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世 諱 守迪임수적 선조님
규려이(奎儷二) : 1697년(숙종 23)부터 1735년(영조 11)까지 시행한 식년시(式年試)‚ 증광시(增廣試)‚ 춘당시(春塘試) 등에서 선발된 병려문을 모아 엮은 책이다. 서명이 ‘奎儷二’라고 된 것으로 보아 零本으로 추정되지만 자세하지 않다. 권수와 권말에 수록된 연도 미상의 兪彦國 등의 작품 3편을 제외하면‚ 1면에 1편씩 174편이 실려 있다. 매해 5편 내외의 작품이 실려 있으나 신사년(1701 숙종27)과 갑진년(1724 숙종30)의 작품은 선발되어 있지 않다. 각편마다 시제‚ 피선발자‚ 선발 연도 및 시험 종류‚ 등수‚ 작품 등이 실려 있다. 권수에 1697년 감시(柑試)에서 선발된 조태억(趙泰億)의 <본조강도수신청어금정축정월감몽본부순절제좌급전망장사(本朝江都守臣請於今丁丑正月敢蒙本府殉節諸坐及戰亡將士)>가 실려 있다. 1697년부터 1735년까지 여러 시험에서 선발된 병려문을 살피는데 도움이 된다. 출처:규장각 해제 김남기
[원문 정리와 번역]
殷群臣賀伐鬼方, 三年克之, 小人勿用.-乙巳九製, 三中.- 任守迪
은(殷) 나라 신하들이 고종(高宗)이 귀방(鬼方)의 오랑캐를 정벌할 때 정당한 방법으로 3년 만에 이기고 소인의 수법을 쓰지 않은 것을 하례하다.-을사년(1725 영조1) 구일제(九日製)에서 삼중(三中)을 맞았다.- 임수적(任守迪)
※ 《주역》 기제괘(旣濟卦)에 “은나라 고종이 귀방의 오랑캐 부족을 정벌할 때 3년이 걸려 이겼으니, 소인의 방법은 쓰지 말아야 한다.[高宗伐鬼方, 三年克之, 小人勿用.]”라는 말이 나온다.
※ 원문의 구제(九製)는 구일제(九日製)를 말하는데, 오순절제(五巡節製)의 하나로 조선 시대 때 철에 따라 보이던 다섯 가지 과거(科擧)인 인일제(人日製), 삼일제(三日製), 칠석제(七夕製), 구일제(九日製), 황감제(黃柑製)가 있었다.
王道攸興, 政仰圖大之烈, 蠻方底定, 聿睹斥小之休, 朝野惟然, 國家幸甚.
欽, 無疆惟德, 有道曾孫, 師虞諧舞羽之仁, 無遠不屆, 任傅巖作楫之弼, 所寶惟賢. 第惟鬼方梗化之辰, 每稱小人與政之戒. 恃險稔惡, 粤自國運之中微, 樂秩貪功, 尤慮奸徒之內訌.
왕도(王道)를 흥기시켜 정사에는 사방을 경략(經略)할 공렬이 있기를 우러러 기대하였고 오랑캐를 평정하여 마침내 소인을 축출하는 아름다움을 보이니 조야(朝野)가 옳게 여겼고 국가에 매우 다행한 일이었습니다.
공경히 생각건대, 한없는 덕을 지니고 있고 도가 있는 분의 증손인 주왕(周王)이시기에 유묘(有苗)의 백성들이 문덕(文德)을 펼친 인자함에 교화 되어 그 교화가 아무리 먼 곳이라도 이르지 않은 곳이 없었고, 은나라 고종(高宗)이 부암(傅巖)에서 부열(傅說)을 만나 세상을 경륜할 보필의 임무를 맡겼으니 보배로 여길 것은 오직 현자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생각건대, 귀방(鬼方)의 오랑캐가 교화되기 전에는 매번 소인(小人)이 정사(政事)에 참여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험한 지형을 믿고 악행을 쌓는 것은 국운이 중도에 쇠약해지기 시작하면서 부터이고, 높은 작질(爵秩)을 좋아하고 공로를 탐할 때는 간악한 무리가 내홍(內訌)을 일으킬까 더욱 염려해야 합니다.
※ 원문의 有道曾孫은 《서경》 에 “상나라의 죄를 지극히 하여 황천과 후토와 지나가는 곳의 명산·대천에 고유(告由)하여 말씀하기를 ‘도가 있는 사람의 증손인 주왕 발은 장차 상나라에 크게 바로잡음이 있을 것입니다.’[底商之罪 告于皇天后土所過名山大川 曰惟有道曾孫周王發 將有大正于商]”라는 말이 나온다.
※ 원문의 무우(舞羽)는 《서경(書經)》에 “유묘(有苗)의 백성이 명을 거스르자, 순(舜) 임금이 문덕을 크게 펴서 방패와 깃일산으로 두 뜰에서 춤추니, 70일 만에 유묘가 와서 항복하였다.[苗民逆命, 帝乃誕敷文德, 舞干羽于兩階, 七旬, 有苗格.]”라는 말이 나온다.
※ 원문의 부암작즙(傅巖作楫)은 은나라 고종이 부열(傅說)에게 이르기를, “만약 내가 큰 내를 건넌다면 너를 배와 노로 삼겠다.[若濟巨川, 用汝作舟楫.]”라고 한 고사를 말하는데, 이는 함께 세상을 경륜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해설】 이것은 과거 답안지입니다. 이 답안지가 지금 전해질 수 있는 것은 이 과거에 합격해서 답안지를 돌려받았기 때문입니다. 맨 우측의 큰 글씨는 공통의 제목으로 시제(試題)라고 하고, 그 아래 소자 쌍행으로 쓴 것은 과거를 친 연도와 과거 제목, 성적이며, 맨 아래는 답안 작성자의 이름입니다.
과거의 제술 시험은 모두 병려문을 쓰기 때문에 대구를 이루며 글이 전개됩니다. 그러나 각 구마다 적절한 고사를 구사해야 하기 때문에 구두를 떼는 것은 쉬우나 그 내용을 아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글 우측에 점을 찍은 것은 글이 잘 된 곳이라고 표시한 것입니다.
본 글은 '규장각 원문검색서비스'룰 통해 얻은 자료로 '고전번역원'의 협조를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원문 정리, 번역과 참고 자료는 김민선이 수고하였고, 김종태가 감수하고 해설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