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영웅 김문성 육군대위
김문성 중위는 1929년 8월 25일 서귀포시 신효동에서 김태용의 2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제주공립 농업중학교 6학년 재학 중 6.25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1950년 8월 30일 해병대 제 4기로 지원입대하였다.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하여 역사적인 전훈을 세운 후 1950년 11월 11일 해병사관후보생 제 3기로 입교하였다.
그 후 육군종합학교에서 교육훈련을 이수하고 1951년 3월에 해병소위로 임관하였다.
김문성 중위는 1951년6월 4일부터 전개된 강원도 양구지구 도솔산(△1,148)전투에 제 3대대(대대장 소령김윤근) 제 9중대(중대장 중위 강복구) 제 2소대장으로 참전하였다. 도솔산 24개 목표 중 가장 험준한 13목표는 협곡과 낭떠러지로 형성된 봉우리였다. 따라서 이 고지 공격에는 제 3대대 전병력이 집중적으로 투입되었다.
6월 8일 제 9중대는 험준한 지형을 우회하여 공격을 개시하였고 목표 지점까지 200m를 남겨둔 상태였다.
그러나 적이 난공불락의 지형적 이점을 이용하여 자동화기로 집중공격을 해옴으로써 아군은 전사상자가 속출하는 등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 순간 김문성 제 2소대장이 용감하게 맨 선두에 나서서 소대를 이끌면서 빗발치는 적탄을 무릎 쓰고 목표지점 50m까지 육박하였다. 이렇게 하며 계속 공격해 올라가다가 목표를 바로 눈앞에 둔 고지에서 22세의 일기로 전사하였다
이 도솔산 전투시 헌신한 용사가 부지기수였지만 특히 사병 중 분대장 이상을 제외한 나머지 병사는 거의가 제주도출신이었다. 그들은 어린 학도병들과 청소년들이 주축이었는데 적진에 과감히 돌격하여 이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정부에서는 김문성 중위의 전공을 기려 충무무공훈장을 수여하였고 전쟁기념사업회에서도 고인의 공훈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하여 1995년 4월에 발표한 “100인의 호국인물”중 한분으로 김문성 중위를 선정하였다.
한편 김문성 중위의 유해는 현재 서귀포시 충혼묘지에 안장되어있으며 2005년 6월에는 “이달의 호국인물로”로 현양행사를 거행하였다.
1994년 6월 25일 제주시 노형동 607번지 제주고등학교(전 제주농고)의 양지원에느 6.25전몰제농학도추념비가 건립되었다. 이 추념비에 “40회 김문성 신효”라고 조각되어 있다. 또한 그 곳에 2001년 6월 제주농업고등하교 총동창회(회장 고기혁)에서 호국영웅 김문성 해병중위의 흉상을 건립하였다.
김문성 영웅은 미혼으로 출정하였으며 그의 가족으로는 조카 영창, 세철, 익창, 갑창, 신창등이 서울 및 제주시에 살고 있다.
<발췌> 정수현, [한라의 젊은 영웅들], 제주특별자치도재향군인회,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