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때
우리 아부지는 모든 일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농사짓는 곳에 데리고 다녔다.
맨처음 한것, 배추밭 호미로 풀뽑기였다. 중딩 여동생과 한두렁을 맡아 풀을 뽑았다.
일꾼들은 저만치 끝쯤 갔을때
동생은 중간쯤
난 동생의 절반을 기어가고 있었다.
동생왈 언니는 지금 장난 하는거야? 왜 못 따라오는거야? 화가난 나는 자존심 상하니까 동생에게 넌 풀 제대로 안 뽑고 가는거지?
두시간도 못하고 화나서 집으로 와 버렸다.
두번째 일, 한 여름 모내기때 언니하고 나하고 둘이서 못줄을 잡으랜다.
난 거머리 무서워 물속을 안들어가려 했는데 논둑에서 잡으려니 자꾸 고꾸라지려고 해 마지못해 물속으로 들어갔다.
검은 이파리가 종이리에 붙은걸 거머린줄 알고 못줄 내동댕이치고 논둑으로 올라가 길길이 날뛰며 비명을 질렀다 거머리 붙었다고~~~ 한줄도 모내기 못하고 끝났다.
모내기꾼들이 어처구니 없어 모두 쳐다보고 있었다.
난 그런건 관심도 없었다. 언니가 거머리 떼어준다고 그만 뛰라고 ~~
세번째 , 천수답 비오면 논둑 바릿대 붙여야 한댄다. 아부지가 딸들 서너명 데리고 논두렁으로 데려가 하는 방법을 설명해 줬다.
맨 발로 흙을 밟는데 발 밑이 미끄덩미끄덩 ~~~ 후다닥 뛰어나와 아부지한테 아부지~~ 왜 논속에 미꾸라지가 있어? 미꾸라지 아니랜다. 징그러워더 이상 못했다.
네번째, 벼베기 하잔다.
벼를 잡고 낫을 사선으로 낚아채란다.
시키는대로 했다. 그런데 벼는 왜그리 까끌거리는지 온몸과 손등이 마구 긁힌다.
낫은 어찌나 무섭던지 앞으로 낚아채면 내 몸이 베일거 같았다.
다섯번째, 참외농사를 1200평을 지었다.
새벽6시쯤 참외 밭에 가서 참외 순 세마디마다 잘라내란다. 세마디를 언제 세라고? 에라 모르겠다. 그냥 머리를 내미는 것마다 똑 똑 잘랐다. 학교를 가려하니 손톱에 녹색물이 들었다.
손톱에 물들었다고 아부지한테 투덜거리며 다시는 안한다고 했다.
나중에 아버지께 일도 못하는 우리들에게 왜 종류대로 일을 시키시려고 했냐고 물었다.
아부지 왈 부모님들이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알아야 한다고
한가지라도 쉬운 일은 없다는걸 배워야 한다고
말씀 하셨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딸들이 참 열심히들 살고있다.
농사일을 딱 두번도 아닌 한번씩은 거의 해봤다.
두번 시켜봤자 곁에서 걸치적거리기만 하고 괜히 일 망치니 시키지도 못하셨다.
아부지하고의 잊혀지지 않는 추억들이다.
첫댓글 참으로 지혜가 많으신 아부지입니다.
한가지라도 쉬운일이 없는걸 몸소 가르치신 산교육
그게 진정한 교육이지 싶습니다.
지금도 그 기억들이 눈에 선하겠습니다~^^
기억에 콱 박혔습니다.
새로운 경험이었거든요.
딸부잣집이라 그런지 아버지가 엄청 다정하셨거든요
부모님과의 저녁 풍경이 떠오르네요...동네 또래,형들과 다방구,술레잡기 등 저녁 늦도록 하다보면 어머니께서 밥먹으라고 큰소리로 부르시면 놀던 아이들 부모들도 하나둘 밥먹으라고 부르신다. 그저녁 풍경이 즐거워,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시골 살때 모습입니다. 그땐 마냥 즐거웠답니다.
모내기 철에
다리에 거머리 붙었다고 놀려대서
놀라서 뛰다가 방죽에 빠져
죽을뻔한 기억
그래서 전 아직도 트라우마 있어서
물을 무서워합니다
해운대 해수욕장 바닷물도
안들어가요 ㅋㅋ
ㅋㅎㅎ
저보다 더 심하셨네요.
헐랭~ 저는 못줄도 잡고 벼익으면 참새 쫓고~ 고추 따면 정부미 푸대의 커다란 고추 싣고오던 추억도~ 에고 저는 완전 농부였네요. 거머리 무서워 호들갑도 떨었지만~ 힘든 청춘이었습니다.
거머리, 뱀, 지렁이 다 무서운 것들이었어요
다들 그런추억이 있군요
난 농사의 농자도 모르고 지금까지 살아왔네요~~
결혼해서 깨털어본적은 있어요
소중한추억이지요
깨 터신거 보니 밭이 많았나봐요 시댁이
@향기(서울강남) 네 어머님 이 밭농사 많이 하셨어요 고생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