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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두자 그만 두자...관두자
그 산인 관두산을 앞에두고 가까워 보이지만 돌고 돌아가야 만나는산이다.
구성리 개막이 체험장
조수간만의 차가 생기는 바다에 정치망 그물을 설치하여 밀물이 시작할때 그물을 걷어 올려 고기가 조류와 함께 흘러
들어가게한 다음 썰물이 시작 할 무렵에 그물을 내려 고기를 갇히게 하여 물이 다 빠지면 갯벌에 뒹구는 고기를 맨손으로
잡는 방법이다.
겨울철에도 개막이 체험을 하는지 알길 없으나
먹을 많큼만 잡아서 집으로 가져 갔으면 하는 마음이며, 멀리 보이는 관두산을 넘을것인가! 해안길로 이어 갈것인가!
산길을 넘어 가자니 등로가 엉망일것 같고 해안길로 가자니 위험할것 같고
이래저래 생각을 해보지만 지금 당장은 배가 고프니 식당부터 찾아야 할것같다
해안길에 식당찾기 힘들고, 가뭄에 콩나듯 식당이 있더라도 혼자가면 설걷이 하기 힘든다고 문전박대 하는곳이 많다.
멀리 구성리 제방길도 보이고
날씨가 추우니 갯벌위로 꼼지락 거리는건 하나도 없고
바람따라 비릿한 갯내음만 콧끝을 스치고 지나간다.
하산면 사포리 마을의 김 제조 공장
사포리 제방길은 잡풀과 칡덩쿨이 무성해서 진행하기 힘들고 제방 아래로 내려가 물빠진 뻘밭으로 진행하다 보니
신발에는 온통 진흙 투성이다.
김공장 안으로 들어와 걷다보니 어느집 아침밥하는 냄새에 고개가 돌아가지만
지금은 내가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다.
사포리 세기 수산 조선소
작은 배 만드는 조선소 공장으로 들어와 보니 멀리 드럼통에 불을 피워놓은 모습이 보인다
일 하시는 분께 양해를 구하고 양말과 신발을 벗어 말린다
30분정도 양말과 신발을 뽀송 뽀송하게 말리고
드럼통에 불이 꺼지지 않게 옆에 쌓아둔 큰 나무 하나 골라서 드렁통에 넣어두고 다시 떠난다.
조선소 끝부분 쓰레기 더미를 지나서 해안으로 진행
앞으로 관두산이 보이지만 아직도 한참 돌아가야 한다.
갯바위로 작은 굴이 많아 배낭에 든 칼을 꺼내 몇개 까서 먹어보고
자연산 굴은 작고 소금끼가 많아 몇개 먹으면 더이상 먹고싶지 않다.
지나온 해안길과 바로 앞은 조선소
관두산
관동 방조제에서 본 아침 일출
관동방조제(750m)와 관두산
우리나라의 서해안으로 간척지는 일제시대때 이루어진 것들이 많으며
간척지에 농사를 지으려면 염분이 있기에 짧게는 3-4년 길게는 10년동안 농사를 짓지 못하고
염분이 빠져야 농사를 지을 수 있다.
일제때 영산강 하구나 그외 서해안 바닷가에 간척지를 많이 만들어 농토를 빼앗고 수확한 식량을 수탈했으니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고생을 했을지
지금은 비옥한 농토가 많이 생겨 좋으나 바닷가는 오염되고
바닷가 인근 바닷물에 산소 농도가 많이 떨어 졌다고 한다.
바닷물 속에는 3%의 소금이 있어 물은 썩지 않지만 예전보다 떨어지는 산소 농도는 어쩔 수 없나 보다.
물속에 산소 농도가 떨어질 수 록 어떠한 생명도 살기 힘드는 죽음의 바다가 되는데
관동 방조제를 지나서
관두산으로 오르는 임도길이 곁에 있지만
아침에는 해안길로 진행하기로 한다.
지나온 관동 방조제
지나온 구성리 해안길
잠시 시멘트길이 이어지다 해안길로 들어오니 해안길은
작은 자갈길로 이어진다.
시멘트 길이 끝나고 이어지는 해안길
아직 떡실신 전이고
상마. 심마. 안도. 중마
해안길 자갈돌과 바위가 많고
주위풍경이 너무 좋아 진행이 느려진다
자연산 굴 따시는 아주머니 한분을 만나 앞으로 길을 물어보니 물때가
바뀌어 물이 들어와 더이상 가면 다시 돌아나와야 한다고 하신다.
믿어 말어...
바닷가 어민분들은 대부분 해안길로는 가지말라는 말만 하신다.가라는 말씀은 거의 없는 편이라
믿기도 그렇고 안믿기도 그렇고
나갔던 물이 들어오는 시간이라 일단은 해안길을 떠나 잠시 피하기로 하고 산으로 오른다.
산으로 오르는 길이지만 경사진 해안길은 온통 칡덩쿨이고
넝쿨잡고 오르니 한발 움직이면 두발 미끄러지고
칡덩쿨 잡고 올라 보지만 힘들어 오르지 못하고
옆으로 진행도 힘들고 다시 해안가로 돌아 갈까 생각하다가
꾸역꾸역 올라본다.
30분정도 힘들게 올라와서 본 풍경은 좋았고
우측으로 오래된 해안 군부대 초소도 하나 보인다.
관동리 마을에서 올라오는 산불방지 임도길과 만나면서 좀 더 편해진다.
물이 들어오는 해안길의 증도섬
남해안의 뻘배와 다른 뻘배
이곳 서해안의 뻘배는 남해안의 뻘배보다 조금더 넓으나 길이가 짧고 손잡이도 있다.
남해안의 뻘배는 발로 밀고 가는데 이곳의 뻘배는 손으로 밀고 가는건가
물빠진 증도섬
지나온 관두산 방향
증도섬에 가보니 아무것도 없어 다시 돌아나와
가야할 화산면 가좌리 방향
해안길에 만나는 자갈돌은 대부분 보이는것처럼 뽀족하고 못난 자갈돌이라 장시간 걸음걷기에 불편하고
발목 다치기도 쉽고, 무릅에 닿는 피로도 역시 산하고는 많이 다르게 피로가 누적된다.
지나온 증도섬 방향
가야할 해안길
물이 조금씩 들어오는 모습이다.
뻘이 묻은 바위길은 조심해서 가야할 지뢰 같은곳이고
지나온곳
동해안은 대부분 아스팔트길이라 남해나 서해에 비해서 많이 쉬운편이다.
조망도 좋고
이곳 서해는 동해의 경치와 뭔가 다르며 아주 특별하게 다가온다.
아직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어 몇구간 더 가보고 써야겠다.
멀리 고천암 방조제가 길게 이어지고
밀물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니 갯바위가 자리하는 경사면은 그렇게 표시가 없지만
넓은 뻘밭으로는 1분정도 1m씩 벌레가 기어가는것 처럼 스멀스멀 차오른다.
1분에 1m정도 계산해서 좀더 빨리 해안길을 벗어나려 진행
해안길로 진행하다 보니 밭둑에 고구마를 버려 놓았다.
모두 멀쩡해 보이는데 왜 버린건지 알길없고
상하지 않은것 두개만 주워 배낭에 넣고 배고플때 깍아 먹기로 한다.
조금만 더가면 방조제 초입
갈대밭 사이로 질퍽이며 진행하야 하는곳
약 2km정도의 고천암 방조제
우측으로는 해남 철새 도래지며 고천암 담수호이다.
고천암 방조제 우측의 담수호
염분이 모두 빠지려면 아직 물을 가두어 두어야 한다.
방조제 끝부분의 해안길로는 못가고
잠시 77번 국도 따라 진행한다.
고천암 담수호
고천암 담수호 내력
농어촌의 다양한 소득원 개발
황산면 황지리 고천암 슈퍼에서
산낙지 이렇게 차려놓고 아침밥 먹습니다.
낙지는 몇마리 안되는데 (3만원)
낙지 몇마리 먹으며 휴대폰 밧대리 충전하고
양말도 말리고 나와보니 물은 지척으로 들어와있다.
낙지 몇마리 잡을 수 있는 능력만 된다면 저곳으로 들어가서 잡아서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새우 양식장을 지나며
예전에는 모두 바다였는데 지금은 모두 들판으로 바뀐곳
물은 다 들어찬 모습이고
이곳 이후로 바닷길은 더이상 진행이 힘들어 진다.
해안길은 더이상 힘들고 임도길따라
임도길 가운데 민가(民家)가 있으나
금방이라도 달려들것 같은 개들이 득실 거리는곳이다.
개들이 많아 임도길은 못가고
해안길 옹벽 아래로 지난다.
지나온 해안길과 새우 양식장
텅빈 바다보다 물이라도 꽉 차있으니 진짜 바다같은 모습이다.
앞의 마을은 황산면 산소리 마을
작은 연못둑을 지나 왼쪽으로 진행해야 한다 보이는 마을로 가면 해안길과 멀어진다.
예전에는 모두 바다였던곳
산소리 마을의 칠게잡이 체험장
바닷물은 만조를 이루고 조금 있다가 다시 썰물이 되어 나간다.
황산면 간척지 땅에 대부분 태양열 전지판으로 가득하다.
철조망 휀스따라 가야하는데 해안길에 휀스가 방해될것 같아
끝없이 펼쳐지는 태양열 전지판 안으로 들어가보니 뻘밭(간척지)은 질퍽이고 마른곳만 골라서 진행하다 보니
신발에 온통 흙이 달라붙어 고생하고 끝에 가서 결국 휀스를 타넘는다
처음부터 휀스 밖으로 진행했더라면 고생 덜했을텐데...
안되는 놈은 뭘해도 고생이라며 투덜거려 본다.
황산면 송청마을로 들어와
작은 산하나 넘어 가기로 하고
배추,대파 수확해서 상차 작업 하시는 외국인들과 리더 인듯한 아주머니을 만나 인사를 하니
김치 국밥 좀 먹어 보라고 하신다.
감사 하다고 인사를 드리고 배추 밭둑에 걸터 앉으니
아주머니께서 그릇을 가지고 오시고
이렇게 따뜻한 김치 국밥을 얻어 먹게된다.
얼마만에 먹어보는 농촌 들밥인지 기억도 안나고, 잠시 여유를 가지며 먹어보는 밥
늦가을 같은 풍경속에 바람마져 시원하게 느껴진다.
김치국밥 한그릇 얻어 먹고 부곡리로 향하는 산길을 지나오니
작은돌을 만들어 파는 체석장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부곡리 마을로 가던중에 아름드리 소나무가 자리하는곳을 지나고
밀물이 아니라면 바다길로 가야하지만 부득이 도로따라 가면서 해안길을 대신한다.
부곡리 (성산마을)
체석장을 지나면서 도로따라 가다보니 어느댁 누구(金氏) 무덤인지 무덤 봉분을 제외하고
온통 시멘트로 포장을 해두었다.
후손이 없어 이렇게 해둔건지 깨끗해 보이긴 하다
도로따라 가다보면 어디 먼곳으로 갈것 같고
송천마을 삼거리에서 해안길로 이어 가보기로 한다.
멀리 바다건너 진도 벽파항 인근인것 같다.
앞의 공장은 체석장
길가의 배추는 온통 체석장에서 날아온 흙먼지를 덮어쓰고 있어 누가 사먹을 건지 모르지만
깨끗해 보이진 않는다.
방조제 제방을 지나고
물이 많이 빠진 모습이다.
아름다운 길
푸른색의 배추밭과 바다가 절묘한 풍경을 이뤄낸곳이라 잠시 서서 구경하게 된다.
이곳 배추는 해풍을 맞아서 그런지 색깔이 아주 좋다.
배추밭과지나온 체석장 부근
바닷물이 만조 시간이 지나서 빠져 나가는 모습이지만 저녁늦게 다 빠질것 같다.
제방 지나 산길로
가야할길은 아직도 끝없이 펼쳐지고
해안길 가다가 막히면 산으로 가야하고 산길은 그렇게 좋지 못하다
칡덩쿨과 잡목 그리고 가시나무들
전복 양식장 안으로 들어와서
물이 빠지는 모습
앞의 콘크리트 건물은 옥매광산
명반석 저장 창고
옥매광산은 일제가 군수품의 원료인 명반석(황산염)을 얻기위해 개발한 곳으로 일제 감정기 국내 강동원 중 가장 큰 규모의
동원지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해발 173m의 옥매산 봉우리는 깍여 나가 협곡이 되었고,이곳 해안가 콘크리트로 지어진 명반석 저장 창고가 원형을 유지한체 남아있다.
일제 감정기 무렵 전쟁 말기에 이지역의 광부들이 강제로 제주도로 끌려가 굴을 파는 일에 동원되었고
1945년 8월 20일 이곳 광부들을 태우고 고향으로 돌아오는길에 배가 화재로 바다에 가라 앉게 되어
약 118명의 광부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후에 유가족들과 지역민들에 의해 이분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제가 이곳에서 진행 되었다 한다.
황산면 옥동리
지나면 본 옥매산
일제 감정기때 온통 파헤쳐진 곳이지만 지금은 나무가 자라는 모습
개사육장?과 옥매산
이곳 개 사육장? 주인께서 어디로 가냐며 하신다.
전라 우수영으로 가는데 길은 좋은가요? 하니
"길은 별로지만 조심해서 가라"고 하시며 화이팅을 외쳐 준다.
진도 첨찰산 방향
바닷물이 많이 빠져 해안길로 진행
1,2km의 제방을 지나며
학동마을 주민분이 짱뚱어 잡는모습
길이는 대략 20cm정도이며 힘이 좋아 보인다.
지렁이 미끼를 사용하는데 금방 금방 잡아 올리신다.
이곳 마을 주민분께 커피한잔 얻어 마시고
추운날 커피 속이 참 따뜻하게 느껴진다.
잠시 아저씨 한분과 이야기 나누며 해안길에 대해서 알아간다.
옥매산과 지나온 해안길
명량해협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잡은 녹도섬
해안길 모퉁이만 돌면 진도대교가 자리하는곳이며 명량해협이다.
바닷물이 빠져나가는걸 보니 장마때 홍수가 밀려나가듯 물살이 아주 빠르게 흐른다.
앞으로 보이는 탑은 진도의 명량 대첩비 전망대가 서 있는곳
해안길은 더이상 힘들것 같아 문내면 학동리 양식장 안으로 들어와 산으로 오르게 된다.
양식장 안으로 들어와 배추밭을 지나니 산으로 향하는 임도길이 되어 있으며
관광객들이 다닐 수 있는 이정표가 많이 보인다.
드디어 진도대교가 눈앞으로 다가오고 가슴이 벅차게 느껴진다.
명량대첩비
장군께서는 선조의 명을 어겼다는 이유로 한양으로 압송된뒤 죄인으로써 혹독한 고문을 받는다
서애 대감과 정탁(판부사)의 목숨을 건 구명 운동으로 간신히 목숨만 건져 1597년 4월 1일 석방되어
도원수 권율의 밑에서 백의 종군(白衣從軍)하게 된다.
7월 18일 원균의 함대가 칠전량에서 전멸 당한 사실을 이틀 지나고 난뒤에 전해 듣고...
장군은 전선으로 달렸지만 남아 있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처음부터 다시 조선 해군을 재건하여 10만 왜군들의 서해 진출을 막아야 했지만
아무 실권이 없는 장군께 선조는1597년 7월 23일 다시 이순신 장군을 삼도 수군 통제사로 임명하였다.
삼도 수군 통제사가 된후 합천-구례-곡성-옥과-순천-낙안-보성-장흥 330km를 돌며 신병 1천명, 군량미 1개월분
그리고 병장기를 거두어 들인다.
이 모든걸 왜군보다 하루 정도 빨리 지나며 거두어 들인다.
(하루만 늦었어도 왜군들의 손에 넘어 갈 수 있었던 것들이다.)
비석의 은 "호남이 아니었다면 어찌 나라와 겨례가 온전하리오...
서해를 지키는 길목인 명량으로 12척의 전선을 이진-어란포를 거처 8월 29일 벽파진으로 향했으나 명량을 등뒤에 두고
싸우는것은 불리하다고 판단하여 해남군 문내면(전라 우수영)으로 자리를 옮긴다.
명량은 조수 간만때 급류하는 좁은 해류였을므로 작은 수의 전선으로 ,많은 수의 적선과 대치하기에 용이하다고 판단한다
9월 16일 새벽 일본수군 133척이 명량으로 진입하자 장군은 일자진을 펼치며 현자.지자 총통을 쏘며 거제 현령 안위와
김응함 등을 적진으로 돌격 시킨다.군사력은 왜군이 우세했지만 장군은 부하들이 두려움이 용기로 빠귈때까지 후퇴를
하지 않았으며 북으로 흐르던 물때가 마침 남으로 바뀌어 조선수군에게 유리해진다.
안골포(진해시 안골) 해전에서 투항한 왜인 준사가 일본 수군장수 구루지마을 가리키자 장군은 그를 끌어 올린뒤 목을 베어
높이 매달아 적의 사기를 저하시며 총통과 불화살을 쏘며 조류를 이용해 일본 병선 31척을 격파하자 일본수군은 달아나
버린다.
진도대교와 고뇌하는 이순신 장군 동상
13척으로 133척을 무찌르기 위하여 외롭게 시름에 잠긴 장군의 모습은
검이 아닌 지도를 들고 물에 홀로 서있는 모습이다.
그당시 형용할 수 없는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관광객들은 한명도 없는데 뭔일인지..
울돌목에 홀로 서있는 장군의 모습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기까지 누군가는 죽어야 한다.
대장선이 앞으로 나가 적을 막아서고 분전했으나 왜군의 숫자와 거센 조류에 부하장수들은 도망부터 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모든 상황을 명량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망금산에서 지켜보던 백성들은 통곡을 하였고 ...
이순신 장군은 부하장수들에게 분노 하였으나 부하 장수들은 싸워봤자 질게 뻔하다는 생각이었다
초요기를 걸고 부하들을 전선에 불러 들였으나 오지 않는다, 누가봐고 개죽음 이었기에 부하들을 비난도 할 수 없고
도망간 아군 잡으러 갈 상황도 아니고
장군은 그렇게 홀로 거센 물살에 맛서면서 많은 수의 적을 막아서고 있었다.
-영화 명량에서-
울돌목 유래
울돌목의 회오리
울돌목 동영상
명량대첩은 소설이나 영화로 많이 보셨기에
이제 진도대교로 올라갑니다.
이제 진도 대교를 건너 세월호 관련하여 팽목항으로 발길을 이어 가보기로 한다.
명량 해협으로 물길은 설물이라 빠르게 흐르고
바지선은 물길따라 조심스레 내려오고
해남땅이 아닌 진도군땅으로 들어와서
불켜진 진도 대교
늦은 시간이라 관광객은 한분도 없다.
장군의 바다에서
이곳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인근 진도 택시를 타고 진도 끝부분에 자리하는 팽목항으로 가고자 한다.
그동안 한번 와 봐야지 했던 그곳 팽목항
세월호 사건(2014년 오전 8시 50분 경 진도군 조도항 부근에서 일어난 사고로 304명 사망)
많은 학생들이 사고로 사망해서 더욱 가슴 아프게 했던 사고로 기억된다.
슈퍼에서 막걸리,콜라. 사이다 빵을 준비해서
고등학생 둘을 키우는 아버지로써 이곳에 서니 마음이 꽉 막혀온다.
어둠속에 아무것도 안보이지만 눈에 보이는듯 너무나 답답하여 그저 소리없는 발걸음으로 둘러만 보게된다.
어디부터 시선을 둬야 하나...
발 밑부터 보이지 않은 허공까지 모두 가슴에 담아 두고자 천천히 움직여 본다.
꽃만 봐도 서러운 그날...
팽목항에 흘리는 하나님의 눈물,
누군가 쓴 글이 더욱 슬프게 한다.
가라앉고 있는 세월호 저속에 304명이 있었다.
맨 앞자리에 막걸리와 콜라,환타, 빵을 올려놓고 절 두번하며 좋은 세상에 다시 태어나길 바래본다.
물에 대한 공포를 조금이나 알기에...
차가운 물속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살면서 꼭 한번 와보고 싶었던 곳
검은 바다에 파도소리만 들릴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곳을 향해 콜라 한병을 부어주며
"좋은 세상에 가라"고 빌어 드리고
서러운 발길을 돌린다.
도로에서 조용히 기다려 주신 기사님은 택시비용과 상관없이 진도에서 좋은곳 몇몇군데 구경시켜 주시겠다고 하신다
"아뇨!~ 갈길이 멀어 그만 가봐야죠 꼭 찾아볼곳 이렇게 찾았으니 더이상은 ...
아직 갈길은 먼데 택시 기사님께서 팽목항 바로옆에 자리하는 서망항 구경시켜 주시겠다고 하신다.
잠시 구경하는것도 나쁘지 않을듯하여 가 보지만
서망항 구경하면서도 눈길은 저멀리 조도항에 자리하는 뱅골만 그곳 향한다.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그곳 그래서 더욱 더 서러운 팽목항을 떠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