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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 K. 비일의 성전 신학]
비일은 적그리스도의 출현에 대한 바울의 경계심을 적극 지지한다. 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에서 마지막 배교와 적그리스도의 출현이 아직 남아 있긴 하지만, 적그리스도의 활동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이로써 적그리스도가 성전을 모독하리라는 초기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비일은 말한다. 거짓 교사들은 마귀가 파송한 적그리스도의 사자들로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은밀하게 불법적인 활동을 시작한 만큼 신자들은 마지막 때와 다름없이 적그리스도의 미혹하는 힘에 대한 긴장감과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고 경고한다. 거짓 교사들의 미혹은 하나님의 법을 바꾸려고 시도하는 적그리스도가 이미 교회 안으로 들어가 교회를 더럽히고 성전을 모독한 것에 해당한다. 마지막 적그리스도의 출현은 역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에 의해 통제되고 있으나 때가 되면 다니엘 11장의 예언이 마지막으로 성취될 것이다. 비일의 설명을 들어보기로 하자.
데살로니가후서 2:3-4에서 바울은 독자들이 그리스도의 강림이 이미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식으로 미혹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밝혔다. 왜냐하면 교회 안에서 발생할 마지막 배교의 두 가지 표징과 적그리스도의 마지막 출현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5절에서 바울은 이 문제와 관련해서 미혹되어서는 안 되는 세 번째 이유로, 자신이 바로 전에 성도들에게 말한 내용이 새로운 정보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바울은 장차 닥쳐올 배교와 적그리스도에 대해 그들에게 계속해서 말한 바 있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3-4절은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상기시킨다. 3-4절이 상기시키는 내용은, 독자들이 거짓된 가르침에 넘어가기 쉽다는 것을 바울이 알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그가 가르친 진리를 잊어갔기 때문이다.
바울은 적그리스도의 마지막 출현이 아직 미래에 속함을 강조하면서도, 6-7절에서 그들에게 지금 당장 적그리스도의 미혹하는 힘에 대한 긴장감과 경계심을 가져야 함을 경고한다. 사실상 바울은 그들이 미혹당할 위험에 있어 적그리스도가 실제로 나타났을 때보다 결코 더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강력한 어조로 말하고 있다! 따라서 성도들은 적그리스도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자기들이 그릇된 길로 인도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데살로니가후서 2:3-4에서 하나님의 마지막 원수가 마지막 때에 언약 공동체를 공격할 것이라고 말한 다니엘 11:30-45의 예언을 살핀 바 있다. 이 공격은 세 가지 형태, 즉 박해와 성전 모독과 신적인 진리의 왜곡을 통한 속임수로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바울은 먼저 6절에서 이 대적자가 아직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았다고 말한다. ‘지금 그로 하여금 그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나타남을 막는 힘은 불법한 자의 출현을 막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그의 출현에 적합한 시점이 도달할 때까지 말이다. 성도들은 이런 사실도 알고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내용은 이전에 사도가 성도들을 방문했을 때 그들에게 전한 교훈의 일부이기 때문이다(5절).
한시적으로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막는 자”
데살로니가후서 2:6-7의 ‘그것을 저지하는 자’(7절의 ho katechōn에 대한 NIV의 번역인 ‘막는 자’로도 번역할 수 있음)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는 주석가들의 견해가 크게 나누어진다. 하지만 어떤 해석이건 간에 직면해야 하는 과제는 6절의 중성 분사 “막는 것”(to katechon)이 7절에서는 남성 분사(ho katechōn)로 변한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다. 학자들이 제안하는 해결책의 대부분은 6절의 비인격적인 힘을 분리시켜 7절의 인격적인 힘과 결합시키려고 시도한다. “막는 자”의 의미에 대해서는 적어도 일곱 가지의 상이한 해석이 있다.
“막는 자”(‘소유자’도 가능한 번역)의 정확한 실체를 어느 정도의 개연성을 가지고 확인하는 것은 어렵다. 그럼에도 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그것/그가 악하지 않고 선하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텍스트 안에 두 적대 세력 사이의 경쟁이나 긴장이 감추어져 있다고 보는 견해야말로 텍스트의 의미를 가장 잘 이해한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이 텍스트가 역사 안의 어떤 특정 대리인을 염두에 두고 있건 간에, 그 배후에 있는 궁극적인 힘은 하나님임이 분명하다. 이 점은 적그리스도가 “적절한 때에”(NIV, 문자적으로는 “그[막는 자나 적그리스도 또는 하나님] 자신의 때에”; 이 세 선택지에 대해서는 Best 1972: 276을 보라) 나타날 때까지 “막는 자”가 그를 막을 것임을 관찰함으로써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때”는 확실히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6-12절 단락 전체가 예언-성취의 틀 속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정하신 때에 역사의 종말을 이루실 것이다. 9절은 사탄이야말로 불법한 자의 나타날 때를 결정한다는 점을 암시하는 듯하다(Wanamaker 1990: 254). 그러나 이 구절은 마지막 폭군이 나타나는 때보다는, 그의 활동에 “기운을 실어주는” 힘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전반적으로 계 13:2, 4과 일치함; Bruce 1982: 173). 이와 가장 가까운 바울의 평행 구절은 디모데전서 6:14-15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기약이 이르면(in His own time, kairois idiois)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디모데전서의 이 구절은 하나님을 역사적인 사건들의 주권자로 보는 바울의 견해를 추가로 보여준다(살후 2:6의 heautou kairō를 딤전 6:15의 kairois idiois와 비교하라).
그 사이에 “막는 자”는 마침내 적그리스도가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곧 “자신[막는 자]이 그중에서 옮겨질 때까지” 마지막 대적자의 출현을 계속해서 저지할 것이다(7b절).
적그리스도가 성전에 나타나리라는 다니엘의 예언이 어떻게 이미 성취되기 시작했는지의 “비밀”
바울은 예언된 “불법의 사람”이 아직 완전히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가 이미 왔음을 느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불법의 비밀[mystērion]이 이미 활동하였으나”(살후 2:7). 신약성경의 “비밀”(mystērion)의 용례 대부분이 그렇듯, 7절의 이 비밀은 구약 텍스트와 긴밀한 관계 속에 있다. 여기서 데살로니가후서 2:4은 다니엘 11장을 언급하고 있다. 구약 텍스트와 같은 방식으로 연결되는 다른 곳에서 이 “mystērion”은 예언자들의 예언이 성취되기 시작했음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 즉 이 단어는 예언들이 어떻게 성취된 것인지에 대해 구약 독자들이 기대하던 바와 비교하면서, 그것이 전혀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성취되기 시작했음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Beale 1998: 215-272을 보라).
바울이 7절에서 “비밀”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그가 다니엘서의 적그리스도 예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다니엘도 분명하게 예견하지 못한 수수께끼 같은 방식으로 성취되기 시작했다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다니엘은 마지막 적그리스도가 큰 권세를 가지고 모든 사람의 눈앞에 자신을 공개적으로 드러낼 것(“자기를 높이고 스스로 크다 하고”)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을 속이고 박해하기 위해서 말이다. 바울은 마귀가 역사의 마지막 때처럼 눈에 보이도록 온 것은 아직 아니지만, 그럼에도 이 마귀가 언약 공동체 안에서 미혹자인 거짓 교사들을 통해 “이미 활동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우리는 이 마귀의 미혹자들이 역사의 무대에 모습을 드러낼 때 마귀 역시 자신을 드러낼 것임을 다니엘의 예언으로부터 예상할 수 있다. 데살로니가 교회 안에서 드러난 “비밀”은 다니엘 11장의 예언이 뜻밖의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이 악마 같은 원수가 아직은 육신의 형태로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가 이미 거짓 교사들을 통해 자신의 “불법한” 일을 퍼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다니엘의 예언이 성취되는 방식에는 예상치 못한 요소가 하나 더 있다. 다니엘은 마지막 때의 압제자가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성읍 안에 있는 실제 성전을 더럽힐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러나 이 예언은 “적그리스도의 몸체”라 할 거짓 예언자들을 통한 성취로 시작된다. 그들은 새 언약의 공동체요 이방인의 성읍에 있는 새로운 성전인 교회 안으로 침투해 들어간다! 요한1서 2:18, 22도 적그리스도가 요한이 편지를 쓰고 있는 교회 안에서 이미 활동 중이라고 말한다. “지금은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다니엘과 예수께로부터]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적그리스도니”(요일 4:3; 요이 7절도 마찬가지!). 따라서 데살로니가의 그리스도인들과 우리는, 적그리스도의 미혹함이 그가 마지막에 육체를 입고서 나타날 때에만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도리어 우리는 그가 자신의 사자인 거짓 교사 무리를 통해 새 언약의 교회 안으로 은밀하게 들어와서 사람들을 미혹하지 않도록 지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예수도 바울이 참고한 다니엘서의 동일한 예언에 대해 언급하신다(마 24:4-5, 10-13, 23-26을 보라). 데살로니가후서 2:1-7의 핵심이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3절)라는 가르침인 것처럼, 마태복음 24장 텍스트의 핵심은 어느 누구도 예수의 재림과 관련해서 제자들을 미혹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3-4절). 예수는 자신이 오시기 전에 참으로 많은 적그리스도가 나타나리라고 예언하신다. 그는 적그리스도의 마지막 도착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하나님의 마지막 대적자에 대한 예언의 절반 성취이거나 선구자들인 많은 적그리스도의 교회 침투에 초점을 맞춘다(마 24:5, 10-15, 24). 이들은 요한1서 2:18과 데살로니가후서가 언급하는 거짓 예언자들과 동일하다. 심지어 예수는 마태복음 7:21-23에서 교회의 교사들로 간주되던 자들이 마지막 심판의 때에 거짓 교사로 정죄받으리라고까지 말씀하신다. 예수가 그들을 일컬어 “불법”(anomia)을 행하는 자들로 부르고 계심을 주목하라. 그런데 여기서 “불법”은 데살로니가후서 2:7의 “불법의 비밀”에서 사용되는 것과 동일한 단어다.
바울은 다니엘과 예수가 예언하신 거짓 교사들(참조. 마 24:4-5, 23-24 등)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마지막 때의 “큰 시련”이 이미 부분적으로 시작되었음을 뜻한다! “배교”에 관한 예언과 “불법한 자”가 새 언약의 성전인 교회 안으로 들어왔다는 예언이 이미 성취되기 시작한 것이다!
참으로 예수의 죽음에 관한 표징은 요한1서 2:18과 데살로니가후서 2:6-7의 내용과 함께 적그리스도가 올 때 큰 시련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명시적으로 밝힌다. 예언된 마지막 날의 성전도 교회 공동체의 형태로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4절을 보라). 그런데 7절은 적그리스도가 이미 교회 안으로 들어가 교회를 더럽히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다니엘은 큰 시련이 있을 것임을 암시하는 세 가지 뚜렷한 표징, 즉 박해와 성전 모독 및, 성전과 언약 공동체 안에 있는 거짓 교사들의 미혹이 있으리라고 예언했다. 성전 모독과 교회 성소 안에서의 미혹은 1세기에 시작되어 그 이후로 계속 진행되고 있다. 성전 모독은 하나님의 법을 바꾸려고 시도하는 적그리스도의 부정한 미혹의 영이 거룩한 신앙 공동체 안으로 들어왔음을 뜻한다. 따라서 큰 시련은 교회의 모든 시대를 거쳐서 지금까지 계속 진행된다고 할 수 있다(데살로니가에서 발생한 박해에 대해서는 행 17:5-8; 살전 1:6; 2:14; 3:3-4을 보라). 확실히 이 큰 시련은 아직 절정에 도달하지 않았다. 종말의 시간에 적그리스도가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날 때, 현재적인 시련은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이전에 역사 전체에 걸쳐서 교회의 일부에만 영향을 주었던 박해와 미혹이 성전을 뜻하는 전 세계의 모든 교회 안에 발생할 것이요, 바로 그때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것이다(계 11:1-13; 20:1-10을 보라). 이 점에 비추어볼 때 데살로니가후서 2:4의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표현은 예외적이지 않다. 도리어 이 표현은 동일한 표현을 다른 지역 교회에 적용하는 신약성경(바울을 포함하는)의 다른 아홉 사례 모두와 자연스럽게 맥을 같이한다.
그레고리 K. 비일, 강성열 역, 『성전 신학』(새물결플러스, 2014), pp. 385-391.

첫댓글 내용이 좋지만 초신자에게는 무거울 수 있겠네요. 10 포인트로 요약해 드립니다:
비일은 데살로니가후서를 근거로 마지막 배교와 적그리스도의 출현이 남아 있으나 그의 활동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적극 지지합니다.
거짓 교사들은 마귀가 파송한 적그리스도의 사자들로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은밀하고 불법적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 2장 3~4절에서 마지막 배교의 두 가지 표징과 적그리스도의 마지막 출현이 아직 미래의 일임을 밝히며 성도들이 미혹되지 않도록 경고합니다.
바울은 적그리스도의 출현이 미래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이 지금 당장 그의 미혹하는 힘에 대해 강력한 긴장감과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다니엘 11장의 예언에 따른 하나님의 마지막 원수의 공격은 박해, 성전 모독, 신적인 진리의 왜곡을 통한 속임수라는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6~7절의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막는 자'의 실체는 분분하나, 그 배후에 있는 궁극적인 통제와 예정의 힘은 역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이 분명합니다.
바울이 사용한 '불법의 비밀'은 다니엘의 적그리스도 예언이 교회 안에서 미혹자인 거짓 교사들을 통해 전혀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이미 성취되기 시작했음을 뜻합니다.
다니엘은 예루살렘의 실제 성전 모독을 예언했으나, 이 예언은 새 언약의 성전인 교회 공동체 안으로 거짓 예언자들이 침투하는 방식으로 뜻밖에 시작되었습니다.
예수 역시 마태복음에서 마지막 때의 큰 시련과 '불법'을 행하는 많은 거짓 교사들이 참된 교회의 교사들로 위장하여 침투할 것을 미리 예언하셨습니다.
성전 모독과 미혹은 이미 1세기에 시작되어 교회 역사 전체에 걸쳐 진행 중이며, 향후 적그리스도가 인간의 모습으로 완전히 나타날 때 전 세계적으로 심해져 절정에 도달할 것입니다.
네, 이해하기 더 쉽네요.
적그리스도 (<영> Antichrist; <히>'안티크리스토스')
적그리스도란 단어는 요일2: 18,22;4:3;요이 1: 7에만 나타나 있다. 그러나 적그리스도의 개념은 성경 전체에 산재해 있다.
Ⅰ. 구약
적그리스도란 이름은 구약에 기원을 둔다. 그 기원 가운데 하나인 ´벨리알의 아들들´(삿 19: 22;20:13, 한글 개역 성경에는 "비류”라고 번역됨)은 모든 윤리적인 행동 규범을 무시하고 날뛰는 사악한 존재들이었다(고후 6 : 15에서 ´벨리알´은 사단에 대한 칭호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다니엘이 환상 가운데 보았던, 열 개의 뿔이 달린 네 번째 짐승도, ´인자´가 왕국을 차지할 때까지 ´전쟁을 일으켜 성도들과 싸웠다´ (단 7: 7-8,13, 21-22)고 기록되어 있다. 아마도 이 네 번째 짐승은 막강한 권력으로 성도들을 탄압했던 로마 제국인 것 같다.
그러나 구약에서는 사단을 섬기는 모든 악한 존재들을 하나의 실체(實體)로 묶어서 언급하지는 않았으며, 또한 그것들을 ´적(敵) 메시야´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Ⅱ. 신약
사도 요한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자들에게 이 말을 우선적으로 사용하였다. 요일 2: 18에서 이 단어가
요일 2: 18에서 이 단어가 단수로는 그리스도를 대항하는 모든 활동들을 합체(合體)시킬 하나의 인격체를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고, 복수로는 그리스도의 사역에 반대했던 자들, 곧 성도들의 모임에서 떠나버린 자들을 가리키는데 사용되었다. 22절에서는 이단을 향하여 적그리스도라고 불렀다. 요한 당시의 이단들은(특히 영지주의자들) 예수님의 인성은 인정했으나 신성(神性)은 부인하였다. 그들은 하늘의 그리스도께서 세례 받을 때 인간 예수와 결합했다가 십자가에서 죽을 때 다시 떠났다고 가르쳤다. 22절에 나타난 적그리스도는 이러한 이단을 가리킨다.
요일 4: 1-6과 요이 1: 7에서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자들이 적그리스도라고 말하였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 곧 하나님께서 예수님이라는 성육신의 교리를 부인한다. 또한 요한은 하나님을 대항하는 권세자인 사단이 적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하여 잘못된 신앙 고백을 하도록 유혹하는 자가 적그리스도라고 말하였다. 사도 바울은 적그리스도( ´불법의 사람, 멸망의 아들´)가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살후2:3).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배교(背敎)에 대한 교훈을 가르치면서, 적그리스도가 주의 재림 이전에 큰 이적을 행하며 신자들을 유혹할 때 그 유혹에 넘어가지 말라고 경고하였다.
적그리스도가 사단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적그리스도는 사단의 조정을 받는 신앙의 대적자이다. ´불법의 사람´은 자기를 추종하는 모든 자들이 그의 사악하고 불경한 사상을 따르도록 유혹한다. 마치 그리스도께서 모든 성도들과 연합을 이루듯이, 적그리스도도 모든 사악한 것들과 일체를 이룬다. 역사 속에는 기독교 신앙을 반대하거나 왜곡시켰던 적그리스도와 같은 인물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불법자들은 말세에 나타나게 될 적그리스도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성경은 역사 속에 나타난 특정한 인물을 지적하여 적그리스도라고 하지 않았다. 따라서 네로, 나폴레옹 3세, 히틀러 등을 가리켜 적그리스도의 실체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적그리스도에 대해서 완벽한 해답을 바랄 수는 없다. 적그리스도에 대한 오늘날의 해석은, 적그리스도가 모든 악을 형상화한 총괄적인 실체라는 정도에서 만족하고 있다.
출처: <GODpia성경서전: 아가페출판사>.
데살로니가후서에는 적그리스도 단어가 아니라 적그리스도의 개념이 나오는 것이군요.
살후2:3-4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
<호크마 주석>
=====2:3
미혹하지 말라 - 바울은 경고의 범위를 확장시켜서 어떤 종류의 계교(計巧) 귀기울이지 않아야 할 뿐 아니라 단호히 거부할 것을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강권하고 있다.'미혹하지말라'원어 '메 여사파테세'(* )는 영이나 말 그리고편지 등을 통한 거짓된 가르침과 그외의 어떠한 것에라도 사로잡히는 일은 기만당하는것임을 시사한다(Morris).
배도하는 일 - 바울은 주의 날이 임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하여 아직 일어나지 않은 두 가지 현상을 인용하여 증명하고 있다. 그 중에서 먼저 바울은 배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바울의 진술은 말세의 징조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에 근거하고 있다(마 24:11, 23, 24). 여기서 '배도'(* , 아포스타시아)는정치적, 군사적인 반란을 의미하는 말로서(Bruce),
이것은 마지막 날이 이르렀을 때하나님을 대항하는 악의 세력이 출현할 것을 의미한다(딤전 4:1-3;딤후 3:1-9;4:3,4).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 - 바울은 주의 날에 이르지 아니함을 증명하기 위한또다른 한 가지 현상으로 불법의 사람이 나타나지 아니하였음을 들고있다. 역사속에서사단의 악한 일을 행한 자들이 수없이 많았기 때문에(요일 2:18) 불법의 사람이 누구인지 결정하기는 힘들다. 그러므로 이 인물을 어떤 특정한 인물과 동일시하기 보다는마지막 날에 나타날 적그리스도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Morris). 특히 '사람'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안드로포스'(* )는 나타날 적그리스도가 사단 자신이 아닌 사단의 일을 수행하는 인간 존재임을 나타내고 있다(Lenski). 또한 바울은'멸망의 아들'을 '불법의 사람'과 동의어로 언급했는데, 이는 '멸망되기로 예정한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호칭은 예수께서 가룟 유다를 지칭하실 때에도 사용하셨다(요 17:12). 이 말은 '불법의 사람'이 아무리 흉악한 계획과 성도를 괴롭히는 일을 행할지라도 종말에는 결국 멸망할 수밖에 없음을 암시한다.
나타나기 - 바울은 앞서 주의 재림을 나타낸 동사(1:7)의
헬라어 '아포칼뤼프데'(* , '나타난다')를 여기서 다시 사용하고 있는데, 이 동사에 사용된 부정 과거 시제는 미래적 의미를 나타내는 구절에 사용되어 불법의 사람이 역사의정해진 시간에 발생할 결정적인 사건과 연관되어 나타나게 될 것임을 보여준다(Constable). 이런 진술을 통해 바울은 주의 날이 이르지 않았다는 것을 데살로니가교인들에게 확신시키고 있다. 왜냐하면 주의 날의 초기 단계를 특징짓는 이 두 가지뚜렷한 현상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Thomas).
=====2:4
대적하는 자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호 안티케이메노스'(* )로 '대적자', '배반자'라는 의미를 지니며(Robertson), 종종 사단에게 적용되었다(딤전 5:14).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판타 레고메논 데온'(* )은 이방신들뿐만 아니라 참되신 하나님까지도 포함하는모든 신을 가리킨다(Bruce).
숭배함을 받는자 - 여기에 해당하는 헬라어 '세바스마'(* )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종교심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확실히 알지 못하고 섬기는 대상들을 가리킨다(행 17:23). 본문에 사용된 이러한 용어들은 단 11:36-39에 나오는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의 극에 달한 교만과 그의 신격화 행위를 연상케 한다. 하나님 성전에 앉아...하나님이 하느니라 - 적그리스도는 교만이 극에 달하여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 자신을 하나님이라 선언하기 때문에 이에 따라 많은 사람이 미혹될 것이다(마 13:14). 한편 '하나님의 성전'이 '예루살렘 성전'을 지칭하는지 '기독교 교회'를 가리키는지 분명하지 않으나 미래에 다시 세워질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Thomas, 단 9:26, 27;마 24:15;막 13:14). 그리고 바울의 이러한 진술은 일차적으로 로마 황제의 신격화를 염두에 두고 말한 것으로 추정된다(Lightfoot). 실제로 역사상 로마 황제 가이우스 갈리굴라(Caius Caligula)는 예루살렘에 자신을 숭배하게 하기 위한 동상을 건립하려고 필사적인 시도를 감행한 적이 있었다. 신약 성경 요일 2:18의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라는 사도 요한의 진술을 볼 때 당시에 적그리스도의 실제적인 언급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이러한 예언의 모든 부분이 완전히 성취되기 위해서는 적그리스도가 극명하게 나타날
미래의 시기까지 기다려야만 한다(Calvin, Thomas). 그때에 적그리스도는 자기 자신을하나님의 성전에 앉히는 이교적 행위를 통해 적그리스도임을 완전하게 드러낼 것이다(Lenski).
풍성한 설명 잘 참고합니다.
마지막 때의 적그리스도가 먼 미래의 일만이 아니라 이미 거짓 교사들의 미혹을 통해 교회 안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매우 날카롭고 경종을 울립니다.
다니엘의 예언이 예루살렘의 눈에 보이는 성전이 아니라 새 언약의 성전인 교회 공동체의 오염으로 성취되기 시작했다는 해석은 오늘날 우리에게 큰 영적 통찰을 줍니다.
역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통제 아래 이미 큰 시련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영적인 나태함에 빠지지 않도록 늘 깨어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대를 초월해 끊임없이 침투하는 불법의 비밀과 미혹 속에서, 진리를 붙잡고 거룩한 교회 공동체를 지켜내는 성전 신학의 실천적 권면이 가슴 깊이 와닿습니다.
공감합니디^^
하나님 아버지, 불법의 비밀과 미혹이 가득한 시대 속에서 저희가 영적으로 잠들지 않게 하시고, 새 언약의 성전인 교회와 성도 개개인의 심령을 진리의 말씀으로 늘 정결하게 지켜내도록 붙잡아 주소서.
모든 역사의 주권자이신 주님의 통제를 신뢰하며, 이미 시작된 영적 전쟁 속에서 날마다 긴장감과 깨어 있는 분별력을 가지고 마침내 승리하는 거룩한 주의 백성이 되게 하옵소서. 아멘.
아멘!
먼 미래의 일로만 치부했던 적그리스도의 미혹이 이미 거짓 교사들을 통해 교회 안에서 은밀히 활동하고 있다는 지적이 큰 경종을 울립니다.
다니엘의 성전 모독 예언이 눈에 보이는 건물이 아닌, 새 언약의 성전인 교회 공동체의 오염으로 시작되었다는 해석은 오늘날 서늘한 영적 통찰을 줍니다.
역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통제 아래 이미 큰 시련이 진행 중임을 기억하며, 안일한 나태함에 빠지지 않고 늘 깨어 분별해야겠습니다.
시대를 초월해 침투하는 불법의 비밀 앞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진리를 사수하며 거룩한 교회를 지켜내라는 실천적 권면이 가슴 깊이 와닿습니다. 감사한 글입니다.
아멘 🙏 🙏
역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이미 시작된 미혹과 시련 속에서 영적으로 깨어 새 언약의 성전인 교회를 진리로 정결하게 지키게 하옵소서. 아멘.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