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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마12장 39-40절
39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40절: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우리가 신앙생활을 이어가다가 착각할 수 있는 것 중에 하나가 일이 잘 풀리는 것만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mbc 다큐멘타리에 나왔던 윤정희 사모가 있습니다. 윤정희 사모는 남편과 결혼 후 아기를 갖고자 많은 노력을 다 했지만 몇 번의 유산 끝에 - 아기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그 때 당시 남편의 사업을 통해 몇 채의 집을 가지고 있을 만큼 부유산 산림이었습니다. 남편과 의논한 끝에 입양을 결정하게 되었고 건강한 아이를 입양했지만 자라면서 불치병들이 발견되고 또 아기를 한명, 두명, 세명, 입양해 가면서 - 재산과 몇 채의 집을 다 팔아가면서 자녀들을 치료시키고 돌보면서 - 자신의 몸으로 낳은 자녀들이 아니지만 10명의 자녀를 입양하고 키우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남편은 늦은 나이 50세에 목사 안수를 받아 목회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 와 중에 윤정희 사모와 목사님 두 분 다 신장 기증까지 하셨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생각해 볼 것 일이 있습니다. 윤정희 사모님이 결혼 후 자녀를 낳을 수 있었다면 과연 입양을 했을까요? 그리고 입양한 자녀를 위하여 집 몇 채를 팔면서까지 그들을 키워낼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자신의 남편이 50세의 나이로 목회자가 될 수 있었을까요?
우리가 가진 잘 못된 생각 중 하나는 일이 잘되는 것만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매사 만사형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과 일에 일치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것만은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실패와 아픔을 통해서 하나님을 찾게 하시고
때로는 고난과 고통가운데에서 하나님을 알아 가게 하시고
때로는 죄와 연약함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깨닫게 하시고
때로는 질병과 인생의 질고 가운데 - 탄식하며 눈물짓고 있을 때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맹자의 고자 편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하늘이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 할 때에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을 괴롭히고 그 몸을 지치게 하고 육체를 굶주리게 하며 또한 생활을 궁핍하게 하여 하는 일마다 어긋나고 틀어지게 만든다. 이것은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인내심을 기르게 하고 어려운 일을 더 많이 해낼 능력을 길러주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신 방법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방법이 바로 십자가와 죽음이라는 방법이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이신데 - 당신이 인간이 되셔서 인류의 죄와 사망과 저주의 짐을 가장 치욕스럽게 여긴 십자가로 담당해 주신 것입니다.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사건일 수밖에 없습니다.
십자가의 형벌은 그 때 당시 => 가장 비극적인 죄인들이 받는 결과였고, 가장 참담한 방법입니다.
십자가는 => 유대인들에나 제자들에게 가장 절망적인 사건이요. 고통과 죽음 자체였습니다.
십자가는 => 죄와 저주를 담당하는 형벌의 틀이었고 가장 꺼리는 심판이요, 참패한 모습인 것입니다.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마지막 가시는 고난의 길을 마태복음 27장에 이렇게 요약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군병들이 데리고 관정에 끌고 가 그의 옷을 벗깁니다. 홍포(왕)를 입히고 왕관을 대신하여 - 가시관을 만들어 머리에 씌우고 홀을 대신에 갈대를 만들어 오른 속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하는 말이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그의 얼굴에 침을 뱉고 그 손에 들린 갈대를 빼앗아 예수님의 머리를 치며 희롱을 합니다. 그리고 홍포를 벗긴 후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해 끌고 나갑니다. 골고다에 이르러 쓸개 탄 포도주를 들이 대면서 고통이 너무 심하니까? 이것이라고 마셔서 마취효과를 얻어 죽어갈 때에 고통과 조금이라도 면하라는 식으로 쓸개 탄 포도주를 건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발가벗긴 후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 십자가 위에 못고 예수님을 십자가 위에 세워 놓고 그 머리위에는 이렇게 적습니다. - 유대인의 왕 예수 -
그 예수님을 보고 -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희롱합니다. 그리고 비웃습니다.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십자가에서 내려오면 우리가 당신을 그리스도로, 메시야로 믿겠나이다 하며 깔깔대며 말 할 수 없는 수치와 모욕을 이어갑니다.
이 모습이 육신을 입고 계셨던 예수님의 모습이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 그래서 하나님의 교회 안상홍 집단이나, 또 다른 이교 집단에서는 예수님은 실패한 메시야라고 말합니다.
요한복음 9장에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을 찾아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 풀리지 않았던 것을 질문하는 모습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 물이 날 때부터 소경된 자에 대한 질문입니다.
(요 9:1)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보신지라
(요 9:2)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요 9: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전도서 7장14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롬8장28절 ->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11장 33절에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며칠 전에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구치소에서 신앙서적을 지인이 넣어 주어서 읽었다고 했습니다. 불교 서적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기독교 서적이 많았다고 합니다.
지난번에 sk 최태원 회장은 복역하고 구치소를 출소 할 때 - 그 손에 성경책을 들고 나오면서 세간에 화제가 되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복역하는 동안 성경을 많이 읽었고 그리스도인으로 되었다고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잊지 말고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 하나님은 이유 없이 고난을 허락하지 않으시며 고난과 아픔 이면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인생이 잘 풀려 나가는 것만이 꼭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고난에 직면했을 때 하나님을 찾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돈에 허무함, 권력의 허무함, 세월의 무상함 앞에 하나님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죽음에 직면했을 때 - 부활에 주님을 찾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위로가 필요할 때 - 사람의지하지 말고 - 먼저 성령님을 찾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이 잘 풀려 갈 때 교만하지 말고 - 더욱 주님의 은혜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종종 예수님은 참 보물찾기를 좋아하신 것 같다 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 각종 좋은 것을 인생의 커튼 뒤에 숨겨 놓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는 절대 그것을 열어 보여 주지 않습니다. 그러시다가 기도하거나, 하나님을 간절히 찾거나, 하나님을 전심으로 경외하는 모습을 보여 드리면 => 꺼든 뒤에 가려놓았던 또 다른 은혜의 보물 보여주시고 세상을 이겨 낼 힘을 주신다고 하는 것 입니다.
골2장2절 하반절과-3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여러분 가운데 혹시 고난이 너무 길어져 탄식하시는 분이 있으시나요?
여러분 가운데 혹시 응답이 없어 너무 목말라 하시는 분이 있으시나요?
여러분 가운데 혹시 인생의 아픔이 너무 커서 낙심 중에 있으신 분이 있으시나요?
여러분의 인생의 모든 보화 되시는 예수님을 더 깊이 만나게 될 것이며 그 주님이 지금 여러분과 함께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감사함으로 오늘을 살아 낼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의 배경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찾아 묻습니다. 표적과 기사를 우리에게 보여주기를 원합니다. 당신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들어 보니까? 능력도 행하고 귀신도 좇아내고 죽은 자도 살렸다 던데 - 그 기사와 표적을 우리에게 보여주면 우리도 당신을 믿을 때니 어디 한 번 당신의 실력을 내 봐 보세요. 라고 지금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9절-40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40절: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기독교의 진정한 표적과 이적과 기적에 있지 않습니다. 능력 행함에 있지 않습니다. 광명한천사로 가장한 사탄마귀가 모든 종교에 치유가 일어나도록, 기적이 일어나도록, 신비가 일어나도록, 영적 황홀경을 맛 볼 수 있도록 열어 놓았습니다.
그러면서 표적을 구한 바리새인들을 향해 음란한 세대라고 말씀하시고 - 나는 너희에게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씀하신 요나의 표적 밖에는 없다고 했는데 그 표적은 어떤 표적일까요?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표적이요. 부활의 표적입니다. 이 십자가와 부활의 표적은 그 어떤 종교, 그 어떤 신비, 그 어떤 능력을 뛰어넘는 - 어디에서도 흉내 낼 수 없는 고난과 죽음 뒤에 감춰진 기독교만의 신비요. 영광이요. 은혜인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 죽는 자(예수)가 죽이는 자를 용서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 죽는 자가 죽이는 자의 살 길을 열어 주는 곳이 되었습니다.
=> 죽는 자가 죽이는 자를 다시 치유시키는 곳이 되었습니다.
=> 죽는 자가 죽이는 자의 죄, 사망, 저주, 질고의 짐을 담당해 준 곳입니다.
=> 죽는 자가 죽이는 자의 형벌, 심판을 공의로 대신해 주신 곳입니다.
이 고난 주일 예배에 십자가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것입니까?
죄의 종노릇, 사명의 종노릇, 세상의 종노릇, 공중권세 잡은 사단의 종노릇에서 완전해 해방되었다고 하는 것을 선포하는 날이 바로 주일이요. 안식일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2장14-15절입니다.
14절: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15절: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 평생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십자가는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을 이루어낸 완전한 통로인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만세, 만대 전에 감추어진 비밀인 것입니다) 십자가는 저주요. 고통이었지만 우리에게는 은혜와 영광이었습니다.
십자가는 심판이요. 형벌이었지만 우리에게는 용서와 화해의 기회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드리는 이 물음에 예라고 대답한다면 여러분은 십자가를 통과한 분들이요. 이 물음에 아니오라고 대답하신 분들은 아직도 십자가라는 통로를 통해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질문을 던져 보겠습니다. 속으로 대답해 보십시오.
1. 주님의 십자가에 구속 때문에 회개하고 울며 신음하며 통곡해 본 적이 있는가?
2.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 때문에 스스로 가난해져 볼 수 있는가?
3. 주님의 십자가에 사랑 때문에 노래하고 춤추며 예배해 본적이 있는가?
4. 주님의 십자가에 비밀 때문에 십자가를 감당해 본 적이 있는가?
5. 주님의 십자가에 용서 때문에 나도 용서하며 살고 있는가?
6. 주님처럼 나도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고자 하는 갈망의 몸부림이 있는가?
여러분이 이 질문에 예라고 대답하신 성도님들이라면 => 여러분은 십자가를 관통하고 주님을 만나신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로마서8장17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영광이 있는 곳에 고난이 함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았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힌바 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 승천 내 승천, 예수 천국 내 천국이 된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과 성부 하나님과 하나 된 한 몸 된 존재가 이미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갈2:20절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제 내가 산 것은 내가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내가 이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신 그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로마서 8장 11절을 말씀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여러분이 혼자 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곁에 계십니다. 완전하고 의로우신 주님이 우리와 평생 함께 하고 있습니다. 고난과 아픔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눈물도 실패와 탄식도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완전하시고 의로우신 주님이 피할 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교회는 오병이어 기적이 일어나는 곳입니다.
고전2:9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고난이란? 나에게 변장하고 찾아오는 축복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믿음의 길을 가시는 동안 죄악에 동조하시 마시고 세상의 어떤 참소나 연약함에 무릎 꿇지 마시고 성령 충만함과 말씀으로 승리하여서 하나님께 큰 영광을 올려 드리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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