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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빙글리의 세례 이해는 천주교는 물론이고 그와 함께 일정 기간 교제했던 재세례파와도 달랐다. 시간이 지나면서 츠빙글리는 재세례파와의 논쟁을 통하여 그의 세례 이론을 확립하였다. 그는 유아들이 세례를 받을 수 있다고 보았으며 그 세례는 할례를 대신하는 것이었다. 세례가 할례를 대신하는 것은 신약과 구약을 대립관계로 보지 않고 통일적으로, 언약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간단한 소개는 이것으로 마치며 구분선 아래에서 츠빙글리의 주장 내용을 읽어 보시기 바란다.
(전략) 세례논쟁이 있기 전에는 츠빙글리는 세례에 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으며, 그의 저술들에서 강조점은 세례보다 신앙에 있었다. 그는 세례가 신앙을 강하게 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그것이 신앙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것은 거부하였다. 1523년 7월 『67개 조항에 대한 해설』(An Exposition of the Articles)에서 츠빙글리는 유아세례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였으며, 그의 관심은 유아 때에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신앙에 대해 적절하게 가르침을 받아야 하고 신앙을 고백할 수 있을 때에 확증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후에 회고하면서 그는 어린이들은 판단할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 세례를 받지 않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음을 인정하였다.(Z IV 228.20-229.7) 그가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세례가 신앙을 강화시킨다는 자신의 주장에 비추어 볼 때 세례는 신앙을 가질 수 없는 유아들과는 아무 관계가 없기 때문이었다.
몇몇 사람들이 더욱 공개적으로 세례문제를 제기한 것은 1524년이었다. 그 해 2월 초에 일부 사람들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세례주기를 거부하였고, 가을에는 만츠(Felix Manz)와 그레벨(Conrad Grebel)이 뮌처(Müntzer)와 접촉하면서 유아세례에 대한 그의 비판을 받아들였다. 츠빙글리는 12월에 몇몇 급진주의자들과 토론을 가졌으나 허사였으며, 같은 달에 슈트라스부르크에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의 입장을 개진하였다.(Z VIII 261-78) 그는 성서에서 "세례는 이미 믿는 자들에게나 앞으로 믿게 될 자들 모두에게 입회식이다."라고 주장했다. 여기에서 세례는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에 선행하며, 사람들이 "나중에 그리스도를 배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주어졌다. 둘째로, 그는 유아세례가 유아들에게 주어지던 할례를 대체했다(골 2:11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는 것을 근거로 유아세례를 주장하였다. 비록 아브라함에게 행해진 할례는 선행된 믿음에 대한 표지이기는 했지만 말이다.(롬 4:11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셋째로, 그는 마태복음 19:13-14("그때에 사람들이 예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에 있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의존하여, 누구든지 아이들이 세례 받는 것을 금하는 자는 그들이 그리스도에게 오는 것을 금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츠빙글리는 유아세례에 대해 적대자들이 제기한 많은 반대의견들도 다루었다. 유아세례를 지지하는 신약의 진술이나 예가 전혀 없다는 반대에 대처하여, 그는 고린도전서 1장이나 사도행전 16장에 나오는 세례 받은 가족 안에 어린이들이 포함되어 있었을 확률이 높다고 주장했다. 마가복음 16: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에서 믿음이 세례에 선행하며, 사도들이 세례를 베풀기 전에 신앙을 점검했다는 두 가지 도전에 대응하여, 그는 첫째로 마가복음 16:16은 그 앞 구절이 보여주듯이 유아들이 아니라 복음을 들은 성인들에게만 적용되는 말씀이며, 둘째로 사도들이 미리 사람들을 점검한 것도 아주 드문 일이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그는 또 다른 논문에서도 신약성서가 유아들에게 세례를 베풀라고 명령하거나 그 예를 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다루었다. 그는 신약성서에 유아세례에 대한 명령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그렇다고 거기에 금하는 명령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덧붙인다. 그는 사도들이 유아들에게 세례를 베풀지 않았다는 사실이 우리도 유아세례를 베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그들이 캘커타에서 세례를 베풀지 않았다는 사실이 우리도 캘커타에서 세례를 베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더욱이 신약성서가 분명한 지침을 주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구약성서로 눈을 돌려야만 하고, 구약은 우리에게 유아들에게 시행되었던 할례를 제시해 준다. 구약성서에 호소하는 것은 급진주의자들에게는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고, 츠빙글리는 후에 자신이 구약성서에 호소하는 데 대해 지지를 받기 위해 논증해야만 하였다. 이 일에 있어, 그는 그리스도께서 구약성서에 호소했다는 데 얼마간 기대었다.(중략)
츠빙글리가 급진주의자들과 얼마간 성례에 대한 견해를 공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간의 논쟁은 그로 하여금 자신의 입장을 그들의 입장으로부터 구별하도록 강제하였다. 츠빙글리가 볼 때 급진주의자들의 성인세례 주장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었다. 가톨릭과 루터주의자들의 세례이해도 마찬가지였다. 논쟁의 과정에서 츠빙글리는 세례에 관한 자신의 초기 견해들을 잘 다듬었지만, 세례를 어른에게만 줄 것인지 아니면 아이들에게도 줄 것인지에 대한 견해에 더욱더 통일성을 주는 (언약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중요한 진전이 있었다.
성인세례를 주장하는 재세례파의 전형적인 예는 이 시기의 한 논문에서 발견되는데, 아마도 1522년 여름에 급진주의자들에게 합류했던 그레벨이나 만츠가 쓴 논문일 것이다. 그 논문은 유아세례를 교황의 발명품으로 취급하면서, 그리스도가 그것을 가르친 것도, 사도들이 실행한 것도 아니라고 주장했다. 더욱이 그리스도는 이미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명했고, 사도들도 가르침을 받고 세례받기를 열망하는 자들에게만 세례를 베풀었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모범을 제시하는데, 그는 8일 만에 할례를 받았고 30세에 세례를 받았다. 더구나 세례는 새로운 생활을 하려고 열망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Z III 368-372) 믿음을 가져야 할 필요와 새로운 생활에 대한 열망은 오직 성인들만이 세례를 받을 수 있는 분명한 증거로 보였다. 후프마이어(Balthasar Hubmaier)와 같은 몇몇 재세례파들은 상당히 온건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오이콜람파디우스(Oecolampadius)에게 보낸 편지에서 후프마이어는 부모들이 연약하여 유아세례를 고집한다면 자신은 그 아이들에게 세례를 베풀 것이라고 썼다.(S II i. 339.4-11)
재세례에 대한 츠빙글리의 최초의 반응은 1525년 1월 『주석』(A Commentary)에 나타났다. 거기서 그는 요한의 세례와 그리스도의 세례가 동일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재세례파 사람들이 재세례를 주장하기 위해 사용하는 사도행전 19장에 두 번째 세례에 대한 논거도 없을 뿐더러 그에 대한 요구도 없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렇게 주장한 것이다. 그는 또한 전반적으로 성례의 의미를 다루었는데, 성례는 "자신이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고자 한다는 것을, 혹은 군사라는 것을 교회 앞에 증명하는 표지이며, 이 표지는 그 자신의 믿음을 스스로에게가 아니라 전체 교회에게 알린다."라고 기술하였다. 세례는 재세례파가 주장하는 것처럼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그 자신 안에 이미 이루어진 것을 확신하도록 만드는 표지가 아니라 입회 의식이거나 서약이다. 더군다나 세례는 가톨릭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양심을 자유롭게 하거나 청결하게 하는 것도 아니며, 루터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 성례가 외적으로 의미하는 것을 성령이 내적으로 행하신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는 것도 아니다.(Z III 757-762; Works ⅲ. 184)
갈등은 점차로 격렬해졌고 츠빙글리는 재세례파에 반대하여 3권의 주요저술들을 출판했다. 1523년에 『세례, 재세례, 유아세례』(Baptism, Rebaptism, and Infant Baptism)와 『후프마이어에게 주는 답변』(A Reply to Hubmaier)이 나왔고, 1527년에 『논박』(A Refutation)이 출판되었다. 마지막으로, 1530년에 슈벵크펠트(Kaspar Schwenckfeld)가 제기한 세례에 관한 질문들에 대한 답변이 있었다.(제목은 『세례의 성례에 관한 질문들』 (Questions concerning the Sacrament of Baptism)이다. -역자 주) 츠빙글리의 관심은 세례라는 주제 자체가 아니라, 세례나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재세례파의 급진적 태도가 종교개혁 자체에 제기하는 위협이었다.(그는 이미 사회적 문제들 중 몇 가지를 다루었다. 그는 사유재산권을 공격하는 급진주의자들에 대항하여 개인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도둑질하지 말라는 명령을 이용하였다.) 그는 급진적인 재세례파들이 자신들만의 죄 없는 교회를 세우기 위해 교회에서 떨어져 나가는 분파주의를 비판하였다.
유아세례를 옹호하는 츠빙글리 주장의 주된 윤곽은 슈트라스부르크에 보낸 편지에 나타났던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논쟁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츠빙글리가 자신의 입장을 세밀하게 다듬고 중요한 주장들을 덧붙였다는 것이다. 유아세례가 주된 이슈이기는 했지만, 그에 대한 논의는 세례라는 전반적인 논의의 맥락 안에 놓여 있었다.
츠빙글리가 볼 때 가톨릭이나 재세례파 모두 외적인 세례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과실이 있었다. 왜냐하면 "외적인 요소나 행위가 결코 영혼을 정결하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Z IV 252.21-6) 그리스도는 외적인 것들을 제거하심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구원을 그런 것들에서 찾지 못하도록 하셨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세례를 주신 것은 우리의 연약함에 대한 일종의 용인이었고, 세례를 일종의 서약으로서, 거룩한 것 자체가 아니라 거룩한 것의 표지로서 주신 것이다.(Z IV 216.26-217.23) 세례는 어떤 사람이 수도회에 들어갈 때 수사의 겉옷을 입는 것과 같은 입회의 표지이다. 수도회에 들어가는 사람은 수도회의 규칙들을 배우기 전에 옷을 먼저 입는다. 츠빙글리는 재세례파가 즐겨 인용하는 성서본문인 마태복음 28:19-20(“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을 자기 입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삼았다. 왜냐하면 그 구절에서는 세례 받은 자들이 지켜야 할 것을 가르치는 것보다 세례가 앞서기 때문이다.(Z IV 231.26-30, 231.32-233.16)
세례를 입회의 표지 혹은 서약으로 보는 견해는 성인세례뿐만 아니라 유아세례에도 적용될 수 있었다. 츠빙글리는 유아들도 하나님의 백성에 속하기 때문에 그들에게도 세례가 베풀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약성서에서도 보듯이 그리스도인 부모를 둔 아이들은 그들이 부모들의 자녀들인 것만큼 하나님의 자녀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면, 누가 그들에게 세례 주는 것을 거절할 수 있단 말인가?(Z IV 333.24-6) 만일 그들이 세례 받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백성의 일부는 세례를 받고 일부는 세례를 받지 못하는 꼴이 될 것이다.(Z IV 318.24-6) 더욱이 그들은 아이일 때 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그것은 세례가 어릴 때 받던 할례를 대체했기 때문이다.
이같이 본질적으로 확실한 요지 외에도, 츠빙글리는 유아세례에 반대하는 여러 주장들을 다루어야만 했다. 계속해서 가장 길게 논의된 주제는 요한의 세례와 그리스도의 세례의 동일성 문제였지만, 츠빙글리는 몇몇 부가적인 주장들도 전개하였다. 그는 아이들은 성령을 받을 수 없다는 생각을 거부하였다. 여러 예들 중에서 그는 세례 요한이 아직 어머니의 태중에 있을 때 소위 어른들인 우리보다 더 큰 기쁨으로 그리스도를 알아보았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나이와 무관하게, 자신이 원하는 방법으로 원하는 때에 역사하신다. (Z IV 242,10-27)
츠빙글리는 그리스도께서 유아들에게 세례를 베풀지 않았다는 재세례파의 주장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유아들에게 세례를 베풀어서는 안 된다는 식의 결론을 내리는 데는 반대하였다. 그런 식이라면 최후의 만찬 때에 여자들은 없었기 때문에 여자들은 성만찬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Z IV 296.17)(아무튼 어떤 것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고 해서 그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도들이 세례를 받았다는 기록도 역시 없기 때문이다.) 츠빙글리는 "하나님께서 유아세례를 명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어서는 안 된다.”는 그들의 주장에 맞서서, 그들은 하나님이 금하지 않으신 것을 금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에 무엇인가를 덧붙이는 죄, 즉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바로 그 죄를 범하고 있다고 질책하였다.(Z IV 301.31-302.4, 211.8-212.4)
츠빙글리는 성인세례와 유아세례의 논거로 고린도전서 10:1-5을 이용하였다. 그 구절은 조상들이 모두 모세에게 속하여 세례를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Z IV 304.28-306.10) 그는 또한 아이들을 예수에게로 데려오라는 복음서의 이야기가 유아세례를 찬성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언약의 표지를 제외하고, 다른 어떤 방법으로 아이들이 예수에게로 올 수 있는가? 그리고 아이들이 하나님의 백성에 속한다면, 왜 하나님의 백성의 표지를 그들에게 허락하지 말아야 하는가?(Z IV 299.8-300.4)
1525년 츠빙글리 신학의 다른 부분에서의 진전이 그의 세례관에 중요한 변화를 초래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후프마이어에게 보낸 답변이 자세히 다루고 있다. 여기서 언약은 우리의 언약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으로 간주되었고, 우리의 약속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약속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언약의 표지는 경건한 삶을 살겠다는 우리의 서약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언약과 약속의 표지이다. 표지에 대한 이런 이해는 성인세례와 유아세례 모두에 적합하였다. 반면에 예전처럼 표지를 서약으로 이해할 경우 그 일관성이 덜하여, 성인세례는 스스로 서약하는 것이 되고 유아세례는 자기 자녀들을 양육하겠다고 서약하는 것을 의미하였다. 더욱이 츠빙글리는 신약성서의 언약이 새로운 것이 아니며, “우리는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 안에서 하나"라고 주장하였다.(Z IV 596.1-2, 636.24-6, 636.33-637.1) 그러므로 이제 이전처럼 구약과 신약의 대조라는 견지에서 논증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율법 아래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이라면 은혜 아래 있는 우리에게는 더욱더 그러할 것이다. 이제는 구약과 신약의 통일성의 관점에서 논증이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판단의 기준(the point of reference)이 모세 율법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맺은 은혜의 언약이기 때문이다.
1527년 『논박』에서 츠빙글리는 언약은 사실상 아담과 맨 처음 체결된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였다. 오직 하나님이 한 분이듯이 언약도 하나이며, "아브라함의 하나님인 만큼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인 만큼 우리도 하나님의 백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히브리 후손들이 언약에서 그들의 부모들과 하나이고 언약의 표지를 받았듯이, 그리스도인들의 자녀들도 언약의 표지인 세례를 받아야 하고 그리스도의 교회의 일원으로 간주되어야 한다.(Z Vl i. 170.12-16, 171,15-19, 171,28-172.5; Selected Works 236)
츠빙글리는 또한 선택의 교리에 근거한 논증을 하였는데, 사실 이러한 논증은 본래 재세례파들이 그를 공격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었다. 그들은 로마서 9:11-13에 나오는 에서의 거부를 근거로, 유아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츠빙글리의 대답은 오직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들만이 그의 백성이고, 그들이 설혹 유아들처럼 아직 믿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이었다. 히브리인들의 자녀들이 언약 안에 있었듯이 그리스도인들의 자녀들은 더욱 그러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에서의 경우처럼 하나님이 다른 식으로 말씀하시기 전까지는 그리스도인들의 자녀들이 선택받았음을 확신하게 된다.(Z VI i. 175.21-179.19, 184.2-4)
츠빙글리는 세례에 관한 최종적이고 본질적인 글인 『세례의 성례에 관한 질문들』 (1530)에서도 계속해서 선택의 교리에 근거해서 논증하고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슈벵크펠트가 세례에 관해 제기한 46개의 질문들에 답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선택의 교리를 유아세례를 위한 자기주장의 근거로 삼기보다는, 성인세례를 주장하기 위해 세례와 믿음을 연결시키는 재세례파에 반대하는 무기로 사용하였다. 여러 가지 요점들 가운데 두 가지를 언급할 수 있다. 첫째로, 우리는 누가 선택되었고 누가 유기되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에 포함되어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자녀들을 교회에서 몰아내는 것은 잘못이다. 둘째로, 믿음을 가진 사람들만 세례를 받아야 한다면 그 누구도 세례를 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믿음에 대해 확실하게 알 수 없기 때문이다.(S III 572-6)
츠빙글리 신학 안에는 세례가 은혜의 수단이고 구원에 필수적이라는 전통적인 견해를 부인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요소들이 있다. 츠빙글리가 볼 때 전통적인 견해는 하나님의 주권, 그리스도 중심성, 성령의 자유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또한 그것은 세례 받은 자들 중에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있고 구원받은 자 중에도 세례 받지 않은 자들이 있다는 성서의 명백한 증언과 모순된다. 그의 세례관은 그의 구원관, 인간관과 결부되어 있어, 영혼이 육체적인 것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츠빙글리는 세례가 전통적으로 부여받았던 것과는 다른 의미와 목적을 지닌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는 세례를 입회의 표지, 언약의 표지로 간주하였다. 그는 이러한 견해를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겠다는 우리의 서약의 견지에서 전개시켰다. 그러나 어린아이는 서약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유아세례에서는 그 부모가 법에 따라 서약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1525년에 신학적으로 심화된 그는 이 언약을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으로 이해하게 되어, 언약의 표지에 대한 이해를 가지게 되었다. 이제 강조점은 하나님과 교회로 옮겨졌고, 언약이라는 용어는 근본적으로 성인들에게나 유아들에게 동일한 의미로 사용될 수 있었다.
재세례파와의 논쟁에서 츠빙글리는 유아세례를 위한 두 가지 중요한 전제조건에 의존하였다. 아이들이 하나님께 속하기 때문에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과, 세례가 할례를 대신한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일단의 주장들이 있었다. 츠빙글리의 견해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진전은 언약에 대한 이해의 변화와 더불어 나타났다. 이것은 그가 더이상 구약과 신약을 대조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통일성의 관점에서 본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이후에 츠빙글리는 자신의 대적자들이 처음에 사용했던 선택의 교리를 활용하였다. 그러나 그는 선택의 교리를 부처처럼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선택받은 자들에게 세례가 효력이 있음을 확인하는 근거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적대자들의 주장을 무너뜨리기 위한 방책으로 소극적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하나님의 주권은 계속해서 주장하였다.
<약어표>
S M. Schuler and J. Schulthess, Huldreich Zwingli's Werke (Aurich, 1828-42).
Works ii W. j. Hinke, The Latin Works of Huldreich Zwingli, ii (Philadelphia, 1922; repr as Zwingli on Prividence and Other Essays, Durham, NC, 1983).
Works ⅲ C. N. Heller, The Latin Works of Huldreich Zwingli, ⅲ (Philadelphia, 1929; repr. as Commentary on True and False Religion, Durham, NC, 1981).
Z Huldreich Zwinglis Sämtliche Werke (Berlin, Leipzig, Zurich, 1905- ).
W. P. 스티븐스 지음, 박경수 옮김, 『츠빙글리의 생애와 사상』(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7), pp. 143-154.
첫댓글 좋은 포스팅입니다.
극단적 세대주의, 강경한 침례교회, 현대의 구원파 등은 신약과 구약의 불연속과 단절을 강조합니다. 심지어는 정통 침례신학교 교수 중 어느 분 마저도 신약의 단절과 우위를 강조하는 것을 보았고, 어느 한분은 구원파 비슷한 주관적 신앙고백을 책에서 설명하기도 하도군요.
각설하고 천주교의 세례중생설과 재세례파&침례교의 침수침례only 주의는 잘못된 것입니다. 개혁주의의 세례 이해가 타당하고, 츠빙글리는 그 범주 안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공김합니다.
눅23:39-43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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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와 성찬 참여를 못 했지만 구원받은 강도의 말씀은 츠빙글리의 신학 사상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네, 적절한 성경의 인용이십니다.
"츠빙글리 신학 안에는 세례가 은혜의 수단이고 구원에 필수적이라는 전통적인 견해를 부인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요소들이 있다. 츠빙글리가 볼 때 전통적인 견해는 하나님의 주권, 그리스도 중심성, 성령의 자유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또한 그것은 세례 받은 자들 중에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있고 구원받은 자 중에도 세례 받지 않은 자들이 있다는 성서의 명백한 증언과 모순된다. 그의 세례관은 그의 구원관, 인간관과 결부되어 있어, 영혼이 육체적인 것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 상당히 중요한 문단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능력은 세례와 성찬의 의식에 선행되고 우선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특별한 경우(눅23:39-43 등)가 아닌 일반적인 경우에서는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은 세례를 받고 성찬에 참여합니다.
네, 잘 읽고 공부합니다.
츠빙글리의 고독함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천주교가 핍박하고... 같은 개혁자인 루터가 공격하고... 잠시나마 함께 하던 재세례파가 도전하고... 그의 고립무원과 고군분투에서 사나이 다운 비장하고 장렬한 신앙의 정서가 느껴집니다.ㅠㅠ
제가 성경에서 츠빙글리의 이미지에 맞는 성구는 다음과 같습니다:
고린도전서 16:13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 답게 강건하라
NASB) Be on the alert, stand firm in the faith, act like men, be strong.
아멘!
중세에 유아세례가 횡행했던 것은 호적 개념과 아울러 구원과도 직결시켰기 때문입니다. 유아 사망률이 높았기 때문에 유아들에게 세례를 주어서 구원을 받게 하려는 의도로 유아세례를 행했던 것인데 재세례파는 신앙고백을 할 수 없는 유아 때에 받은 세례를 무효라고 주장하며 성인들에게 다시 세례를 주었습니다. 가톨릭 교회와 시 정부는 재세례파의 행태가 기존 질서를 부정하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고 보았죠.
츠빙글리는 유아세례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입회식이나 신앙고백의 차원에서 진전하여 구약과 신약의 통일성으로 보면 할례와 같은 언약식이라는 논리를 편 것이죠. 츠빙글리는 세례라는 외적인 행위, 육이 영혼에 영향을 줄 수 없다는 판단을 했고 따라서 재세례파 만큼 세례에 대해서 민감하지 않았습니다. 재세례파는 온 힘을 다해서 이것을 이슈화했는데, 교황주의자들에 대한 거부와 저항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성경을 보니 믿는 자들이 세례를 받으니까 그 말씀에 순종하고자 했던 거죠. 아울러 가시적 교회와 불가시적 교회를 구분하지 않고 유형교회를 참 교회로 보는 미숙함이 있었습니다.
네, 상당 부분 공감합니다.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츠빙글리가 유아세례에 대해서 구약의 할례와 같은 개념으로 이해했고, 구약과 신약의 통일성, 연결성 차원에서 접근했다는 것이 이해가 됩니다.
네, 그게 핵심으로 보입니다.
츠빙글리 포스팅을 읽으며 제 믿음과 성경을 보는 눈이 더 성숙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네, 저도 그렇네요.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