何有於我哉
- 교수 생활 34년의 감회
장영동 / 약학과
해설 겸 蛇足을 좀 붙인다. 먼저 제목의 何有於我哉[어느 것이 나에게 있는가?]는 뒤에 나오는 誨人不倦[사람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다]와 연계되는데 <논어> 술이(述而)에 나오는 표현으로, 그 원문은 ‘(공자께서) 말없이 속으로 기억해 두며, 배우기를 싫어하지 않으며, 사람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이 세 가지 중에 어느 것이 나에게 있는가?[黙而識之 學而不厭 誨人不倦 何有於我哉]’라 한 것이다. 我는 측성(仄聲)이어서 한시(漢詩)에서의 평측(平仄)을 맞추기 위하여 본문에서는 평성(平聲)인 予로 바꾸었다. 첫 구의 甚事는 ‘무슨 일’로 국역할 수 있는데, 甚은 ‘무엇’을 훈(訓)으로 하며 ‘삼’으로 읽는데, 주자(朱子)와 여조겸(呂祖謙)이 지은 <근사록(近思錄)>에 ‘천지 사이에는 단지 하나의 감(感)과 응(應)이 있을 뿐이니, 또 무슨 일이 있겠는가[天地之間 只有一箇感與應而已 更有甚事]’라는 명도(明道) 정호(程顥)의 말이 그 전거(典據)다. 여섯째 구의 春風四歲는 ‘4년간의 봄바람’으로 春風은 전의(轉義)하여 스승의 따뜻한 가르침을 나타내는데, 在春風中坐[봄바람 속에 앉아 있다]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주자의 <이락연원론(伊洛淵源錄)>에, 정이(程頤)와 주돈이(周敦頤)의 문인인 후중량(侯仲良)이, ‘주공섬(朱公掞)이, 공섬은 주광정(朱光庭)의 字다, 여주(汝州)에 가서 명도(明道) 정호(程顥) 선생을 뵙고 한 달이 지나 돌아와서 사람들에게, “광정(光庭)이 한 달 동안 봄바람 속에 앉아 있었다[某在春風中坐了一月].”라고 말하였다.’라고 전한 것을 기록한 데서 유래한다. 마지막으로 爲友以師는 ‘스승으로서 벗이 되다’는 의미이고, 벗[友]은 동지(同志)로 뜻을 같이하는 이다.
何有於我哉. 교수생활을 하던 34년 동안에는 분명히 하루하루 1년2년 열심히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했다고 자신했지만 퇴임하고 3년이 지나면서 내게 떠오른 상념이다. 버켓 리스트의 하나로 논어를 읽고자 하였기에 대학입시를 앞둔 고3 시절 수험생으로서 3년여에 걸쳐 국어 공부하듯이 논어를 읽은 후유증으로.
첫 번째는 誨人不倦이다. 학이불염은 그렇다 치자, 그래도 책은 읽었고 연구도 했으니. 공자께서 겸양의 표현으로 했다손 치더라고 성인이 하시지 못한 일을 내가 해내었다는 것도 어불성설일 게다. 그러나 보다 진솔하게 표현한다면 맹자의 교육철학인 易子而敎之[자식을 바꾸어서 가르치다]하지 못한 것이 내 誨人不倦의 요체다. 여기서 易子而敎之는 <맹자> 이루 상(離婁上)에 나오는 표현인데, “군자가 자식을 직접 가르치지 않는 것은 어째서입니까?”라는 공손추(公孫丑)의 질문에 맹자가 한 대답이다. ‘가르치는 사람이 올바름으로써 가르치는데 (자식이 그 가르침을) 행하지 않으면 화를 내게 되고, 화를 내게 되면 도리어 (자식의 마음을) 해치게 됩니다. “아버지는 나를 올바름으로 가르치면서 정작 아버지의 행동은 올바르지 않구나.” 하면 이는 부자간에 서로 해치게 되는 것이니, 부자간에 서로 해치게 되면 나쁜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자식을 바꾸어서 가르쳤습니다.’라 대답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내게 있었던가? 초기 교수생활에서는 내 자식을 가르치듯이 하였으니 잘못이 하나요, 나이 들어서는 易子而敎之의 본 취지는 망각한 채 지식 전달자 노릇만 하였으니 또 하나의 잘못이다.
두 번째는 春風이다. 기억은 없지만 나에게 ‘엄마, 아빠’를 가르쳐준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한문을 가르쳐주신 할아버지, “진서(眞書) 좀 읽지”하시며 한문공부를 채근하셨던 할머니, 그리고 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 각급 학교에서 많은 선생님을 만났고 그들로부터 배웠다. 덤으로 이순(耳順)을 앞둔 나이에 이장우 선생님을 만나 한시(漢詩)를 배웠는데 그 분위기는 늘 따스함 봄바람 속이었다. 22년 동행한 할아버지에게서는 春園之草 不見其長 日有所增[봄 동산의 풀은 그 자라는 것을 보지 못하나 날마다 자라는 것이 있다]의 학문하는 하는 자세를, 4년 반 동안 함께한 유학시절의 박사학위 지도교수, Randolph P. Thummel 교수는 ‘하루를 쉬면 이틀사흘 늦어진다.’는 꾸준함의 철학을, 마지막으로 한시를 가르쳐주신 이장우 교수님은 공부에 나이가 없으며 글로 즐기는 방법과 인자하게 가르치는 모습을 내게 베푸셨다. 이 때문에 그분들의 가르침을 거부 반응 없이 받아 익힐 수 있었고, 이분들이 펼친 在春風中坐의 경지에서 내 바라는 바대로 원하는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었고 그 열매를 지금 즐기고 있는데 34년간 만났던 제자들의 4년 대학생활에 나로부터 분 춘풍(春風)이 있었던가?
세 번째는 爲友以師이다. 양명학의 창시자 왕수인(王守仁)의 ‘벗이 될 수 없는 스승은 참 스승이 아니고, 스승이 될 수 없는 벗은 참 벗이 아니다.’라는 말은 스승과 벗, 나아가 제자의 관계를 정립하는 하나의 전거(典據)로 여겨져 왔다. 지금도 잊지 않고 전화로 안부를 묻는 몇 친구와 제자들 중, 적어도 상당수의 친구는 지금도 나에게 스승 역할을 해주고 있고 몇 제자는 내 벗이 되어 주고 있지만 내가 벗으로서의 스승, 스승으로서의 벗 역할을 한 적이 있었던가?
내 강의를 직접 수강한 학생의 수는 약학대학의 2,500여명과 한 때는 300여명 넘게 수강하였던 교양강좌를 10여년 담당한 탓으로 공자의 제자수를 능가할 정도이다. 그 중 한 명의 제자에게라도 봄바람과 같은 존재로 여겨졌고 이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있어 내 반평생의 교육자 생활이 이견대인(利見大人)의 보람으로 남길 기대한다. 나아가 젊어서 내 자식 가르치듯 할 때 야단맞은 제자들과 나이 들어서 지식전달자 역할만 할 때 인정머리 없는 강의를 들은 제자들에게 미안함이 없진 않지만 그 땐 그걸 최선으로 알았노라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아울러 좋은 안주도 먹어보지 않으면 그 맛을 알 수 없고, 참된 진리도 배우지 않으면 그 좋은 점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배운 뒤에야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가르친 후에야 비로소 어려움을 안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아야 스스로 반성하고, 어려움을 알아야 스스로 보강할 수 있다. 그러니 ‘가르치고 배우면서 함께 성장한다[敎學相長].’는 옛글도. 진정한 가르침은 완전한 인간이 완전함을 추구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끝임 없이 스승을 만나서 배우고 배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는 무엇을 가지는 데서 시작하므로 스승[師]과 제자[弟], 가르침[敎]과 배움[學]은 늘 동행하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기에.
첫댓글 교수님, 34년을 한편의 시로! ......글이 '거울' 같습니다. 저를 짚어보게 됩니다.
오래오래 생각하신 글을 받고, 또 그 깊은 생각을 이렇게 짧은 분량에 다 담아내신 것을 보면서, 분량은 자유라고 말씀드렸어야 하나 싶습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마음부담 더신 오늘은 나르듯, 여유로운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부담 드려 죄송합니다.
한편, 제 편집실력으로는 한시를 그대로 카페 온라인 화면으로 옮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스캔을 해서 사진으로 편집해 넣었습니다. 책을 만들 때는 인쇄소에서 하기 때문에 능숙하게 잘 하리라 싶습니다. 책 예쁘게 만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