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할아버지 후손 모임인
소영회 5月월례회에 여행하다/남계서원.청계서원
언 제 ; 2017년 5월 13일
갔는곳 ; 함양 남계서원,청계서원
호수할아버지 후손 모임인 소영회 5月월레회에
여행은 연중행사로 잡혀있어서 금년에는 문화유적지를
임원진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 가까운 지역을 선택하여 의미있고
뜻깊은 곳으로 탐방하며 유쾌하고 즐거운 하루의 시간을 장식하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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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을 안전하게 태울 프린스항공투어관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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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무가 진행을 이야기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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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버스 실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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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초대받은 교촌어르신 인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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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전 삼휴정화수회장님도 인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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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휴게소에서 아침식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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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맛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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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 먹는 사람 앉아서 먹는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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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인계선생님 덕담도 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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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계서원 입간판을~~
===남계서원===
남계서원은 조선 초기 성리학자이자 동방 5현(정여창, 김굉필, 조광조, 이언적, 이황)
중 한명인 일두 정여창 선생의 학문과 사상을 추모하기 위해 1552년 개암 강익(姜翼 )을
비롯 지방 유생들이 건립했다.
소수서원이 건립되고 9년 뒤 1552년에 개암 강익과 함양 유림들의 주도로 이뤄졌는데
향내의 유생들이 쌀과 곡식을 부조하면서 건립을 위한 여론을 환기시켰다. 이어 당시
함양군수였던 서구연이 강당 건립을 위한 물자와 인력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서 군수의
부친상으로 잠시 지원이 끊기면서 공사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공사를 재개한지 7년 만인
1559년 완성됐다. 1561년 모든 시설들을 갖추고 일두 정여창의 위폐를 봉인하면서 39세의
나이였던 강익이 초대원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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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공 일두 정여창선생 추모비석도~~
남계서원은 소수서원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서원이다.
1566년 명종 임금에게 ‘남계’라는 사액을 받고 공인과 경제적 지원을 얻었다.
출입문인 풍영루와 강당, 동재, 서재, 경판고, 사당 등으로 구성돼 있고 급한
경사지에 사당을 제일 높은 곳에 두고 출입문까지 일직선상을 배치했는데 이는
전학후묘(서원·향교의 배치법으로 앞쪽에 학업용 건물을 뒤쪽에 묘당을 배치한 것)의
배치형식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이다. 이후 각 지역에 건립된 서원은 대부분 이런 배치
형식을 따르게 됐다. 남계서원은 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돼 시련을 맞기도 했으나 1612년
현재 자리에 다시 세워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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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살문과 남계서원 전체를~~
사적 제499호인 남계서원은 현재 함양군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도록
추진하는 등 지역을대표하는 전통교육기관으로 정착하게 한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다.
함양군 문화관광과 관계자는 “함양군 남계서원을 유네스코 문화유산을 등재하기 위해
이미 신청서를 제출하고 계속해서 추진 중에 있다”며 “올해 혹은 내년에 실사를 받은 뒤
결과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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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생이 공부했다는 풍영루가~~
◇이곳은 정여창 사상의 ‘중심’
먼저 서원입구의 풍영루(風永樓)2층 누마루에 오르면 남계서원 일곽을 조망할 수 있다.
풍영루에는 유교사상을 알게 하는 내용이 단청으로 표현돼 있다.
강당 앞마당에 서있는 묘정비가 우뚝 서있다. 서원이 건립된지 200년이 지난 뒤 조선 후기
문관 김종후가 송덕비가 없음을 안타까워 하다 1779년 비를 세우고 글을 새기면서 만들어졌다.
남계서원에서 성리학을 논했던 강학공간은 명성당(明誠堂)이라고 불렀다. 이는 중용의
‘참된 것을 밝히는 것을 가르침이라 하니, 참되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참되게 된다’라는
뜻이다. 강학영역을 구성하는 중심 건물로 1559년에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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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강당 명성당도~~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구성돼 있고 중앙 2칸은 대청마루이고
양쪽 각 1칸은 온돌방이다. 오른쪽 방은 거경(居敬)이라하면 ‘경에서 거해서
이를 기이 연구한다’는 뜻이다. 왼쪽방은 집의(集義)라고 하는데 ‘호연지기는
도와 짝이 되는 의를 축적해야 하는 생기는 것이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강당 앞
좌우에는 동재인 양정재(養正齋)와 서재인 보인재(輔仁齋)가 서 있다. 동재와 서재는
각각 2칸 규모의 건물인데, 각 1칸은 온돌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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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 현판과 명성당 현판도~~
강학공간 뒤를 돌아가면 경판고(經板庫)가 세워져 있다.
경판고는 장판각이라고도 하는데 서원에서 보유하는 책이나 판각 등을
보관하는 곳이다. 유생들을 교육한 어정오경(御定五經,)등 서적이 이곳에
있었지만 현재는 박물관으로 옮겨져 보관 중이다. 정면 2칸, 측면 1칸으로 건물을
지면에 붙이지 않고 4면을 모두 터놓아 공기의 유통이 자유롭게 하여 판각을 보관하기
쉽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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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편 사당도~~
외부벽체는 나무로 구성한 판벽으로 되어 있고 내부 역시 가운데 판벽이 있다.
정여창선생의 18대 종손인 정명균씨는 “남계서원이 위치한 함양 땅은 예로부터
‘좌안동 우함양’이라 할 정도로 훌륭한 인물을 배출해내어 학문과 문벌에서 손꼽히던
고을이다”며 “특히 남계서원은 정여창 선생을 모신 전국 9개의 서원 중 중심이 되는 곳”
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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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전 문외위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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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전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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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공 일두 정여창선생 위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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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 영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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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정형님 대표 봉향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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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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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회원 재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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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공 일두 정여창선생 유허비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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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 연못 두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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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서원 전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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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서원 입간판을~~
===청계서원===
이 서원은 1907년 청계정사가 있던 터에 세워진 것으로
탁영 김일손의 위패를 모시고 춘추로 향사를 지내고 있는 곳이랍니다.
김일손은 성종 때 사림파를 대표하는 학자로서 청요직을 두루 지냈으나 연산군 때 무오사화에
희생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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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살문과 전체 서원을~~
가 이곳 청계정사에서 한 동안 공부를 한 적이 있어 유림에서 그 터에 서원을 세운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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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 설명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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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 실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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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 본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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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 현판과 애락당 본당 현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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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증명하는 오래된 노송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