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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간 외부에서 소명을 다하고! 돌아와서 지난주에 오래간만에 아이들과 함께 만났습니다.
저학년 친구들과는 영상 수업때 자주 하던 것이 있는데요, 바로 즉석에서 이야기 만들기 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모든 영상, 혹은 삶을 토대로 하는 모든 행위의 기본은 '이야기' 이기 때문에,
굳이 카메라로 무언가를 찍지 않아도, 복잡한 이론 속에 무언갈 배우지 않아도 즐겁기 때문에!
하는 저도, 같이 있는 아이들도 할 때 마다 늘 즐거웠던 수업인 것 같습니다.
진행 방식은, 애초에는 아이들과 한 줄 한 줄 이야기를 함께 이어나가볼까? 했으나
아직은 그냥 선생님이 들려주는게 좋아요! 라는 아이들의 의견에,
이야기를 시작하기전, 각자 원하는 자신을 대신하는(페르소나) 주인공들을 한 명씩 정하고,
이야기의 배경이 될 부분을 정하고나면
무아의 즉석 이야기쑈가 진행됩니다!
이날은 현재의 드래곤 사람, 주환이의 아기, 예준이의 포크레인, 우빈쌤의 거미로 이루어진 동화였어요.
배경은 지옥!!
(못난 솜씨지만 칠판에 제가 그림을 그리면서 진행하는데, 더 와닿을 수 있는 그림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됩니다ㅠㅠ.)
그때의 말과는 조금은 다르겠지만,
다음에 현재가 또 물어볼 수도 있으니까!! 더 까먹기 전에 적어두도록 하겠습니다.ㅎㅎ
+30분동안 수업했던 거라 내용이 무지무지 길어요!
<지옥에서 하늘까지>
무아.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 땅 아래, 깊고 깊은 땅 아래로 떨어지면
온갖 색들이 뒤섞인 채 쉬지 않고 활활 타오르고 있는 지옥이 있었어요.
지옥은, 정말 지옥이라서, 꼭 나쁜짓을 한 사람만이 오게 되는 곳만은 아니었어요.
그저, 신이 있다면 그 신이 내키는대로.
백지처럼 하얗고 착한 사람도 생이 다 끝나기 전에 지옥에 오곤 헀었죠.
지옥의 왼쪽 한켠에는 드래곤 사람이 살고 있었어요.
모든 것이 다 죽은 지옥에서 살아가고 있는 드래곤 사람은 사실 살아가고 싶어서 살고 있는 게 아니었어요.
드래곤 사람은, 이유없이 지옥에 굴러떨어진
체념과, 원망과, 슬픔과, 소원과, 절망이 가득한 영혼들의 덩어리였어요.
불 속에서 활활 타며 사라져야 했을 영혼들이 모여 만들어진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죽음 속에 살아야만 하는 존재였죠.
그러던 어느날,
이제는 며칠이 지났는지,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지 가늠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지나갔을 때,
여느때와는 조금 다르게 하늘의 문이 쩍하고 열리더니
태초의 울음조차 끝내지 못한 아기가 데구르르 굴러들어왔어요.
활활 타는 지옥불 속으로요.
녹아서 사라지고 있는 숱한 절규 속에서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를 들은 드래곤 사람은 너무나도 놀라서,
자신이 떨어져 나왔던 지옥불 속으로 풀쩍 몸을 던졌어요.
오랜 세월 움직이지 않던 커다란 몸뚱이를 필사적으로 움직이고, 움직여서
가까스로 작은 아기를 구해낼 수 있었답니다.
산만큼 커다란 너른 품 안에 티끌만큼 작은 아기를 끌어안고 있자
드래곤 사람은 잊고 있었던 '사람 시절'의 감정들을, 마음들을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했어요.
'마음이 너무 아파! 이 아기까지 왜 이 곳에 와야 하는거야? 이 아기를 돌려보내주고 싶어!'
드래곤 사람은 어떻게든 이 아기를 지옥 밖으로, 빛이 가득한 삶의 자리로 돌려보내주고 싶었어요.
안타깝고, 안쓰러운 마음에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수 밖에 없었어요.
모든 걸 놓고 주저 앉은 채, 끝나지 않을 절망 속에서 있을 수 없었어요.
'어디로든, 어디로든 가면 방법이 있을꺼야.'
드래곤 사람은 그렇게 생애 첫 비행을 시작했습니다.
활활 타오르는 지옥불 위를 넘어 자신보다 더 오래 지옥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지옥의 오른쪽.
거미할멈을 만나러요.
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
지옥불을 넘어 무작정 한쪽으로 죽 달려나가다보니,
뾰족뾰족 기둥들이 솟아있는 지옥의 한켠에 도착했어요.
동굴처럼 목소리가 웅웅 울리는 그곳은,
지옥불이 아득하게 보일 정도로 먼 곳이라 불 빛 하나 없이 캄캄하기만 했어요.
조심조심, 살금살금,
품에 안은 아기가 떨어질라 천천히 걷고 있는 드래곤 사람의 머리에 무언가가 툭, 하고 걸렸어요.
'어? 뭐지?'
하며 슥 하고 고개를 돌린 순간, 커어다란 몸뚱이가 갑자기 움직이는 바람에
오랫동안 쌓여있던 먼지가 한꺼번에 팍! 하고 일어났어요.
"에취!!!!"
드래곤사람이 깜짝 놀라 재채기를 내뿜자 커다란 불길이 동굴 안을 가득 메웠답니다.
순간 환해진 동굴의 끄트머리에, 얼마 안남은 거미줄 위로 몸을 숨기고 있는 거미할멈이 보였어요.
동굴 가득 드리운 안개로 드래곤 사람이 얼결에 내뿜은 불길이 차근차근 사그러들기 시작했어요.
드래곤 사람은 저어기 구석, 까만 형체가 보이는 거미할멈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답니다.
"저기요, 거미할멈님.
혹시 이곳에 계신가요?
녹아 없어지고 있는 영혼들에게서 이야기를 듣고 왔어요.
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 가면 조금 다른 곳이, 조금 다른 분이 계시다고 해서요.
저는 저기 활활 타는 지옥불 바로 옆에서 온 드래곤 사람이라고 해요.
얼마전에, 아니 조금 전에,
아니 언젠지도 모르는 때에 저 지옥불 한가운데로 이 자그마한 아기가 굴러 떨어졌어요.
거미할멈님, 거기 계신가요? 도와주세요.
이 아기를 저 하늘 위로 다시 올려보내주고 싶어요.
이 아기는 아직 첫 울음조차 끝내지 못했어요.
이 아기를 돌려보내주고 싶어요.
도와주세요.
방법을 알고 계시나요?"
불이 다 사그라들어, 다시 그 동굴안이 새카맣게 깜깜해질때까지 드래곤 사람은 제자리에서 쉬지 않고 부탁했어요.
도와달라고. 도움을 요청했어요.
이제는 이곳에 불길이 닿았었는지, 그 흔적조차 희미해졌을때 저어기, 가장 오른쪽 구석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예끼 이놈! 불을 질러 놓고도 아무말 안하다니!"
드디어 들려온 거미할멈의 목소리에 드래곤 사람은 마냥 기쁘기만 했어요.
죄송하다고, 하려는 찰나에 거미할멈은 툴툴대기 시작했어요.
"내가 끝나지 않을 이 오랜 세월을 이곳에 보내면서 세상 모든 곳까지 닿을 수 있는 거미줄을 쳐놨었는데,
네놈이 무작정 들어와서 뿜어낸 불길로 다 무용지물이 되었구나."
방법이 있었다는 말에 드래곤 사람은 내게 아직도 심장이 있었더라면 지금 철렁 하고 내려앉았겠다, 라고 생각했어요.
드래곤 사람은 더 애원하기 위해 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 또다시 걸어가며 말을 걸어보려 했어요.
하지만,
"나는 너를 도와줄 방법이 없다. 돌아가라."
자신의 모든 흔적을, 자신이 살아있다고 믿을 수 있었던 모든 가치들을 한순간에 빼앗긴 거미할멈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렇게 등을 돌려 또다시 더 먼 오른쪽으로 사라지려던 찰나에,
"잠시만요!"
드래곤 사람은 자신의 품에서 반짝이는 먼지만큼 조그마한 아기를 꺼내어 거미할멈에게 보여주었어요.
거미할멈의 여덟개의 눈이 흔들리는 찰나에, 드래곤 사람은 다시 한 번 아까의 부탁을 되뇌었어요.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이 아기가 다시 돌아갈 수 있게 도와주세요.
결국, 마음이 돌아선 거미할멈은, 지금부터 남은 자신의 목숨어치의 거미줄을 뽑아주겠다며,
쉬지 않고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앞으로 엄청난 모험을 떠날 둘에게 이 지옥에 관한, 그리고 저 멀리 있는 하늘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죠.
지옥은 땅 아래의 감옥이라고. 누군가 내키는대로 뻥뻥 차버린 사람들이 데굴데굴 굴러들어오는 곳이라고.
누군가를 미워했던 사람뿐만이 아니라, 이유없이 미움받았던 사람도 오게 되는 곳이라고.
지옥불이 있는 곳은 땅 아래 가장 깊숙한 구덩이고,
그곳에서 삶에 대한 단 한 가지, 가장 투명한 반짝임을 잊지 않고 기억해낸다면 이곳까지 올 수 있는 것이라고.
아직까지 자신도 이 위로 올라갈 수 없었던 것은 그만큼의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드래곤 사람은 연신 감동의 도가니였어요.
지옥불에서 가장 오랜 세월을 지내며 당장이라도 늙어서 바스라질 것만 같았던 자신이,
아기를 만나고, 거미할멈을 만나며 가장 젊었던 때로 돌아간 듯 했죠.
거미할멈은 이야기를 다 들려주고는, 자신의 몸 안에 남아있던 모든 거미줄을 다 꺼내어 길을 만들어주었죠.
반짝이는 은빛 실들이 그물처럼 촥 하고 눈앞에 펼쳐지자 아기를 다시 품에 안은 드래곤 사람은
다시는 가 볼 수 있을 거라고 꿈조차 꾸지 못했던 하늘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기 시작했어요.
칠흑같은 어둠 속, 그렇게 쉬지 않고 걸어나가자 드디어 거미할멈이 들려주었던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통로, 무지개다리에 도착했어요.
드래곤 사람은 이때다 싶어 아기를 안고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죠.
그러다 어느 순간 쾅!!!
뻥 뚫린 길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거울로 된 벽에 부딪히고 말았어요.
이게뭐야! 싶어 정면을 바라보는 순간, 드래곤 사람은 힘을 잃고 다시 땅 아래, 깊은 곳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었어요.
거울 속의 자신이 정말 '사람'이 아니라서.
'사람'의 형태를 한 아기는 순식간에 거울 저편으로 사라졌지만, 막상 삶의 문턱에서도 삶에 가깝지 못할 정도로 너무나도 죽음에 가까워져버린 자신은 아기와 함께 그 벽을 넘을 수 없었어요.
끝없는 나락으로 데굴데굴 떨어지며 드래곤 사람은 수천년만에 펑펑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기만 올려보내겠다고 생각했으면서 마음 속으로는 자신도 다시 세상으로 가고 싶어 했다는 걸,
그러면서도 갈 수 없었다는 걸 생각하면서요.
드래곤 사람이 다시 지옥으로 쿵 하고 떨어지자, 어라, 이게 무슨 일이지? 사람의 목소리가 어딘가에서 들려오고 있었어요.
"어이! 거기 누구 없소? 이 무거운 것들에 깔려서 죽겠소!"
온갖 색들로 번쩍번쩍 불타고 있었어야만 했을 지옥이 어두컴컴하기만 했어요. 주위를 둘러보아도 이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어디있는지 찾기 힘들었죠.
"아니 내가 불구덩이에 떨어졌는데 누가 와서 물을 뿌리고 불을 꺼줬단 말이오! 나를 구할꺼면 확실히 해야 할 것 아니오! 어서 꺼내주시오!"
드래곤 사람이 떨어지며 흘린 눈물들로 지옥불이 사그라들어, 새로 지옥에 떨어진 어떤 사람이 죽지 못하고 살아있는 것이었어요.
더듬, 더듬. 타다 만 것들과 수북히 쌓인 잿더미속에서 드래곤 사람은 사람 하나를 끄집어냈습니다.
마음이 싱숭생숭, 감정을 느끼게 되니 더 힘들기만 했던 드래곤 사람은 처음 보는 그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마구 털어놓기 시작했어요. 말하다보니 또다시 슬퍼진 드래곤 사람의 눈에서 타이어만한 눈물방울들이 우수수 쏟아져내리려고 하자,
그 사람이 갑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자신은 한평생 포크레인만 운전한 사람이라고. 포크레인이 그냥 너무 좋아서, 그 안에서 잠도 자고, 밥도 먹고, 일도 하고.
여느때처럼 그렇게 살고 있었는데 그냥 눈을 떠보니 이곳이었다고. 그리고 당신 이야길 들어보니, 우리가 이곳에 있는 건 너무나도억울하고 말도 안되는 일이라며 당장 이곳을 나가자고. 자신의 포크레인이 있다며 말이에요!
"포크레인이 여기에도 있다구요?"
"그럼! 나는 한평생 포크레인과 함께 살았어! 죽었어도 같이 죽었을 거야! 분명 이곳에 내가 왔을 때 나는 내 포크레인에 깔릴 뻔 했다고!"
이 사람의 말대로 그 잿더미 속을 다시 한 번 뒤져보니, 커어다란 포크레인이 나왔어요.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그 사람은 포크레인에 올라탔고, 그 포크레인을 드래곤 사람이 어깨위에 실었어요.
영차, 영차.
왠지모르게 신나는 날갯짓으로 아까는 절망밖에 느낄 수 없었던 거울문을 향해 날았죠.
"으쌰! 다 도착했다! 이제 넘어갈 준비만 하면 되는군!"
막상 도착하고 나니, 드래곤 사람은 다시 오들오들 떨리며 두렵기만 했어요.
거울 속에 자신은 도대체 누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도 없을 정도로 합쳐진 사람도, 뭣도 아닌 무언가 같았거든요.
정말 내가 다시 살아갈 수 있을까? 하며 망설이던 찰나에
쨍그랑!
포크레인에 올라탄 그 사람이 다짜고짜 포크레인으로 거울문을 부수기 시작했어요.
"뭐하는거에요! 저 문이 없어지면 우린 다시 저 밑으로 돌아가야해요!"
당황한 드래곤 사람이 빽 소리를 지르자 그 사람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어요.
'지들 맘대로 사람이 아니면 들여보내주지도 않는 세상에 우리가 꼭 맞춰서 가야겠소? 당신도 충분히 돌아갈 수 있소!'
쨍그랑, 쨍그랑. 산산조각 난 거울문이 제각기 다른 위치에서 드래곤 사람의 모습을 비추었어요.
그러자,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셀 수 없는 많은 영혼들이 드래곤 사람에게서 흩어져 나와 거울 너머로, 자신이 가야할 곳으로 날아가기 시작했어요.
"그래! 가자! 다시 가자! 우리 다 같이 돌아가자!"
포크레인에 올라타 힘차게 달리는 그 사람을 필두로 여러 영혼들이 다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어요.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거미할멈은, 그제야 여덟개의 눈을 편안히 감고 마지막 잠을 잘 수 있었답니다.
지옥에서 하늘까지, 이야기 끝.
첫댓글 와 멋지네요!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즉석에서 만들어낼수 있는지 쌤 대단하세요!엄지척!
아이들이 만든 주인공들이 하나가 되었네요 이야기에 교훈도 있고 흥미진진합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