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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역사는 피의 숙청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 김일성의 경우 6ㆍ25 전쟁 이후 남로당계인 박헌영 제거를 시작으로 1950년대 후반에는 연안파와 소련파를, 1960년대 후반에는 갑산파를 차례로 숙청했다.
2) 김정일의 경우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3년 뒤인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소위'심화조 사건'으로 알려진 숙청 작업을 통해 당 간부와 가족 등 2만 5,000여명을 제거했다. 김정일은 이후 심화조에 대한 주민들의 여론이 좋지 않자 이 사건에 관여했던 6,000여명을 다시 숙청했다.
김정일은 90년대 수해 등 자연재해로 식량 생산량이 급격히 줄어 200만~300만 명이 굶어죽는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해야 했던 책임을 97년 말 서관희에게 물은 것이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로 이어지는 이들 지도자의 '공포정치'는 정치적 성격이나 스타일에서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다.
김정은은 집권 3년 6개월간 북한 체제의 근간인 군부와 노동당의 고위 핵심인사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했다. 수시로 휘두르는 숙청의 칼날은 현재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핵심인사들 역시 언제 어떻게 사라질지 모른다.
김정은의 공포정치는 지도자로서의 용인술과 리더십을 갖출 수 있는 과정을 경험하지도, 교육도 받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더욱이 20대의 어린 나이에 최고 권좌에 앉다보니 무엇이든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다는 절대 권력자의 절대 권력만을 절대시하면서 숙청을 휘두르고 있다는 평가다. 북한 권력 상층부의 많은 간부들이 공포정치에 떨고 있다고 전한다.
할아버지 김일성은 스탈린은 물론 중국을 공산화시킨 마오쩌둥의 지원까지 등에 업고 1950년 6월25일,소련제 탱크를 앞세워 남침을 감행함으로써 전 국토를 초토화시키고 약 300만명의 사상자와 전쟁고아를 만들어 내는가 하면 1천만 이산가족이라는 민족의 대참극을 초래했다. 그 이후의 도발은
1) 김신조 청와대 습격사건 (1968년 1월 21일)
북한의 특수부대인 124군부대원 김신조 외 30명의 무장공비를 남파
청운동 세검정고개 창의문을 통과하려다 수류탄을 던지고 기관단총을 무차별 난사하였으며, 그곳을 지나가던 시내버스에도 수류탄을 던저 무고한 희생자를 내는 만행을 저지름
경기도 일원에 걸쳐 군경 합동 수색전을 전개해서 1월 31일 까지 28명을 사살했고, 나머지 2명은 도주한 것으로 간주되어 작전이 종료됨. 15연대장 대령 이익수, 종로경찰서장 총경 최규식, 민간인 5명 사망
김신조 부대가 소지한 습격용 무기
기관단총(pps) 31정 (1인당 1정씩)
실탄 9,300발 (1인당 300발씩)
TT권총 31정 (전원휴대)
대전차용 수류탄 252발 (1인당 8발씩)
방어용 수류탄 252발 (1인당 8발씩)
단도 31정 (전원휴대)
잡혀간 김신조는 후에 귀순하여 서울침례회신학교에서 침례교 신학을 전공하고 지금은 목사로 활동중이다.
2) 육영수 여사 피살사건 (1974.8.15.)
8.15 광복절 장충체육관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연설이 ‘통일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저야 하며’ 라는 대목에 이르고 있을 때 북한의 사주를 받은 제일교포 문세광이 총을 들고 저격하려함
첫 번째 탄은 문세광의 허벅지에 잘못 쏘았으며, 2번째 탄은 방탄연설대 상단부에 총구멍을 내었고 3번째 탄 까지 불발
박정희는 급히 단상 밑으로 몸을 낮추었고 표적을 잃은 문세광은 고 육영수 여사를 조준하고 발사. 총탄은 육영수 여사의 오른쪽 머리를 관통했으며 육영수 여사는 급히 서울대학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당일 저녁 7시 서거
3)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 (1976.8.18.)
미국군 장교 2명, 사병 4명, 한국군 장교 1명, 사병2명 등 11명이 남쪽 국제 연합국측 미루나무 가지치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북한군이 트럭을 타고 몰려와 도끼로 장교 2명을 죽이고 9명을 중경상을 입혔다.
북한군 초소 4개를 파괴함. 북한은 자기초소가 파괴된 것에 대해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하였다.
한국, 미국의 강경한 자세에 깜짝놀란 김일성은 유감 성명을 전달, 사건이 마무리 되었다.
4) 아웅산 묘소 테러사건 (1983.10.9.)
북한이 1983.10.9 당시 버마(현 미얀마)를 방문중이던 전두환대통령 및 수행원들을 대상으로 자행한 테러 사건.1983년 10월 9일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서남아대양주 6개국 공식 순방 첫 방문국인 버마(현 미얀마)의 아웅산 묘소에서 일어난 강력한 폭발 사건으로 대통령의 공식비공식 수행원 17명이 사망하고 1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후 버마 당국은 이 사건이 북한 독재자 김정일의 친필지령을 받은 북한군 정찰국 특공대 소속 진모(某) 소좌, 강민철대위, 신기철대위 등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수사결과를 밝혔다.
5) KAL기 폭파 사건 (1987.11.29.)
1987년 11월 29일 바그다드발 서울착 KAL858편 보잉 707기가 미얀마 랑군 상공에서 공중폭발하여 탑승객 115명 전원 사망하였다.
●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1968년 10월 30일부터 11월 1일까지 3일에 걸쳐 울진·삼척 지구 연안을 통하여 북한측 무장공비 120명이 침투하였다.
● 휴전선 남침용 땅굴 발견 사건(1974. 11. 5. 등 1990년까지 총 4차례)
● 최은희·신상옥 납치사건(1978. 1. 14., 1978. 7. 19. 순차적으로 납치)
● 김포국제공항 폭탄 테러(1986 서울 아시안 게임의 개막을 불과 1주일 앞둔 1986년 9월 14일 오후 3시 12분경 김포국제공항에서 일어난 폭탄 테러 사건
●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1987. 11. 29.) 1987년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출발한 대한항공 여객기가 인도양 상공에서 실종된 사건.
●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1996. 9. 18.)은 북한 인민무력부 정찰국소속 상어급 잠수함이 동해안 일대에 침투하여 정찰 공작 활동을 벌이고 복귀를 시도 하던 중, 잠수함이 좌초되어 해상 복귀가 불가능해지자 육상로를 통한 복귀를 위해 해안에 상륙하면서 일어난 사건.
● 제1연평해전(1999년 6월 15일 오전 9시경 서해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북한 해적군의 도발로 벌어진 남북 함정간의 해전으로 당시 한국 해군은 7명이 부상, 고속정이 경미한 피해를 입었다.
● 2002년 6월 29일 서해 연평도 부근 NLL(북방한계선) 북서쪽 방향 일대에서 조선인민군 해군 서해함대 8전대 7편대 소속 경비정 등산곶 684호정의 85mm 전차포 선제 포격 도발로 일어난 중·소규모 교전.
● 대청해전 발생(2009년 11월 10일에 한반도 서해 북방한계선(NLL) 이남 대청도 인근 해상에서 대한민국 해군과 북한 해군 고속정 간에 벌어진 3번째 서해교전. 북한 경비정이 북방한계선을 침범한 것을 우리 해군이 수 차례 경고통신을 보냈으나 이를 무시하고 경고 사격을 하겠다는 경고마저 수차례 무시하자 교전수칙에 따라 경고 사격을 한 아군 고속정을 향해, 오전 10시 27분에 조준사격을 가하며 들어와 교전이 벌어졌다.
● 천안함 피격사건(2010년 3월 26일오후 9시 30분경, 대한민국 백령도 남서쪽 약 1km 지점에서 포항급 초계함인 PCC-772 천안함이 훈련 도중 북한 해군의 어뢰에 의한 폭발로 인해 선체가 두동강나며 침몰했다. 인근 지역에서 작전 중이던 포항급 초계함인 PCC-778 속초함과 백령도 등지의 참수리급 고속정, 해경 함정에 의해 58명이 현장에서 구조되었으며 46명이 사망하였다
● 연평도 포격 사태(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 34분부터 한반도의 서해 5도 중 하나인 대한민국령 연평도를 북한군이 선전포고 없이 포격한 사건.
● 북한 무인기 추락사건 2014년 3월 파주시 조리읍 봉일천에서 무인기가 한 대 추락한 채 발견되었으며, 이후 31일 백령도에서도 무인기가 한 대 추가로 발견되었다.
● DMZ 목함지뢰 매설 사건(2015년 8월 4일 대한민국 육군 제1보병사단 예하 수색대대 부사관 2명이 DMZ의 아군 추진철책 통로에서 북한군의 목함지뢰를 밟아 중상을 입은 사건.
정전 이후 지금까지 북한의 도발 횟수가 무려 3000회를 넘는다.
북한의 대남첩보원 발각횟수 : 5,500여 회 (1953년~1980년) (1.7일당 1회꼴)
한국군·경찰에게 잡히거나 사살된 북한측 공작원 및 무장공비 : 2,973명 (1953년~1980년) (3.3일에 1명꼴)
풍세면 무장간첩 사건 (1954. 8. 24)
김정제 간첩 사건 (1957. 8)
박상혁 간첩 사건 (1957. 9)
창랑호 납북 사건 (1958. 2. 16)
1960년대 후반은 무장공비에 의한 침투와 교전이 잦았던 시기이다. 7.4남북 공동성명 직전 김일성이 이후락에게 1.21사건에 관해 이야기하며 언급한 적이 있다.
진주 덕의마을 무장공비 침투사건 (1966. 5. 17)
해군 당포함 격침 사건 (1967. 1. 19)
중부전선 교전 (1967. 4. 12)
격렬비열도 간첩선 격침 사건 (1967. 4. 17)
화천군 비무장지대 침투사건 (1967. 04. 12)[5]
서부전선 미군막사 폭파사건 (1967. 4. 22)
강릉 고단지구 무장공비 침투사건 (1967. 5. 21)
연평도 근해 어선포격사건 (1967. 5. 27)
대성동 미군트럭 기습사건 (1967. 8. 7)
서부전선 군용트럭 기습사건 (1967. 8. 10)
판문점 미군막사 기습사건 (1967. 8. 28)
경원선 초성리역 폭탄테러사건(1967. 9. 5)
경의선 운정역 폭탄테러사건(1967. 9. 13)
1.21사태 (1968. 1. 21)
푸에블로호 피랍사건 (1968. 1. 23)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1968. 11. 2)
주문진 무장간첩사건 (1969. 3. 16)
EC-121 격추 사건 (1969. 4. 15)
1차 흑산도 간첩선 격침 사건 (1969. 6. 9)
2차 흑산도 간첩선 격침 사건 (1969. 10. 23)
대한항공 YS-11기 납북 사건 (1969. 12. 11)
해군 방송정 I-2 납북 사건(1970.6.5)
현충문 폭파 미수 사건 (1970. 6. 22)
대한항공 F-27기 납북 미수 사건 (1971. 1. 23)
소흑산도 근해 간첩선 격침사건 (1971. 6. 1)
철원군 비무장지대 총격사건 (1973 .03. 07)[6]
추자도 무장공비 침투사건 (1974. 5. 20)
해경 863경비함 격침 사건 (1974. 6. 28)
박정희 저격 미수 사건 (1974. 8. 15)
휴전선 남침용 땅굴 발견 사건 (1974. 11. 5 등 1990년까지 총 4차례)
헨더슨 소령 사건 (1975. 6. 30)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1976. 8. 18)
광천지구 무장간첩 침투사건 (1978. 11. 4)
최은희 신상옥 납치사건 (1978. 1. 14, 1978. 7. 19 순차적으로 납치)
필승교 무장공비 침투사건 (1981. 6. 29.)
SR-71 정찰기 피격 사건 (1981. 8. 26.)
저진해안 무장공비 침투사건 (1982. 5. 15.)
임월교 무장공비 침투사건 (1983. 6. 19.)
월성해안 무장공비 침투사건 (1983. 8. 4.)
독도 근해 간첩선 격침 사건 (1983. 8. 13.)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1983. 10. 9)
다대포 침투 무장공비 매복 생포 작전 (1983. 12. 3.)
대구 미국문화원 폭파 사건(폭탄 투척 사건) (1983. 9. 22.) 체포된 공비 진충남과 이상규의 증언에 따른 발표.
청사포 간첩선 격침 사건 (1985. 10. 19.)
김포국제공항 폭탄 테러 (1986. 9. 14.)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 (1987. 11. 29)
은하계곡 무장공비 침투사건 (1992. 5. 22.)[7]
임진강 무장공비 침투사건 (1995. 10. 17.)
부여 간첩 사건 (1995. 10. 24.)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1996. 9. 18)
철원 GP교전 (1997. 7. 16.)[8]
최정남 강연정 부부간첩사건 (1997. 10)
속초 앞바다 무장공비 침투 기도사건 (1998. 6. 22)
동해 무장공비 사체 발견사건 (1998. 7. 12.)
강화도해안 간첩선 침투 기도사건 (1998. 11. 19.)
여수해안 간첩선 격침 사건 (1998. 12. 17.)
제1연평해전 (1999. 6. 15)
2001.9.19∼20 북한군 철원군 DMZ서 MDL 월경(아군 경고사격)
2001.11.27 북한군 파주군 장파리 DMZ서 아군 초소에 기관총 2∼3발 발사
2002.6.29 북 경비정 NLL침범, 제2연평해전 발생
2003.1.10 북 핵확산방지조약(NPT) 탈퇴
2003.2.20 북 미그-29기 1대 연평도 NLL 13㎞ 남하(아군 전투기 대응출격)
2003.7.17 북한군, 경기 연천 DMZ서 14.5㎜ 기관총 4발 발사(아군 경고사격)
2003.10.30 북 경비정 NLL 월선(아군 경고사격)
2004.7.14 북 경비정 NLL 월선(아군 함포사격)
2004.10.10 북 잠수함 동해침투 첩보(아군 폭뢰 투하)
2004.10.26 연천군 GOP 철책선 2곳 절단
2004.11.1 북 경비정 3척, 서해 소청도 동방 6.5 마일 및 연평도 서방 25마일 해상 NLL 월선, 해군 경고사격
2005.2.10 북, 핵무기 보유 선언
2005.5.11 북 영변 5MW 원자로에서 8000개의 폐연료봉 인출 작업 완료 발표
2006.7.5 북, 장거리 미사일 대포동 2호를 포함한 7기 미사일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 발사장서 시험 발사 실시.
2006.10.9 북, 제1차 핵실험 강행
2008.7.11 박왕자 씨 피살사건
2009.11.11 대청해전 발생.
천안함 피격사건 (2010. 3. 26)
연평도 포격 사태 (2010. 11. 23)
연평도 해상 포격 (2014. 10. 10)
DMZ 목함지뢰 폭발 사건(2015. 8.10)[15]
서부전선 포격 도발 사건(2015.8.20)
첫댓글 우리 대한민국은 어떤 세력과 마주하고 있는가?
누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나?
항상 먼저 공격해 살인을 했었다.
일본의 야쿠자나 중국의 삼합회보다는 나을까?
위조지폐, 마약거래, 밀수, 납치 살인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게 하고
말한마디 잘못하면 3대를 숙청시키고
또는 어린아이들이 보는 앞에서도
공개총살시키고
외부와의 통신도 감청하고
인터넷도 통제시키고
출신성분에 따라 차별대우하는 현대판 카스트제도가
살아있는 곳
백성들은 철창으로 둘러쌓은 감방에 갖혀 살고 있는 것일까
이런 사실을 알고서도 그들을 찬양하는 우리 남한세력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