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에 지친 분들에게)
“밭에 갔더니 작물은 안 보이고, 풀만 보여요! 어쩌죠?”
큰 뜻을 품고 자연농을 시작했지만 이어 못하고 접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그 까닭은 무엇일까? 열에 일여덟은 풀 때문이 아닐까 싶다. 풀!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하다. 그런 분들을 위해 이 글을 쓴다.
풀을 없애기에는 물론 경운이 가장 좋다. 갈면 순식간에 풀이 자취를 감춘다. 제초제도 좋다. 비닐 피복도 좋은 방법이다. 그런데 자연농에서는 그 셋 중 그 어느 것도 바른 길이라 여기지 않는다. 자연농에서는 그러면 어떻게 하나?
톱낫으로 벤다. 호미가 아니다. 톱낫이다. 뽑지 않고 벤다. 벤 풀은 그 자리에 펴놓는다. 그러므로 자연농의 논밭은 벌거숭이 땅이 없다. 모두 풀에 덮여 있다. 벌거숭이 땅이 없는 것, 이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것이 무비료, 그리고 무농약의 세계를 여는 열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위에서 다음 글을 읽으시면 되겠다.
1. 줄에 맞추고, 같은 폭으로
씨앗을 뿌리거나 모를 심을 때 못줄을 치고 못줄에 맞춰 심는다. 포기 간격도 같게, 곧 등거리로 심는다. 왜 그런가?
한여름에는 풀이 빠르게 자란다. 하루에 삼사 센티, 어떤 풀은 사오 센티 이상도 자란다. 밭에 자주 못 가다 어느 날 가보면 작물이 잘 안 보이는데, 그런 밭 풀베기를 할 때 도움이 된다. 줄을 맞춰 심은 것이 말이다. 등거리로, 곧 같은 폭으로 심은 것이 말이다.
어디 있는지 짐작이 가기 때문이다. 작물을 찾기 쉬우면 그만큼 풀을 베기 쉽다. 시간도 적게 든다. 작물을 자르는 일도 없거나 줄어든다.
그 정도가 아닐 때도, 곧 작물이 잘 보일 때도 같다. 역시 줄을 맞춰 등거리로 심은 쪽이 풀을 베는 데 도움이 된다. 시간을 줄일 수 있다.
2. 가까운 곳과 먼 곳
작물 주변의 풀은 성장점(숨은 눈) 아래를 잘라준다. 작물과 때에 따라 다르지만, 작물을 중심으로 한 뼘 이상 그렇게 한다. 꼼꼼하게, 정성껏 자른다. 그 바깥은 성장점 위도 좋다. 성장점 위도 좋다면 풀 베기가 훨씬 쉬워진다. 풀 베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3. 벤 풀은 포기 둘레에 잘 펴놓는다
벤 풀은 특히 작물 둘레에 고르게 잘 펴놓는다. 작물 주변에는 풀이 없는 게 좋다. 풀이 있으면 그 풀이 작물의 성장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또 벤 풀 덮기는 풀이 나는 것을 막아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때 주의할 점이 있다. 벤 풀을 놓을 때, 작물의 줄기나 잎의 성장을 방해하지 않도록 놓아야 한다.
4. 자주 가서 본다
농부는 하루 한 번은 논과 밭에 간다. 가서 논밭 구석구석을 둘러본다. 주로 아침에 간다. 이때 일반 농부는 낫이나 삽을 들고 가고, 자연농 농부인 개구리는 톱낫을 들고 간다.
가서 보면 그날 할 일이 보인다. 아침마다 돌아보면 때를 놓치지 않을 수 있다. 혹은 이런 일도 있다. 바로 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잠깐 시간을 내면 될 일이다. 그렇다. 그렇게 가래로 막을 일을 손으로 막을 수 있다. 톱낫은 그때 크게 도움이 된다.
텃밭 분양을 받았거나 논밭이 멀리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럴 때도 자주 가 봐야 한다. 작물은 저 혼자서는 자라지 못한다. 일꾼의 손이 필요하다. 가서 보고, 돌볼 수밖에 없다.
5. 톱낫질 솜씨 키우기
자급자족 규모라면 톱낫 하나로 가능한데, 그러자면 역시 톱낫을 잘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솜씨를 길러야 한다. 풀을 정확하면서도 빨리 자를 수 있는 기술 말이다. 솜씨에 따라서 시간 차이가 많이 난다.
6. 풀을 벤 뒤
벤 풀은 뿌리가 위로 가도록 뒤집어 놓는다. 비가 많은 여름에는 줄기만 닿아도 그곳에서 뿌리를 뻗으며 다시 자라는 풀이 적지 않다. 그리고 잘라낸 풀 뿌리에 흙이 붙어 있다면 톱낫 등을 써서 두드려 털어낸다. 흙이 남아 있으면 그 흙을 바탕으로 다시 자라거나 반생반사 상태로 오래 간다.
7. 여러해살이풀은 뿌리까지
풀에는 한 해 살이 풀, 한두 해 살이 풀, 그리고 여러해살이풀이 있다. 이 가운데 여러해살이풀은 성장점 아래만을 베어서는 안 된다. 뿌리까지 뽑아내야 한다. 성장점 아래를 베어도 뿌리에서 싹을 내며 다시 자라기 때문이다. 그런 풀은 삽과 같은 농기구를 써서 통째로 들어낸다.
논에 나는 여러해살이풀은 논에서는 잘 안 죽는다. 그런 풀은 논두렁으로 들어낸 뒤, 죽은 다음에 다시 논에 넣는다.
8. 넓은 밭이나 논의 경우
50평 이상의 밭이나 논은 선호미가 도움이 된다. 이때 선호미의 날을 글라인더로 갈아서 쓸 수도 있다. 날을 낫처럼 날카롭게 간다. 크게 도움이 된다. 풀이 훨씬 잘 잘리기 때문이다.
200평이나 300평, 이렇게 규모가 큰 논이나 밭의 경우는 동력 예초기나 잔디 깎는 기계를 쓸 수도 있다.
싹이 잘 트는 밀, 보리, 호밀, 메밀, 무와 같은 작물은 풀 위로 훌훌 씨앗을 뿌린 뒤, 예초기나 잔디 깎는 기계로 풀을 베어주는 것만으로 파종을 마칠 수도 있다. 작은 규모라면 톱낫이나 선호미로도 충분하다.
들깨나 고추, 토마토, 옥수수와 같이 줄 간격이 넓은 밭의 풀베기는 예초기를 쓸 수도 있다. 그 밭의 면적이 넓다면 말이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톱낫이다. 평화롭고, 고요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톱낫에 마음을 모을 수 있으면 어느 순간 시간이 사라지기도 하는데, 그러면 바깥도 평화롭고, 안도 평화롭다. 안팎이 다 고요하다. 이것이 가장 좋다.
‘뭐야, 벌써 끝났네!!“
시간을 잊을 수 있으면, 어느새 이렇게 풀 베기가 끝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톱낫에 마음을 두지 못하면 시간이 안 간다. 몸도 괴롭고 마음도 괴롭다. 일도 도무지 진척이 안 된다. 그렇다. 그만 중간에 톱낫을, 자연농을 내던지게 된다.
그래서 경운을 해보면 어떻게 되나? 그날만 좋다. 그 뒤로 비료, 퇴비, 영양제, 비닐, 농약---등이 줄지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 무리다.
첫댓글 머리속에 쏙쏙 들어오게 정리해주셨네요. 최고세요!!!
'뭐야, 벌써 끝났네'
톱낫을, 자연농을 내던지게 된다.
이런 표현이 재미났었어요. :)
칭찬이지요? 힘이 됩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