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애기봉 통일전망대다. 전망대 교육관에서 바라본 북녘땅. 그곳도 우리 땅임이 분명했다. 앞쪽으로 흐르는 강물이나 뒤로 펼쳐지고 있는 들과 산의 모습이 이곳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잔뜩 흐린 하늘에는 금방이라도 비가 올듯했으나 용하게 참고 있다. 갈 수는 없고 바라보기만 할 수 있는 우리 땅. 좀 더 분명하게 확인하기 위해 이미 설치된 망원경에 오백 원짜리 동전을 넣는다. 사용 능력의 부족으로 처음에는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불편을 느꼈다. 갑자기 눈앞까지 확 다가오는 북녘땅. 만지고 싶어 손을 뻗었다. 손에 닿는 것은 허공뿐이다. 헛손질만 했다.
애기봉 관리사무소에서 얻은 리플릿에는 ‘축복의 땅, 살기 좋은 김포’라는 문구 밑에 ‘북녘땅이 한눈에…’라는 말이 있다. 바라보고 있는 저 땅도 김포처럼 축복받아 살기 좋은 땅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짙은 안갯속에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산이 ‘송악산’이다. 저 산 밑이 옛 고려의 도읍지 개성이 아닌가. 가끔 텔레비전에서 보는 개성공단의 공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북한 동포가 생각난다. 그들의 모습 어디에 우리와 다른 눈·코·입을 찾을 수 있는가.
선전용 위장마을도 보인다. 북한과 우리의 경제 수준의 차를 알고 있는 일행은 모두 웃을 뿐이다. 1982년도에 북한 인민의 행복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조성한 마을이다. 어느 중소도시의 변두리보다 못한 모습을 갖추고 있는 선전용 마을로는 게임이 안 된다. 오늘도 아무것도 모르고 속으며 사는 북한 인민이 안타깝다.
희미하게 보이는 산자락에 토끼길 같은 것이 있다. 대전차장애물이란다. 높이 4m의 석축으로 전쟁이라도 일어난다면 남한의 대전차가 북한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만든 방어선이다. 앞으로의 전쟁에는 6·25 때와 같은 무기가 아니라 최첨단 무기로 싸울 텐데 조금은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형식이든 이 땅에서는 절대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위정자를 위해 국민이 희생되는 전쟁은 있을 수 없다. 역사 속의 전쟁은 모두 지배자의 몫이었으나 희생은 언제나 백성이 당하지 않았는가.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썼다는 애기봉(愛妓峰)이란 표지석 밑에는 병자호란 때 평양감사와 애첩인 애기(愛妓)와의 슬픈 일화가 서려 있는 곳이란다. 사무소 부소장의 설명으로는 호란이 일어나자 식솔들과 애기는 먼저 남으로 피난을 왔으나 평양 감사는 미처 오지 못했다. 애기는 여기에 혼자 남아 감사를 기다리다 죽었다. 유언으로 임이 오는 것을 꼭 봐야 하니 무덤에 세워서 묻어 달라고 해 그렇게 했다고 한다.
병자호란은 조선 인조 때 청나라가 군신 관계를 요구해 온 것을 거절함으로써 일어난 전쟁이다. 결국, 청 태종의 이십만 대군을 이기지 못해 인조가 삼전도(三田渡)에서 항복하고 청나라에 신(臣)의 예를 행하기로 한, 굴욕적인 화약(和約)을 맺은 전쟁이다.
아픈 역사의 이야기를 숨기고 있는 애기봉. 네 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와 바라보고 있는 북녘땅. 겉모습에서 차이를 찾는다면 남쪽의 산하는 푸른 숲으로 덮여 있는데 북쪽은 민둥산의 모습을 하고 있다. 없는 수목이야 다시 심어 기르면 될 일이지만 우리 남쪽을 적으로 생각하는 북한 위정자들의 시각은 무엇으로 어떻게 변화를 시킬 수 있을까?
가슴이 답답하다. 여기서 눈으로 확인은 할 수 없으나 저곳 북녘땅에 사는 동포들의 삶을 상상하니 흐린 날씨만큼이나 을씨년스럽다. 한 번 더 망원경에 500원짜리 동전을 넣고 바라본다. 흐릿한 안갯속에 움직이고 있는 사람의 형체다. 가을의 수확을 기대하며 들일하는 모습 같기도 하고 북한의 병사 같기도 하다. 그는 우리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나타난 것일까? ‘내 여기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 남쪽에 있는 여러분 부러우면 북쪽의 정치 구조에 동의하고, 동조해 주기를 바란다’고 허수아비 같은 삶을 과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가 누구든 우리 동포임은 틀림없다. 우리 함께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더 자세한 모습을 보고 싶어 눈에 힘을 주고 있는데 동전 오백 원의 효능이 다 했는지 갑자기 북녘 산천이 멀리 달아난다. ♡ (2012)
첫댓글 겉 모습은 같으나 속살은 가늠도 안될 만큼 차이가 크겠죠. 언젠가는 같이 부데낄 날을 염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