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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전서 2장 13-16절. 성도들에 대한 감사.
1. 지난 시간에는, 데살로니가전서 2장 9-12절을 본문으로,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향해서 얼마나 모범적인 사역을 감당했는가>를 살펴보았습니다.
즉,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어머니가 젖먹이를 기르는 심정으로 사랑했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와 같은 심정으로 훈계하고 올바른 신앙생활을 위해서 지도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2. 오늘은 본문을 중심으로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말씀도 잘 듣고, 고난도 잘 이겨낸 데 대한 감사>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부모는 자녀들이 말을 잘 듣고, 올바르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을 늘 고맙게 생각합니다.
이와 같이, 바울 사도도 부모의 심정으로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말씀을 잘 듣는 것을 감사했습니다.
(2) 더구나, 부모가 자녀들에게 더욱 고맙게 생각되는 때는, 가정 살림이 어렵거나 부모가 병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이 어려운 가정 살림을 불평하지 않고, 올바르고 성실하게 자라가면 참 고맙고 감사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바울 사도도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불신자들의 핍박을 받아서 살아가기가 힘든데도 불구하고, 믿음 생활을 잘해가는 것이 영 고맙고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3. 오늘 말씀의 내용은 두 가지로 분류됩니다.
13절.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바울 사도의 말을 들을 때에, 단순히 사람의 말로 듣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는 것을 감사했습니다.
14-16절.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불신자들의 핍박과 경제적인 어려움 가운데서도, 굴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을 보고 대단히 감사했습니다.
13절.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바울 사도의 말을 들을 때에, 단순히 사람의 말로 듣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는 것을 감사했습니다.
13절.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this reason we also constantly thank God that when you received the word of God which you heard from us, you accepted it not as the word of men, but for what it really is, the word of God, which also performs its work in you who believe.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Καὶ διὰ τοῦτο καὶ, ἡμεῖς εὐχαριστοῦμεν τῷ Θεῷ ἀδιαλείπτως,
and because of this also, we we give thanks to the God unceasingly
직역하면 ‘이 때문에 또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ἡμεῖς: we)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감사하고 있다’(εὐχαριστοῦμεν)는 현재형으로서(we give thanks) 언제나 감사하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ὅτι παραλαβόντες λόγον ἀκοῆς παρ’ ἡμῶν τοῦ Θεοῦ
that having received word hearing from us of the God
직역하면 ‘즉 우리에게서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을 때’란 뜻입니다.
‘받을 때’(παραλαβόντε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received) 과거에 확실히 받은 사실을 가리킵니다.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ἐδέξασθε οὐ λόγον ἀνθρώπων, ἀλλὰ καθὼς ἀληθῶς ἐστὶν λόγον Θεοῦ,
you accepted not word of men, but even as truly it is, the word of God
‘받지 아니 하고’에서 동사(ἐδέξασθε)는 부정과거 중간태로서(you accepted) 과거에 자신을 위해서 확실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은 틀림없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진실로 그러하도다’에서 동사(ἐστὶν)는 현재형으로서(it is) 언제나 그러하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ὃς καὶ ἐνεργεῖται ἐν ὑμῖν τοῖς πιστεύουσιν.
which also works in you who believing
직역하면 ‘그것이(하나님의 말씀이) 믿는 너희 속에서 또한 역사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믿는’(πιστεύουσιν)은 현재분사로서(believing) 현재 계속 믿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역사하느니라’(ἐνεργεῖται)도 현재형으로서(works) 현재 계속 역사하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1. 이러므로, 내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어머니가 젖먹이를 기름 같이 사랑했고, 아버지가 자식을 훈계하며 양육한 것 같이 지도한 결과,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훌륭한 자녀같이 말씀을 잘 순종하고, 핍박과 환난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신앙생활을 잘해준 것에 대해서 무한히 감사를 드린다는 말씀입니다.
2. 감사의 첫째 조건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라”고 했습니다.
(1) 하나님께서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하실 때, 직접 음성으로 전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하실 때, 선지자들이나 예수님이나 사도들을 통해서 전하셨습니다.
물론 특별한 경우에는 직접 음성이나 환상을 통해서 전해주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성령님이 감동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깨닫게 하십니다.
(2) 이처럼 비록 인간을 통해서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그것은 인간의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나 예수님이나, 사도들이나 목사들이 사람들에게 항상 좋은 대접을 받은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이사야나 예레미야 같은 구약의 선지자들도 당시의 사람들로부터 미친 사람이나 매국노 취급을 받고, 죽임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도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로부터 핍박을 당하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사도들도 사도 요한 외에는 당시의 사람들에게 만물의 찌끼같이 몹쓸 인간 취급을 당하다가 순교했습니다.
물론 교회에서는 사도와 주의 종들로서 절대적인 존경을 받았습니다.
교회 역사상 목사들도 교인들에게는 사랑을 받았지만, 불신자들로부터 핍박과 순교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3)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주의 종들이 핍박을 받는 이유는 사람들이 죄인이라는 것과 예수님을 믿어야만 구원을 받는다고 전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그들이 의인이고, 하나님 앞에서 복 받을 사람이라고 아부했다면, 핍박을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나름대로 인격적인 수양을 쌓으면서 산다고 자부하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그렇게 인격수양을 잘하면, 천국에 갈 것이라고 아부하면, 핍박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참된 종들은 인간은 모두 죄인이고, 예수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고 말하니까,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았습니다.
또한, 자기 나름대로 인격 수양을 해가면서 자신 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기 수양으로는 지옥에 갈 수밖에 없고, 오직 예수님을 믿어야 천국 간다고 말하니, 핍박과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4) 그런데,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바울 사도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무시하지 않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얼마나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훌륭한 모범적인 교인인지 모릅니다!
당시에 바울은 고향 사람인 유대인들에게 민족의 반역자 취급을 당하여 쫓겨났고, 갈라디아 지방 루스드라에서 전도할 때, 동족들에게 돌로 맞아서 죽었다가 겨우 살아났습니다.
빌립보에서 전도할 때도 죄없이 두들겨 맞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데살로니가에서 3주간 전도했는데, 또 불신 유대인들이 죽이려고 하니까, 베뢰아로 도망을 갔습니다.
베뢰아에서 전도할 때도, 불신 유대인들이 쫓아와서 죽이려고 하니까, 밤중에 배타고 아덴(아데네)로 도망갔습니다.
아덴에서 고린도로 가서 전도하니까, 또 불신 유대인들이 총독에게 고소하여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처럼 바울이 사람들에게 못된 놈이고 죽여야 할 악인이라고 가는 곳마다 말할 수 없는 푸대접을 받는 것을 보면서도,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바울 사도를 조금도 의심치 아니하고, 그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는 것이 얼마나 모범적인 성도들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바울 사도는 정말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 앞에서 항상 감사를 드렸습니다.
(5) 사람이 이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못 받으면 자살해 죽는다고 합니다.
어떤 여인은 남편이 의심했다고 자살해버렸습니다.
어떤 고급 공무원은 메스컴에서 자신의 결백을 의심했다고 한강에 투신자살을 했습니다.
어떤 학생은 학교에서 학우들에게 왕따를 당했다고 죽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천하 모든 사람이 의심을 하더라도,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으면, 그 사람은 살 희망을 갖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에게 인정받는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6) 아마 우리도 바울 당시에 살았다면, 바울이 사람들에게 하도 핍박을 받기 때문에, 한 편으로는 바울을 의심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바울 사도를 전적으로 믿었고, 바울이 전한 말씀을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지금이야, 바울의 편지가 신약성경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바울을 가장 훌륭한 사도라고 믿지만, 당시에는 성경이라고는 구약성경밖에 없었던 때라, 바울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신앙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기록으로 가지고 있는 성경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전부 그대로 믿지 아니하고, 십계명이나 산상수훈과 같은 도덕적인 계명만을 성경으로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훌륭한 성인으로서, 사람이 이기심을 버리고, 원수도 사랑하라는 고귀한 도덕을 몸소 실천한 위인으로만 존경합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의 십자가 속죄와 부활 천국을 믿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성경이 정말 모든 사람이 존경할 만한 완전한 책이 되려면, 동정녀 탄생이나 물 위로 걷는 기적이나 부활이나, 구약의 이스라엘 역사 같은 것은 다 빼고, 도덕적 교훈만 간추리면, 만인이 존경할 훌륭한 책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데살로나가 성도들은 바울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도 의심 없이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하나님 앞에서 항상 감사를 드렸습니다.
(7)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부족함이 있는 사람을 통해서 전하시더라도, 성도들이 부족한 사람의 말로 책 잡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것은 하나님을 정말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바울 사도도 흠이 있었습니다.
완벽한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자기를 교역자의 길로 인도해준 은인인 바나바와 심히 다투어 갈라서는 일도 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핵심 인물 중의 하나인 마가를 무척 서운하게 해서 보냈던 일도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산헤드린 공회 재판을 받을 때, 두려워서 자기는 바리새인이요 바리새인의 아들이라고 말하였고, 예수 믿는 이방인의 사도라고 담대히 증거하지 못한 일도 있었습니다.
자기가 전도해서 교인들이 생겼는데, 핍박이 일어나니까, 교인들을 뒤에 남겨두고 도망간 일도 있었습니다.
또한, 바울 사도는 외모가 너무나 흉측스러웠고, 불치병도 있어서, 신앙에 시험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바울 사도를 하나님의 종으로 전적으로 존경하고, 바울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신앙이요, 만고에 길이 빛나는 모범적인 성도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님들도 허물 많은 목사를 통해서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말로 듣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분은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목사가 인간적으로 자기와 기분 나쁜 감정이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자기 감정으로 말한다고 오해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또 어떤 분은 목사가 자기의 사정을 누구에게 듣고서, 일부러 저런 설교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목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사람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목사가 설교를 준비할 때, 자신이 먼저 은혜를 받지 못하면, 설교를 준비할 수가 없습니다.
목사는 신학적인 체계와 선배들의 책과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서 설교를 준비합니다.
이처럼 객관적으로 어디에 내놓아도 정당하게 준비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목사가 되기까지는 전문적인 훈련을 받습니다.
의사가 되는 것보다도 더 많은 햇수를 공부하고 훈련을 받고, 시험을 치릅니다.
의사도 전문가이기 때문에, 직업상 비밀을 절대 누설하지 않습니다.
사관학교를 졸업한 장교는 국가의 기밀을 절대 누설하지 않도록 교육을 받습니다.
하물며, 목사가 설교할 때, 누구 개인을 시험 들게 하려고 일부러 인간적인 설교를 하겠습니까!
목사는 설교를 준비해놓고, 기도하는 중에 혹시나 이 말씀이 어떤 성도에게 오해나 걸림돌이 될까 싶으면, 일부러 삭제도 합니다.
나중에 오해하지 않을 시기에 말씀하기로 하고, 그때는 넘어가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교를 통해서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받으시고, 인간적인 감정으로 일부러 상처 주었다고 오해하지 마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령님께서 이 시간에 내게 주신 말씀이 무엇일까 하고, 마음 문 열어놓고, 설교를 잘 들으시는 것을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늘 마음 문 열어놓고, 하나님의 말씀, 복음의 말씀을 잘 받아들여서, 예수님 모시고, 구원의 은혜와 축복이 항상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이 말씀이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1)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서, 이 말씀을 받아들이면, 창조적인 역사를 일으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동일한 말씀으로 죄인을 새로운 피조물로, 하나님의 자녀로 재창조하십니다.
베드로전서 1:23. 너희가 거듭난 것이 항상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2) 하나님의 말씀은 죄성으로 날마다 죽는 우리 영혼을 날마다 살리는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요한복음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
(3) 하나님의 말씀은 죄성으로 날마다 더러워지는 우리의 영혼을 날마다 깨끗하게 하십니다.
요한복음 15: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시편 119:9.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4) 하나님의 말씀을 옥토밭과 같은 부드러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그 말씀이 능력으로 역사하여, 수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세속적인 길가와 같은 마음, 돌 같이 굳은 마음, 가시밭같이 비판적인 마음으로 말씀을 거부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지 못하여, 아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사람의 말로 받지 마시고, 마음 문 열어놓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성도님들의 영혼을 날마다 살리시고,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고, 풍성한 열매를 맺으시기를 축원합니다!
14-16절.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불신자들의 핍박과 경제적인 어려움 가운데서도, 굴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을 보고 대단히 감사했습니다
14절.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동족에게서 동일한 고난을 받았느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you, brethren, became imitators of the churches of God in Christ Jesus that are in Judea, for you also endured the same sufferings at the hands of your own countrymen, even as they did from the Jews,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ὑμεῖς γὰρ μιμηταὶ ἐγενήθητε, ἀδελφοί, τῶν ἐκκλησιῶν τοῦ Θεοῦ τῶν οὐσῶν ἐν τῇ Ἰουδαίᾳ ἐν Χριστῷ Ἰησοῦ,
you for imitators was become, brothers, of the churches of the God of the being in the Judea in Christ Jesus
‘유대에 있는’에서 동사(οὐσῶν)는 현재분사로서(being) 현재 계속 유대에 있는 교회들을 가리키고, ‘되었으니’(ἐγενήθητε)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was become) 과거에 확실히 본받는 자가 된 것을 가리킵니다.
너희도 너희 동족에게서 동일한 고난을 받았느니라.
ὅτι τὰ αὐτὰ, ἐπάθετε καὶ ὑμεῖς ὑπὸ τῶν ἰδίων συμφυλετῶν,
for the same as them, you suffered also you from the own countrymen
직역하면 ‘너희도 그들과 똑같이, 너희 동족에게서 고난을 받았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너희도’(καὶ ὑμεῖς: also you)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고난을 받았느니라’(ἐπάθετε)는 부정과거로서(you suffered) 과거에 몹시 고난받은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καθὼς καὶ αὐτοὶ ὑπὸ τῶν Ἰουδαίων,
as also they from the Jews
1.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당하는 핍박과 고난을 불평하지 않고, 기쁨으로 견딜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욱 천국 소망을 가지고 충성하는 것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우리 부모님들도,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도 자녀들이 불평하지 않고, 밝은 낯으로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정말 감사와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정말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자기 지방의 불신자들에게 핍박을 받고 경제적인 어려움도 당했습니다.
(1) 데살로니가 성읍은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 시대부터 마게도냐 지방의 수도였습니다.
‘데살로니가’라는 지명도 카산더((Cassander: BC. 388-297년) 왕이 선왕인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III Magnus, BC 356~323년)의 누이이자 자신의 아내인 ‘살로니카’의 이름을 따서 지었습니다.
이 데살로니가는 동쪽으로는 아시아의 관문인 이스탄불과 연결되어 있었고, 서쪽으로는 로마로 통하는 전략적 요충지로서, 에그나티아 가도(Via Egnatia)가 관통하고 있었고, 항만이 외항으로 되어 있어서 해상으로도 길이 열려 있었습니다.
이처럼 데살로가는 고대부터 유명한 도성이었기 때문에, 세계 각처에서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어서 살고 있었습니다.
(2) 그런데, 유대인들이 유독 많이 살고 있어서, 기독교인들을 사회적으로 핍박하고, 동업조합(guild)에 가입하지 못 하게 해서, 경제적으로도 힘들게 했습니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유대인들이 기독교인들을 범죄자나 반사회단체로 악선전하여,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게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핍박에 굴복하지 않고, 더욱 열심히 충성했습니다.
2. 유대인들은 왜 그토록 기독교인들을 핍박했을까요?
그것은 신앙 원리가 정반대로서, 서로 양립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유대교인들은 자기가 율법을 열심히 지켜서 구원을 받는다는 신앙을 생명처럼 여겼습니다.
그러나, 바울이나 기독교인들은 율법으로는 인간이 죄인임을 더욱 깨달을 뿐이고, 구원받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구주로 보내주신 예수님을 믿음으로써만 얻는다고 믿었습니다.
이처럼, 유대교인들은 율법적인 자기의 행위를 믿었고, 기독교인들은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믿었기 때문에, 서로 타협할 수가 없었습니다.
(4) 그런데, 유대교인들은 오늘날 이슬람교인들처럼, 자기네 종교 이외의 사람들에게 폭력을 사용했습니다.
마치, 여호수아나 다윗처럼 전쟁을 통해서, 메시아 왕국을 건설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폭력이 아닌 복음을 전파하고, 사랑과 희생으로써, 세계를 정복해나가고 있습니다.
3. 오늘 우리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서 배울 점은 교회가 핍박과 어려움을 당할 때, 불평과 원망에 빠지지 말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더욱 간절한 소망과 믿음을 가지고, 충성하자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금년 한해에 하나님이 주신 평안 가운데서 지금까지 지내왔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대외적으로나, 대내적으로 언제 핍박과 환난이 닥칠지 모릅니다.
혹시 우리 교회에 이런 외부적 핍박과 내부적 고난이 닥치더라도, 데살로니가 교인들처럼, 하나님 나라에 대한 굳은 소망과 믿음을 가지고, 더욱 충성하시는 성도님들 되기시를 축원합니다!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하나님의 종을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정치적인 핍박과 경제적인 환난을 당하더라도, 데살로니가 성도들처럼, 하나님 나라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더욱 정진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5절.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ho both killed the Lord Jesus and the prophets, and drove us out. They are not pleasing to God, but hostile to all men,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τῶν καὶ τὸν Κύριον ἀποκτεινάντων, Ἰησοῦν καὶ τοὺς προφήτας
who both the Lord having killed, Jesus and the prophets
‘죽이고’(ἀποκτεινάντων)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killed) 과거에 역사적으로 확실히 죽인 틀림없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우리를 쫓아내고
καὶ ἡμᾶς ἐκδιωξάντων,
and us having driven out
‘쫓아내고’(ἐκδιωξάντων)도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driven out) 과거에 확실히 쫓아낸 틀림없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아니하고
καὶ Θεῷ μὴ ἀρεσκόντων,
and God not pleasing
‘기쁘시게 하지 아니 하고’에서 동사(ἀρεσκόντων)는 현재분사로서(pleasing) 현재 계속 기쁘시게 하지 않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καὶ πᾶσιν ἀνθρώποις ἐναντίων,
and all men hostile
‘대적이 되어’(ἐναντίων)는 형용사(hostile)입니다.
1. 엘리코트(Ellicott)는 유대인들이 예수님과 선지자들을 죽였다는 데 대해서 두 가지를 말했습니다.
첫째는 유대인들에게 박해를 받고 있는 데살로가 교회 성도들에 대해서 바울이 깊은 동정심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to show the deep sympathy)
둘째는 유대인들의 박해로부터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애써서 지키고 있는 믿음의 가치(the value of their faith)를 깊이 인식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2. 반스(Barnes)는 유대인들이 우리들의 구주 예수님을 죽인 잔인한 자들임을 말함으로써,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참 자녀이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핍박을 받고 있다고 말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persecuting the true children of God.)
3. 유대인들이 우리를 쫓아냈다는 것은 비록 데살로니가에서 뿐만 아니라, 이고니온에서(행 14:1)와 루스드라에서도(행 14:6) 바울 일행을 쫓아낸 과거의 경험을 이야기 한 것입니다.
4. 마튜 폴(Matthew Poole)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만한 율법과 계명들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복음 전파와 사도들을 박해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유대인들은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they might think that therein they did God good service)
이것은 우리 예수님이 미리 예언하신 바대로입니다.
요한복음 16:2.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의 자녀들이 성도들을 핍박할 때,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4:12-14.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과 복음 전도 때문에 당하는 시련을 이상히 여기지 말고, 하나님께서 장차 복 주실 것으로 믿고, 즐거워하고 기뻐하십시오!
5. 유대인들이 모든 사람의 대적이 되었다는 데 대해서, 역사학자 타키투스(Tacitus)는 유대인들의 성격이 타민족에 대해서 아주 적대적(attitude of hostility and hatred)이라고 기록했습니다. (Histories, 5.5)
16절.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받게 함을 그들이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노하심이 끝까지 그들에게 임하였느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hindering us from speaking to the Gentiles so that they may be saved; with the result that they always fill up the measure of their sins. But wrath has come upon them to the utmost.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받게 함을 그들이 금하여
κωλυόντων ἡμᾶς τοῖς ἔθνεσιν λαλῆσαι, ἵνα σωθῶσιν,
hindering us the gentiles to speak, so that they might be saved
직역하면 ‘우리가 이방인들에게 말하여, 그들이 구원받게 되는 것을 금하여’란 뜻입니다.
‘말하여’(λαλῆσαι)는 부정과거 부정사형으로서(to speak) 우리가 복음을 틀림없이 확신있게 말하는 것을 가리키고, ‘그들이 구원받게 되는’(σωθῶσιν)은 부정과거 가정법 수동태로서(they might be saved ) 틀림없이 구원받게 되는 것을 가리키고, ‘금하여’(κωλυόντων)는 현재분사로서(hindering) 유대인들이 복음 전도를 현재도 계속 금하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εἰς τὸ ἀναπληρῶσαι αὐτῶν τὰς ἁμαρτίας πάντοτε.
so as the to fill up their the sins always
‘채우매’(ἀναπληρῶσαι)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fill up) 확실히 채우고 있는 틀림없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노하심이 끝까지 그들에게 임하였느니라
ἔφθασεν δὲ ἐπ’ αὐτοὺς ἡ ὀργὴ εἰς τέλος.
came now upon them the wrath to end
‘임하였느니라’(ἔφθασεν)는 부정과거로서(came) 과거에 분명하게 임한 틀림없는 사실을 기리킵니다.
1. 우리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여 구원받게 하는 것을 유대인들이 금했다는 것은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전도할 때 유대인들이 불량배들을 동원하여 복음 전도를 방해한 것(행 17:5)과, 바울이 베뢰아에서 전도할 때도 유대인들이 사람들을 동원하여 방해한 것(행 17:13)을 지적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습니다.
2. 유대인들이 죄를 채운다는 것을 엘리코트(Ellicott)는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의 죄악을 가득 차게 하셔서 마침내 하나님의 은혜에서 끊어버리시는 것을 가리킨다고 했습니다.(cutting” them off from all spiritual help)
3. ‘노하심이 끝까지 임한다’는 말씀에 대해서 반스(Barnes)는 이 데살로니가전서가 예루살렘 성 멸망(AD 70) 전 약 20년 전에 쓰여졌기 때문에, 바울의 이 말씀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두고 말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죄악의 잔이 가득 차면 하나님께 버림받는다는 사실을 말씀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the cup of their iniquity was full; that they were in fact abandoned by God;)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미리 예루살렘 성의 멸망을 내다보시고, 우셨습니다. (마 23:37. 눅 19:41)
유대인들의 죄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서는 다니엘이 예언했고(단 9:27) 우리 예수님이 예언하신 내용입니다(마 23:38).
그래서 예루살렘과 예루살렘 성전은 로마 군인들에 의해서 70년에 패망되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가 로마서 11장 1-36절에 예언한 대로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겸손히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의 교회로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their calling into the faith and church of Christ before the end of the world)
즉 유대인들도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해서 민족적으로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 11:30-32. 너희가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이와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그들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유대인들처럼 완악해지지 않고, 늘 겸손히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아버지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가 늘 충만하고, 복된 가정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