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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회 산에서 길을 만들며 등산이나 하산의 경험이 없으면 절대 시도하지 말 것!
산 정상이나(불량이지만 그나마) 마을이 아니면 통신도 안 됨. 따라서 위급한 상황에선 일행 중 누군가 내려가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밖에 없음!
‘오류동 → 골안골 → 1274봉 → 깃대봉 → 배달은석 평전 → 대골 → 합수부 → 사방댐 → 임도 → 방태산 자연휴양림 매표소 → 밤골’ 코스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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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태산[芳台山]
높이: 1,430m
위치: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방태산은 사방으로 긴 능선과 깊은 골짜기를 뻗고 있는 강원도 인제군의 육산이다. 특히 조경동(아침가리골), 적가리골, 대골, 골안골 등 골짜기 풍광이 뛰어나 설악산의 유명 골짜기 간에는 서로 우열을 가리기 어렵지만 그중 조경동과 적가리를 꼽을 수 있다.
정상인 주걱봉 서남쪽 아래엔 청정한 자연림 사이로 개인약수가 자리 잡고 있다. 톡 쏘는 물맛으로 유명한 개인약수는 1891년 지덕삼(함북인)이 수도 생활을 하던 중 발견하였다고 전해진다. 방태산은 여름철에는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수림과 차가운 계곡물 때문에 계곡 피서지로 적격이고 가을이면 방태산의 비경인 적가리골과 골안골, 용늪골, 개인동 계곡은 단풍이 만발한다. 정상에 서면 구룡덕봉(1388), 연석산(1321), 응복산(1156), 가칠봉(1240)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대형 암반과 폭포(이폭포와 저폭포), 그리고 소 등은 설악산 가야동 계곡과 견줄 만한 뛰어난 풍광을 지녔다. 맑디맑은 내린천이 동남녘의 산자락을 씻어내리는 3둔4가리(살둔 월둔 달둔 연가리 아침가리 결가리 적가리)가 소재한 비경의 심산인 방태산은 오랜 세월 세상에 그 모습을 숨겨왔으나 근래에 진정 산을 사랑하는 산꾼들이 드문드문 찾고 있다.
방태산 정상에는 약 2톤가량의 암석이 있었고 여기에는 수작업으로 정을 꽂아 뚫은 구멍이 있었는데 옛날 그 어느 땐가 대홍수가 났을 때 이곳에다 배를 떠내려가지 않게 하기 위해 밧줄을 매달았다고 하여 그 돌을 가르켜 배달은 돌(배달은 石,해발 1,415.5미터)이라고 부르며, 그 당시를 입증해 주기라도 하듯 방태산 정상에는 지금도 바위 틈바구니의 흙이나 모래 속에서 조개껍질이 출토되고 있다고 하나 현재는 그 돌은 찾아볼 수 없다.
해발 1천4백 고지에는 눈을 의심케 하는 눈부신 대초원이 전개된다. 지당골을 거쳐 적가리골을 내리면 방태산 제일의 계곡풍경을 만나게 된다. – 한국의 산하
지난겨울 방태산에 대해선 아는 게 전혀 없는 상태로 1박 2일 야영 산행을 따라갔다가, 허벅지를 넘어 거의 허리에 육박하는 눈 때문에 방태산 정상을 코앞에 두고 돌아서야 했던 일이 있었다. 이후 다음을 기약하기 위해 방태산에 대해 연구를 하던 중 대중교통으로 당일 산행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산행 순서를 잡기 위해 높이에 따라 산을 줄 세우다 방태산과 연결된 비슷한 규모의 산이 몇 개 더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방태산만 오르기에는 1박 2일 또는 안내 산악회를 이용하는 산행이 어딘가 부족해 보였던 차에 그 몇 개의 산을 같이 묶어 올가을쯤 산행할 생각이었다. 내가 생각해 둔 코스는 ‘생둔 → 1072봉 → 숫돌봉 → 침석봉 → 1325봉 → 개인산 → 1351봉 → 구룡덕봉 → 주억봉 → 1410봉 → 배달은석 → 깃대봉 → 미산약수교(20.4km, 9시간)’이었다.
그러던 중 지난 수요일(산행 하루 전날) 꽃과 나무 찍기에 심취한 봉 감독이 갑자기 전화해 방태산에 야생화 천국의 미지 계곡이 있는데 혼자 가기 힘드니 같이 가자고 제안을 했다. 목요일 일이 있기는 했지만, 그 제안은 쉽게 뿌리치기 어려워 동의를 했다. 봉 감독이 아는 사람만 아는 미지의 계곡이니 주변 친구들이 모르게 조용히 다녀오자고 해 동의하고 나도 사전에 그 계곡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산행기를 쓰기 위해 방태산 지도를 찾아 확인하니 미지의 계곡이 아니라 지도에 표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산하'에는 그 계곡에 대해 가을철 단풍이 유명하다는 언급을 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미지의 계곡이 아니라 지도만 봐도 알 수 있는 계곡이었지만, 원래 방태산이 험하고 이정표 등 시설이 좋지 않아 산꾼이 아닌 등산객은 잘 찾지 않는 산이라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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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 감독과 7시 양수역에서 만나기로 해 새벽 4시 40분경 일어나 볼일을 본 후 전날 쌓아둔(라면, 생수(라면용), 김치, 비상식량, 코펠, 버너 등등) 배낭에 바로 끓인 우엉차를 넣고 5시 20분 집을 나서 불광역에서 5시 34분발 오금행 전철을 탔다. 그 시간 전철이 만원이라 조금 놀랐는데, 난 당일을 휴일(토)로 알고 있었지만, 평일 목요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놀라움을 접었다. 종로3가역에서 동두천행 1호선으로 갈아타고 회기에서 용마행 경의·중앙선을 갈아타 양수역에 도착한 시간이 6시 55분이었다.
7시 5분경 봉 감독을 만나 예정에 없던 배달을 위해 방태산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봉 감독 집에 들러 물건을 챙기고 방태산으로 달렸다. 서종IC에서 서울양양고속도로에 진입해 '내린천 휴게소'에서 국밥으로 아침을 먹고 이번 산행 들머리인 골안골 '물소리 펜션' 간이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이 8시 40분경이었다. 주차장에서 산행 준비를 마치고 산행을 시작한 시간은 8시 45분이다. 골안골 계곡을 따라 오르는 코스로 처음 우리를 반겨 준 것은 물소리 펜션 마당의 벚꽃이 만발한 벚나무와 진달래였다. 꽃과 나무 사진을 찍고, 특히 다음 산행? 야유회를 위해 물소리 펜션 한쪽에 진달래와 같이 있던 입간판의 전화번호를 사진으로 남겼다.
계곡을 따라 오르며 처음 놀란 것이 그 풍부한 수량, 두 번째 무수히 많은 탕(알탕 하기 좋은)과 폭포, 세 번째 인위적인 관리가 전혀 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계곡! 계곡 길은 특성상 계곡이 끝나는 지점까지 계곡에 따라 다르지만 적게는 수 회 많게는 수십 회 계곡을 가로지를 수밖에 없다. 잘 조성된 국립공원이나 유명한 산으로 지역의 돈 벌이가 되는 산 또는 계곡은 그 가로지르는 지점에 등산객이 쉽게 갈 수 있도록 철 또는 나무로 다리를 만들어 둔다, 그런데 이번에 간 방태산의 대골(하긴 있었다고 해도 산사태로 다 쓸려 갔겠지만)과 골안골은 전혀 그런 시설이 되어있지 않았다. 하다못해 징검다리조차 없어 건널 곳을 찾아 매의 눈으로 바위와 돌을 훑어야 했다. 그런데 그 건너야 하는 지점이 너무 많았다. 이 역시 등산로로 조성된 것이 아니라 나무꾼, 약초꾼이 다니던 옛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길을 오르며 끊임없이 봉 감독이 내게 주지시킨 것이 '비밀의 장소니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였는데, 그에 대한 나의 답은 '이런 상태의 길이라면 알려줘도 못 온다'였다. 특히나 비 온 후 수량이 늘었을 때는 우리 같은 미친놈 외에는 답이 없다. 길 상태나 주변 환경이 이렇다 보니 등산객이 많이 출입한 것 같지는 않았고, 약초꾼이나 동네 아낙이 나물을 캐기 위해 많이 드나들었던 것으로 보였다. 계곡을 오르다 왼쪽 6부 능선쯤에 옆에 작은 계곡을 끼고 있는 모덤터에 약초꾼의 비닐하우스를 보기도 했다. 그걸 보고 둘이 나눈 대화가 '저런 곳에 텐트를 쳐 베이스캠프로 삼고 방태산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 좋겠다'였다.
산행의 목적이 봉 감독 촬영을 위한 사전 답사 및 대상이 있다면 촬영을 하는 것이라, 주변의 야생화나 나무를 주의 깊게 살피며 산에 올랐다. 계곡 초입에서 봉 감독이 찾던 나무를 발견해 위치를 기록으로 남겨 다음 촬영에 대비했고, 조금 더 올라가니 두릅이 있어 점심 라면에 넣어 - 그런데 막상 라면 끓일 때는 망각! - 먹기 위해 땄다. 역시 등산객이 별로 없는 계곡답게 여기저기에 야생화가 간간이 피어 있었다. 아쉬운 것은 서울이나 남부가 여름 같은 봄이라면 여기 방태산은 늦겨울 또는 초봄이라 - 추워서 옷깃을 여며야 했다. - 이제야 여기저기서 싹이 올라오고 있었고, 성급한 놈들만 꽃을 피웠다. 시기적으로 2주 후에는 야생화 천국이 될 것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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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이 끝나 1274봉을 향해 능선으로 오르는 지점에서 봉 감독이 계곡에서 라면을 끓일 게 아니면 물을 떠 가야 한다는 우려 섞인 얘기를 꺼냈다. 당연히 그만큼 짐이 무거워진다는 우려다. 거기에 대해 내가 물은 충분히 있으니 걱정 말고 오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언제부터 아주 당연하듯이 마실 물 말고 취사용 물을 배낭에 넣어 다니기 시작했는지 궁금해졌다. 과거에는 배낭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산행 전 지도를 펼쳐 놓고 샘의 위치를 확인 후 지점과 지점 간의 거리와 걸리는 시간 등을 감안해 밥 시간을 - 봉 감독이 그랬다. 촬영 장비로 꽉 찬 배낭에 물을 넣을 여분의 공간도 없지만, 무게도 감당이 안 된다. 그래서 용준이나 나를 찾지만 - 조정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샘이고 뭐고 처음부터 물을 가지고 다니면서 배가 고플 때 자리 잡고 앉아 밥을 먹는 것으로 바뀌었다. 둘이 그 얘기를 하며 능선을 향해 올라가다 내린 결론은 등산을 다시 시작한 후 어느 시점부터인가 10kg 정도의 배낭은 그 무게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경지에 도달했고, 20kg이 넘어야 그나마 무게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고로 물 2ℓ, 2kg 정도는 아무 생각 없이 추가한다.
둘이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며 촬영할 만한 대상을 찾아 매의 눈으로 지면을 살피며 올라 7부 능선쯤에 도착하니 또 다른 장벽이 나타났다. 조리대 군락이 거의 200~300여 미터의 폭으로 봉우리를 감싸고 있었다. 그나마 희미하게 있던 길도 조리대 군락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조리대 군락을 뚫고 올라가며 만약 계곡을 통과했더라도 대부분 등산객은 여기서 내려간다는 것에 둘이 의견 일치를 보았다. 조리대 군락 내에 있는 나무와 꽃을 찍으며 힘겹게 통과하니 쾌 넓은 평지로 나온 시간이 대략 11시 30분 경이었다. 그 평지에는 추위를 뚫고 일찍 꽃을 피운 야생화가 여기저기 있었다. 그것을 보고 봉 감독은 바로 배낭을 풀어 카메라 장비를 꺼내 동영상과 사진을 찍었고 나는 옆에서 잡음이 들어가지 않게 조용히 내 나름 꽃과 나무를 찍었다. 와중에 봉 감독에게 키 낮은 야생화를 찍을 때는 바짝 엎드려서 찍어야 한다는 가르침도 받고….
내가 사랑방에도 쓴 글이지만 심마니가 남들이 다니는 길로 다니면 산삼을 찾을 수 없듯이 이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 등산객이 쉽게 접근할 수 없어 이 평지가 야생화의 천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이겠지. 강원도라는 특성상 지금은 시기가 빠르고, 돋아나는 새싹을 보니 4월 말이나 5월 초에는 꽃을 밟지 않고는 다니기 힘든 곳이었다. 10분만 찍겠다던 봉 감독은 꽃을 따라 움직이며 거의 30여 분을 넘게 촬영에 몰두했고 난 옆에서 지켜 보고 있었다. 꽃이 만개한 시기의 촬영 일정과 장비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봉 감독 장비를 철수해 다시 출발한 시간이 12시가 넘어서였다.
20여 분을 더 올라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점심 준비를 했다. 라면과 김밥, 문배주 - 산행의 어려움을 고려해 둘이 한 병으로 만족 - 등등으로 밥과 술을 먹고 마시고 다시 출발한 시간이 오후 1시가 조금 안 된 시간이었다. 야생화 천국의 평지를 올라 정상을 향한 마지막 깔딱은 이제야 새순이 희미하게 나오기 시작하는 철쭉군락이 정상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 군락의 폭은 대략 100여 미터가 넘어 보였고 그걸 보고 5월이면 장관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을 가로막는 철쭉 가지를 헤치고 깃대봉 정상에 오르니 능선 위의 배달은석, 주억봉 등이 보였고 저 멀리 설악산 서북 능선이 한눈에 들어왔다. 서북 능선 위에 우뚝 솟은 귀때기청봉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리고 언젠가 오르겠다고 시기만 재고 있는 가리봉이 그 앞에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것저것 설정하는 것이 귀찮아 남들 다 한다는 DSLR은 쳐다도 보지 않고 디카 자동 모드로 사진를 찍고 다녔다.그런데 얼마 전 갑자기 카메라가 동작은 이상이 없어 보이는데 액정이나 뷰파인더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사진을 찍으면 그냥 검게 나오는 상태가 되었다. 내가 할 방법은 다 동원해 보았지만 변함이 없어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매뉴얼을 찾아보니 조리개가 열리지 않는 증상이란 것을 알았다. 하긴 바위에 떨어지기 수 회 눈밭에 구르기도 셀 수 없을 정돈 데 지금까지 정상이었던 게 기적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내가 라이카를 좋아한다. 매뉴얼을 보다 갑자기 카메라에 달린 다이얼이나 버튼이 하는 일이 뭔지 궁금해지기 시작해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리갯값이니 셔터 스피드니, ISO, 노출 감도 등등을 알게 되었다. 아는 것은 실천하는 게 배우는 자의 자세! 바로 카메라로 이것저것 테스트해 보고 외부에서 촬영 시 가능하면 매뉴얼 모드로 놓고 찍기 시작했다. 그런데 자동 모드일 때는 실수로 버튼을 누르거나 다이얼이 돌아가도 이상 없이 사진이 찍혔는데, 매뉴얼 모드에서는 그만큼 값이 변해서 찍힌다. 버튼이 눌렸거나 다이얼이 돌아갔다는 사실을 모르고 사진을 찍을 때 갑자기 액정에 나타나는 이상한 정보에 놀라지만, 무시하고 사진을 찍는다. 물론 그 결과가 내가 원하는 사진이 아니란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그런 실수가 대게 결정적인 순간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정상에서 타이머로 찍은 인증 사진의 화이트 밸런스가 맞지 않아 쓸만한 사진이 하나도 없다. 음, 그리고 보니 타이머를 가동한 사진들이 문제구나! 바로 셔터를 누르는 사진은 액정에 이상이 나타나니 조치를 취하는데 타이머는 셔터를 누르고 뛰어가 자리를 잡느라 바빠 액정에 나오는 정보를 볼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화이트 밸런스 다이얼이 돌아갔다는 사실도 사진을 몇 번 더 찍고 나서야 알게 되었지만, 다이얼을 어디다 둬야 하는지 몰라 이후 사진 몇 장도 상태가 좋지는 않다. 실수하면서 배우는 거지! 그 실수 덕에 액정이 보여주는 정보의 의미를 알았고 각 다이얼이 뭘 하는 용돈지 알았다. 물론 셔터를 제외하고 버튼이 하는 일이 뭔지는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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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인증 사진과 주변 사진을 찍고 하산을 위해 배달은석 평전으로 내려갔다. 평전에서는 간식으로 사과를 먹으며 야영에 대비하여 식수의 위치를 파악했고, 어떻게 사용할지 구상을 했다. 그리고 길의 흔적이 희미한 대골을 향해 내려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난 대골(큰 골짜기)을 댓골(대나무골)로 알고 있었다. 그나마 희미하게 길이라고 알고 있었던 것은 등산로가 아니라 등산객이 생리적 볼일을 보기 위해 오간 길이었다. 당연히 좀 내려가자 길이 없어지고 그나마 우리 같은 산꾼이 오래전에 뚫고 간 것으로 보이는 길 같은 곳은 나무와 덩굴이 서로 얽혀 길을 막아 전진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바로 산에선 늘 옆에 차고 다니는 칼을 - 길소가 얘기하던 정글 도가 필요한 시점 - 꺼내 덩굴을 자르며 전진했다. 와중에 봉 감독과 나는 각각 덩굴줄기에 발목이 걸려 앞으로 뒹구는 수모도 당했다. 그 관목지대 옆으로는 거대한 산사태로 계곡이 허물어지고 주변의 나무와 바위도 계곡으로 휩쓸려 내려간 지역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물이 흐르고 있었다. 산사태로 기존 계곡이 더욱 깊은 계곡으로 변한 것 같은데 아직 지반이 안정이 안 돼 계속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고 바위와 돌들은 잘 못 밟으면 굴러떨어졌다.
관목지대를 뚫고 하산하는 것은 체력 낭비가 심하고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 산사태로 마치 고속도로처럼 하류 저 밑에까지 뻥 뚫린 계곡을 따라 내려가기로 했다. 길을 만든다는 게 다른 것이 아니라 카메라 장비로 무거운 배낭과 한 손에는 무거운 삼각대를 든 봉 감독에 앞서 계곡을 내려가며 흔들리는 돌이나 바위는 아예 굴려 버리고 피해야 할 곳은 피하라고 알려주는 정도다. 아슬아슬하게 산사태가 발생한 계곡에 도착해 하산하기 시작했는데, 내가 앞에서 길을 내고 봉 감독이 뒤에서 따라오는 구도를 취했다. 그런데, 흔들리는 바위와 돌을 피하고자 이리저리 움직이고 기다시피 바위를 내려가야 해 진행 속도가 관목지대 못지않게 느렸다. 산사태로 주변이 초토화된 마당에도 가끔 꽃이나 나무가 폐허를 밝게 해주었다. 물론 그중에는 봉 감독이 찍고 싶어 하는 것도 있었다.
그런데 산사태의 영향인지 수량이 풍부하고 폭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대단히 많았다.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지만, 산사태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대골이 폭포로 유명한 계곡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0년 후일지 100년 후일지….
그렇게 앞장서서 내려가는데 뒤에 따라와야 할 봉 감독이 보이지 않았다. 그 자리에 앉아 봉 감독을 기다리며 다시 장비를 정비하고 있었지만 나타날 기미가 없어, 배낭을 벗어 두고 봉 감독을 찾으러 다시 올라갔다. 그래도 보이지 않아 큰 소리로 봉 감독을 불렀다. 그래 봐야 요란하게 쏟아지는 물소리에 무슨 소리가 들릴 상황이 아니었다. 다시 배낭이 있는 곳으로 내려와 이 상황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두 가지 중 하나였다. 하나가 꽃이든 나무든 봉 감독을 사로잡은 게 있어 그걸 찍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 둘은 관목지대에서는 몰랐지만, 산사태가 난 이후 계곡은 길로써는 최악이라 다시 능선으로 올라갔다. 왜 이렇게 생각했냐면 내가 계곡을 타고 내려오다 옆의 능선을 계속 주시하며 다시 올라갈까 고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조금 더 기다려보다 나타나지 않아 두 번째에 무게를 두고 먼저 내려가기로 했다. 아 물론 셋으로 사고가 났을 수도 있지만, 내가 아는 봉 감독은 쉽게 사고가 날 동무가 아니고, 혹시 난다고 해도 내가 길을 만들며 내려왔기 때문에 길의 상태를 아는데 가벼운 찰과상이나 다리가 삐는 정도다. 찰과상이야 이미 골안골에서 그리고 관목지대에서 지겹도록 당했고, 만약 삐었다면 짐을 잘 숨겨 두고 어떻게든 내려올 친구다. 통신이 안되는 상황에선 선택해야만 했다.
봉 감독이 능선으로 올라간 마당에 내가 굳이 이 어려운 계곡을 타고 내려갈 이유가 없어 능선을 올라갈 길을 찾으며 조심조심 바위를 타고 내려갔다. 그러다 마침 능선을 올라갈 수 있는 평탄한 지역이 보여 바로 능선을 향해 올라갔다. 그런데 오르다 보니 조리대 군락 사이로 길 같은 것이 보이고, 가끔 희미한 인적도 있었다. 그리고 마치 개 짖는 소리 같은 짐승의 소리가 들려 주변에 있던 마른 나무를 주어 들고 한편으로는 인가가 가까울 것이라는 안도를 하기도 했다. 그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니 봉우리 정상을 향해 가고 있었고 그 정상에서 능선이 죽 이어진 것이 보였다. 그 능선에 길이 있을 것 같았다. 거의 정상 8부에 도착해 주위를 둘러보니 그 봉우리 정상과 우리가 내려온 정상이 멀지 않아 보였다. 결국, 다시 우리가 내려왔던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얘기라 잠깐 고민을 하다 방향을 바꿔 올라왔던 길로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인적을 찾으며 내려가니 5부 능선을 따라가는 인적을 발견했고 그 인적을 따라 계속 갔다. 인적이 끊기기를 수없이 반복하는 길을 따라 초조히 내려가다 마침내 조림지에 도착했을 때 안심을 할 수 있었다. 그 조림지에서 길을 찾아 앞으로 나갔지만, 길은 없고 등산로임을 표시하는 빨간 리본만 아주 가끔 보였는데 그것이 계곡을 향해 내려가고 있었다.
그 길을 따라 계곡에 도착했을 때가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결국, 한 시간가량 알바(?)했다는 얘기다. 어쨌든 내가 알바를 하는 동안 봉 감독이 사진을 찍고 계속 계곡으로 내려갔다면 내 앞에 있을 것이고, 능선으로 올라갔다면 마을에 가까워졌을 것이다. 통신이 안 되니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누가 먼저든 통신이 되는 곳에 도착하면 전화를 할 것이니 나도 빨리 통신이 되는 마을에 도착하는 것이 중요했다. 인공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도 발견할 수 없는 자연 그대로의 계곡을 따라 내려가니 주억봉에서 내려오는 계곡과 만나는 합수부에 도착해 계곡은 엄청나게 넓어졌다. 계곡 돌길을 피해 흙길을 걷고 싶어 계속 옆의 관목지대로 들어갔지만, 울창한 관목이 발목을 잡아 다시 계곡으로 나오기를 반복하며 30분가량 내려가니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보였다. 배달은석 평전에서 대골을 타기 시작해 처음으로 인공 구조물을 본 것이다. 구조물의 생김새는 다리의 발처럼 보여 왜 저기다 다리를 만들까 궁금해하며 접근하니 콘크리트 도로가 나오고 그 다리의 발로 보였던 것은 홍수나 산사태에 대비한 사방댐이었다. 그 사방댐을 보니 방태산의 대골이 얼마나 거대한 계곡인지 추측할 수 있었다, 물론 정상의 산사태 흔적을 직접 눈으로 보고 그 흔적의 중앙부를 따라 내려왔으니 이미 몸으로 겪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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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도로 보이는 도로와 사방댐을 짓기 위해 만든 도로를 따라 내려가니 통신이 대다 안대다 하는 상태로 바뀌었다. 통신이 대는 순간 봉 감독에게 전화를 해보았는데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메시지만 반복해서 나왔다. 임도를 따라 하류로 계속 내려가며 통신이 가능한 지역에서는 전화를 시도했지만, 통화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애초 산에 대해 연구를 하지 않고 봉 감독만 믿고 산행을 했기에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의 끝이 어딘지를 모르고 있었다. 그렇게 내려가니 앞에 방태산 자연휴양림 매표소라는 건물이 나타났다. 자연 휴양림으로 내려온 것이다. 거기서 봉 감독을 기다려볼까도 생각도 해봤지만, 능선을 타고 갔다면 휴양림 반대편에 있을 것이기 때문에 계속 국도를 향해 내려가며 통화를 시도했다.
휴양림 매표소 아래로 죽 늘어선 펜션을 지나 거의 마지막 펜션에 도착했을 즈음에 봉 감독에게 전화가 왔다. 그런데 통신 상태가 좋지 않아 서로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해서 봉 감독이 내게 문자를 보냈는데 내용이 '합수부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아니 내 앞에 있어야 할 친구가 왜 내 30분 뒤에 있냐고? 네 30분 앞 자연휴량림 펜션지대에 있고 여기서 기다리겠다고 문자를 보냈다. 해가 져 추워지기 시작하는 도로변에 앉아 카메라를 가지고 놀며 내 복장을 보니 산에서 몇 번 굴러 완전히 거지꼴이었다. 봉 감독을 기다리니 전화가 왔다. 전화가 왔다는 것은 통신이 원활한 지역에 도착했다는 것이고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얘기다. 전화상으로 도로를 따라 계속 내려오라고 알려주니 봉 감독 왈 택시를 불렀다고 했다.
조금 후 봉 감독을 만나 서로의 지난 온 과정에 관해 얘기를 나누었다. 내가 봉 감독을 기다리고 알바를 하는 동안 봉 감독은 내 예상대로 20분가량(본인 생각, 내가 보기엔 더 오래) 산사태로 정신없는 계곡에서 호랑버들 동영상을 찍었다는 것이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게 우리는 늘 봉 감독이 동영상을 찍는 동안 먼저 가곤 했다. 동영상에 잡음이 들어가지 않게 또는 카메라가 흔들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우리는 피차 산에선 서로를 믿기 때문에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계곡을 타고 내려오며 '역시, 대골이구나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는 얘기를 했다. 그때 저 계곡이 대나무의 댓골이 아니라 커다란 계곡의 대골이란 것을 알았고 그 명칭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그리고 네가 있어 저걸 할 생각을 했다는 얘기도….
그런 얘기를 나누며 도로를 따라 내려가는데 택시가 도착했다. 봉 감독이 차를 세워둔 들머리인 골안골로 돌아가면서 산행 기록을 보니 14.5 Km 거리에 8시간이 넘게 걸려 평균 속도가 1.9km에 불과했다. 산행이란 걸 한 이후 가장 늦은 속도고 그만큼 힘든 코스였다는 얘기다. 해서 서두에 절대 함부로 덤비지 말라는 언급을 한 이유기도 하다. 들머리에 도착해 차를 바꿔 탄 시간이 7시 20분경이었다. 오전 8시 반경 차를 세워뒀다, 오후 7시 20분에 찾으러 온 것이다. 일단 고속도로에 들어서면 휴게소외에는 저녁을 먹을 방법이 없어 가까운 현리에서 먹기로 하고 맛집을 찾아보니 '고향집'이라는 두붓집이 나름 명성을 날리고 있어 그곳으로 향했다. 고향집에서 두부 전골과 수육을 시켜 밥을 먹으며 운전을 해야 하는 봉 감독은 빼고 혼자 이슬이를 마셨다. 혹시 근처에 갈 일이 있는 사람은 그 집에서 두부 전골을 먹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국물이 예술임!
저녁을 먹고 차를 달려 다음 날 용준과 함께하는 봉 감독의 방태산 산행 계획을 들으며 산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와 기레기와 정당 쓰레기들에 관해 얘기하다 보니 어느새 양수역에 도착했고 그 시간이 9시 40분경으로 능곡행 9시 50분 전철을 탈 수 있었다. 몇 번의 전철을 갈아타고 집에 도착한 시간이 11시 30분경이었다. 토요 우중 산행을 위해 배낭을 풀어 짐을 정리하고 코펠 등을 씻어 식기 건조대에 널어두는 등 정비를 마치고 잠자리에 든 시간이 12시 35분이었다. 4시 40분에 기상해 12시 30분에 취침에 든 것이다.
이번 산행을 요약하자면 힘들기는 했지만, 내가 아는 특정인 몇 명과만 할 수 있는 산행코스라 대단히 만족했고, 특히 인공물이 - 하다못해 이정표 하나도 - 전혀 없는 코스라 좋았다. 그리고 이제 막 새싹이 돋고 꽃을 피운 야생화를 볼 수 있어 좋았다. 꽃이나 나무를 찾아 다니는 사진꾼에게는 천국이 아닐까?
내가 찍은 야생화 사진은 카페 앨범에 올려놓았다.
첫댓글 애초 계획은 깃대봉 찍고 올랐던 길로 하산할 예정이라 하산 시 알탕을 할 여정이었으나, 점심을 먹으며 계획을 바꾸는 바람에 너무 늦고 둘이 헤어져 알탕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