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안모 씨는 뜻밖에도 술값을 뜯기고 말았습니다. 친구와 한창 말이 많은 보궐선거 얘기를 나누다 “너 지금 우리 시의 슬로건이 뭔지 알아”라는 친구의 말에 곰곰이 생각하던 안모 씨는 “해피 수원!”이라고 외쳤죠. 그러나 돌아온 답은 “땡”이라는군요. 맞네 안 맞네 공방을 하던 둘은 결국 인터넷을 뒤져 답을 찾았습니다. 결과는 보시다시피 안모 씨가 술을 사게 된 거죠.
현재 수원시의 슬로건은 ‘사람이 반갑습니다. 휴먼시티 수원’이랍니다.
‘해피 수원’도 완전 틀린 답이라곤 볼 수 없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것은 도시 브랜드입니다. 도시 브랜드란 한 도시가 갖는 전체적인 문화, 이미지, 분위기를 아우르는 그 도시의 닉네임이라 할 수 있죠. 그 도시민이 지속적으로 함께 공유하고 추구하는 이상적 이미지라고나 할까요.
슬로건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대중의 행동을 조작(操作)하는 선전에 쓰이는 짧은 문구. 라고 나오는데요. 본래 스코틀랜드에서 위급할 때 집합신호로 외치는 소리(sluagh-ghairm)에서 나온 말이랍니다. 슬로건은 정치행동으로부터 상업광고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널리 사용되는데요, 이해하기 쉽고 단순한 표현을 주로 사용하죠. 한 도시의 슬로건은 그 도시가 추구하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갖는 비전, 혹은 목표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한편, 내기에 진 안모 씨는 울분을 삭이기 위해 거리로 나섰습니다. 분명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있을 터인데 그들을 수렁(?)에서 건져내야 한다는 사명감도 작용했죠. 한 대형마트의 푸드코트에서 맛나게 밥을 먹고 있는 시민들을 습격했는가 하면 휴일을 맞아 한가로이 공원에서 소풍을 즐기던 시민들도 덮쳤습니다. 공원엔 여기저기 슬로건이 보이기도 했죠.
“지금 수원시의 슬로건을 아십니까?”
결과는 대략 난감.
총 198명의 응답자 중 129명이 ‘모른다’에 스티커를 붙였고 ‘안다’에 붙인 사람 중 51명은 ‘해피수원’이라 답했고 18명만이 슬로건을 알고 있었죠. 슬로건을 알고 있는 사람들 중의 약 70%가 30~50대 층의 남자들이었는데요. 아마도 외부활동이 잦은 관계로 광고물들을 통해 슬로건을 접할 기회가 많아서인 듯했습니다. 약 65%의 사람들이 자기가 살고 있는 도시의 슬로건을 모르고 있었고 도시 브랜드를 답한 사람까지 포함한다면 약 90%가 슬로건을 모르고 있는 셈인데요.
이에 대한 답변으론 두 가지 의견이 나오더군요. 슬로건이 익숙해지고 알 만하다 싶으면 시장이 바뀌고 그때마다 슬로건도 바뀌기 때문에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슬로건이 바뀔 때마다 광고 간판 등 홍보물들을 다 새로 하게 되는데 그건 세금낭비가 아니냐는 의견입니다. 한편으로는 슬로건이 바뀌는 건 당연하고 마땅히 그럴 수밖에 없다는 의견인데요. 시대가 바뀌고 추구해야할 가치가 바뀌는데 어떻게 한 가지 슬로건을 고집할 수 있냐는 쪽입니다. 두 가지 의견 다 의미가 있는 답변들이라 앞으로 신중하게 고민을 해봐야 할 사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상보다 많은 동지들을 만나 기세가 등등해진 안모 씨는 한 발 더 나가 경기도에 속한 시· 군들의 도시 브랜드와 슬로건을 모아보기로 작심했습니다. 각 시와 군청의 홈페이지를 샅샅이 훑어 자료들을 수집하느라 지쳐 떨어진 안모 씨. 그러나 나름 재미도 있었다는군요. 사이트를 뒤지다보니 시·군을 대표하는 다양한 캐릭터들도 만나고 정책방향들도 비교할 수 있어 흥미로웠답니다. 또 많은 시·군에서 도시 브랜드를 채택한 것을 보니 정책과 시·군민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에 도시 브랜드의 역할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되었다네요.
안모 씨가 수집한 자료들은 맨 아래 모아놨으니 한 번 쭉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자기가 사는 도시는 어떤 브랜드와 슬로건을 내걸고 있는지 말입니다. 도시 브랜드가 없는 몇몇 시·군은 상징 마크로 대체해 넣었답니다.
물론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의 도시 브랜드나 슬로건을 모른다고 해서 큰일 날 일은 아니죠. 불편할 것도 없고요. 하지만 함께 생각을 공유하고 실천하다보면 내가 사는 곳이 조금 더 좋게 느껴지지는 않을까 안모 씨는 생각해봅니다.
나열해놓은 걸 쭉 훑어보니 오디션 본능이 꿈틀꿈틀 솟아오르는군요.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이 불고 있는데 우리도 한 번 ‘베스트 도시 브랜드’ 혹은 ‘베스트 슬로건’ 선발대회라도 해보는 건 어떨까라고 궁리해보는 안모 씨였습니다.
보너스로 우리들의 경기도를 빼놓을 순 없겠죠.
경기도의 슬로건인 “Global Inspiration, 세계속의 경기도”는 세계 각국의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영감들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글로벌시대에 경기도가 첨단 지식과 기술, 창조적인 생각과 행동으로 동북아 경제 시대의 중심이 되고 ‘세계속의 경기도’가 된다는 의미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답니다.
경기도의 마크는 경기도 산하 31개 시군들의 강력한 네트워크와 팀워크를 상징하는 동시에 21세기 글로벌 시대의 네트워크를 상징한다네요. 무한한 성장 가능성과 기회를 찾아 세계를 향해 힘차게 뻗어나가는 역동적인 모습을 표현하고 있으며, 또한 지역간, 계층간의 갈등을 극복하고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세계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경기도의 상생의 리더십을 반영하고 있답니다.
주 색상인 ‘경기 블루’는 첨단지식과 기술, 창조적인 생각과 혁신적인 행동을 상징하며 스카이 블루톤은 경기도를 향해 열려있는 무한한 가능성과 기회를 의미합니다. 보조색상인 ‘경기 오렌지’는 경기도민의 따사로운 마음과 화합의 정신을, ‘경기 그린’은 지구 사랑과 환경 사랑의 푸른 마음을 표현하고 있답니다.
어쩌다 술값을 뜯기고 저지른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다는 안모 씨. 그래도 이렇게 조사해놓고 나니 보이지 않던 뭔가를 보게 된 기분이었습니다. 과연 나는 행복한가? 이웃과 상생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오늘 밤 안모 씨는 왠지 일찍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네요. 혹 친구를 불러내어 술 한 잔 더 걸칠지도 모르겠습니다.
첫댓글 활기찬 변화 행복도시를 위하여~~
저는 도시마다 내 거는 슬로건이 세금을 축내는 말장난 놀이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