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줄줄~ 시리고 맑은 계곡 물이 살을 태우는 땡볕을 싣고 떠난다. 맴맴맴~ 시원하게 울어 대는 매미, 산속에는 푸른 여름이 울울창창하다. 부산! 하면 바다를 떠올리지만 자연 에어컨 바람을 빵빵하게 내장한 계곡에 발을 담그면 찜통더위도 놀라 뒷걸음질 친다.
옛 선조들이 심산유곡에서 즐긴 ‘탁족’은 한자성어 '탁영탁족濯纓濯足'에서 나온 말로, 갓끈과 발을 물에 담가 씻어낸다는 뜻이다. 즉 세속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에 순응하면서 아이처럼 맑고 초연하게 살아간다는 인생의 지혜가 담겨 있다. 물가 그늘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있으면 꽉 막혔던 생각도 사방팔방 뚫리지 않고 배기겠는가. 열대야와 폭염으로 지칠 대로 지친 마음에 푸른 깃이 돋아난다. 갑갑한 형식을 벗어 던지게 하는 녹음이 주는 자유다.
대천천 애기소 계곡
화명동 ‘대천천 애기소’계곡은 산성마을에서 화명동 방향으로 ‘산성로’를 따라 1㎞쯤의 우측 우거진 숲을 끼고 있다. 반대로 가는 길은 도시철도 2호선 화명역에서 1번 마을버스를 타고 ‘애기소’ 정류장에 내리면 된다. 5분 정도 물소리에 홀리듯이 걸음을 옮겼더니 짜안~ 도심 속에 이렇게 멋진 계곡이라니! 청량한 바람이 땀방울을 훔쳐간다. 자연 그대로의 ‘워터파크’에는 이른 시간인데도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물가의 그늘마다 돗자리를 깐 사람들이 알록달록 피었다.
금정산에서 발원한 대천천의 ‘애기소 계곡’은 선녀가 목욕을 하러 올 만큼 물이 깊고 맑기로 소문났다. 폭포가 떨어져 물웅덩이를 이룬 ‘애기소’는 기묘한 암반으로 둘러싸여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애기소’에는 젊은 아낙이 아기를 데리고 와 넋 놓고 경치를 보다가, 애기가 물에 빠져 죽는지도 몰랐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다리를 기점으로 아래쪽은 유아들이 수영할 수 있을 정도의 수심이고, 상류 ‘애기소’ 물웅덩이는 성인이 다이빙을 할 수 있을 만큼의 깊이다.
“진달래 먹고 물장구 치고 다람쥐 쫓던 어린 시절에 눈사람처럼 커지고 싶던 그 마음 내 마음~~” 순진무구한 동심의 노래가 저절로 흥얼거려지는 시간!
퐁당 퐁당~ 튜브를 낀 아이들이 물장구를 친다. 작은 고무보트를 타고 마냥 즐거워하는 꼬마, 위쪽에서는 시원한 물보라를 주고받으며 물싸움 놀이에 정신이 팔린 아이들로 떠들썩하다. 한쪽에선 바위 미끄럼틀을 타고 풍덩! 물방울이 터지면서 높이 뛰어 오른다. 애 어른 할 것 없이 신나는 웃음소리가 계곡을 꽉 채운다.
“엄마, 이리로 좀 와보세요. 송사리 떼예요!” “앗, 소금쟁이도 있어요.” 책에서만 보던 물고기와 곤충을 직접 본 아이의 눈이 별처럼 초롱거린다. 수박을 자르던 젊은 엄마가 재빨리 뜰채를 챙겨 물가로 간다. 아빠가 돌을 주워와 물을 막아 주자 그 안에 장난감을 동동 띄우고 손뼉을 치며 좋아한다. 아이의 표정이 멱 감은 햇살 같다. 바위에 나란히 앉아 발을 담근 연인들은 이어폰을 나눠 끼고 음악을 듣는다. 돗자리에 빙 둘러 앉아 담소를 나누는 가족들은 이미 여름의 낭만에 흠뻑 취해 있다.
대천천 ‘애기소 계곡’의 장점은 접근성이 좋을 뿐만 아니라, 피서객들을 위한 편의 시설이 잘 관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공용주차장은 ‘애기소’에서 3분 거리에 있으며, 공용화장실 앞에는 발을 씻을 수 있는 수도시설까지 갖췄다. 계곡 주변에는 다양한 수목과 곤충이 서식하고, 인근에 있는 금정산성 서문이 최근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해 역사적 자긍심을 심어준다. 또 대천천 양옆의 양달 마을과 음달 마을은 소박함이 묻어나는 시골 동네 같아서 눈 닿는 곳마다 정감이 간다. 대천천 주변의 볼거리는 ‘화명수목원’을 비롯해 미륵사, 정수암, 국청사, 금정산성, 부산어촌민속관 등이 있다.
해운대 장산 계곡
도심과 가까워 산행코스로 인기가 좋은 해운대 ‘장산’은 계곡도 깊고 물도 좋다. 도시철도 2호선 ‘장산역’ 지하철역에서 대천공원까지는 도보로 약 20분 정도 걸리고, 대천공원에서 양운 폭포까지도 그만큼 걸린다. 장산계곡을 가기 위해서는 대천공원을 통과하는 게 편하다. 예전부터 대천공원을 부산사람들은 ‘폭포사 입구’라고 불렀다. 공원으로 가는 길은 온통 나무들이 토해내는 푸름으로 넘실거린다. 인공호수를 둘러싼 아름다운 산책길에는 느긋한 휴식이 머문다. 대천공원의 자랑인 광장은 야외무대가 설치되어 있고, 여기에서 각종 문화예술을 꽃피운다. 또 만선을 기원하는 상징 조형물이 공원의 기품을 더했다.
대천공원에서 약 1.5km 가량의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폭포사’란 절의 인근에 ‘양운 폭포’가 있다. 석태암, 장산사, 폭포사를 거쳐 체육공원까지 가는 임도는 거의 평지라서 자전거 타고 가는 사람들도 더러 눈에 띈다. 상류를 따라 계속 오르니 물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거짓말처럼 폭포가 나타났다. “와~ 시원하게 쏟아진다.” 폭포 전망대에서 여자 분 서넛이 탄성을 지른다. 비가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탓에 물줄기의 낙폭이 용맹하고 거침이 없다.
용이 되려다가 만 이무기가 살았다는 전설이 있는 ‘양운 폭포’는 장산의 명물이다.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이곳은 해운대 팔경 중 하나다. 암석단애에 걸려 있는 폭포수가 떨어질 때, 흰 물보라가 구름처럼 피어난다고 해서 얻은 이름이다. 명주실 한 타래를 풀어 넣어도 바닥에 닿지 않는다는 ‘가마소’는 폭포 아래의 물웅덩이 둘레가 15m, 높이 9m, 깊이 3m 규모의 ‘소沼’로 마치 가마솥처럼 생겼다하여 ‘가마소’라 불린다. 이곳에서 인명사고가 빈발해 지금은 수영금지 구역이다.
계곡 중간 지점에 또 다른 ‘소’가 있다. 제법 규모 있는 수영장 크기다. 예닐곱의 여대생들이 물속에서 첨벙대며 게임을 한다. 까르르~~웃는 해맑은 소리가 계곡에 퍼진다. 여러 갈래의 폭포 줄기가 허옇게 몸을 던지며 시원한 코러스를 넣어 준다. 제법 깊어 보이는 물에는 산행을 하고 내려온 등산객들이 등산복 차림으로 멱을 감고 있다. “어 시원하다~” 여름 햇살을 뚫고 산을 올랐던 성취감을 맛본 표정들이다. 장산 계곡에서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취객들을 잘 볼 수 없다는 게 특징이다. 생태관, 산림욕장, 생태자연학습장, 체육공원이 등이 있어서인지 공원과 계곡을 찾는 시민들의 건강함이 느껴진다. 절경 앞에 놓인 벤치 앉아 책을 읽는 사람, 아이의 손을 잡고 식물을 관찰하는 부부의 모습에서 그림 같은 평화가 깃들어 있다. 푸르게 흘러가는 장산 계곡은 생각보다 깊고, 길게 뻗어 있었다.
폭포로 가는 ‘곰솔테마림’에는 소나무, 대나무, 겹벚꽃나무, 층층나무, 이팝나무, 자귀나무, 오리나무, 호피향나무 등 여러 가지의 나무들이 원시의 내음을 뿜으며 서있다. 장산계곡은 산림욕을 하기 에도 안성맞춤이다. 초여름에서 늦가을까지가 산림욕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시기라고 한다. 또한 장산은 국가 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산이라 그 가치가 무한대다. 도심의 심장인 장산계곡이 점점 젊어지고 있다. 주변 볼거리는 해운대 해수욕장, 벡스코, 누리마루, 영화의 전당, 부산시립미술관, 달맞이 고개, 동백섬, 청사포 등이 있다.
장안사 계곡
‘장안사 계곡’의 물은 어찌나 맑은지 물속의 돌들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것만 같다. 깨끗한 거울이 소리 없이 흘러간다. 풀쩍풀쩍~ 수풀을 뛰어오르는 개구리, 돌 틈 사이로 흩어지는 송사리 떼의 그림자에서 조용한 활기가 핀다. 피라미, 다슬기, 가재 등이 맑은 물속에서 제 삶을 만끽하고 있다.
“앗, 차가워!” 아무 생각 없이 발을 담갔다가 화들짝 놀랐다. 수심이 얕아보여도 만만하게 볼 게 아니다. 무더위를 한방에 날리는 산속 빙수다. 맑은 물소리와 짙푸른 수목들이 뿜어내는 신선한 공기가 콧구멍을 뻥 뚫는다. 물가에 식구 수대로 알록달록한 캠핑의자를 펴고 앉은 가족들의 모습에서 여유가 묻어난다. 나무그늘에는 깊은 잠이 든 어르신도 계시고, 엄마의 따뜻한 눈빛은 물놀이하는 아이를 좇고 있다. 그늘막에는 돌쟁이 정도의 귀여운 아기가 쌔근거리며 오수를 즐긴다.
물놀이를 일찍 마치면 장안사의 암자인 ‘백련사’와 ‘척판암’을 가보는 것도 좋다. ‘척판암’은 장안사 주차장에서 10분 정도 올라가다 보면 나무가 빽빽한 꽤 넓은 쉼터가 나오는데, 그곳에서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절벽 아래에 암자가 있다. 원효대사가 창건한 ‘척판암’은 대사가 ‘판자를 던져서 사람들을 구했다’고 해서 지어진 절이다. 건물 지을 면적이 협소해 산신각은 마치 공중 부양하고 있는 모양새다. 장안사 주차장에서 척판암까지는 걸어서 20분 거리다.
장안사 계곡은 봄에는 진달래와 철쭉으로 화사하고, 여름에는 줄기차게 흐르는 계곡물과 짙푸른 녹음의 극치를 보여준다. 가을에는 형형색색의 단풍이 마음을 뺏고, 겨울에는 자신을 텅 비워 낸 나무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사람들을 유혹한다. 천년의 고찰이 있는 장안사계곡은 사계절 마다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는 휴식 공간이다. 계곡은 기장시장에서 마을버스 9번을 타고 종점에 내리면 도보로 15분 거리에 있다. 길 왼편의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면 금방이다. 장안사계곡은 불광산, 시명산, 삼각산이 어우러져 만든 명품계곡이다.
옛사람들도 삼복더위가 시작되면 갖가지 방법으로 더위를 몰아냈다. 탁족을 하며 시를 읊고, 때론 세찬 폭포수를 맞으며 더위를 잊었다. 물줄기가 벼린 칼날처럼 더위를 자른다. 계곡에서의 피서는 절제미가 있다. 하얗게 쏟아진 폭포수는 부딪치고, 깨지고, 알알이 흩어져 여름을 더욱 반짝인다. 깊고 청정한 계곡들이 염분의 끈적거림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부른다. 가마솥 더위에서 탈출하고 싶다면 얼음물과 얼음바람을 무한 제공하는 계곡으로 떠나보자. 해마다 앙코르를 받는 부산의 계곡들은 폭염은 식혀주지만 그 인기는 여전히 뜨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