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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이씨 역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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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 게시판 광이역사/카페공지 스크랩 인지의즐거움053 - 해설사에게 보낸 편지1 - 차문화와 보성차, 2001
행복한사랑 추천 0 조회 89 17.11.30 21:5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인지의즐거움053

 

해설사에게 보낸 편지1 - 차문화와 보성차, 2001

 

김희태

 

정선생님

잘 지내시는지요. 몇 번 보성(동로토성 발굴현장, 벌교 추동리 느티나무 조사, 조선대박물관 답사 등)을 갔었습니다만, 따로 연락은 못드렸습니다. 앞으로 자주 연락할 기회가 있었으면 합니다.

 

한가지 의견을 보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문화유산 해설사 홈페이지 상의 보성 차에 대한 설명문과 일어 안내문안은 잘 보았습니다. 그 설명 가운데 1939년에 일본인들이 조성했다는 내용이 약간 거슬립니다. 일본인에게 소개하면서 당신들 선조가 우리나라에 조성했다는 식의 설명이 되어 버린다면 주객이 전도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한일관계는 설명에 신중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보성의 현재의 녹차밭이 유명할 수 밖에 없는 것에 대하여 다음 내용을 참고하여 두 가지를 곁들였으면 합니다.

 

첫째는 보성의 자연환경과 역사에 대한 것으로 차밭의 형성 여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454년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 1481년에 편찬되어 1530년에 증보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등에 보성 지역의 특산물로 차()가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옛부터 보성의 특산물로 차가 유명하여 국가 공식기록에 등장하고 있다는 점을 곁들여 설명하면 좋을 듯합니다. 아울러 이러한 전통적인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일본인들이 차밭을 조성할 수 있었다는 것, 즉 우리 지역의 입지환경과 역사성을 설명하면서 현재의 상태를 설명하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번째는 문화권의 개념으로 한국 중국 일본을 연결해 보는 것입니다. 일본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이기는 하지만, ‘照葉樹林文化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照葉樹란 차나무, 녹나무, 떡갈나무, 동백나무 등과 같이 잎사귀가 번쩍 번쩍 빛이 나고 잎이 두꺼운 나무를 말하는데, 히말라야 남부에서 시작하여 동남아 북부 산지, 중국 양자강 남쪽 강남 산지, 한국 남단부(지리산 이남), 일본 서남부에 거쳐 분포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조엽수림대에 사는 민족들에게 나타나는 공통적인 문화현상이 8가지쯤 있다고 하는데, 차잎을 가공해서 마시는 일도 그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 조엽수립대의 분포지역과 연관하여 보면, 보성에서 차밭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조엽수림문화라는 문화권과 연관된 것이고, 그런 연유로 500년전의 기록에도 보성의 토산품으로 나온다는 것입니다.

 

조엽수림문화권의 민족에게 나타나는 공통적인 문화현상은 아래 와 같습니다.

고사리, , 떡나무열매(도토리, 상수리) 등을 물에 담구어 진을 우려내는 기법

() 가공해 마시는 일

고치에서 실을 뽑아 명주를 짜 일

옻나무의 樹液으로 漆器를 만는 법

柑橘과 차조기(蘇葉)류의 재배 이용

누룩으로 술을 빚는 법

고구마참마 등을 식용으로 하는 한편, 옥수수陸稻 등 잡곡류를 재배하는 火田農耕을 경영한 점

잡곡과 벼에서 품종을 가려내어 찰떡을 만들어 낸 것

 

이러한 내용들을 약간 섞어서(1939년 일본시기에 조성했다는 설명에 앞서) 설명하여 보면 어떨까 합니다. 자료는 별도로 보내겠습니다. 하시는 일 잘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김희태 드림.

 

보성의 문화유산해설사에게 보낸 편지이다. 글머리에 조선대박물관 답사 때 보성을 갔다 했는데, 2001617일이다. 조선대박물관(관장 이종범)에서 기획한 호남역사문화인물기행세 번째 답사. 향토문화진흥원(원장 김정호) 함께 진행했고, 필자는 현장강좌 강좌장으로 나선 것. 그 이후의 일이니 이 편지는 20016월말 쯤.

 

지금도 그렇지만, 해설사 양성 과정 강의 나서곤 하는데, 강의 끝 무렵에 질문시간을 마련하거나 글로 적어 내라해서 답변을 해 준다. 관련된 자료나 책은 우편으로 보내고, 글은 전자우편으로 보낸다. 글의 초안을 저장하거나 때로는 보낸 전자우편을 다운 받아 저장한다. 이 편지는 초안만 저장된 상태라 날짜가 정확하지 않다. 받는 이의 이름도 지금은 기억이 어렵다.

 

17년이 되었다.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해설사’, ‘해설가’, ‘문화유산’, ‘문화관광’. 몇가지로 나누어 교육하고 자격증을 주었는데, 이제는 관광법에 따라 문화관광해설가국가자격이 되었다. 전남의 경우, 세 그룹이 있었다. 도에서 지원은 하지만, 추진 주체가 전남여성회관, 담양대(전남도립대), 대동문화재단. 보성 편지 사연의 해설사는 여성회관인지 담양대인지 기억이 아리송하다.

 

제도는 그리 변했다지만, 편지에 썼던 내용은 보성 현지에서 어떻게 해설되고 있을까 궁금증만 지니고 있다. 편지의 그 내용을 좀 더 풀어 본다.

 

어느 지역이든 특산물을 내세우고 역사인물이나 문화현장을 들춰내려 한다. 그리고 잘 가꾸고 다듬어 내놓고 있다. 특산물이나 인물, 현장이 원천이라면 가꾸는 것은 문화콘텐츠이고 스토리텔링일게다. 대표적인 것을 들자면 보성 녹차이다.

 

보성의 녹차는 이름나 있다. 그런데 눈여겨보아야 할게 있다. 산물(産物)로서의 (나무)’와 상품으로서의 녹차’. 보성의 녹차는 근대기의 다원 조성과 함께 유명세를 탔다. 그런데 옛 기록에서는 찾을 수 없을까. 바로 와 관련된 산물의 기록이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보성의 특산물로 차()가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은 1454(단종 2)에 편찬되었으니 564년이나 된 기록. 오랜 역사성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군현의 특산물을 토의(土宜), 토공(土貢), 약재(藥材), 토산(土産)으로 구분해 기록하고 있다.

 

토의(土宜)는 어떤 지방에서 고유하게 나는 물건이나 그 땅에 알맞은 작물을 말한다. 토공(土貢)은 지방의 토산물을 바친다는 뜻으로 공물(貢物)을 달리 이르던 말로도 쓰인다. 약재는 약용재료로 쓰이는 산물, 토산은 말 그대로 지역의 산물이다. 보성의 차는 약재(藥材)조에 기록되어 있다. 문화이 요소이기도 하지만 실생활과 직결되는 약재로서 조선 초기 국가기록에 올라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신증동국여지승람> 보성군 토산조에도 나온다. 편지에도 썼듯이 1481년 초간, 1530년 신증본 간행. ‘보성녹차의 역사성을 담보해줄 수 있는 귀중한 고전기록이다. 물론 다른 군현에도 가 토산물로 기록이 되고 있긴 하지만, 보성 차에 관련된 직접 기록으로는 매우 중요하다.

 

두 번째의 조엽수립문화(照葉樹林文化)’는 일본인이 쓴 책(中尾佐助, <裁培植物農耕起源 ; 佐佐木高明, 照葉樹林文化)에 있다. 이 글을 일찍이 <전남의 문화와 예술>(전라남도, 1986)에 최계원선생(당시 광주시립박물관장)이 소개(남도의 차 문화, 522~523) 한 바 있다. 그는 앞에 열거한 공통 문화요소의 항에 나타난 차잎을 가공해서 마시는 문화가 한국에서 왜 유독 이 지방에서 싹텄는가를 손쉽게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뜻으로 조엽수림문화에 관심을 보인 것이라 하였다.

 

차문화란 조엽수림문화의 한 부속요소였던 것이 차와 관련 있는 도자문화, 의례 등과 한 덩어리가 되어 발전된 문화라 할 것이고, 넓은 지역에 걸쳐 여러 민족들 사이에서 공통의 문화요소가 발생된 것은 조엽수가 자랄 수 있는 조건을 함께 갖춘 기후풍토에서 배양된 것일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전남의 기후대는 온난대에 속하고 연간 평균 기온이 13도 이상, 강우량이 1,200안팎으로 이러한 기후조건이 차나무 등의 생장여건의 적지로서 차문화가 발생했고 그 맥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 하였다.

 

이처럼 자연조건과 기후풍토, 역사 배경을 함께 풀어야만 차문화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교류와 확산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보성은 맥반석 지층과 연평균 기온 섭씨 13.4, 강우량 1,450mm, 보성강과 득량만을 낀 자연여건으로 안개 일수가 많아 차생육에 있어서 최적의 여건이다. 보성 차는 아미노산 질소의 함량이 낮아 담백하고 감칠맛이 나며 탄닌 성분이 적당히 함유되어 떫고 쓴 맛을 내는 등 5()로 유명하다.

 

차를 만들 때는 차 잎을 딴 뒤에는 무쇠 솥에 덖기, 비비기, 건조하기, 끝덖기, 선별, 포장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정성스런 손길이 필요하다. 덖기비비기자연역사를 함께 덖고’ ‘비벼알린다면 더 좋지 않을까. 더욱이 <세종실록지리지> 보성군조에는 가 약재(藥材)조에 올라 있는 것도 강조할 일 아닌가.

 

* 보성녹차는 우리나라 지리적표시제 제1호로 등록을 받았다. 20021. 지리적표시란 특정지역에서 생산되는 가공품의 명성, 품질, 기타 특징이 특정지역의 지리적 특성에 기인하는 경우 정부(농림식품부)에서 그 품질을 보증하고 국제적으로 산업재산권 보호에 관한 표시협약에 의한 원산지 명칭의 개념으로 보호받는 제도이다.

 

* 한국차박물관(2010년 개관)<보성차 이야기-보성차의 역사> 설명 가운데, ‘문헌상으로는 조선시대 세종실록지리지 토공조에 보성의 작설차를 꼽고 있으며, 이후 1741년의 보성군지에도 보성은 차가 으뜸이라는 기록이 있다.’는 내용이 있다. 그런데 <세종실록지리지> 약재(藥材)조에 로 기록되어 있고 <신중동국여지승람>(1481, 1530)은 설명에 안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1481년 초간, 1530년 신중) 보성군 토산조 기록. 네번째에 '茶'가 보인다.


<세종실록지리지>(1454년) 보성군편.

왼쪽에서 세번째줄 끝에 약재(藥材)조항이 보이고 왼쪽 끝 둘째줄 열한번째 글자에 '茶'가 보인다. 세계적 가치를 평가(세계기록유산) 받는 <조선왕조실록>의 약재(藥材)조에 '보성차'가 올라 있음을 강조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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