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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호 <시문학> 신인상 심사기
현대도시인의 위기의식, 우주로 팽창하는 상상력, 자연과 인공의 화합 모색
신인들의 시가 기성의 시를 추월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는 상상의 확대와 문제의식의 제기이다. 그래서 심사위원들은 대상에 대한 그들의 새로운 인식과 깊이 있는 사유와 개성적인 언어에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양순승의 시편에서 발견되는 현대도시인의 위기의식과 존재의식의 이미지, 임경희의 시편들이 던져주는 지상에서 우주로 팽창하는 상상의 공간, 백승희의 자연과 인공의 화합을 모색하는 시의 이미지는 그들의 시가 기성을 추월할 수 있는 시적 에너지를 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새로 등장하는 세분 시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양순승의「폐차장 가는 길」은 삶과 죽음의 감각이 사실적 이미지 속에 번득인다. ‘마주 오는 차의 헤드라이트가 번쩍,/ 빛날 때/순간순간 죽음이 뇌리를 쓰쳤지’라는 구절은 시적 긴장감과 함께 현대 도시인들의 삶의 위기를 드러내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허물 벗어나기」는 매미가 나뭇가지 벗어놓은 허물이 시인자신의 삶의 허물로 전환되어 독자들에게 사유의 공간을 만들어 주고 있다. ‘자꾸만 나를 향해 빵빵하게 팽창되어 가는/저 허물’에서는 허물이 단순한 자연현상의 실재에 머물지 않고 삶과 죽음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된다. 그리고 그 사유가 자신의 존재의 문제에까지 다가가고 있는 듯하여 주목되었다.「다시 강을 건넌다」는 강변의 돌들의 여러 형태를 새로운 시선으로 조명하여 서로 기대고 끼어서 사는 삶의 본래적인 모습을 생각하게 한다. 이런 시각은 차이들이 서로 평등하게 얽혀서 사는 생태계의 한 모습의 직관이라는 관점에서 평가되었다. 대상에 대한 시인의 예사롭지 않은 시선과 문제제기의 사유가 그의 시적성취를 크게 기대하게 하였다.
임경희「시간을 싣고 달리는 말」은 제목이 던지는 시적 알레고리가 신선하게 감지되었다. 그리고 ‘우주의 중심에 끈으로 매인 양 사력으로 휘돌다가/품에 안기듯 별을 따라 천궁으로 가게 할까’라고 지상에서 우주로 팽창하는 시적 상상이 새로운 시의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어서 주목되었다.「하늘에 빛 칠하는 불그림」에서는 ‘버려진 장롱’에서 생성되는 상상의 이미지가 현실을 바탕으로 다양하게 발산되어 시의 공간을 풍성하게 하고 있다. 연과 연의 관계가 인과(因果)에서 벗어나서 독립적인 이미지들의 결합으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상수리나무 아래」에서는 대상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상상이 빚어내는 서술이 아름답게 감지된다. ‘꿈 속에 촉수를 벼리며 가슴엔 심지 샛별 같이 돋우고/ 미지근한 체온을 데우는 상수리는 그 열로 겨울을 난다’는 구절에서는 상수리와 시인의 마음이 하나로 통하는 존재의 일의성을 인식하게 한다. 그의 직관적인 싱싱한 감성과 상상력은 앞으로 더 새롭고 깊은 시세계의 형성을 기대하게 하였다.
백승희의「백색 등을 켜면」은 병원 수술실의 백색 등 불빛의 차가운 이미지와 ‘해체했던 시간들은 봉합되지만/꿰멜 수 없는 살점들은 빛을 잃고 허공에 떠다니는 통곡으로 남겨진다’는 삶과 죽음의 현장에 대한 냉정한 서술이 인상적인 이미지로 살아나고 있는 것이 주목되었다.「중립에 멈추다 보면」에서는 속도의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도시인들의 모습이 생동하는 시의 이미지로 포착되어 있다. 그리고 ‘병목을 빠져나오면/덜덜거리는 속도에서 벗어난 시간들이/치열한 가속 폐달을 밟게지’등의 이미지가 가상의 공간에서 벗어난 현실인식이라는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되었다.「침목(枕木)」은 시인이 철도에 누워 있는 침목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서사가 허구의 이미지이지만 독자들이 자연과 인공이 화합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있다. 그것은 ‘몸에 절은 기름기’ 로 인해 숲에서 추방되는 침목의 운명이 현대인과 자연의 관계로 비유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독특한 사유와 객관적인 이미지가 그의 시세계를 더 심화 확대시킬 것으로 예상되었다.
아깝게 선외로 밀린 시편들 중 강동완의 시편들은 산문에 가까운 서술 언어가 지적되었다. 언어의 경제성을 살려서 재도전하기 바란다.
2017년 1월 6일
심사위원: 김규화, 신규호, 심상운(글)
신인 우수 작품상 (시)
양 순 승
폐차장 가는 길
고삐에 단단히 묶인 소나타가 마지막 걸음을 위해
길 위에 둥글게 발을 내려놓는다
가능한한 길바닥과 더 밀착되어야 한다는 듯
마모된 걸음이 긴장한다
낡은 몸 뒤쪽으로 그림자 힘없이 따라 붙는다
녹색 신호등은 언제나 초록 수액이었지
직진의 주행거리가 마치 생의 승리인 양
의기양양 했었지
그러나 평생 야성을 잠재우고 길에 순종했으므로
수없는 고갯길을 넘을 수 있었지
마주 오는 차의 헤드라이트가 번쩍,
빛날 때
순간순간 죽음이 뇌리를 스쳤지
내가 어두울 때 상대는 빛난다는 것
아니 상대가 빛날 때 내가 어두움을 인식한다는 것
생이란 언제나 상대적이지
빨간 신호등에 잡혀
생이 지체된다는 것은 또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좌회전을 가리키는 화살표가 허공에 꽂힐 때
뒤 따라오던 그림자가 잠시 고개를 숙였다 편다
죽음으로 가는 속도는 생명의 속도보다 빠르다
폐차장에 마중 나온 벚꽃이
걸음을 멈춘 차 위로
산화하듯 꽃잎을 뿌린다
마모된 발등에 지린 오줌에도
환하게 4월이 내려 앉는다
허물 벗어나기
미루나무에 달라붙어
어느새 나무와 한 몸이 되어 있는 허물
매미는 안 보이고
소리 안 들려도
있는 듯 품고 있는 허물
몰래 입어봤던 시루스원피스를 벗으면서
과욕으로 살찐 몸 들키지 않게
나는 슬쩍 허물을 빠져나왔는데
빠져나온 내 몸이 갑자기 두려워지고
또 다른 가지에 앉는 것도 두려워지고
이미 풍경이 된 허물을
그냥 풍경으로 두는 것도 두려워지고
그래서 허물을 빠져나온 나는
다시 허물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남의 집 방충망도 두드려보고
가끔 내 무게에 못 이겨 추락도 하였다
나를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는 허물은
나대신 악착 같이 가지를 물고
서서히 풍경이 되어 가는데
나는 다른 가지에서
풍경이 된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데
계절이 가도록 줄어들지 않고
자꾸만 나를 향해 빵빵하게 팽창되어가는
저 허물
다시 강을 건넌다
가출처럼 떠나온 여행길
진천 농다리*를 만났다
지네가 강물을 헤엄치는 모양의 다리는
돌들이 만든 것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유연하게 강을 가로 지르고 있었다
똘똘 뭉쳐진 돌들
하나 같이 모양이 제각각이다
그럼에도 기역자 모양 돌은 네모 돌을 품고
세모는 마름모에 기대고 있다
둥글넓적한 것은 더 작고 모난 것들을 옆구리에 끼우고
길쭉하니 반듯한 돌은 제 등을 선뜻 내어 놓았다
삐죽거리는 돌멩이 하나 발끝에 차인다
네모에도 세모에도 곁을 내주지 못하는 독선
제 성질 못 이겨 튕겨져 나왔나 보다
뾰로통 돌아앉은 돌멩이 주워 강물에 씻는다
모난 곳 살살 토닥여 제자리에 끼운다
나도,
다리 위에 서서
잠시,
머뭇거리던 인생 다독여
유연하게 다시
강을 건넌다
*진천 백곡천에 있는 다리로 제각각인 돌들을 다듬지 않고 정교하게 쌓아 만든 지네 모양의 돌다리.
신인 우수 작품상 (시)
임 경 희
시간을 싣고 달리는 말
시간을 싣고 달리는 말 붙잡으려면
휘어들며 질주하는 그 옆구리에
홍화처럼 피어나 따라붙는
붉은 노을 흠뻑 찍어다가 주술로
하얀 갈기 잔결마다 한 가닥씩 바르고
뜨거운 핏줄 펄떡이는 그림을 그려서
말이 지나갈 길섶마다 내걸어
특급 현상수배 말이 되게 할까
고개 숙여 목 축이는 잔등 위로
은빛 왕관처럼 흰 김 연기 오르고
아침볕이 찹찹하게 내려와 덮이면
밤새 바다 위 달려온 백마가
엉덩이엔 새치름한 달 올려 앉히고
해안가 빙그르르 달음박질치게 할까
제 몸으론 따라낼 수 없는 광년의 거리
목화솜처럼 뭉게뭉게 부풀어 오르는 우주에서
헤벌려진 입술로 투루루 투레질하며
우주의 중심에 끈으로 매인 양 사력으로 휘돌다가
품에 안기듯 별을 따라 천궁으로 가게 할까
그 등에 오르면 나도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늘에 빛 칠하는 불그림
버려진 장롱이 비에 젖고 있다
한때는 보송보송한 속살도 있었다
소중한 것들을 당연하게 품었다
잠결에 부끄러움의 빗장 떨어져 버렸다
소음과 먼지가 맘대로 드나들었다
빗물에 내어 불리면 씻어질까 싶었다
살이 된 묵은 때는 들에서 비를 맞는다
톡톡 우두두둑 툭탁 우당탕탕 탕탕탕
버려진 장롱에서 살 오른 슬픔이 나왔다
꾸무럭거리는 검고 털 난 아픔도 나왔다
말라 각질처럼 바수어진 희망도 나왔다
반들반들 윤이 나는 긴 어둠도 나왔다
꼬깃꼬깃 구겨 박힌 무지개도 나왔다
땀과 피 흘리면 죽었던 우리가 살까
촛불이 파도 되면 언 가슴이 녹을까
얼마나 많은 목소리 외쳐야 거기 들릴까
뜨거운 눈물 강이 되면 어둠 씻어질까
쓰나미처럼 내달리는 꿈의 너울이 있다
바람 몰아쳐도 꺼지지 않는 촛불이 있다
하늘에 빛 칠하는 커다란 불그림이 있다
상수리나무 아래서
가난한 손아귀들이 힘겹게 움켜쥔 호박돌로
상수리나무 허리춤을 때려 열매 털어낸 흔적
화들랑거리는 가지를 놓치고 소리칠 틈도 없이
와스스 떨어졌을 빡빡머리 상수리 열매들은
껍질 벗기고 물에 실컷 불어 맷돌에 갈린 뒤
묵이나 죽으로 또는 붉은 국수나 밥으로 익어
오랜 굶주림 끝에 헛김만 남은 백성을 살려냈지
옛날 얘기가 그리워지는 오늘의 깊은 허기
쓸쓸하고 허전하고 으스스한 한기를 덜어내고파
내려앉는 볕뉘를 제 몸에 덮으며 윤기를 바르는 아침
물기 말라버린 나뭇가지의 가느단 등줄기를
투사의 패기로 우죽우죽 기어오르는 벌레들
절도 있게 구부리고 펴는 무수한 몸짓의 박음질
양말처럼 벗어 던진 셀 수 없는 생명의 껍데기들
낙엽을 이리저리 굴리며 어느새 대지를 삼켜버린 겨울
꿈속에 촉수를 벼리며 가슴엔 심지 샛별 같이 돋우고
미지근한 체온을 데우는 상수리는 그 열로 겨울을 난다
울퉁불퉁한 상처를 다독여 너울대며 위로의 옷을 기우는 동안
진물은 꼬들꼬들 솔고 아픔은 뭉근하게 잠든다
옹송그린 채 지워짐을 기다리는 너와 나, 우리
푸서리에 떨어진 상수리와 도토리가 맨가슴 비비며 뒹굴다
신인 우수 작품상 (시)
백 승 희
백색 등을 켜면
빛을 포기하지 않은 날개들이
수술 방 앞에서 분주하게 날아다닌다
마음 둘 곳을 찾느라
모니터 앞으로 몰려든 나방들의 날개에 나를 얹는다
수술이 임박해지자 불빛을 읽어간다
메스가 수술대 위를 건너뛰면서
가닥가닥의 신경줄들이 사인을 보낸다
수술준비중, 수술중, 사망
절망도 통곡도 부질없는 일
불빛에 다가가 날개를 부딪치고 떨어지는 은빛 가루들
그 방엔
나방들이 비비고 떠난 살가루가
주검으로 실려 나가고
불빛을 읽어내지 못한 숫자들이 늘어간다
백색 등이 켜지고, 해체했던 시간들은 봉합되지만
꿰맬 수 없는 살점들은 빛을 잃고 허공에 떠다니는 통곡으로 남겨진다
문은 침묵 속으로 격리되고
초조해진 날개들이
불빛으로 몰려든다
아직은 수술 준비 중
나의 심장이 깜빡인다.
중립에 멈추다 보면
그와 함께 비껴간 길목마다 목이 멘다
자동차의 변속기어, 가속페달 밟기를 반복하는 길
번번이 출구엔 욕망이 고개를 쳐든다
서로의 비상등을 깜빡이며 속도를 주저앉힌다
안양천변을 따라 갈증으로 길은 주름지고
영등포공구상가를 배회하던 쇳가루들마저
갈색바람으로 체증을 부추긴다
수인囚人을 태운 버스가
좌회전으로 막 도로를 빠져나갈 때
침묵은 목을 빼고 차선을 끼어든다
말이 나오지 않는 차안으로 경적이 쳐들어오고
매연이 도로를 막는다
샛길을 허락하지 않는 성산대로에서
중립에 기어를 놓고 속도를 버린다
틈이 속도의 행간을 읽는다
경직된 신경 벨트가 느슨해지자
늘 안전을 매주던 손길의 행방은 길 밖으로 밀려있다
그가 비껴간 길 위
커피 한 잔 나눌 수 없었던 시간의 정체 속에서
그를 만난다
병목을 빠져나오면
덜덜거리는 속도에서 벗어난 시간들이
치열한 가속 페달을 밟겠지
유리창 너머
빗줄기보다 빠르게 스쳐가는 인연들
침목(枕木)
오랫동안 철길에 누워 있었다. 가끔 눈을 돌리면 민들레나 씀바귀 꽃이 먼지를 쓴 채 손을 흔들었다. 속도가 튕겨내는 돌멩이에 이마를 부딪치기도 했다. 장맛비에 푹 젖어 한쪽 귀를 잃어버리자 소리가 속력을 내도 둔감해졌다. 팔월 햇볕에 바스라지고 쩍쩍 갈라졌다. 이제 할 일을 마치고 순례의 길로 나선다. 철길에서 몸을 일으켜 세우고 숲에 들어와 푸르게 어우러지던 날, 몸에 절은 기름기 뱉어내며 산의 등뼈가 되어 자근자근 밟아주는 발길에도 흐뭇했다. 어디선가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개미나 벌레들이 갉아대는 대로 내맡기며 때가 되면 흙이 되고 싶었는데, 숲에서도 퇴출이라는 말을 뱉어낸다. 하혈을 하며 기름기를 쏟아내는 폐궁의 몸. 산을 잉태할 수 없는 폐목들이 버려진 공터에서 길들은 숲을 내주지 않는다. 침목은 침묵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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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양순승, 임경희, 백승희 세 분 시인님
좋은 작품으로 <시문학> 신인우수작품상에 당선되심을 축하드립니다.
정진을 거듭하시어 훌륭한 시인으로 성장하시길 바랍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