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장
평범한 하루
레프리콘에게 내일이란 개념은 인간의 그것과는 분명 달랐다.
그와 다시 이야기를 나누기 전까지 많은 날들이 지나갔기 때문이다.
비와 뿌연 안개가 낀 날들이 계속 되었고 , 나는 나만의 일상을 살아나가고 있었다.
나는 매일 아침 8시쯤에 일어나 잠옷 위에 올 스웨터를 걸쳐 입고
침대 위에 앉아 명상을 했다.
습도가 어찌나 높던지 , 그 습기를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였고 , 옷도 축축했다.
오두막 안이나 밖이나 별 온도 차가 없는 듯 했다.
사실은 축축한 돌벽 떄문에 집 내부가 훨씬 더 추웠을 수도 있다.
그러다 9시쯤 되면 빈 속에 차 한 잔을 마셔야 겠다는 일념으로 포근한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찻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동안 뜨거운 수돗물을 세 개의 병에 담은 다음 ,
소파 위 담요 아래에 그것들을 집어넣어 앉을 자리를 따듯하게 데워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남은 오전 시간은 내가 그 해에 쓴 책인 ` 운명의 해독 ` 이라는 책의 원고를 편집하며 보냈다.
일을 끝 마친 뒤에는 주의를 돌려 단테의 신곡 중 지옥 편을 읽었다.
나는 단테가 훌륭하게 묘사했던 그 지옥의 단계를 통과해가고 있는 내 여정에 대해 사색하는 시간을 가지곤 했다.
어떨 때는 정오쯤이 되면 아일랜드식 소다 빵 토스트를 몇 조각 먹은 다음 ,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비옷에 퀸 엘리자베스 여왕 스타일의 머릿수건을 두르고
바다로 이어진 차선을 걷기도 했다.
나는 걷기 명상을 하면서 더 이상 내 삶에 긍정적이고 건설적이지 않은 것들은 흘려 보내고 ,
도움이 되는 것들은 환영하며 받아들였다.
걸을 때는 사람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 마을 주변을 빙 둘러서 걸었는데 ,
덕분에 고요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매일 몇 시간씩 빗 속의 시골 길과 해안가를 걸어 다녔고
부서지는 파도는 오래된 두려움과 화 , 상처의 매듭들을 풀어 주었다.
물 방울 하나하나가 과거의 나를 녹여 주었고 ,
새로운 씨앗이 심어질 내 마음의 토대를 비옥하게 해주었다.
가끔은 내 친구 레프리콘이 나타나 그 길을 함께 걸었는데 ,
그는 내가 사색할 수 있도록 ,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를 침묵 속에 홀로 내버려두었다.
어떤 날들은 깊은 절망의 골짜기에 빠진 채 빗물과 눈물이 하나도 뒤섞인 시간을 보냈다.
그럴 때는 가슴이 쑤시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한 발 한 발을 걸었다.
한편 , 태양이 잠깐이라도 제 모습을 드러내는 날들에는 삶에 대한 기쁨과 사랑에 휩싸일 때도 있었다.
태양이 뜨면 노란색과 보라색의 아이리스 , 하얀 데이지 그리고 보라색 클로버가 물기를 머금은 채 반짝거렸고 ,
멋진 내일을 약속하는 무지개도 바다위에 아치를 그렸다.
이런 순간들만 계속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
나는 워즈워스의 시 ` 불멸의 암시 ` 에서처럼 ,
순수했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 시절 느꼈던 , 자연을 향해 완전히 깨어있는 존재로서의 그 기쁨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그러자 , 몸 속의 피가 다시 노래를 하고 , 기쁨이 혈관을 타고 흘렀다.
나는 그 순간 , 그 장소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행운으로 여기며 기뻐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감정을 느끼든 걷기 명상을 하는 동안 만큼은 모든 것을 온전히 경험하기로 마음 먹었다.
훌륭한 내면의 봄 청소 시간이었다.
나는 식료품을 사기 위해 일주일에 몇 번은 마을을 방문했다.
식료품 가게의 호기심 가득한 눈빛들은 내가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장애물이었다.
하지만 “ 데이비슨 씨의 오두막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 ”
라는 질문을 정기적으로 받는 것보다는 그게 나았다.
그들은 내가 혼자 쇼핑할 수 있도록 나를 내버려 두었다.
나는 오툴 부인이 집에 방문하여 토탄 불을 지펴주는 그 시간에 맞춰 집에 들어가려고 항상 신경을 썼다.
오툴 부인은 내가 낮이나 밤에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결코 물어보지 않았다.
하루는 캐나다 고향 집에서 보내준 초콜릿 상자가 도착하여 오툴 부인에게 차 한 잔을 권하기도 했었다.
“ 그거 좋죠 ”
그녀가 정중하게 초콜릿 한 조각을 받아들며 대답했다.
그녀는 말없이 앉아 , 토탄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를 기다렸다.
시간이 좀 흐르자 , 불이 붙은 토탄에서 퍼져나오는 달콤한 사향 냄새가 집 안 가득 퍼졌다.
나는 그녀에게 초콜릿 한 조각을 더 권했다.
그러자 , 그녀는 귀한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이빨 빠진 미소를 짓고는 눈을 반짝이며
큰 초콜릿 한 조각을 집어 들었다.
나의 친구 레프리콘은 오툴 부인이 집에 같이 있을 때도 종종 찾아왔는데 ,
초콜릿을 먹는 날도 그런 날 중 하나였다.
그는 소파에 앉을 자리가 없자 , 주방에 놓여 있는 의자 중 하나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고는 무릎 위에 공책을 올려 놓고 펜으로 빼곡히 글을 썼다.
오툴 부인이 떠난 뒤 , 나는 그를 향해 몸을 돌려 다음과 같이 물었다.
“ 무엇을 발견했나요 ? ”
“ 놀랍군 , 놀라워 ”
그는 펑퍼짐한 코 끝에 코 안경을 걸쳐 놓고 영국 교수 같은 목소리를 흉내 내며 느릿 느릿 말을 내뱉었다.
그는 연필 끝으로 공책을 두드려 요점을 강조하면서 ,
말을 이어 나갔다.
레프리콘 : 단 것을 좋아하는 당신의 친구가 당신과 함께 앉아 있을 때 ,
당신들을 둘러 싼 에너지가 변했었소 .....
일반적으로 당신의 에너지는 바위들 사이 사이로 흐르는 개울 같고 ,
그녀의 에너지는 너울거리는 바다 같지.
그런데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당신은 바다를 닮게 되고 ,
그녀는 시냇물을 닮게 되오.
그녀는 당신을 잔잔하게 만들고 , 당신은 그녀를 다시 장난꾸러기로 만든다오.
“ 오툴 부인도 우리와 같은 피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있소 ? ”
그가 안경 너머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
“ 오툴 부인은 어떤 종류의 엘리멘탈인가요 ? ”
“ 당신이 거의 만나본 적이 없는 계급이라오 ..... ”
레프리콘은 안경을 다시 콧잔등 위로 올려 놓고 , 과장된 몸짓으로 팔을 뻗으며 말했다.
“ 오툴 부인은 쿠 종족에 속해 있소
쿠 종족은 모든 종류의 동물과 함께 일을 하오.
그들은 동물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 무엇을 느끼는지 모두 알고 있소. ”
; 부인은 당신 몸 전체로 자신의 에너지를 확장하오.
동물들에게 하는 것과 똑같이 말이오.
그녀는 고양이나 개처럼 당신에게 감명을 주오.
오툴 부인이 쿠 혹은 자신의 양치기 개와 함께 있을 때면 , 말을 할 필요가 없소.
그들은 말없이 서로를 이해한다오.
당신도 오툴 부인과 이러한 방식으로 지내고 있소.
당신들은 말을 많이 하기 보단 ,
서로의 오라 속에 자리를 잡고 또 영향을 주고 받고 있소.
“ 조금 전까지 우리를 보면서 그걸 관찰했던 건가요 ? ”
“ 그렇소 ”
그가 대답했다.
“ 나는 오툴 부인이 동물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지켜봐 왔고 ,
그녀가 당신에게도 똑같은 영향을 미치는지 꼭 확인하고 싶었다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