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 여행
박인숙
동갑내기들의 여행이다. 국민학교 동기생들이 환갑이란 제목으로 1박 2일의 여행을 떠났다.
요즘은 환갑이란 단어가 생소하지만 올해는 우리가 60번째 생일을 맞는 해이다. 환갑이란 말은 나이 많은 어른들에게만 쓰는 단어인 줄 알았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곳에 와 있다. 생각해 보면 정신이 번쩍 드는 단어이다.
옛날 시골 국민학교에는 60명이 넘는 친구들이 한 반에서 6년을 같이 공부하며 뒹굴고 놀았다. 이번 여행에는 20여명의 친구들이 모였다. 각자 아들, 딸의 자리 아버지, 어머니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온 친구들이다. 세상은 우리를 샌드위치 세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부모님 봉양도 거의 끝나고 자녀들도 모두 성장했으니 이제는 자기 자신을 되돌아볼 시간이 된 것 같다.
들풀처럼 자란 시골 아이들이 여덟살에 만났는데 환갑이 되었으니 힘들게 살아 온 60년을 다 이야기하기에는 1박 2일의 시간이 너무나 부족했다. 우리는 전쟁이 끝난 지 10년도 채 되지 않던 60년대 초 너무 힘들고 가난한 시절에 태어났다. 더러는 그 가난을 이기지 못하고 중간에 국민학교마저 포기한 친구도 있었다. 그 눈물겨운 이야기를 들으며 모두들 숙연해졌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들 그 고난에서 벗어나 각자 성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 고통들을 훌훌 벗어 던질 수 있는 바다를 찾아서 작은 섬으로 여행을 갔다. 아마도 바다라면 우리들의 힘들었던 지난날을 흔쾌히 받아서 깊이 감춰주고 품어줄 것 같았다.
거제도에 사는 친구의 안내로 맛있는 음식과
편안한 휴식이 있는 작은 섬마을로 배를 타고 들어갔다. 우리나라의 섬 중에서 두번째로 크다는 거제도는 수십 개의 작은 섬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인 이수도라는 섬으로 갔다. 이수도는 오래 전부터 낚시꾼들이 많이 찾던 섬으로 주민들이 그들에게 방을 빌려주고 직접 잡은 각종 해산물로 식사를 제공했는데 그 음식들이 너무 맛있어서 입소문을 타고 민박하는 관광객들이 모여들었다 한다. 지금은 100여명 남짓한 주민이 민박과 펜션 사업을 주로 하는 관광지이다. 그 작은 섬에 주말이면 매주 천명 이상의 관광객이 몰려드는 별천지 같은 곳이다.
아침 9시에 대구에서 출발해서 12시에 섬에 도착했다. 거제도 시방 선착장에서 눈 앞에 보이는 작은 섬 이수도는 1박 3식의 프로그램과 섬 한바퀴를 돌아보는 둘레길을 걷는 여행 코스다. 가을이 깊어가는 11월인데 벌써 동백꽃이 수줍게 웃고 있었다. 섬 정상에는 해돋이 전망대, 그 둘레에는 파도 전망대, 물새전망대 그리고 작은 쉼터도 몇 군데 있었다. 멋진 배경을 바탕으로 사진을 찍는 포토 존도 곳곳에 있고, 바다위를 건너는 작은 출렁다리도 있었다. 파란 하늘과 파란 바다 그리고 우리들의 풋풋했던 파란 추억들이 어우러져 우리들의 여행 시간은 온통 파란색이었다.
둘레길 트레킹 이후 숙소의 마당에 마련된 벤치에 모여 앉아 아름다운 일몰을 바라보며 술잔을 높이 들었다. 우리들의 황혼도 저 노을처럼 아름답기를 기도했다. 바다를 지나 서산의 노을과 함께 떠나간 태양을 배웅하고 숙소로 들어왔다.
저녁 시간에는 우리들의 60주년을 기념하며 자축하는 시간을 가졌다. 예쁜 현수막도 걸고 각자 풍선을 하나씩 크게 불어 자신의 이름을 써서 매달고, 케이크와 함께 샴페인의 거품세례도 받았다. 코흘리개 시절, 학교라는 곳에서 처음으로 만난 친구들이 그 때의 그 감정과 기억들을 하나 둘 꺼내니 재미있는 일화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왔다. 할 얘기들이 너무 많아서 하룻밤으로는 시간이 부족했다. 밤을 거의 새워가며 이야기보따리들을 풀어 놓았다. 그 열기가 너무 뜨거워지면 시원한 테라스로 나가서 불빛이 비치는 검은 바다를 바라보기도 하고,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빛을 보며 연신 감탄사를 쏟아내기도 했다. 도시에서는 보지 못했던 수많은 별들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각자의 습관대로 잠깐씩 눈을 붙이고 이른 새벽 날이 밝기도 전에 다른 방에서는 벌써 시끄러웠다. 남자 친구들은 지금까지 가족을 등에 업고 살아 온 가장들이기에 습관처럼 이른 새벽 시간에 잠이 깨는 것 같았다.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샌 여자 친구들도 분주한 바다의 아침을 맞았다. 바다도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밤새 출렁이는 파도를 지킨 바다는 먼동이 트기 시작하니 물새들이 날기 시작하고, 작은 낚시배들의 모터 소리가 통통거렸고, 조용하던 밤바다와는 사뭇 달랐다. 어둑한 새벽 공기를 맞으며 일출을 보기 위해 전망대로 간 친구들도 있고 숙소 앞에서 일출을 기다리는 친구도 있었다. 우리 인생에 단 한 번 밖에 없을 환갑이 되는 올해, 그리고 오늘이다.
태양은 작은 구름 띠를 뚫고 찬란하게 떠 올랐다. 밤새 수평선 뒤에 숨었다가 다시 나타난 태양은 우리들에게 또 소중한 하루를 선물해 주었다.
사회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은 깎듯이 예의를 갖춰야 하고 규칙을 잘 지켜야 하고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하는 등 늘 정돈된 행동을 요구하지만 오늘 함께 한 친구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적당한 허물은 다독여 주고 덮어 주는 아량이 있고, 언제부턴가 서로의 아픔과 슬픔을 위로해주고 나눌 줄 아는 어른들이 되어 있었다. 환갑이 되는 올해를 지나면 새로운 어떤 것이 우리에게 찾아올 지 아무도 모른다. 될 수 있으면 즐겁고 행복한 일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다. 짧은 시간이지만 추억속에 풍덩 빠졌던 시간이었다. 젊은 날에 비해서 재미있는 일도 적어지고 웃음도 줄어들었는데 이틀 동안 재미있게 마음껏 웃고 왔다.
옛날 할머니의 환갑 사진이 기억속에 아련한데 어느 새 나의 환갑 사진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시간으로부터 받은 큰 선물을 안고 오늘 헤어진 친구들과 동행이 되어서 새로운 60년에 도전해봐야겠다. 세상은 말한다. 인생은 60부터라고ᆢ
첫댓글 옥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