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그림의 인연
홍우흠 / 한문교육과
나는 1941년 음력 정월 15일 경북 군위군 부계면 남산리에서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 해방 뒤의 혼란, 6·25 전쟁, 가정형편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11세가 되던 해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1학년을 마치자 2학년을 거치지 않고 3학년으로 월반을 했다. 그때 담임이었던 서세황 선생님은 미술시간에 학생들을 데리고 약 1Km 거리에 있는 학바위(鶴巖)로 가셔서 신라시대 삼존석불(三尊石佛)이 모셔진 그 학바위를 그리라고 하셨다. 선생님은 내가 몽당연필과 크레온으로 그린 그 학바위 그림을 보시더니 “너는 그림에 상당히 소질이 있다.” 고 하시면서 그 그림을 교실 뒷벽 게시판에 부쳐두라고 하셨다. 이것이 나와 그림의 첫 인연이었다. 그러나 그 뒤 나는 많은 역경과 난관을 거치느라 80세가 되기까지 손에 그림 붓을 들어볼 여유가 없었다. 그야말로 그림을 그리는 일은 사치한 일이며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2020년 80세가 되던 해 나는 우연히 詩心이 발동하여 100가지 꽃과 100가지 짐승을 소재로 이른바 〈百花頌〉과 〈百鳥獸吟〉이란 古時調 200수를 지었다. 옆에서 그것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던 후배 김충박사가 인터넷의 자료를 검색, 그 200수 시조의 소재에 해당하는 꽃과 짐승의 사진을 옮겨와 각 작품의 삽화로 만들어 주었다. 아주 실감이 났다. 그리고 영남대학교 중문학과 맹유박사는 현대 중국어로, 家兒 미국 마샬대학 영문과 교수 효창은 영어로 그 200수의 시조를 번역해 주었다. 예상외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매우 충실한 시조집 원고가 완성되어 출판을 시작하려는 순간이었다.
원고를 검토하던 출판사 직원이 “이 원고 가운데 삽입된 꽃과 짐승의 사진을 어떻게 구해 넣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 경위를 설명했더니 직원이 깜짝 놀라면서 “그것은 남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일이므로 그 사진작가들의 승낙을 받던지 아니면 상당한 원고료를 지불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남의 사진을 함부로 복제하여 사용하면 상대방의 민사소송에 의해 엄청난 금액을 물어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참으로 뜻밖의 난관에 부닥치게 되었다.
누구인지도 모르는 200장의 사진작가를 일일이 찾아 허락을 받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민사소송의 수모를 당하는 것은 더욱 말이 아니었다. 매우 아쉽지만 그 삽화부분을 삭제하고 출판을 할까도 생각해 보았으나 이왕 시작한 일,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여기서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담임 서세황선생님께서 나의 학바위 그림을 칭찬해 주시던 말씀이 떠올랐다. 그때 그 솜씨로 4계절을 거쳐 피는 100가지 종류의 꽃은 1년간 내가 직접 스마트폰 사진기로 찍고, 100종류의 새와 짐승은 내가 직접 그려서 사용하기로 하였다. 따라서 시조집 출판을 1년간 중지, 내가 80세 되던 2020년 봄부터 가을까지 스마트폰에 장착된 사진기를 들고 원근의 산과 들을 오르내리며 100종류의 꽃을 찍음과 동시에 100종류 새와 짐승의 영상을 모아 그리기 시작했다.
매화、목련、난초、수선화、개나리、진달래、자미화、자두꽃、배꽃、감꽃、대추꽃、호박꽃、박꽃、할미꽃、오랑캐꽃......등등 모두가 계절에 따라 피는 꽃들이라 나는 먼저 그 꽃들이 피는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동분서주, 긴장된 마음을 풀지 않았다. 2020년 12월 2일엔 수성구 동성초등학교 앞 문방구점에 나가 어린이들이 쓰는 작은 그림연습 노트 몇 권과 연필、물감、지우개 등을 구입했다. 문방구 주인은 “어느 손자에게 주려고 그렇게 여러 가지를 사느냐?”고 묻기에 “80세 유치원생이 쓰려고 한다.” 라고 했다.
집에 돌아와 가로 17cm, 세로 13cm의 작은 종이에 70여년 전 초등학교 3학년시절 학바위를 그린던 기억을 되살려 약간 떨리는 손으로 목과 부리가 길며, 다리가 짧아 조금 기이하게 보이는 사다새 한 마리를 그려보았다.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일까. 어릴 때 그 학박위 그리던 솜씨가 어디에 숨어있다가 되살아난 듯 사다새의 모양이 그리 어색하지 않았다. 이 작은 첫 그림에서 나는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그날부터 2021년 봄에 이르기까지 학、기러기、가마우지、참새、뱁새、딱새、종달새、부엉이、딱다구리、앵무새、비둘기、장닭、암탉、장끼、암꿩......등의 새 종류와 호랑이、사자、곰、여우、기린、여우、황소、물소、낙타......등의 짐승을 그렸다. 화가인 수성대학교 아동미술학과 윤정방 교수와 나의 손녀 利貞(현 광주과기원 석사과정대학중)도 몇 작품 거들었다. 동물은 겉으로 나타난 형태와 색채도 중요하지만 눈으로 볼 수 없는 골격과 그것이 지니고 있는 氣韻을 그려야 생동감이 난다. 비록 어색하기 그지없지만 내가 지은 時調에 내가 촬영한 꽃 사진과 내 손으로 그린 동물 그림을 삽화로 쓴다고 생각하니 그런대로 의미가 있었다.
이같이 어렵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 2021년 9월 5일 드디어 영어와 중국어로 번역하고 사진과 그림으로 장식한 정형시조 210수(그 중10수는 채산서재 10景)가 나의 80세 기념 시조집 《염화시중의 미소》(拈花示衆의 微笑)로 간행되었다. 이것이 나와 그림의 둘째 인연이다. 잊을 수 없는 은사 서세황 선생님께서 맺어주신 감사하고 아름다운 인연이라 여겨진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염화시중의 미소》의 삽화를 끝내자 나의 그림 솜씨는 나도 모르게 약간 발전되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장자(莊子)가 〈養生主〉(양생주)에서 백정이 소를 잡는 이치로써 공부하는 사람이 道를 터득해 나가는 원리를 설명한 바와 같이 그림의 문외한도 백정이 매일 소를 잡듯이 그리고자 하는 대상을 그리고 또 그리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차츰 구도、원근、음양、색조、동필、화구 등 그림의 원리와 기교를 터득하면서 마음속에 느껴진 만물의 형상을 손으로 표현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시작하기도 어려웠지만 약간 눈이 뜨이고 손이 숙달되어 가는 단계에서 그만두기가 아까워 계속 그려보기로 했다.
어떤 학문이나 예술에 뜻을 둔 사람은 마땅히 그 방면에 대한 전문가를 찾아가 배워야 한다. 그러나 나는 나이가 이미 80세를 지나 90세를 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문화가가 되겠다든가, 그림을 팔아 이득을 취하겠다는 목적으로 화필을 잡음이 아니기에 그저 그리고 싶을 때까지 그리다가 그리고 싶지 아니할 때 붓을 내려놓으면 그뿐인 것이다. 그러므로 나에게는 모시고 일일이 배워야 할 사람 스승이 필요하지 않다.
일찍이 孔子는 “그림을 그릴 때는 그리기 전에 먼저 훌륭한 바탕(품질이 좋은 종이나 비단과 같은 작가의 人性)이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란 명언을 남긴 적이 있다. 그리고 말(馬) 그림으로 유명했던 당나라의 천재화가 한간(韓幹)은 그의 제자들이 “선생님은 어느 스승에게 말 그리는 법을 배워 저렇게도 말을 잘 그리십니까?”라고 물었을 때 국가마구(國家馬廏)에 매인 수만마리의 말을 가리키며 “저 마구의 만 마리 말들이 다 나의 스승이니라.”(廐馬萬匹皆吾師)라고 대답했다. 그렇다.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먼저 자신의 훌륭한 人性을 도야(陶冶)해야 하며, 우주에 존재하고 있는 만물 그 모든 것을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우러러 天文을 관찰하고, 아래로 땅의 아름다움을 살펴”(仰觀天文, 俯察含章), 천문과 함장을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
나는 동서양 회화의 원리와 역사를 알지 못한다. 다만 위에서 살펴본 몇 가지 그림에 관한 격언이나 일화를 염두에 간직하면서 시조집의 삽화로 약 100마리의 새와 짐승을 그린 다음 계속해서 마음에 드는 소재를 그리고 또 그려보았다. 처음 소를 잡는 초보 백정에게는 소 전체만 보인다. 그러나 열 마리-백 마리-천 마리를 잡아본 백정에게는 소의 사지와 오장육부, 굵고 잔 뼈, 길고 짧은 힘줄은 물론이고 혈액과 세포까지 눈에 들어오게 된다. 이와 같이 처음 산을 그리는 나에게는 길고 짧은 능선과 높고 낮은 봉우리만 보이더니 이제는 골자기와 깨어진 암석의 실선, 덮고 있는 나무, 비치고 있는 햇빛, 사계절의 빛갈 들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얼핏 세어 보니 아마도 1000여장의 도화지를 버렸던 것 같다. 이것이 니와 그림의 셋째 인연이다.
“무식하면 겁이 없다.”란 속담과 같이 나는 겁도, 분수도, 부끄럼도, 체면도 없이 여러 계층의 남녀노소 원근 지인(知人)에게 내가 그린 그림을 카톡이란 통신매체를 통해 용감하게 전송하면서 언제나 그 졸작을 받아보는 분들의 다양한 기분을 상상해 본다.
염치불고 하고 그 졸작을 전송하는 내 나름대로의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나보다 연세가 높은 분들에게는 삼가 안부를 전함이며,
친구들에게는 한 번 보고 웃으며 짙은 농담이라도 해보란 우정의 표시이며,
전문화가나 문인들에게는 보시고 한 말씀이라도 가르쳐 달라는 부탁이며,
제자들에게는 80세가 훌적 넘은 나도 이렇게 공부를 하노니 젊은 그대들도 항상 自强不息하여 대성하라는 메시지이며,
집안 친척 청소년들에게는 착하고 정직하고 부지런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란 교육의 뜻을 전달함이었다. 이것이 나와 그림의 넷째 인연이다.
이 졸문을 작성할 수 있도록 성원해 주신 영남대학교 명예교수회 회지 편집 담당 김정숙 박사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두서없이 붓을 놓기로 하겠다.
2024년 11월 28
팔공산 북반 채산서재에서 씀
첫댓글 https://youtu.be/wl5sNK2lQXg?si=m4Moftfy1iTLheQ5
홍우흠 교수님의 저서 '염화시중의 노래'를 소개하는 YouTube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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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바쁘심에도 불구하고, 마음부담 가지시고, 시간 지켜 귀한 글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아하,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이 탄생하는구나!"라고 느낍니다. 특히 그림을 그리시면서 오는 관조의 세계와 타인과의 연결을 짚어 주시어 많은 깨달음을 얻습니다. 첫 인연부터 세세히 설명해 주셔서, 가보지 않은 길을 열어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많은 용기도 주십니다. 몇주 전에 '미술치료'라는 수업을 수녀원에서 했습니다. 색칠에 열중하다 보면 오는 '집중과 묵상'을 체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림을 하나 넣고 싶었는데, 첫번째 그리신 작품이어야 할까, 아니면 가장 최근의 작품이어야할까를 생각하다가,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 가을이 가장 많이 담긴 그림을 넣어 보았습니다. 앞으로 오래 교수님의 작품이 배달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미디어 위원장님, 관련 동영상 연결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