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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가야테마파크 가락국 역사소개 오류를 지적함 2015.08.30 현재
* 2015.08.30. 탐방. 오후, 흐림. / 위치는 김해의 인제대학 부근이다.
1. 갖 개장 된 직후라 아직 세련되지 않았고, 원래 가야사가 자료가 빈약하기 때문이기는 하나, 자료가 부족하고, 촬영 세트장 비슷하다는 딱딱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가야 역사에 관심이 많은 분들 꼭 들려서 참고할 만하다. 특히 허왕후 스토리관은 빼먹으면 안된다.
2. <허왕후 스토리관>에는 김해 본가야(가락국, 금관가야) 역사를 소개하면서 자료에 오류가 많았다. 1) 6번사진-금관가야 <허왕후> 의 이름은 허황옥이다. 본가야는 소국이어서 제국적 위용은 아니었으므로 황후라고 할 수없다. 굳이 <허황후>라고 격상해서 사용하고 싶으면, 적어도 같은 안내판 안에서는 통일이 돼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제목은 <허황후>이고 내용 소개에는 <허왕후>이니 일관성이 없다.
2) 8번사진-가락국 멸망 연대가 틀려있다. 562년 진흥왕 때라고 소개했다. 그건 고령의 대가야가 멸망한 연대이고 가락국 구형왕이 신라에 나라를 바친 멸망 연대는 532년 법흥왕 때이다.
3) 10번사진-가락국 세계표에서 김유신의 조부 김무력은 구형왕의 세째 아들이다. 그런데 그 표에는 손자처럼 표시되어 있다.
4) 10번사진- 가락국 세계표에서 김유신 장군 아우 이름이 김흥순으로 돼 있으나 김흠순(또는 일명 김흠춘)으로 고쳐야 한다.
5) 일반적으로 역사연대표상에서 가락국 건국은 42년이다. 그런데, 수로왕에 부여된 42~199년이라는 수자는 어떤 데는 수壽로 표시하고 어떤 데는 재위로 표시했다. 재위가 157년이란 말이 안된다. 태어나자마자 왕이 됐다는 얘기 이기도 하다. 42년에 태어나고 48년에 왕비를 맞았다면 7세에 15세의 처녀 허황옥을 맞아서 혼인했다는 얘기가 된다. 좀더 합리적인 연구와 설명이 필요하다.
3. 김수로왕 허황옥의 자손 김해 김씨 등이 700만명에 달한다. * 김수로왕 자손이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만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인천 이씨>도 후손임을 비로소 알게 됐다.
4. 허황옥이 김해로 들어온 길을 두 가닥으로 소개했다. 중국 보주를 거쳐 들어 온 길과 곧장 해로로 들어 온 길, 두 학설을 그대로 소개하였다.
5. 입장료를 내고 들어 가서, <철광산공연장>과 <가야무사어드벤처>라는 놀이장은 별도로 요금을 내야 한다.
6. 본 카페에 <지리산권> 게시판에 <산청 구형왕릉> 사진자료가 별도로 있으니 함께 참고 할 수있다.
1. 가야가 존재하여, 삼국시대는 삼국이 아니라 4국시대라고 해야 할 것이다.
2. 배롱나무와 볏짚지붕이 운치가 있다.
3. 조선시대 경복궁 근정전과 같은 기능이다. 제일 큰 건물이다. 당시는 이런 명칭이 아니었을 것인데, 임의로 붙였다.
4. 건너편 바위는 철광산 공연장이다.
5. 망산문, 김수로왕이 허왕후를 처음 맞이한 곳이 진해 용원 바닷가 망산도이다. 거기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 아이는 오늘 가락국 공주가 됐다. 옷을 빌려 준다.
6. 제목은 허황후라고 하고, 내용 설명에는 허왕후라고 써서 일관성이 없다. 여기에서는 최초불교도입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파사탑에서는 아니라고 해설했다.
7. 닭장안엔 닭이 있지만, 모기장 안에는 모기가 없다. 고령에는 고령가야가 없다는 말을 하고 싶다. 고령에는 대가야가 있었고, 고령가야는 함창에 있었다. 성산가야는 성주, 창녕에는 비화가야, 함안에는 아라가야, 고성에는 소가야. 김해에는 본가야 또는 금관가야(가락국).
8. 위의 것은 김해 가야테마파크의 것이고, 아래 것은 산청 구형왕릉에 있는 가락국 왕계도 자료이다. 약간씩 차이가 난다. 왕의 명칭은 추존하여 2중으로 돼 있다.
* 위의 자료에서 오류가 발견된다. 김해 가락국(본가야, 금관가야)의 멸망 연대는 532년 법흥왕 때인데. 562년 진흥왕 때 라고 소개하고 있다. 562년은 고령의 대가야가 신라에 멸망한 해이다. 이런 기본적인 것이 틀리면 어떻게 하나?
9. 산청 구형왕릉의 세계표
10. * 푸른 글씨는 필자가 보충한 것이다. 마지막 왕인 구형왕은 또 구해왕이라고도 칭한다. 김무력은 구해왕의 세째 아들이다. 그런데 이 표를 보면 아들이 아니라 손자로 나와 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구형왕과 무력 사이에 또 한 세대가 있는 것처럼 돼 있다. 이것은 오류다. 무력과 같은 라인에 제일왼쪽에 와서 무력의 큰형이 돼야 맞다. * 금관가야는 신라 법흥왕 때(532) 구형왕(구해왕)이 신라에 귀순하여 가락국 왕손들은 신라의 진골귀족으로 편입됐다. 구형왕은 나라를 바쳤지만. 신라로부터 대우를 받아 높은 벼슬과 자기 나라 지역을 식읍(세금을 받아 먹는 지역)으로 하사 받았다. * 세째아들 <무력=김무력>은 진흥왕 때 고구려 백제와 한강유역쟁탈전에서 큰 전공을 세워 신주도(고구려 백제로부터 빼앗은 한강유역 신편입지역) 행군 총관(지금의 도지사급 지방장관)이 됐고 뒤에 각간(정승, 장관급)이 됐다. 진흥왕이 처음 백제 성왕과 연합하여 고구려를 쳐서 한강상류지역을 차지하고 백제와 동맹을 깨고 성왕을 전사시키고, 한강하류지역까지 신라가 차지했다. 이 한강유역전의 전승에서 가장 핵심적인 지휘 장군이 바로 김무력이었다.
* 가락국 후손으로 가장 명망을 떨친 이가 태종무열왕의 처남 김유신 장군이다. 김유신은 각간 무력의 손자이고, 무열왕과 처남 매부간으로 삼국 통일의 주역이 됐다. 양산시 춘추원 입구에는 김유신의 부 김서현 장군을 기리는 비석이 있는 것을 봤다.
* 여기서 또 오류가 있다. 김흥순이 아니고 김흠순이다. 오타라고 보자. 김유신의 동생 김흠순도 유명한 장군이었다. 660년 신라가 백제를 멸망시킬 때, 마지막 전투에서의 일이다. 계백장군의 백제 결사대와 마지막 결판을 벌린 황산벌전투에서 형 김유신 장군, 품일 장군과 함께 출전하였는데, 앞서 4차례 패전한 후에 함께 출전한 아들 반굴을 홀로 나가 싸우게 하여 아들을 장렬하게 전사시켰고, 그 뒤에 품일 장군도 아들 관창을 홀로 나가 싸우게 하여 전사시키니, 비로소 사기가 오른 신라군사가 드디어 계백군을 격파시키고 백제를 멸할 수 있게 됐다.
11. 두마리의 물고기 문양이 있는 문화를 유추하여 그 뿌리를 찾은 곳이 인도의 아요디아 이고 김해김씨와 아요디아시가 2000년 자매결연을 맺었다.
12. 인도 아요디아시, 김해김씨 문중의 기념시설
13. 허왕후가 157세까지 살았다니 놀라운 일이다. 신비감을 더했을 것이다. 한 사진 안에 연대가 틀리면 어쩌노? 허왕후 33~189라 했잖아. 그래놓고 설명에는 188년에 죽으니~했네. 한해 정도야 음력 양력이 있으니 틀릴 수는 있지만 한 문장 안에서는 일치시켜 놔야지요.
14. 김수로왕 내외 표준영정이다. 아들 10명, 딸 2명을 생산. 아들중 7명은 외삼촌 장유화상(허왕후를 수행해 온 오빠)을 따라 불가에 출가했는데, 하동 칠불사에서 득도하여 7불이 되었다고 전한다. 열아들 가운데 둘은 부인의 성씨 허씨를 허락했다. 아비의 자식이지만, 어미의 자식임을 존중한 지혜로움이다.
15. 김수로 42~199/ 허왕후 33~189/ 여기서 허왕후가 9살 연상이었다는 얘기로 이해된다. 각각 157세. 158세를 생존했다니 솔직히 말해서 두분다 초장수 인물이다. 그건 신비감을 위해 과장됐을 가능성이 있다. 생몰 연대는 정확히 모른다는 말이 된다. * 일반적으로 역사연대표상에서 가락국 건국은 42년이다. 그런데, 수로왕에 부여된 42~199년이라는 수자는 어떤 데는 수壽로 표시하고 어떤 데는 재위로 표시했다. 재위가 157년이란 말이 안된다. 태어나자마자 왕이 됐다는 얘기다. 42년에 태어나고 48년에 왕비를 맞았다면 7세에 16세의 처녀 허황옥을 맞아서 혼인했다는 얘기가 된다. 좀더 합리적인 연구와 설명이 필요하다
16. 아름답다. 가락왕국의 왕실 문양같기도 한데? 좀더 알아봐야 하겠다. 가락국의 실체는 분명한데, 남은 사료가 빈약해서 안개 속에 싸인 가야제국의 역사이다.
17. 김해의 가야국 국명에 관하여 1) 구야국, 구야한국 ; 중국에서 쓴 3세기 진수의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조에는 <구야국>으로 나온다. 왜인조에는 <구야한국 狗邪韓國> 으로 칭했다. 현재 대한민국이라는 국호, 즉 <한국>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맥이 이 구야한국에도 닿아 있다. 2) 가락국 ; 일연의 <삼국유사> 오가야조에는 가락국/ 이 국명이 당시 일반적인 국명이다. 가락이란 말은 인도에서 물고기를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3) 대가야, 본가야 ; 일연의 <삼국유사> 오가야조에는 가락국 외도 대가야, 본가야라고도 칭했다. 가락국이 전기 가야제국의 맹주역할을 했으므로 가장 강력한 가락국이 대가야, 본가야로 칭해진 것이다. 그런데 후기에는 고령의 대가야가 맹주가 됐으므로 대가야는 이제 김해가 아니라 고령의 가야를 대가야로 칭하게 된 것이다. 전기의 대가야는 김해, 후기의 대가야는 고령. 4) 금관가야 ; 언제부터 사용했는지 분명하지 않다. 김부식의 <삼국사기> 지리지에 김해소경조에 구해왕이 신라에 항복하자 신라는 그 땅을 <금관군>으로 삼았다. 금관가야는 6가야를 구별하기 위해 이 금관군의 명칭에다가 가야라는 이름을 붙여 역사상 편의를 위해 가야가 망한 후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보면된다. 오늘날 국사에서는 가락국보다는 금관가야로 칭하여 국사를 정리하고 있다.
18. 왜 물고기가 두 마리인가. 사랑하는 두 사람을 물고기로 상징한 것으로 봐야한다.
19. * 여기 설명대로 분석해 보면, 허왕후가 33년에 태어났고 48년에 가락국에 왔다 했으니 15세의 처녀였다는 건 맞춰놨다. 힌두교의 나라였던 모양인데 오빠는 장유화상 불교 승려였다는 것이다. 서기 48년에 힌두교가 들어 올 번도 했구나싶지만 이 대목에서 인도에 힌두교가 언급되면 안된다.
* 4세기에 인도는 <찬드라 굽타> 라는 인물이 굽타왕조를 개창하여 4~6세기에 존속 번영했다. 이 때 인도 고전문화가 완성됐다. 그 중에 하나가 힌두교의 성립이다. 힌두교는 특정한 창시자도 없고, 통일적인 교의도, 의식도 없으며, 여러 종교를 종합한 것이다. 브라만교, 불교, 자이나교, 민간 토착신앙 등을 종합하여 6세기 경에 성립해서 지금까지 인도 종교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허왕후 시대인 1세기 경에 힌두교를 언급하면 안된다. 뭔가 잘못된 설명이다. 브라만교를 착각했을 것이다. 브라만교는 보편적 진리가 아니다. 철저한 계급차별적인 신앙과 문화였으므로.
* 인도 아요디아 도시는 고대에는 코살라국 수도였지만, 당시는 아유타국이었고 대월지의 침략으로 나라가 멸망해 그 유민인 허왕후 일족이 박해를 피해서 중국으로 이주했으며, 중국 보주를 거쳐서 한국에 들어왔거니 인도에서 난민선을 타고 해로로 가야에 들어왔다고 본다. 브라만교가 부활 강화되자 보편적 평등정신을 가진 불교도들이 박해를 받아 신천지로 이주해왔을 가능성도 있다. 공식적인 불교 전래시기인 372년 그 이전에 이미 가야에는 불교가 전래됐을 것이다. 김해의 장유라는 지명, 장유사, 은하사, 하동 칠불사 등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20. 푸른 부분이 육지, 아시아 대륙이다. 김해에 신어산이 있다. 물론 가야 물고기 두마리 문양의 문화에서 붙은 이름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신어사상문화의 뿌리가 중동지방 아시리아에서 시작되어 인도~중국~ 한국~일본에 널리 전파된 것을 볼 수 있어서 신기하다.
21. 수로왕릉에 그려진 물고기 두마리 신어문양
22. 허왕후 일행이 북인도 아요디아에서 육로로 또는 해로로 이동해온 경로를 추정하였다.
23. 용원의 망산도에 망산도 비가 있다. 이것은 최근에 세운 것이다.
24. 파사탑 ; 성명이 좀 소략하다. 1) 출전 : <삼국유사> 탑상편 2) 전설 ; 아유타국 공주가 어명을 받고 동쪽으로 오던중에 파신의 노여움을 받아 길이 막혔다. 돌아가서 부왕에게 호소하니 이 탑을 싣고가라 하여 무사히 가락국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3) 소재 ; 김해시 구산동 수로왕비릉 4) 원소재 ; 김해 호계사, 조선시대 김해부사 정현석이 허왕후가 아유타국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하여 허왕후릉으로 옮겼다. 5) 의미 ; <파사 婆娑>는 한자음이고, 범어로는 <바사>라고 발음된다. 바=有, 사=체諦 ; 일체의 지혜. 바사=일체의 지혜가 현증한다. 6) 모양 ; 안전항해를 도와준다는 믿음 때문에 부분적으로 많이 떼어가 원형이 망가졌다. 정확한 원형태 파사석탑 모습은 알 수없고, 많이 파손되어 현재는 기단에 돌 5개만 포개져 쌓여 있다.
[참고/ 비약 뉴스] 수로왕 시대에 신라에는 제5대왕 파사이사금이 있었다. 월성을 쌓아 궁실을 쌓았다. 오늘날과 아무 연관도 없을 것같은 파사왕의 업적이 오늘날 뉴스가 되고 있다. 요즘 경주 인왕동 소재 신라궁성지 월성지구가 발굴되고 있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현장을 방문(2015.9.7.)하여 격려하고 문화융성의 핵심거점사업이 되도록 해야한다고 격려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숙원사업으로 월성이 발굴되고 있었으나 1979년이후 중단됐던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대선공약)로 이제 내년부터 2025년까지 월성 등 8개 신라왕경 발굴 복원사업이 1조원의 예산으로 추진되고 있다. 경주 월성 신라왕궁이 발굴에 기초하여 제대로 복원되기를 희망해 본다. 그 월성궁이 파사이사금때 건설되었다.
25. 철광산 공연장 옥상에서 바라본 가야왕궁 재현장, 물론 왕궁이 있었던 장소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여기는 다만 적당한 장소를 활용한 공원이다.
26. 가야 건국시조 난생설화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이다. 하늘에서 알이 6개 내려왔고, 그 알은 김수로와 다른 5가야 건국시조가 됐다고 하는 것. 알이 내려온 장소는 <구지봉> 이라고 한다.
* 과거에 김해 국회의원을 지낸 김택수씨가 기증해서 구지봉에 김수로왕의 전설을 형상화한 조각작품이 있었다. 함에 담긴 알 여섯개 난생설화 조각이 있었는데, 흔적을 지워버린 김해시의 저의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신화는 신화대로 존중돼야한다. 여기도 알을 형상화 했지만 신화에 충실한 모습이 아니다.
* 우리나라 시조 대부분이 알에서 태어났다는 난생설화이다. 고구려 주몽, 신라 박혁거세, 신라 김알지(경주 김씨 시조), 신라 석탈해, 가야 김수로 등. 그런데 김수로는 여섯개 알중 하나이다. 독보적인 영웅이 아니라 다섯형제와 사이좋게 가야 땅을 나눠 다스렸다. 통일제국을 위해 내전을 치르지도 않았고, 평화를 지향했다.
27. 철광산 공연장. 가야에는 당시에 철광이 개발되어 제철 철기문화가 앞서나갔다. 수출하기도 했다.
29. 여기 거북은 구지봉 전설에 나오는 것이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9간 족장들이 구지가를 부르며 김수로왕이 하늘에서 알로 강림하는 것을 맞이했다는 건국전설.
29. 나무를 아름답게하는 빛의 힘
30. 산수국
31. 모조화가 아닌지 자세히 확인해 보았다.
32. 신어문
33. 가야시대 있었음직한 느와집
34. 온통 신어 이야기다.
35. 마면갑주, 철기가 발달하여 전력을 증강시켰다. 말에게도 얼굴과 몸통을 철갑옷으로 보호했다. 천하무적 철갑기사
36. 분수는 빈약하다. 제대로 만들어야지~
37. 철광산 공연장
38. 가야시대 김해지역에서 철광석이 채굴되어 철기문화의 꽃을 피웠다. * 현대에 와서 김해와 가까운 낙동강 건너 양산시 쪽에도 물금철광석 광산이 활발히 채굴되었다. 물금광산(행정구역상으로는 원동면 화제리 산 72번지)은 낙동강 밑으로 양산과 김해지역이 연결되며, 1962년부터 1991년까지 양질의 자철광, 적철광 등이 채굴되어 일본으로 수출되었다. * 광부 1천여명이 연간 20만톤을 채굴하며 성시를 이루었다. 당시 강원도 양양 다음으로 전국에서 두번째로 규모가 큰 철광산이었다. 깊이 500m, 길이 500m~2km의 갱도 9개, 갱도 총길이 18km였다. 점차 채산성이 떨어져 1991년 폐광되었지만 최근에 양산시에서는 이 폐철광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 나의 개인적으로는 고향친구 한 명이 광산에서 일하다가 두 번이나 골절상을 입어 부산대동병원에 장기 입원해서 문병을 다닌적이 있었다.
39. 망태기 때문에 사진버렸네. 반대편 어깨로 옮기고 다시 찍으셈. 이 테마공원은 2015년 4월 15일에 완성됐네요.
40. 정전은 왕의 집무실 처소
41. 그래 오늘은 이 포즈가 눈에 들어 오네.
42. 우산 많이 걸었네. 중국 관광지에도 우산장식이 많던데~ 모방했나?
43. 허왕후 스토리관, 여기를 지나칠 뻔 했는데, 잘 들어와봤네.
44. 허왕후 스토리관의 파사탑 모형 / 파사탑 ; 일체의 지혜가 담겨있는 탑, 못생기고 단순한 이 탑의 이름에 이런 큰 의미가 부여되어 있구나!
45. 사랑은 이미 약 37년전에 이루어졌고요~
46. 오늘은 다시 한번 확인하는 날이 된 거죠~ ㅎ ㅎ
47. 딸도 아버지를 닮아 사학과를 나와 역사유적 탐사에 즐겁게 따라 다닌다. 아직 미혼(34세)이니 시간도 낼 수있고~ 얘야 ! 안따라 다녀도 좋으니, 어서, 부모에게서 자립하거라!
48. 닭살 돋는 부부같지만~ 실은 오늘은 두번째 30대가 되기로 했어요.
49. 얼굴의 방향이 조금 맞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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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가야시대의 역사적 조명을 위한 김수로왕 및 허왕후 이야기등 가야테마파크 현장 잘보고 갑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