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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說 허준(許浚) 第38話>
- 이은성 지음 / 소설 동의보감
아들의 눈물 第九
그날 허준 일가에는 밤이 깊도록 웃음과 울음이 끊이지 않았다.
스승 몰래 의원 행세를 한 사실이 드러난 이상 더구나 제자들에겐 일호의 사정도 두지 않는 냉엄한 유의태로부터 아들이 파문을 당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가슴 죄던 어머니와 아내는 허준으로부터
스승 유의태가 자기가 의원 행세한 행위 따위는 한마디 문책도 없었다는 것과 오히려 자기가 병자들에게
적어준 처방전의 내용을 보고 격려의 말을 하시더라는 것과 또 스승이 물어오는 난문에 막힘없이 모두 대답하여 스승의 눈속에 괸 흡족한 눈빛을 보았다는 얘기를 하자 감격한 손씨가 와락 아들의 손을 잡고 울음을 울었다.
그후 자기들 방으로 돌아온 뒤 아내 또한 남편에게 그 유의태와 대좌했던 장면들을 재삼재사 캐물으며 일면 미소짓고 일면 눈물지었다.
"지난 세월이 헛되지 않았습니다. 전화위복이란 말이 있다더니 정말 정말 감축하옵니다."
허준이 그 아내의 눈속에 일렁이는 눈물을 보며 삯바느질로 구덕살이 배긴 작은 손을 잡아주었다.
"그 격려의 말씀은 스승님이 문도들 아무에게나 내리는 그런 흔한 것이라곤 생각지 않소만, 하나."
"무엇이옵니까?"
"생각하면 명색이 가장인 내가 6, 7년씩 가사를 돌봄이 없이 마음놓고 의서에 파묻히고 그 집 문도로서의 일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님도 어머님이시려니와 어렵사리 집안을 건사해준 당신의 덕인 줄 아오."
"저로서는 고생이라 여긴 적 없습니다. 어머님에서야 몸이 성치 않으신 날에도 몸 괴로우신 것 애써 감추시며 추우나 더우나 떡목판 이고 다니시며 저희가 짐작 못할 고생들이 오죽하셨을까요."
"하지만 저야 집안에서 꼼지락거리며 침선에나 매달린 일뿐인데 어찌 어머님 고생과 견주옵니까."
허준의 코끝이 찡 울려왔다.
그 동안 어머니에 대해서 그리고 아내에 얽힌 사연을 보고도 못본 체 지나쳐야 했던 가난에 전 일들이 새삼 소리내어 눈앞을 어른거리고 있었다.
지난해 어느날이던가 ...
10년 작정하고 유의태의 문하에 버터보리라 챘으나 3, 5년 거들떠보아 주지 않는 유의태에게 원망을 키우며 의원에도 나가지 않고 병을 칭탁해 자기 방에 누워
있었던 적이 있었다.
마침 아내는 품을 받은 통지기네 딸 혼수감 옷들을 끝내고 그걸 전해주러 가 집에는 여섯 살박이 겸이 녀석뿐이었다.
그 아들 또한 근래 웃음을 잃은 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천자문을 웅얼거리고 있다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집안은 8월의 늦더위에 매미소리만 소란스러웠다.
그때 문득 집안에 인기척을 느끼고 허준이 바깥마당을 나갔을 때였다.
그 허준의 눈에 뛴 것은 행상에서 돌아온 어머니가 장독대 앞에서 냉수에 간장을 풀어 요기삼아 마시고 있는 모습이었다.
허준은 그때의 그 처절했던 심정을 잊지 못했다.
어른도 아이도 으레 점심은 거르는 생활이었다. 또 저녁은 죽을 쑤어 먹을 수밖에 더 이상의 호사는 있을 수 없도록 떡 행상과 삯바느질로 꾸리는 살림은 셈이 펼 날이 없었다.
꿈이 있는 어른들에게는 감당할수 있는 고생이라 할지라도 여섯 살박이 아들과 세 살짜리 숙영은 날로 계속되는 조식과 허기에 물배만 늘어 앙상한 어깻죽지에 배만 빵그라니 튀어나온 처참한 몰골이 되어 눈비가 쏟아져 할머니가 떡을 다 못 팔고. 돌아오시기를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
한 뼘 곡식을 심을 땅뙈기가 있는 것도 아니요 아내의 삯바느질품인들 달이면 달마다 있는 것도 아니었다.
크지도 않은 고을에 지체 있는 집안에서는 며느리며 딸네들이 웬만한 옷은 지어 입기 마련이고 아내에게 삯바느질을 시켜오는 집들은 한정돼 있었다.
하여 허준에게는 비밀로 하는 눈치였으나 아내는 언제부턴가 잔칫집을 찾아가 음식 만드는 것을 거들며 남은 음식들을 품삯 대신 싸오곤 했고, 별식을 기다리는 아이들은 때도 없이 제 어미에게 잔칫집에 가길 졸랐다.
그러나 아이들이 기다리는 잔칫집도 날이면 날마다 달이면 달마다 있을 리 없었고 잔칫집이라 한들 타지에서 흘러온 허준 일가에게 다정히 불러주는 것도 아니었다.
'삯바느질집' '떡장수집'으로 불리면서 아내는 남편의 눈을 피해 그 여린 몸으로 농사철의 몸품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내는 반가의 여자였다. 지난날 양반의 딸이었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만 가족의 생계를 위해선 몸을 사리지 않고 그 노동을 견디곤 했다.
그런 그녀의 체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필사적인 몸짓이었고 남편을 위해서라는 인고의 받침대가 없었던들 단 하루도 견디기 어려운 나날이었다.
그 증거로 어느날인간 아내는 그 체력의 한계의 갈림길에서 새벽 물 길러 갔다 돌아오는 길에 그녀가 그토록 아끼는 물동이와 함께 쓰러져 반 식경이나
정신을 되살리지 못했던 사건이 있었던 것도 겸이
녀석의 고자질로 알게 된 바였다.
그러나 허준은 그런 밤이면 아내를 조용히 쓸어안았을 뿐 힘든 일을 하지 말아라 어쩌라 말리려곤 않았다.
그런 아내의 고생, 어머니의 고생을 지켜보면서 자칫 자기 또한 무너지려는 의원으로서 입지의 의지를 버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또 허준은 그 아내가 겪은 더 심한 굴욕에 대해서도 들은 바가 있었다. 누가 퍼뜨린 악담인지 몰랐으나 이웃 마을의 여자들은 저희들과 언동이 틀리는 아내를 두고 평안도 어디 역참에서 공무로 오가는 관리들의 잠자리 시중을 들던 관기 출신의 여자노라 소문을 냈다.
그건 화장기 없고 해져 기운 옷을 입어도 아름다운 그녀의 미모를 질시하는 누군가의 악의에 찬 상상일 테지만 아무튼 아내에게 얽힌 그 터무니없는 풍문으로 하여 공연히 고개를 돌리고 침을 내뱉는 사내며 또는
불쑥 길을 가로막고 더럽고 허잡스러운 말로 유혹의 말을 던져오는 사내 들도 있음을, 그건 같은 유의태 문하에 막내로 입문한 상화가 우연히 그런 장면을 목격했다는 귀띔으로 알고 있었다.
참고 있던 허준도 그 소문만은 견딜 수가 없어 그날 밤 아내를 잡고 그 자가 어디 사는 누군가고 다그쳤으나 아내는 조용히 미소지었을 뿐이었다.
어쨌든 그런 소문 이후 아내는 삽짝 밖을 나설 때는 늘 으레 숙영이를 업거나 겸이를 앞장세워 데리고 다니는 눈물겨운 노력을 하는 걸 보았고 그런 세상 인심을 향해 분노와 절망을 느끼는 건 허준 쪽이었고 정작 아내는 세상을 향해 꾸준히 새로운 희망을 찾아내고 있었다.
그 아내의 새 희망을 아내와 아들의 대화에서 보고 가슴 뜨끔한 적이 있었다.
그것도 지난해 여름의 일이었다.
세상은 날이 가물어 파종한 논농사를 온통 밭작물로 바꾸는 등 근년에 없던 흉년이 예상되어 인심이 소연했다.
마을 생기고 한번도 마른 적이 없다던 마을 앞 공동우물도 바닥을 드러냈고 식수를 찾아 사람들은 읍내에서 동으로 5리 떨어진 수다곡까지 이른 새벽 열을 지어 물동이의 행렬을 짓곤 했다.
식수까지 말려버린 하늘을 향해 성급한 사람들은 천지개벽이라며 두려워했다. 그런 혹독한 가뭄 끝에 장마가 갑자기 닥쳤다.
앞내에 물이 넘치고 제방이 무너지고 산사태가 나고 갑자기 세상은 또 물난리에 허우적거리며 하늘을 원망했다. 하나 그런 어른들의 세상에 끼여들 이유도
없는 아이들은 모처럼 앞내를 가득 메우며 흘러가는 흙탕물 속에서 미꾸라지를 잡네 고기를 잡네 하여 개울섶이 시끌벅적했다.
그 동무들의 고기잡이에 끼여 겸이 녀석도 풀섶을 밟아대며 희희낙락하는 중에 방해가 된다며 물방앗간집 절름발이 머슴놈의 우악스런 손찌검을 맞고 개울물 속에 나자빠진 것이다.
흙탕물을 켜고 일어난 겸이는 한바탕 울음을 터뜨리고도 분이 남아 이미 쳐다보지도 않는 그 머슴을 향해 '별 진 잘 숙'할 그의 불구의 다리를 놀려대며 내뺐고 자기의 병신 된 몸을 놀림을 받자 머슴은 반두를 내던지고
그 한주먹거리도 안되는 겸이를 향해 쫓았고 그런 시각에야 아들이 안 보이는 걸 발견한 아내가 물이
불어난 냇가로 쫓아나오다가 마악 도망쳐오는 아들을 쓸어안은 것이다.
토박이 동리 사람들에게야 이놈 저놈 하대를 받는 데 익숙해 있어도 그 머슴의 눈에 비치는 타관서 흘러온 떡장수집 삯바늘집 식구 따위는 별것 아닌 존재들이었다.
가로막는 허준의 아내에게 되알진 욕을 내뱉고 돌아서 갔고 그러자 갑자기 겸이가 울움을 터뜨리며 떼를 쓰는 것이었다.
난 저놈들과 놀기 싫으니 나도 고기 잡는 그물을 사주든가 또 그 눈에는 그게 무척이나 부러웠던 듯 동리 몇 집 아이들의 경우처럼 자기도 소 먹이는 일을 하고 싶으니 송아지 한 마리를 사내라는 억지였다.
그 아들을 달래며 집안으로 들어서며 하던 아내의 말을 허준은 그때 들었었다.
"조금만 기다리거라. 고기 잡고 소먹이는 일보다 훨씬 재미난 데로 널 보내줄 테니." 했고.
"그곳이 어디요?" 하고 아들이 묻자 아내는 희망에
차서 아들의 귓가에 들려주었다.
"서당이야. 집안 형편 조금만 피면 꼭 보내주려 언제 적부터 마음먹고 있었던걸."
울음을 뚝 그친 겸이가 희망에 반짝대는 눈을 하고 소리치듯 되물었다.
"참말 서당에 보내주십니까, 참말이지요."
말끝에 아버지를 발견한 아들이 그 아버지를 향해서도 다짐받으려 했다.
"아버님, 저를 정말 서당에 보내주시는 거지요 예, 아버님!
지난날의 그 기억들.
그때 허준은 서당에 보내줄 것을 거듭거듭 조르는
여섯 살박이 아들에게 대답도 않았고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날 이후 겸이 녀석은 제가 멀잖아 양반집 아들처럼 고운 옷 입고 서당에 다닐 것이라고 확신한 것 같았으며 그래서 이를 마을의 제 또래 동무들에게 자랑스레 선전하고 다녔다.
그러나 그 마을 동무들은 그런 겸이를 오히려 이단시하여 겸이를 더욱 따돌려놓는 결과를 낳았다.
그 외로운 겸이가 맨처음 다닌 서당은 윗마을 제법 양반댁 기와집이 서너 채 몰려 있는 밤골이라는 동리였다.
그 계기는 그 마을의 제일 큰 어른인 박초시댁 노마님이 자기의 두루마기를 삯바느질했던 허준의 아내에게 지어온 옷에 대한 솜씨 칭찬을 해준 후 마침 데리고 온 숙영이의 마른버짐이 핀 얼굴을 가엾이 보았던지 아랫것들 시켜 어린것이 군것질할 걸 내오게 한 후 아내에게 이것저것 정다운 말을 걸어준 것이다.
이에 아까부터 사랑 쪽에서 동리 아이들이 글 읽는 소리에 정신을 팔고 있던 아내가 노마님의 후덕한 인정에 기대어 자기의 아이도 오가며 글을 배울 수 없겠는지를 간청드린 것이다.
이에 노마님의 바깥어른인 평생 초시(일명 향시로 복시에 응시할 자격자를 뽑는 과거의 제1차 시험)로 그쳤던 늙은 영감마님이 파적삼아 문중의 아이들을 모아 글을 가르치는 서당 아닌 서당에 겸이가 끼인 것이다.
하나 '서당'에 다니는 소원을 이루었으나 처음 의기양양 오가던 겸이는 점점 열성이 식더니 마침내 다른 서당으로 보내주길 조르기 시작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서당 아이들이 어느새 소문이 나 떡장수의 아들이라는 겸이를 얕잡아 툭하면 쥐어박고 신발짝을 감추는 등 괴롭힌다는 것이었다.
이에 아내는 심술맞은 서당아이들을 달래는 방편이
될까 하여 아이들 숫자대로 엿을 사서 겸이에게 들려보내 서로 친구가 되도록 달래도 보고 손씨는 손씨대로 매일 서당에까지 그 손자를 데리고 나가 아이들과 나눠먹으라며 떡을 싸주기도 했으나 그로서 겸이의 외로움은 해결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녀석들은 겸이가 할머니나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나타나기를 대문 안에서부터 기다렸다가 떡을
더 가져오너라, 오늘은 왜 엿을 안 가져왔느냐며 윽박질렀다.
결국 그 등쌀 속에서 겸이의 코가 터지고 옷이 찢기며 혹은 짚신 한쪽을 잃어버린 채 도망쳐오는 빈도가 많아지며 겸이의 짧은 서당생활은 끝나버린 것이다.
어머니도 아내도 아들에게 있은 그 사건들을 굳이 허준에게 고하지 않았으나 서당에 다니노라 우쭐거리던 아들이 어느날서부턴가 시무룩하니 집안에 남아 턱도 없이 동생을 울리고 동리 상것 아이들과도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것을 보면서 어느날 허준은 아들을
데리고 함께 소세하러 간 개울가에서 그 '서당사건'을 알았었다. 그 울먹이는 아들의 슬픔을 허준은 달래지 않았다.
달래서 될 일도 아니었다.
글을 배워도 소용이 없는 신분인 것을 여섯 살짜리 아들에게 이해시킬 방법은 없었다. 또 서당에서 의기투합하는 친구를 사귄다 한들 그 우정 또한 서로의 신분이 달라 중도 이별로 끝날 수밖에 없는 숙명을 여섯 살짜리 어린 아들이 이해할 리가 없었다.
그날 허준이 그 아들의 눈물을 그치게 한 말은 언젠가 집에 외양간도 짓고 꼭 송아지 한 마리를 사주리라는 약속이었다.
그리고 좋아 깡충거리며 집으로 달려가는 아들의 조그마한 뒷모습을 보면서 그 갯가 수양버들에 머리를 처박고 허준이 혼자 황소 같은 울음을 터뜨린 건 아들도 아내도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이미 새벽이었다.
허준이 비몽사몽간에 안광익의 안광이 뇌리에 보여
잠을 깼다.
첫닭이 우는 걸로 보아 이제 의원으로 돌아가야 할 시각이었다. 병사에 있는 병자들의 용태를 살피는 건 임오근의 소임이었으나 간을 앓는 병자 중 그 병세의 추이를 허준이 개인적으로 관심할 이가 있기도 했고
밝은 날 안광익의 모습을 더 좀 자세히 보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그때 잠든 줄 알았던 아내가 나직이 말을 걸어왔다.
"왜 잠을 이루지 못하시옵니까?"
"난 한숨 잤소. 왜 깼소?"
아내가 허준의 맨가슴 속에서 머리카락을 쓸었다.
"제가 한껏 게으른 여자입지요?"
"무슨 소리요? 당신이 왜 게으르단 말이오."
"남의 아내가 되어 새벽 머리 헝클어진 모습을 보이는
건 서방님께 미움받는 일이라는데 이러고 있는 걸 보면요."
허준이 어둠 속에서 미소지었다.
'부스러지지 않는 여자 ...'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된 오늘까지도 남편의 시선 앞에서 한번도 방만한 태도를 보이지 않으려는 아내였다.
부부생활 7년 ... 그 세월을 여자와 남자로 살면서 알몸이 되어 서로를 탐하는 적이 많았다. 그러나 아내는 서로의 체위가 갈라진 후에도 남편의 눈앞으로 불쑥불쑥 알몸을 내비치는 행동은 삼갔다. 그대로 그렇게 남편의 가슴에 안겨 남편의 숨이 가라앉고 잠이 든 걸 확인한 후에야 부끄러움 담아 몸을 일으켜 옷을 입고 다시
남편의 곁에 눕곤 했다.
그런 깍듯한 몸가짐새는 시어머니의 봉양에서도
그랬다.
시어머니가 아무리 겸상을 종용해도 자신의 밥그릇은
상 아래 놓고 가족들의 식사가 끝나기까지 시중드는 것을 지켰다.
밑반찬 두어 가지, 그리곤 으레 나물국과 죽 혹은 잡곡밥인, 분주할 것 하나도 없는 식사인데도 그녀는 그녀가 배운 여자의 태도에서 벗어나려 않았다.
'부스러지지 않는 여자 ...'
허준은 그 아내를 사랑했다. 그런 비유를 하면서도 허준은 아이들보다 아내의 건강을 더욱 염려했다.
아내가 입을 열었다.
"잠이 다 깨셨습니까?"
"곧 가봐야지, 왜 그러오?"
"가시기 전 한가지 의논할 일이 있습니다."
"하오."
"겸이를 다시 서당에 보내려고 합니다."
" ...?"
서당이라는 말에서부터 허준의 가슴이 급속히 얼어
붙기 시작했다.
대답없는 남편에게 아내가 속삭였다.
"겸이의 나이 이젠 일곱 살올시다."
허준은 그래도 대답하지 않았다.
'이 여잔 모르리라. 겸이의 서당 문제로 하여 냇가 버들가지에 이마를 처박고 통곡해 울어야 했던
내 심정을 ...'
"고산성 가는 쪽 지릴 잘 아시옵니까?"
"잘은 모르나 몇 번 오가긴 한 길이오. 한데?"
"거기 하풍이라는 마을에 조그만 서당이 있답니다. 양반자제들이 모이는 그런 격이 높은 서당은 아니고
중인 지체의 집 아이들을 모아 글을 가르치는데 학자는
한 철에 보리 너 말을 내면 된다 합니다."
허준이 모두 듣기 전에 몸을 일으켰다. 좀은 이른 시각이나 의원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말문이 막힐 듯하던 아내가 마저 얘기를 했다.
"고산성이래야 겨우 5리 길올시다. 크게 먼 길도 아니오니 허락해주소서."
아내는 환하게 웃으려 하고 있었다.
허준이 대님을 매다가 돌아보았다.
"새삼 왜 서당 얘기가 나와야 하오?"
"새삼이라니요?"
"전 자나깨나 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난 안 했소."
"지체있는 집안에서는 아이들 나이 다섯 살에 접어들 때면 벌써 천자문을 가르칩니다. 하나 경이의 나이 이미 ..."
"맞소. 하나 그건 나 같은 신분에서 태어난 자식의 얘기가 아니라 당신 말대로 지체가 있는 집안의 풍속이겠지."
아내는 곧 남편의 말귀를 알아들은 듯했다.
슬픈 얼굴이 되었다.
"보내지 않도록 하오." 하고 허준이 말했다.
"만일 서당에 보냈다가 겸이가 그저 문리나 트고 기성명하는데 그치지 않고 참말 공부에 재미를 들이면 어쩔 셈이오?"
" ... 압니다. 그러나!"
"서운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오. 어차피 우리 신분으로는 글을 많이 배울수록 종당에는 눈물을 더 짜야 돼. 그냥 눈물도 아니고 피눈물을 말이오."
"그런 경험은 나 하나로 됐잖소. 자식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지 않소."
"서방님 말씀은 짐작합니다. 하지만 자식들에게 눈은 터주어야 하지 않습니까."
"눈은 지금 저대로면 충분하오 ... 겸이는 지금 잘 알고 있어. 배가 고파도 하인이 먹을 걸 대령하지도 않으며 철따라 새옷을 해입는 처지도 아니며 아비가 세상을 향해 호령하는 벼슬아치가 아니라는 것도 ..."
"저대로 두면 까막눈올시다. 자식을 까막눈으로 키우려 하시오니까!"
"그것이 자식의 행복이라고 생각하면 그렇소."
"전 싫습니다."
"싫다 좋다의 문제가 아니라지 않소! 보낼 생각 마오."
"전 보내겠습니다."
뜻밖에 아내의 눈에 고집이 비쳤다. 마저 대님을 매던 허준의 눈도 거칠게 그 아내를 쏘아보았다.
"철마다 보리 너 말, 그건 제가 밥을 굶어서라도 구변할 것이옵니다. 전 제 자식을 까막눈에 무지렁이로 키우진 않겠습니다. 어머님께는 제가 따로 허락을 받겠습니다."
"난 허락 안 해!"
"자식에게 천자문을 가르치려는 것이 어찌 욕심이오니까?"
"정녕 천자문까지라고 누가 장담하리! 만일 잘못
서당에 보냈다가 천자문 뗀 후 동몽선습도 읽으려 하고 명심보감도 떼려 하고 논어, 시경도 읽고자 하면 그건 자식을 죽이는 길이오."
"그렇기로 ..."
아내의 눈 속에 눈물이 일렁이고 있었다.
허준의 뇌리에는 과거 보러 가는 친구들을 떠나보내고 저 용천 군서산 삭풍 불어치던 봉수대에서 밤새워 방황하던 아픔들이 생생히 되살아나고 있었다.
허준이 치받아오는 뜨거운 숨을 한숨처럼 깨물며 일어섰다.
"자식에 대해 욕심내지 마오. 기대도 말고 ... 우리 상것들에겐 금지된 일인즉."
아내가 방바닥에 울음과 함께 무너졌다.
방을 나온 허준이 그 아내에게 말했다.
"될성부르지도 않는 일은 미리 끊어야 해.
그것이 겸이를 위한 우리의 사랑이오."
아내의 오열을 뒤로 허준은 이슬이 반짝이는 새벽길로 조용히 나섰다.
계속 ~~
著者: 放送作家 故李恩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