 이상향을 핵심으로 한 적극적인 포교 등을 통해 1990년대 신도수가 200만호에 달할 정도로 민족종교의 대표적 종단으로 빛을 발했다.
방면(方面) 명칭의 체계를 갖추고 있고 주요 4대 방면은 천안, 부전, 서울, 성주다.
수행 기관은 양대 거점이 중곡도장, 여주도장, 수련도장은 제주, 포천, 금강산토성 등이다.
종교 이외 교육 사업으로 대진대학교를 비롯 대진고, 대진여고, 분당대진고, 대진디자인고, 대진정보통신고 등을 운영 중이다.
의료 사업으로도 분당제생병원, 동두천제생병원, 고성재생병원 등을 보유하고 있다.
이밖에 장학사업, 복지 사업 등도 펼치고 있다.
그러나 1996년 박한경 도전의 타계를 전후해 대순진리회의 도를 배반한 채 종권을 노린 쿠데타 배도자들의 탐욕으로 인해 2022년 현재까지 26년이 넘는 세월 동안 종단 대순진리회의 정상적 종통 승계가 이뤄지지 못하는 혼돈 상태에 휩싸여 있다.
대순진리회는 특히 이 과정에 쿠데타 배도자들이 파벌로 갈라져 상호간에 법정 소송전과 폭력을 동원한 불법 도장 점거 사태, 종단 자금 횡령 등의 비리들이 얽히면서 민족종단으로서의 고유 가치가 속절없이 추락해 왔다.
[배도자들의 쿠데타 모의(박한경 도전 발병 직후)]
대순진리회의 4반세기를 넘은 내부 분란 사태는 ‘종단 개혁’과 ‘종통 후계 체제’에 대한 고위간부급 부정‧비리 배도자들의 쿠데타(반란)로 요약된다.
배도자들의 쿠데타는 종단 최고 지도자인 박한경 도전의 발병을 기해 꿈틀대기 시작했다. 박한경 도전은 1987년 암이 발병했다. 두 차례 수술을 거쳐야 했다. 이때부터 종단 내부에선 박한경 도전 이후 후계 체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대두됐다.
그러나 이미 답은 정해진 상황이었다.
‘박희규 후계체제’다.
당시 이 같은 사실에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었다.
박희규 중앙종의회 의장은 여고 졸업 후 20세 때인 1967년 대순진리회의 모태격인 태극도에 입도, 박한경 도전과 인연을 맺고 수도의 여정을 시작했다.
박한경 도전이 태극도에서 나와 1969년 대순진리회를 태동시킬 때부터
박한경 도전과 함께 해 종단을 성장시키며 최대 도인을 확보한 천안방면의 대표선감(수임선감), 학교법인 대진대학 상임이사, (재)대순진리회 초대 및 2대 이사장 등의 길을 걸어온 명실상부 종단 2인자다.
특히 대순진리회의 최전성기를 이뤘던 1980년 이후 1990년 초반까지 사실상 절대 다수 도인들이 박희규 중앙종의회 의장이 당연히 21세기 여성시대(곤도운 시대)에 여성 신도가 80% 이상을 차지하던 종단을 이끌어갈 여성후계자로 확정됐다고 여겼다.
이런 현실에서 박희규 중앙종의회 의장이 박한경 도전에게 건의하고 재가를 받아 ‘종단개혁’에 착수한 것을 기해 부정‧비리 문제에 휩싸였던 고위간부급들의 쿠데타가 모의된 것이다.
박한경‧박희규 양박 지도체제는 종단의 급성장에 따른 부정축재, 성폭력 축첩행위 등 간부들의 부조리 비리를 개혁하고 종단의 법통을 바로 잡는 종단개혁에 뜻을 같이했다.
특히 박한경 도전은 암 발병 후 1990년대 들어서 문란해진 종단 질서를 정화하고, 자신의 사후를 대비하는 차원에서 박희규 중앙종의회 의장과 함께 종단개혁을 본격화하려 했다.
부정‧비리 배도자들은 이 같은 양박의 개혁 의지가 가시화되는 현실과 맞부딪히게 되자, 이에 맞서 와병 중인 박한경 도전의 지배력 약화를 틈타 박희규 중앙종의회 의장으로 굳어지던 후계 체제에 반기를 들어 아예 종권 자체를 탈취하려는 음모를 꾸민 것이다.
[배도자들의 쿠데타 발발(박한경 도전 타계 이전)]
배도자들의 첫 쿠데타 시도는 1990년 발발했다.
당시 박희규 중앙종의회 의장이 ‘비리 문란행위자 출도 처벌 규정’의 제정을 추진하자, 이를 무산시키기 위해 조영배 선감을 중앙종의회 의장으로 선출한 다음 박한경 도전에게 압박해 임명받고자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이 쿠데타 시도는 일단 실패로 끝났다.
배도자들의 움직임을 접한 박한경 도전이 대노해 “그 자리가 어느 자리인데 감히 네가 탐하는가”라며 호되게 질책했다.
박한경 도전은 또한 간부임원들과 중앙종의회 전체 의원 3천여명이 모인 회의장에서 “박희규 중앙종의회 의장 직책은 신성불가침의 자리다. 우리의 도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앞으로 투표는 없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뒤늦게 밝혀진 사실이지만, 당시 종단개혁의 대상자로 위기 의식을 공유했던 부천방면 정00 선감, 공주방면 류00 선감, 옥천방면 이00 선감, 성주방면 안00 선감 등 비리 관련 간부들 주축으로 박한경 도전의 뜻과 배반되게 대순진리회의 종권찬탈 모의가 내밀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첫 쿠데타 시도가 박한경 도전의 단호한 조치로 인해 불발로 끝나면서 양박 지도체제의 종단개혁 추진에 전전긍긍하던 배도자들은 1993년 역시 박한경 도전의 뜻과 무관하게, 안00 선감이 박희규 중앙종의회 의장을 대신해 의장이 된 것처럼 조작하는 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그리고는 마침내 1995년 6월 종권 탈취를 겨냥해 폭력을 동원한 쿠데타를 저질렀다.
배도자들은 이 때 박한경 도전의 위중상태를 틈타 100여명이 동원된 폭력불법으로 도헌을 위반한 채 징계위원회를 조작해 박희규 중앙종의회 의장에 대한 하극상의 불법 징계결의를 강행했다.
이와 함께 박희규 중앙종의회 의장을 의장실에서 강제로 끌어내고 여주도장 밖으로 몰아냈다.
배도자들은 그 후 박희규 중앙종의회 의장의 도장 출입은 물론 박한경 도전과의 접촉까지 철저히 차단했다.
이로 인해 병석에 누워 있던 박한경 도전은 후계자인 박희규 중앙종의회 의장을 만나려고 약 6개월간 애를 태우다가 얼굴도 못 보고 다음 해인 1996년 1월 타계하기에 이르렀다.
배도자들은 박한경 도전의 박희규 중앙종의회 의장에 대한 후계 계승 의지를 꺽을 수 없다고 판단되자, 박희규 중앙종의회 의장을 강제로 도장 밖으로 축출시켜 박한경 도전과 만날 수 없이 격리해 공식적 후계체제 계승을 원천 차단하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배도자들은 박희규 중앙종의회 의장을 찾는 박한경 도전에게 “병이 나서 병 치료하러 갔다”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등으로 핑계를 댔다.
또 박희규 중앙종의회 의장이 없어진 것을 묻는 도인들에게는 “도전님에게 불경을 저질러 쫓겨났다” “다른 종교를 차리고 나갔다” 정신이 이상해져서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등의 유언비어를 조작해 유포시켰다.
[배도자들의 종통 찬탈전(박한경 도전 타계 이후)]
박한경 도전과 박희규 중앙종의회 의장과의 만남 자체를 인의 장막으로 철저히 차단시킨 배도자들은 ”박한경 도전께서 종단의 후계자(교주)를 지명하지 않은 채 타계했다“고 조작해 만수도인(전체 교인)들을 속이고, 교주 문제는 3년상을 치른 후 논의하기로 야합해 연기한 뒤 종권 장악을 위한 자기들 내부간 또 다른 암투를 시작했다.
배도자들은 1996년 1월 박한경 도전이 타계하자 관계서류 등을 위조하는 등 적법절차를 거치지 않고, 박희규 중앙종의회장을 1996년 4월 7일 (재)대순진리회 이사직, 1997년 4월 14일 학교법인 대진대학 상임이사직에서도 잇따라 축출했다.
또한 1997년 2월 박희규 중앙종의회 의장과 그를 따르는 도인 90여명이 여주도장내 도전 집무실에 들어가자, 배도자들이 400여명을 동원해 무자비하게 집단폭행하기도 했다.
그 후 종단의 중심인 중곡도장과 여주도장 등을 폭력을 동원해 각기 분할 점거하면서 대결해 오고 있다.
이로 인해 의문의 폭행사건, 사망사건, 종단 재산을 둘러싼 사기, 횡령 범죄 등이 이어지고 배도자들간 수많은 고소‧고발도 횡행해 왔다.
특히 배도자들은 이 과정에 천문학적 규모의 종단 성금을 정치권 로비, 사법부 매수 등으로 허비하는 엄청난 배임범죄를 자행했다.
[배도자들과 외부 정치권력간 야합]
대순진리회 분란 사태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종단 내부의 쿠데타 파벌들과 외부의 정치권력간 야합 문제다.
이 문제가 해소되지 못하는 한 대순진리회가 독자적 민족종단으로서의 순수 자생력을 회복하는 것이 난망하다.
종단내 쿠데타를 자행한 비리 배도자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으나, 어느 누구도 대표자 지위를 인정받지 못해 2023년 현 시점에도 은행에 묶여 있는 수천억원대의 종단 자금 쟁탈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와 맞물려 박한경 도전의 타계 전부터 일찌감치 전두환‧노태우 정권이 보안사 등을 동원, 대순진리회의 비리 배도자들과 야합해 종단내 신도들의 성금으로 모인 막대한 자금을 이권의 고리로 악용하면서 정상적인 후계체제를 짓밟는 등 배후공작을 자행했다는 증거와 증언들도 살아 숨 쉬고 있다.
‘보안사 통치’로 표현해도 무리가 아닐 만큼 민족종단의 기본 운영까지 개입한 이들 정권의 범죄는 보안사는 물론 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와 법원, 검찰 등 국가기관이 총동원되는 식의 악랄한 공작으로, 민족종단을 분규난동의 흉물로 전락시키고 종단내 절대 다수 도인들의 순수 민족혼까지 파괴한 절대 악이다.
이들 쿠데타 파벌과 정치권력간 야합 문제는 김대중 정권에 이르기까지도 대순진리회 성금의 불법 대북지원 및 정치자금 수혈 등각종 의혹들이 끈질기게 계속돼 진상이 규명돼야 할 엄중 과제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