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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사랑하시면서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시죠.
서로 사랑하라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우리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고 좌우 앞뒤 계신 분하고 우리 함께 고백합시다.
주 안에서 사랑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뒤에서는 애굽 군대가 추격하고 있습니다.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혀져 있는 상황이죠.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에 처한 상황으로 인하여서 심히 두려워 떨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떨림은 하나님께 부르짖음으로 이어지게 되죠.
하지만 그들에게 찾아온 두려움은 아무리 부르짖는다 할지라도 해결되지가 않은 거예요. 결국 지도자 모세를 향해서 원망을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모세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었겠습니까? 사실 모세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외에는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을 생각할 수밖에 없죠. 그리고 앞으로도 인도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면서 하나님을 집중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친히 싸우실 하나님을 신뢰했고 백성들을 향해서 야, 너희들 두려워하지 말아라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실 구원을 보라
그렇게 선포하게 됩니다. 때가 되자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팡이를 들어서 손을 바다 위에 내밀라 명령하십시오. 모세는 믿음으로 순종하였고, 그 순종의 때에 하나님께서는 동풍을 밤새도록 불게 하셔서 물이 갈라지게 하셨을 무당으로 만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서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어갈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역사가 그 현장 가운데 일어난 것입니다.
사실 기가 막힐 노릇이죠.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어요? 살아가는 삶의 현장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로 바다가 갈라지고 그 적적한 땅이 마른 땅이 되었다는 것은 놀랄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마도 벅찬 가슴을 가지고 한 발 한 발씩 내딛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애굽 군대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참 희한한 일이다 생각하면서도 그들의 목적은 어디에 있어요? 저 이스라엘 백성들을 잡아야 하니 우리도 그 안으로 들어가자. 그리고 한 발씩 따라 들어가는 것이죠. 그리고 어느덧 모든 사람이 바다 한가운데 걸어가는 그러한 장면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말씀에 순종하자.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그 일들을 보았는데 하나님께서는 또다시 모세에게 말씀합니다. 손을 내밀어 위로 내밀라. 그렇게 명령을 하시죠. 말씀에 순종하니까 어떻게 됩니까? 곧 바다가 힘이 회복되어서 애굽 사람들을 그 바다로 덮으셨다. 성경은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따라서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통제 속에서 여전히 육지를 걸어가고 있는 그러한 모습을 볼 수 있고요. 애굽 군대는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를 통해서 바다에 몰살되는 그러한 장면을 그려주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하던 애굽 사람들이 바닷 가운데에서 한 명 한 명 죽어가는 것을 그들의 눈으로 직접 보게 됩니다.
이처럼 육신의 눈으로는 인생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았다면 영적인 눈으로는 무엇을 보았겠어요? 하나님의 큰 능력을 그들이 보게 된 것이죠. 여러분 전쟁 영화를 이렇게 가끔 보다 보면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그 전쟁의 승리와 동시에 사람들은 이곳저곳에서 환호성을 외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너도 나도 모르게 얼싸 끌어안고 방방 뛰기 시작하죠. 얼마나 즐겁고 행복하고 힘이 생기면 그러한 모습을 보일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이것은 꼭 전쟁의 승리뿐만 아니라 어떤 스포츠의 승리에서도 그러잖아요. 작년 이 작년 교육을 갔을 때 교육 끝나고 저녁에 밤에 축구 경기를 해서 다 같이 모여서 봤던 기억이 있어요. 그런데 사실 목사님들이라고는 하지만 다 잘 몰라요. 그런데요 여러분 그때 우리가 지기는 했지만 한 골 넣었을 때 이곳저곳에서 다 같이 일어나셔야 목사님들이 그렇게 방방 뛰면서 서로 얼싸안고 행복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죠? 한 번 승리하는 것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기쁨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요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그 이상의 감격이 그들에게 찾아왔다는 것이죠. 그들의 기쁨 속에서 솟아나오는 기쁨 이루 말할 수 없는 그 놀라움을 그들은 실제 몸소 표현했을 것입니다. 그들도 역시 환호성을 치며 하나님을 높여 올렸을 것이고, 그들 역시 얼싸 끌어안으며 주체할 수 없는 기쁨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시간이 되었을 것입니다.
정신없이 기뻐하고 있던 그들은 이제 어느 시점이 되면 조용히 잠잠해질 것 아닐 그 시간이 되었던가 봅니다. 구원을 베풀어주신 하나님을 향해서 벅차 오르는 감동을 이제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으로 부르기 시작합니다. 그 찬양의 내용이 오늘 본문 가운데 기록되어져 있는 말씀이라고 할 수가 있어요. 크게 두 가지 감사의 내용을 이야기하는데 먼저 그들은 홍해를 가르시고 애굽의 모든 말과 마병을 바다에 수장시킨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을 찬양하면서 승리케 하신 하나님을 감사 찬양하게 됩니다.
우리 2절 말씀 같이 읽어보실까요? 2절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오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여기 보니까 그를 찬송할 것이오 그를 높이리라. 그 근원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렇게 찬양하고 높일 수 있는 것은 여호와께서 나의 힘이 되셨기 때문에 그분이 나의 노래가 되시고 나의 구원이 되기 되셨기 때문이다라고 고백하는 것이죠.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애굽의 대적을 물리치시고 승리를 얻게 하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 찬양의 고백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본문을 보시면 그러한 내용이 쭉 기록되어져 있는데 눈으로 한번 성경을 따라보십시오. 4절에 보니까 군대를 바다에 던지시니 홍해에 잠겼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고요 5절에는 돌처럼 기쁨 속에 가라앉았도다. 6절에서는 원수를 부으시니 7절에서는 지푸라기같이 하셨다. 10절에서는 낮같이 잠겼다. 이러한 다양한 표현들을 통해서 애굽 군대가 그 바다에 수장된 모습을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크고 놀랍고도 귀한 역사를 체험했다면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죠. 찬송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고백합니다. 11절 이렇게 고백하는 거예요.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보실까요?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험이 있으며 귀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까?
없다는 거예요. 구원의 은혜를 베푸실 분은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 그 모든 능력을 행하시는 분은 세상에 그 어떤 자도 할 수 없는 것이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고백하는 것이죠.
여러분 다니엘을 아시죠? 늘 그의 마음은 뜻을 정하여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 위해서 선택하며 살았던 자입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은 다니엘을 총리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총리로 세우게 되죠.
하지만 그것이 문제가 되어서 그의 삶에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그러한 일을 겪게 됩니다. 그 핵심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40일 동안 왕 외에 어떤 신이거나 사람들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넣기로 한 것이죠. 당시 다리오 왕이었던 이 왕은요 집권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신하들의 이러한 제안을 너무 기쁘게 여긴 거예요. 자기를 높여 세울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시간이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그래 이것을 시행령을 내려서 40일 동안 모든 사람이 나에게만 경배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해야겠다. 그렇게 해서 그는 조서에 도장을 찍고 신케 했다는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다니엘은 어떤 사람이라고요? 뜻을 정하여 사는 사람 어디 다른 조서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뜻을 정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았던 사람 그래서 여러분 이 다니엘은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집에 돌아가 윗방 그곳에 올라가서 예루살렘을 향해 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에 세 번씩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감사 기도를 했다. 그렇게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납니까? 여지없이 사자굴에 던져져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죠. 물론 다리 왕도 안타까워했습니다. 가장 총애하는 그러한 총리였기 때문에 그의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같으면서도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그를 사자굴에 던지게 되죠.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지지 않습니까? 사자굴에 던져졌지만 하나님께서 사자의 입을 틀어막으심으로 머리털 끝 하나 상하지 않고 그곳에서 나오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죠.
여러분 이것을 글로만 보고 말로만 들어서 별것 아닌 것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여러분 이것은 별볼 일 없는 일이 아닙니다. 엄청난 일이죠. 하나님의 힘과 능력,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거예요.
그 결과 다리오 왕은요 이제 그 조서를 다시 한 번 내리는데 온 땅에 조서를 내려서 다니엘의 하나님을 다 같이 찬양하자 그러한 조서를 내리게 되죠. 우리 다니엘서 6장 26절, 7절인데 같이 한번 읽어보실까요?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계시는 하나님이시오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오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로써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라 하였더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요 내가 찬양을 하기도 하지만 그 놀라운 일을 통해서 주변에 믿지 않는 자들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회를 만들어줄 수 있다라는 거예요. 저와 여러분들의 구원의 역사가 나의 삶 속에 찬양이 나타날 뿐만 아니라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고 하나님을 경유할 수 있는 그러한 축복의 통로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 하나님 마음에 합했던 다윗은요 항상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며 살았던 사람이죠. 골리앗 앞에 섰던 때에도, 계속되는 사울의 살의 위협 속에서도, 그를 대적하는 모든 대적들과 싸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셨을 뿐만 아니라 늘 승리케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다윗은 시편을 통해서 굉장히 많은 고백을 하게 되는데, 그중에 하나가 시편 18편 1절에서 3절이에요. 승리하는 그의 모습의 고백입니다. 우리 같이 한번 고백해 보실까요?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이시오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오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윗이오 나의 방패이시오 나의 구원의 뿌리시오 나의 산성이시로다.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군대로부터 귀하고 놀라운 방법으로 구원의 은혜를 입었던 것처럼, 다니엘이 사자굴에서 하나님의 역사로 그 사자 입을 틀어막음으로 인하여 구원을 받았던 것처럼, 다윗이 모든 삶의 순간에서 하나님께서 반석되시고 요새 되시고 방패되시며 산성되시어서 원수들로부터 구원을 받았던 것처럼, 죄와 허물로 죽었던 저와 여러분들을 우리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 땅에 보내주셨고, 그 하나님의 할랑 없는 사랑을 통하여서 우리 또한 구원의 은혜를 입게 되었다. 이 사실만 안다 할지라도, 이 사실만 믿음으로 고백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찬양해야 할 이유가 있다는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허물과 죄로 죽었던 저와 여러분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살리심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들의 삶의 현장 속에서 이 감격의 은혜를 가지고 날마다 찬송하며 살아가는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절에서 오늘 12절의 본문은 구원을 베풀어주신 하나님, 즉 과거에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다면 이어지는 13절에서 18절에서는 앞으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것임을 신뢰함으로 감사 고백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 군대로부터 구원해내셨지만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잖아요. 이들은 여전히 광야의 길을 걸어가야 했다는 것이죠. 어디까지 가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땅에 이르는 그날까지 광야의 여정을 걸어가야 하는 것이죠. 이 길이 혹 험난할지라도, 이 길이 고난의 길일지라도, 이 길에 수많은 장애물이 있을지라도 반드시 걸어가야 할 길이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시면 그 구속의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을 뿐만 아니라 거룩한 처소로 인도하시는 그날까지 우리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인도해 주실 것이라는 그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13절 말씀 함께 읽어보실까요?
주의 인자하심으로 주께서 구속하신 백성을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거룩한 초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
실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것도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 그들을 위해서 예비하신 곳,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인자하심 때문이었다는 거죠. 즉 인자하심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변함없으신 사랑을 이야기하죠. 약속의 땅,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서에 들어갈 수 있도록 인도하신 것은 바로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었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이, 그 인자하심이 어떻게 나타났는지 오늘 본문 14절에서 16절은 기록해 주고 있는데 우리 14절, 15절만 같이 읽어보실까요?
여러 나라가 듣고 떨며 블레셋 주민이 두려움에 잡히며, 애돔 두령들이 놀라고, 모압 영웅이 떨림에 잡히며, 가나안 주민이 다 낙담하나이다.
즉 출애굽 사건과 홍해 사건은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거예요. 그 주변에 수많은 나라들이, 강대국들이 그 사실을 듣고 떠났다는 것이죠. 그래서 블레셋 증인들은 겁에 질려 있었고요. 에돔의 지도자들은 놀라 있었고요. 모압의 권력자들도 무서워 떨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가나안의 모든 주민이 낙담했다는 거예요. 그들이 모두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주의 백성들이 그 길을 지나가는 동안 가나안 땅에 돌아가는 그 시간까지 그들을 돌처럼 잠잠케 하셨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주변 나라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에게 범접할 수 없도록 만들어 놓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걸어가야 할 여정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은 것은 맞죠? 그러나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우리는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아니면 내 생명 다하는 그날까지 신앙의 여정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신앙의 여정 가운데 사단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삼칠 자를 주로 찾는다는 것 사실이에요. 그래서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 분명한 사실이 있어요. 그것은요 하나님의 인자하심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두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두르는 그 사자의 입을 틀어막으시고 우리가 구원받는 그날까지 우리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겠다 이것이 복음이라는 거예요.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믿음의 여정을 걸어가면 때로는 실패할 때도 있고 낙심할 때도 있고 걸려 넘어질 때도 있지만 여전히 우리 하나님께서 인자하심으로 우리를 돌보시며 이끄셔서 사단이 나를 삼키지 못하도록 방어도 해 주시고 미리 화살도 쏴주시고 할렐루야 우리의 삶을 걸어갈 수 있도록 그 길을 평탄케 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시다. 그러니 우리는 그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죠.
만약에 그것이 불확실하다면 야 내일 어떻게 살아가나 염려 걱정밖에는 없겠죠. 그러나 그것이 확실하면 오늘의 삶도 내일의 삶도 우리 하나님과 함께 거룩한 처소를 향해 걸어가는 우리의 삶이 얼마나 복되고 행복한 길이겠습니까? 저와 여러분들이 그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하셔서 거룩하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오늘 이 말씀을요 시편 기자는 기가 막히게 감사의 고백으로 표현을 해줍니다. 여러분 시편 136편에 보면 먼저 1절부터 12절 과거에 행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록이 나와 있어요. 우리 시편 136편 13절에서 15절 말씀 우리 천천히 한번 읽어보실까요?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스라엘을 그 가운데로 통과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바로와 그의 군대를 홍해에 엎드러뜨리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인도하신 그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13절부터 18절까지 이후에 하나님께서 이루실 그 하나님에 대한 감사도 이어지는 시편 136편 16절에서 21절을 통해서 결국에는 감사로 고백하게 되죠. 우리 이 말씀도 같이 읽어보십니다.
그의 백성을 인도하여 광야를 통과하게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큰 왕들을 쥐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유명한 왕들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아모리인의 왕 시온을 죽이신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바사 왕옥을 죽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그들의 땅을 기업으로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여러분 오늘 시편 기자는 이 감사를 어디에다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자하심, 하나님의 변함없으신 사랑 그 사랑이 우리의 삶을 이끌어주셨다고 고백하는 거예요.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 오늘 이 시간 권면을 드립니다.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우리의 삶을 인도하셨다는 것을 믿는다면, 여러분, 우리의 앞길도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의 손 꼭 붙잡고 인도하실 것이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감사하는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그러한 에벤의 세라한,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 그리고 앞으로 인도하실 그 하나님을 소망하며 살아갈 때에, 우리의 삶은요 삶의 현장 속에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경배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러한 삶이 우리 안에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 시간, 눈을 감고 잠깐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삶을 되돌아보며, 여기까지 인도하신 에베네스를, 하나님을 한번 묵상해 보십시오. 나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를 41년이라는 세월 동안 은혜 가운데 이 자리에 서게 하신 하나님을 묵상해 보십시오. 때로는 사방이 막힌 것과 같은 시간이 있었을 것입니다.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부르짖다 지쳐서 낙심 가운데 있었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내가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은, 내가 오늘 예배의 자리에 서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죠.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그것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 감사하고 또 감사할 일이죠. 그리고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은 참 능력의 하나님이시고, 이 세상을 만드시고, 통치하시고, 다스리는 분이심을 알고 믿기에, 우리는 미래에 대한 염려보다는 인도하실 하나님을 바라보며, 감사함으로 주님과 동행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