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가 봄맞이 하러 나온다는 경칩, 연 이틀째 올레를 걷는다.
오늘은 14코스, 저지예술정보화 마을에서 한림항까지 19.9km. 제법 먼 거리다.
함께 걸었던 이들은 어제 걷고 난 후 발가락 끝이 아프고 오금 부위가 뻗뻗하단다.
올레길이 초행이고 경험이 그닥 많지 않은 경우 연이어 완주하기엔 무리일 수 있다.
게다가 초창기 우리처럼 운동화 차림이다. 제주 길의 특성상 돌길과 해변 바위길을 헤치고 나가려면 등산화가 필수다. 운동화를 신고 걷다가 자칫 발목을 삐긋할 수 있고 걷기에 버거워진다.
스틱도 가지고 가면 많은 도움이 된다.
산티아고에서 스틱의 효용성을 톡톡히 누리고 난 후 우린 늘 스틱과 동행한다.
특히나 오름을 오르고 내릴 때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도와주는 효자들이다.
힘에 부치면 마무리하기로 하고 길을 나선다.
14코스는 14-1코스와 시작점이 같아 길을 잘 확인해야 한다.
저지오름 옆으로 들어서고 나면 수많은 비닐하우스와 귤밭을 만나게 된다. 귤밭 코 앞까지 죄다 시멘트로 포장해 놓은 길들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수확이 끝나 버린 귤밭에 간혹 새들을 위해 남겨진 귤 몇 알. 우린 기꺼이 새가 되어 귤 두 알을 따 맛을 본다. 오호, 시원하고 맛있다. 소소한 재미 하나가 얹어진다.
2km 남짓 걸어 큰 소낭 숲길과 오시록헌 농로에 이르니 길이 길다워지고 시멘트 길에서 해방이 되기도 한다.
오시록헌, 제주어로 아늑하다 라는 의미라더니 정말 길이 꽤 아늑하고 포근하다.
무명천 길을 걷는다.
오래 전 이 길을 걸었을 때는 포장된 길을 걸어야 했다.
긴 거리 시멘트와 아스팔트 길을 걸으며 발바닥이 아파 불평을 잔뜩 늘어 놓았는데 야호~ 반대편 넝쿨들과 잡풀을 제거하고 걷기 좋은 흙길로 바꾸어 놓았다. 앙증맞은 초록 풀잎들이 돋아나 잔디밭 위를 걷는 느낌이다.
아하, 그래서 무명천 산책길이 된거로구나.
정말정말 너무 좋다.
올레지기님들이 더 좋은 길을 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지 다시 한 번 실감한다.
선인장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월령 선인장 마을이 가까워지나 보다.
내 얼굴보다 더 큰 선인장 잎들이 돌담 위로 자라고 있다.
잠깐 인사나누며 찰칵.
1월 걸었던 선인장 마을, 다시 걸어도 반갑고 좋다.
월령포구에서 일성콘도 가는 길은 바닷가로 길을 내었다.
거친 돌들과 크기가 제각각인 바윗길을 헤치고 가야 한다.
아스팔트 도로를 걷지 않게 하기 위한 최대한의 노력이다.
이 길, 참 마음에 든다. 무척이나 조심하며 걸어야 하지만 시원스레 파도치는 바다를 보는 즐거움을 누리자면 당연히 감수해야지.
함께 걷던 이들이 힘겨워지나 보다.
풍경좋은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하고 아쉽지만 마무리하기로~
어라, 괜찮은 카페가 보이질 않는다.
조금만 더 더 하며 걷다 드디어 발견한 카페 토도스.
2층으로 올라가 보니 바로 눈앞에 에머랄드빛 푸른 바다랑 비양도, 금능해수욕장 모래사장이 쭉 펼쳐진다.
우와, 뷰 맛집, 우리가 찾던 딱 그곳이다.
함께 걷던 이는 14km나 걸었다며 뿌듯해 한다.
금능에서 협재 해수욕장까지는 예전에도 같이 걸었으니 이쯤에서 길을 마무리해도 될 성 싶다.
미완의 길이 되었지만 동행이 있어 느긋함을 마음껏 누리며, 이런 저런 이야기들로 꽉 채운 소중한 길이었다.
올레를 걷고 난 소감 한 마디,
"올레가 올레했네"
"올레가 답이다"
"역시 올레"
"올레, 쉽지 않은 길이구나"
이들도 올레의 매력에 푹 빠지겠구나.
좋은 일이여~^^
첫댓글 이번에 함께 한 사람과는 처음으로 동행인가 봐요.
함께 간 사람과는 걸으며 무슨 얘기 하셨나요. 그냥 무심으로 걷기만 했나요.
한적한 곳에서 넷이서 작은음악회로 한명씩 노래자랑이라도 하지 그랬어요.
우리 친구들 산모임은 산 중턱에 올라 잠시 쉴 때 한 친구가 노래하면
나머지는 그에 장단 맞추며 피로를 풀거든요.
오늘은 몇 코스로 나섰나요.
늘 둘이만 다니다 첨으로 넷이 되었지요. 함께 스위스 한 달 살기를 하던 이들이랍니다.
잡다한 주변 이야기, 자식들 사는 이야기, 농담 따먹기 등 등.
재미난 이야기들을 나눴답니다.
다니님의 산모임은 흥이 넘치는 분들인가 봐요.
노랫가락이 흘러 넘치겠는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