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어탕으로 전국적인 한이름 한다는 서울추어탕이다. 얼마 전에 대구의 상주추어탕을 먹은 끝이라 아직도 입에 다른 추어탕 맛이 맴돌아서 자연스럽게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대구나 남원의 추어탕에 비해 메뉴도 식재료도 전문화보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요리 태도의 확연한 차이가 음식 맛에서도 그대로 느껴진다.
1. 식당얼개
상호 : 용금옥
주소 : 서울 중구 다동길 24-2(다동 165-1)
전화 : 02) 777-1689
주요음식 : 추어탕
2. 먹은날 : 2020.10.14.점심
먹은 음식 : 간 추어탕, 통 추어탕(각 10,000원)
3. 맛보기
전국 4대 추어탕집이라고 소문난 집이어서 소문만인지, 과연 소문날 만한지 먹어보고 싶었다. 며칠 전 대구 상주추어탕을 먹고 온 길이어서 어떻게 다른지도 궁금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그저 그런, 먹을 만하지만 이름만큼 높은 맛인지는 확신이 가지 않는 정도라는 것이다. 새로 생긴 의문, 서울 음식은 다 이런가? 지방에서 서울로 진출한 집들 중에는 맛난 음식이 많은데, 서울 태생인 음식은 이런 건가, 더듬어 본다. 새로 개발한 아이템 중에는 눈에 뜨이는 것들이 있는데, 서울 토속음식으로는 무엇이 있나? 이문설농탕 맛은 괜찮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번에는 맛과 지역 문화의 관련을 과제로 떠안는다.
추어탕은 통으로 주는 것과 갈아서 주는 것으로 나누어 제공한다. 종업원은 손님이 올 때마다 부지런히 무엇을 선택할지 묻는다. 메뉴판에 명시를 해 놓으면 불편이 좀 덜어지련만, 왜 저렇게 매번 물어야 하나?, 이런 의문도 인다.
통추어탕. 미꾸라지가 통으로 들어 있다. 대신 국물이 틉틉하지 않고 맑다. 미꾸라지는 신선하고 통통한 육질이 좋다. 정말 미꾸라지가 들어갔냐는 의구심을 잠재우려고 통으로 넣는다는 말과 원래 서울식이 통재료라는 두 가지 설이 있다.
거지 무리를 일컫는 꼭지, 그 우두머리 꼭지단은 꼭지들에게 밥만 빌고, 건지(반찬)를 빌지 말라고 하여 꼭지들의 품위 단속을 시켰다는데, 맨밥으로 먹을 수는 없어 꼭지들이 인근의 개울에서 미꾸라지를 잡아 탕을 끓여 빌어온 밥과 함께 먹었다. 여기서 서울 추어탕이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그러면 갈아 먹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꼭지들의 추어탕이라면 통 추어탕이 맞는 거 같다. 통추어탕은 대구나 남원과는 확실히 다른 방식이다. 국물맛은 맑아서 좋을지 모르나, 통으로 들어 있는 모습은 먹기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다.
간추어탕이다. 국물이 걸죽하다. 파와 고추는 자기가 넣는다. 덕분에 잡다한 양념이 완성된다. 파는 끓이는 과정에서 넣은 파도 이미 많이 들어 있다. 익은 파와 안 익은 파의 조화를 즐길 수 있다. 그래서 양념들의 행진이 더 확실해진다.
통추어탕은 갈아넣지 않아서 국물은 맑은데, 대신 밍밍한 느낌이다.
국물에는 온갖 식재료가 다 들어 있다. 목이버섯, 파, 두부, 버섯, 유부 등등이 들어 있다. 그러나 주요 부재는 없다. 상주추어탕은 배추, 남원추어탕은 시래기를 많이 넣어 추어와 조화를 이루는 맛을 낸다. 심하게는 추어를 먹는지 시래기 건더기를 먹는지 알 수 없을 정도다.
서울추어탕은 잡다하게 양념류만 들어 있고, 중심 부재가 없어서 먹는 내내 숫가락이 허망하다. 국물만 있고, 주인공이 없는 거 같다. 곱창국물로 맛을 낸다 하나, 잘 감지되지 않고 국물 맛은 전체적으로 틉틉하고 깊지 않다.
면을 따로 주고 넣어 먹게 되어 있다. 면에 채 국물 맛이 배이기 전에 먹어야 한다. 더구나 면을 넣으니 살짝 국물맛이 탁해지고, 다른 부재가 없으니 주로 면과 밥을 국물에 말아먹는 기분이 든다.
젠피를 넣어 먹으니 그나마 입맛이 확 살아난다. 처음부터 젠피와 함께였다면 만족스럽게 먹었을지 모르겠다.
찬을 몇 가지 줘서 밋밋한 주메뉴의 맛과 식감에 변화를 준다. 곁반찬은 맛과 종류가 평범하다. 생채는 살짝 익은 맛으로 무 자체의 맛이 전면에 있다. 숙주나물은 기름맛이 강하다. 얼가리김치도 살짝 익었다. 맛은 맑고 단순하다. 김치는 식재료의 맛이 전반적으로 부각되고 양념 맛은 숨어 있다.
밥은 쫄깃거리는 맛이 좋다.
면은 따로 주지 않고 어죽처럼 끓여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4. 먹은 후
1) 남자 음식문화
놀라운 건, 자리가 순식간에 차버리는 것, 그것도 99%가 남자다. 내 옆자리에 여자 한 사람 외 한 사람도 없다. 바글바글한 손님들이 모두 남자다. 남자 음식, 남자 문화다.
대구 따로국밥집에 갔을 때, 확연히 눈에 띄던 그 문화의 재현이 여기서 이루어진다. 점심이라 그런지 근처 사무실에서 점심 시간에 직원들이 대거 이동한 것같은 분위기다. 그래도 여직원의 비율이 상당할 텐데, 여직원들에게 환영받는 음식은 아닌 거 같다.
기본 찬은 이미 식탁에 놓여 있고 손님은 오는 대로 차곡차곡 앉아서 음식 선택만 하면 순간에 탕이 나오는데, 손님들은 대부분 10분이면 먹어버린다. 식탁 회전율은 아마 세계 최고 아닐까 싶다. 프랑스 정식에 길들인 사람이라면 기절할 듯한 속도다. 한 테이블에 두 팀을 받지 않는 프랑스 식당, 프랑스 음식이 그래서 망해가고 있지만, 여기는 극단도 이런 극단이 없다.
점심이라 회사 직원들이 빨리 먹고 들어가기 위해 그러겠지만, 다른 식당 점심은 이 정도는 아니다. 대부분 남자들이 와서 대부분 빨리 먹고 일어서는 문화, 추어탕은 그런 문화를 안고 있다.
용금옥은 음식 맛보다 음식문화가 더 눈에 띈다.
이 일대는 서울 중인촌으로 대대로 토백이들이 사는 곳이다. 중인은 터줏대감이고 양반은 출입이 있다. 중인 문화가 생활문화의 핵심이라는 거다. 음식의 수준은 중인 문화, 혹은 하층문화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추어탕 자체가 서민음식이니, 지역 분위기와 맞는다고도 할 수 있다.
용금옥 주변은 어지러운 거 같으나, 식당은 오래된 전통의 맛을 잘 담고 있다.
*식당 인근 무슨 교대식이 있는 듯하다. 오랜만에 서울 중심에 오니 구경할 것이 많다.
4. 먹은 후
2) 문화로 먹는 추어탕
그러나 자세히 보면 남자 빨리문화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직도 여전히 많은 많은 사람이 즐기는데, 이것은 역사가 오랜 것으로 조금 다른 문화이다.
용금옥은 곰보추탕과 형제추어탕과 더불어 3대 추어탕집으로 꼽히는 집이다. 모두 80여년의 전통을 갖고 있다. 남원의 새집과 대구의 상주식당이 60년 남짓한 역사를 갖고 있는 것에 비해 20년이 길다. 서울 추어탕은 통째로 넣는 것이 유명하고, 추탕이라고 불리면서 명성을 자랑했다.
그러나 역시 전국구가 된 것은 남원추어탕이다. 나머지는 지역추어탕으로 머물고, 원주추어탕이 지역을 넘어서도 이름을 조금 얻고 있다. 서울추어탕은 그야말로 서울 추어탕으로 서울로 한정된 추어탕으로 남았다. 역사가 짧은 남원에 오랜 명성을 내준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를 묻는 것이 부질없다. 음식이 밀린 것은 맛 이상의 것이 있겠는가.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는 경쟁에서 밀린 것이다. 위 음식 평에서 봤듯이 맛으로는 대중을 사로잡기에 한끗이 부족하다.
하지만 음식이 꼭 맛으로만 먹을까. 용금옥에서 보니 맛 이상의 다른 요인이 있다. 전통, 명성, 개성, 분위기 등등으로 말할 수 있는 문화가 바로 그것이다. 전통의 서울추탕의 대표주자로서 갖는 문화의 힘이 용금옥을 끌고가는 힘이 아닐까.
그 오랜 세월, 용금옥을 받쳐온 것은 이름없는 장삼이사 서울 사람들이지만, 그중에서도 매니아들, 또 유명인사들이 크게 한 몫했다. 남북 회담에서 북한 인사들이 거푸(1953, 1973, 1990) 용금옥 주인 안부를 물었다는 것은 전설같은 말이지만, 이런 전설은 빙산의 일각이다. 문대통령 또한 청와대에 초청한 손님을 위하여 용금옥 추탕을 주문해 대접했다 한다. 새롭게 씌어지는 전설이다.
1932년에 문을 열었으니 거의 90년이 다 되었다. 그 사이 수많은 문인, 화가 등 예술가와 정치 경제 유명인사들이 드나들어 용금옥은 서울시의 사랑방 역할을 했다. 서울 유명인사치고 용금옥에 드나들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다. 변영로, 정지용 등 오래 전 문인에서부터 조병옥, 유진오 등 정치인 외에 서울의 신문기자, 문인은 거의 대부분이 용금옥에 드나들었다.
이쯤 되면 이들은 추어탕을 먹은 것이 아니라 당대의 서울 문화를 음복한 셈이다. 이런 분위기를 담아 이용상 시인이 쓴 '용금옥 시대'는 서울 근대사를 함께 한 용금옥의 역사이자, 서울음식문화사이자, 서울의 역사이다.
이쯤되면 맛보다 문화가 우선 아닐까. 처음에는 맛이 문화를 낳았겠지만, 나중에는 문화가 맛을 압도했을 듯하다. 이쯤되면 맛을 논하는 의미가 반감된다. 문화로만도 충분히 맛이 있을 테니까.
추어탕은 가을이 별미다. 가을에 겨울을 대비해 영양분을 축적해 통통하게 살이 오르기 때문이다. '가을 추어탕은 인삼과도 안 바꾼다'고 할 정도다. 한로(寒露)와 상강(霜降) 즈음, 딱 요만 때면 시절음식으로 추어탕(鰍魚湯)을 즐겼다.
가을이 가기 전 오늘 용금옥을 찾은 그대는 맛으로 왔는가, 문화로 왔는가. 그대가 무엇으로 왔든, 그대의 한 끼는 용금옥 시대를 만드는 역사적 사실(史實)이 된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대 덕분에 오늘도 용금옥의 역사는 이어진다.
#서울다동맛집 #용금옥 #서울추어탕 #문화맛집
첫댓글 통미꾸라지 추어탕이 있는 줄은 지금 알았어요.
추어탕은 좋아도 미꾸라지를 보고싶진않아요😅😅 유부가 들어간 추어탕도 처음인데 서울에는 미꾸라지튀김은 인기가 없나봐요.
맞아요. 저도 추어탕에서 미꾸라지를 통째로 보고 싶지 않아요. 그러고보니 미꾸라지부침은 있고 튀김은 없네요. 남원새집에서도 경기대 근처 추어탕집에서도 튀김을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는데, 여기서는 부침을 하네요. 조금 음식 감각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아요.
저는 미꾸라지가 통째로 들어있는 것이 좋습니다. 어려서 미꾸라지와 친하게 지낸 탓이 아닐까 합니다. 곁반찬을 보니 중부지방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술에 물 탄듯 밍밍하고 밋밋한게 특징입니다. 자극적이지 않아 무난하긴 하나 깊고 오묘한 맛이 없어 매력이 떨어지지요.
음식 취향도 사람수만큼 다양한 거 같습니다. 통째로 든 미꾸라지를 보고, 입맛이 꽤 강한 저도 부담스러웠는데, 추억의 힘도 취향의 변수가 되는가 봅니다. 서울 사람들 중에는 피순대를 꺼리는 사람이 꽤 있더군요. 저는 어릴 때 잔치음식으로 먹었던 추억이 있어서인지 맛있는 음식으로 기억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음식은 과학의 영역이 아니라 통찰의 영역인가 봅니다. 남겨주신 댓글이 글에 대한 반향을 넘어 취향을 알 수 있게 하는 자료도 되는군요. 감사합니다. 추신입니다. 미꾸라지고추장국같은 환상적인 기대를 갖고 드시지는 마십시오. 추억과의 괴리는 클 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