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암나무는 자작 나무과 ‘낙엽이 지는 넓은 잎의 키가 작은 나무’다. 개암은 오늘날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과실이지만, 역사책은 물론 옛 선비들의 문집이나 시가에 널리 등장한다. 열매는 달콤하고 고소하므로 간식거리로 그만이며 흉년에는 밤, 도토리와 함께 대용식으로 이용되었다. 개암[榛]이란 밤보다 조금 못하다는 뜻으로 ‘개밤’이라고 불리다가 ‘개암’이 되었다고 한다. 다른 이름으로 깨금, 처낭이다.
개암나무와 관련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전래동화에 나오는 도깨비방망이 이야기는 여러 갈래가 있다. 그 가운데 1980년 경남 진양군 금곡면 검암리 운문마을에서 채록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홀어머니 밑에서 동생과 함께 어렵게 사는 한 소년이 있었다. 어느 날, 소년은 산에서 나무를 하다가 잘 익은 개암을 발견하고 정신없이 따 모으느라 날이 저무는 줄도 몰랐다. 당황한 소년은 허겁지겁 산에서 내려오다가 전에 보지 못한 허름한 기와집 하나를 발견했다. 소년은 그곳에서 밤을 새우기로 하고 마루 밑에 들어가 웅크리고는 잠을 청하려 했다. 그때 갑자기 도깨비들이 몰려와 방망이를 두드리면서 “밥 나와라” 하면 밥, “떡 나와라!” 하면 떡이 수북이 쌓였다. 그 모습에 배가 고팠던 소년이 개암을 깨물자 “딱!” 하고 제법 큰 소리가 났다. 혼비백산한 도깨비들은 음식과 방망이를 그대로 놔둔 채 모두 달아나 버렸다. 소년은 도깨비방망이를 들고 내려와 마을에서 제일 큰 부자가 되었다. 소문이 퍼지자 이웃의 한 욕심쟁이 영감이 소년과 꼭 같이 개암을 따서 주머니에 넣고 도깨비들이 몰려드는 기와집에 미리 숨어들어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들은 그대로 도깨비들이 몰려와 웅성거렸다. 이때라고 생각한 영감은 일부러 큰 소리가 나도록 개암을 있는 힘껏 깨물었다. 마침 “딱!” 하고 엄청 큰 소리가 났다. 그러나 방망이를 얻기는커녕 도깨비들은 영감을 붙잡아 방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방망이 도둑으로 몰아 흠씬 두들겨 팼다.」
전래동화의 내용처럼 개암은 누구나 따먹을 수 있는 우리 산야의 야생 견과(堅果)였다. 딱딱한 씨껍질로 둘러싸인 열매 안에는 전분덩어리 알갱이가 들어 있다. 비록 도토리나 밤은 참나무과이고 개암나무는 자작나무과로 거리가 있지만, 씨앗의 모양새나 쓰임은 비슷하다.
출처 : 이영일 생태과학연구가 / 우리문화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