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개별성
김 훈 (소설가)
장모는 여러 가지 병이 겹쳐진 노환으로 2년쯤 입원해 있다가 세상을 떠났다.
장모의 병은 불가피한 자연현상이었다. 유언에 따라, 장모의 시신은 화장되었다.
소각로는 엘리베이터식이었다. 소각에 두 시간이 걸렸다. '소각 완료'라는 글자에 불이 켜지고 소각로 문짝이 열렸다.
가랑잎 같은 뼛조각 몇 개가 소각로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뼛조각들은 바람에 쓸리듯 계통이 없어 보였다. 어느 부위의 뼈인지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소각 완료'라는 글자는 추호의 모호성이 없었다. 그 글자는 운명의 선명한 모습을 단지 네 글자로 증거하고 있었다. 소각이 완료된 것이었다.
종말은 선명했고, 종말은 가벼웠다. 삶의 종말은 참혹하게도 명석했다. 그 흰 뼛조각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죽음의 보편성과 생명의 개별성에 관해서 생각했다. 생각은 전개되지 않았다. 나의 생각은 생명의 개별성에 걸려서 좌초되었다.
창세기 이래로, 인간은 죽음으로써 지구를 구해냈을 것이다.
다들 죽어 없어지지 않았다면, 또 다들 살 자리가 없어서 죽었을 터이다. 그래서 죽음이야말로 인간이 세계와 후손을 위해서 베푸는 가장 큰 보시이며 은혜일 것이다.
나는 산 자들의 그 어떤 위업도 그 죽음이 베푸는 은혜만은 못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산 자는 필멸인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는 해도 보편적 죽음이 개별적 죽음을 설명하거나 위로하지는 못한다.
소각로 바닥의 흰 뼈를 들여다보면서 나는 알았다.
인간은 보편적 죽음 속에서, 그 보편성과는 사소한 관련도 없이 혼자서 죽는 것이다. 모든 죽음은 끝끝내 개별적이다. 다들 죽지만 다들 혼자서 저 자신의 죽음을 죽어야 하는 것이다. 죽음은 언어화되지 않고 공유되지 않는다. 장모의 초상을 치르면서 나는 그 절대적인 개별성에 경악했다.
나이를 먹으니까 병원에 갈 일이 점점 많아진다. 눈도 침침하고 허리도 쑤신다. 지난 한 해 동안에도 병원에 가져다 준 돈이 수십만원이 넘는다. 나는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갈 때마다 소독약 냄새에 진저리친다. 소독약은 우월성의 냄새를 풍긴다.
병원은 환자보다 우월하다는 냄새를 소독약은 품어낸다. 소독약은 내 몸속의 병균을 적대시하고 경멸하는 듯한 냄새를 풍긴다. 병원은 늘 살균되어 있다. 젊은 의사는 나에게 '어디가 아프냐' 얼마나 아프냐'고 묻는다. 병은 나 자신의 생명속에서 발생한 실존적이고도 사적인 현상이다.
내 병은 나의 생명현상인 것이다. 나는 나의 병을 나 자신의 몸으로부터 분리시키지 못한다. 나는 나의 병을 객관화하지 못하고 대상화하지 못한다. 그러나 젊은 의사는 기어코 나의 병을 객관화하고 대상화하려고 덤빈다. 아마도 나의 병을 대상화시키지 않으면 의사는 나의 병에 손댈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옷을 치켜 올리고 의사에게 내 맨 몸을 내맡길 때, 나는 내 병을 남에게 맡겨야 하는 나의 이 속수무책을 슬퍼한다. 나의 병은 나의 개별적 생명현상인 것이다. 나는 젊은 의사에게 이 운명의 개별성을 설명할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