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논변서(太極論辨書) 발문
도(道)를 밝히고 도를 호위함은 모두 이 도를 자임(自任)하는 자의 책임이다. 나는 생각하건대 도를 밝히는 공이 참으로 크나 도를 호위하는 공도 이와 똑같다고 여겨진다. 도를 밝히지 않으면 도가 어두워지니, 반드시 모름지기 도를 밝힌 뒤에야 그 가르침이 해와 별이 하늘에 있는 것처럼 되어 사람들이 보고 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를 밝히는 공이 그 얼마나 위대한가.
그러나 그 사이에 혹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반론을 제기하여 분명한 뜻과 바꿀 수 없는 말씀으로 하여금 드러나지 못하게 하여 후학들의 의혹을 야기(惹起)시킨다면 이 도도 따라서 어두워지고 만다. 이에 이것을 논변하여 밝히고 열어 넓혀 잘못된 의논이 행해지지 못하게 하니, 도를 호위하는 공이 또한 위대하지 않겠는가.
염계주자(濂溪周子 주돈이(周敦頤)를 가리킴)가 말씀한 무극(無極)이라는 두 글자는 태극(太極)의 묘한 이치를 발명하였는바, 그 뜻이 참으로 분명하고 그 공이 과연 지극하다. 도를 밝힌 공이 실로 복희(伏羲), 문왕(文王), 주공(周公), 공자(孔子) 네 성인(聖人)을 이을 수 있다.
그런데 감히 얕은 소견을 가지고 무극(無極)을 헐뜯고 비난한 자는 앞서는 중국의 육씨(陸氏 상산(象山) 육구연(陸九淵)을 가리킴)가 있었고, 스스로 잘못 인식하여 태극을 함부로 말한 자는 뒤로는 우리 나라에 조씨(曺氏)가 있었으니, 주 부자(朱夫子)가 육씨의 말을 분석하고, 회재공(晦齋公 회재는 이언적(李彦迪)의 호)이 조씨의 말을 논변함이 있지 않았다면 무극과 태극의 이치가 다시 두 말 때문에 어두워져서 공자(孔子)와 주자(周子)의 뜻이 혹 이로 말미암아 밝아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도를 호위한 공이 어떠하다 하겠는가.
지금 전후에 논변(論辨)한 글을 모아 합하여 한 책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사문(斯文)의 선비들로 하여금 상하(上下)의 편(篇)을 참고하여 회재(晦齋)의 학문이 회암(晦庵) 주 부자(朱夫子)에게서 얻었으므로 이 도를 호위함이 또한 회암 주 부자와 부합함을 알게 하였으니, 이 일이 어찌 훌륭하지 않겠는가.
이 선생(李先生 회재 이언적을 가리킴)이 논변한 글을 선생의 손자인 준(浚)이 일찍이 스스로 한 책을 정사(精寫)하여 퇴계 선생(退溪先生)의 문하(門下)로 가지고 가서 올려 질정(質正)하였는데, 퇴계 선생은 손수 펴 보고 받들어 읽는 즈음에 자신도 모르게 옷깃을 여미고 공경심을 표하며 말씀하기를, “선생의 학문이 그 조예가 이에 이를 줄은 내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하고, 반복하여 칭찬하고 감탄하기를 마지 않았다. 퇴계 선생이 회재의 학문에 대하여 그 실재를 알게 된 것이 여기에서 더욱 깊어진 것이다.
준은 그 후 또다시 이러한 곡절을 가지고 한강(寒岡) 정 선생(鄭先生)에게 받들어 아뢰었는데, 선생은 준에게 말씀하기를, “주 부자 역시 이 무극과 태극의 말을 가지고 육상산(陸象山)과 논변한 것이 모두 약간 편이 있으니, 만약 두 선생의 전후의 논변을 나누어 상하편으로 엮어서 합하여 한 질(帙)을 만들어 간행(刊行)한다면 이 도에 크게 관계되지 않겠는가.” 하였다.
준은 한강 선생의 명령을 받들어 이것을 완성할 것을 청하고 인하여 주 부자의 글을 청하여 아울러 등사하였으며, 간행에 임박하여 또다시 서문(序文)과 발문(跋文)을 한강 선생에게 청하려 하였는데, 한강 선생이 별안간 별세하였다. 그리하여 이제 마침내 나에게 발문을 부탁하고 간청한 것이 이미 여러 번이었고, 또 그 뜻이 견고하였다.
나는 진실로 전후 여러 선생께서 도를 붙들고 도를 밝힌 글의 뒤에 천박한 말을 늘어놓을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으나 또한 굳이 사양하기 어려우므로 감히 거친 말을 붙이고, 따라서 또 그 전말(顚末)을 기록하는 바이다.
太極論辨書跋
夫明道衛道。皆自任斯道者之責也。余以爲明道之功固大矣。而衛道之功。亦與之並焉。不有以明之。道斯晦矣。必須明之。然後其爲敎也如日星之在天。然人得見而由之。則明道之功爲大也如何。然而其間或執左見以撓之。使的然之旨。不易之言。有所不章。而惹起後學之惑。則斯道其亦爲之晦矣。於是乎有能辨而明之。闢而廓之。使左論不得行者。其衛道之功。不亦大乎。若濂溪周子無極二字。其所以發明太極之妙者。其旨果的矣。其功果極矣。其明道之功。實繼乎四聖者也。而敢憑管見。訿病無極者。前則有陸氏於中國。自坐錯認。妄說太極者。後則有曹氏於我東。不有朱夫子析之於陸。不有晦齋公辨之於曹。則無極太極之理。似復晦於兩說。而孔子周子之旨。或因之而不明矣。然則其爲衛道之功。爲如何哉。今者幷前後辨論之書。合之爲一冊。使斯文之士。參考上下之篇。知晦齋之學。得於晦庵。故其所以衛斯道者。亦與之符焉。其事豈不韙哉。李先生論辨之書。先生之孫浚。嘗自精寫一冊。奉持往進于退溪先生之門。以呈質焉。則先生遂手閱奉讀之際。不覺斂衽而致敬曰。不料先生之學。其造詣至此也。反覆贊歎不已。蓋退溪先生之於晦齋之學。所以得其實者。蓋於此乎益深也哉。浚後又將曲折。奉陳于寒岡鄭先生。則先生語浚曰。朱夫子亦以此無極太極之說。有與陸象山論辨者凡若干篇。若以兩先生前後論辨。分爲上下。合作一帙而刊傳。不爲大關於斯道乎。浚承命請遂之。因請朱書幷謄之。更擬臨刊。又請序跋于寒岡先生。而先生遽下世焉。今乃屬余而懇之者。旣屢且堅。余固知不可措淺詞於前後諸先生扶道明敎之書末。而亦有所自難於固辭者。敢贅荒語。而仍又錄其首末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