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황진이
황진이(黃眞伊)는 조선조 명종 때쯤 송도에서 이름이 난 기녀였다. 뛰어난 재능과 발랄한 개성을 자랑하며 여러 명사들과 어울리고, 서경덕(徐敬德)만은 유혹하지 못했다는 일화를 남겼다. 기녀가 갖추어야 할 기예에 두루 능하고, 한시와 시조를 다 잘 지었다.
<박연폭포>(朴淵瀑布)라고 한 한시에서는 여성답지 않게 웅혼한 기백을 보였다. 폭포의 빼어난 경치와 힘찬 울림이 해동의 으뜸이라고 하면서, 자기 자신을 높이는 뜻도 함께 나타냈다. 서경덕과 박연폭포 그리고 자기를 송도삼절(松都三絶)이라고 할 만큼 자부심이 대단했다.
一派長川噴壑礱 한 줄기 긴 물구비가 골짜기 틈 사이에서 뿜어 나와,
龍湫百仞水潨潨 백 길이나 되는 용추로 쏟아져서 들어가는구나.
飛泉倒瀉疑雲漠 거꾸로 엎어지며 날리는 샘은 정녕 구름인가 하고,
怒瀑橫垂宛白虹 성난 폭포 가로 드리운 모습 완연히 흰 무지개일세.
雹亂霆馳彌洞府 우박이 날리고 벼락이 달리다 골짜기에서 멈추고,
珠舂玉碎徹晴空 구슬 방아에서 옥이 부서져 맑은 하늘을 뒤덮네.
遊人莫道廬山勝 구경꾼들아, 여산이 더 낫다고 말하지 마오,
須識天磨冠海東 해동에서는 천마산이 으뜸인 줄 알아야 하느니.
<영반월>(詠半月)이라고 한 것을 하나 더 보자. 반월이 빗이라고 하면서 이별한 여인의 처지를 말한 발상이 뛰어나다.
誰斲崑山玉 누가 곤산의 옥을 잘라
裁成織女梳 직녀의 빗을 만들었는가.
牽牛離別後 견우와 이별한 다음
謾擲碧空虛 부질없이 허공에 던져두었네.
작자가 엇갈려서 정확하게 헤아릴 수는 없으나 시조는 대략 여덟 수쯤 남겼는데, 이별한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사랑의 노래가 곧 이별의 노래인 고려 속악가사의 전례를 한층 빛나는 전통으로 만들었다. 사대부는 생각할 수 없던 표현을 개척해 관습화되어가던 시조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어저 내 일이여 그릴 줄을 모르던가?
있으랴 하더면 가련마는 제 구태여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어저”라는 말을 앞세워서 이별을 하자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던 그리움을 깨닫게 된다는 사연을 그냥 말하듯이 나타낸 것이 기발하고 신선하다. “제 구태여”는 앞뒤에 다 걸리는 말이다. 앞에 걸려서 “제 구태여 가랴마는”이기도 하고, 뒤에 걸려 “제 구태여 보내고”이기도 하다. 전에 없던 어법을 개척해 시조를 혁신했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얼운 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여기서는 시간을 휘어잡고자 했다. 님이 오는 봄밤은 짧고 님이 오지 않는 겨울밤은 긴 것이 어찌 할 수 없는 역설이라고 받아들이지 않고, 긴 밤의 허리를 잘라 짧은 밤의 이불 속에 넣었다가 편다고 하는 기발한 착상을 했다. 한탄의 노래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서리서리”와 “굽이굽이”라는 말을 써서, 주어진 불행을 자아확대로 극복하자는 의지를 나타냈다.
황진이 무덤을 찾아가 시인 임제(林悌, 1549-1587)가 지었다고 하는 시조가 전한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는다
홍안은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나니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퍼하노라
“靑草 우거진 골에 자는가, 누웠는가? 紅顔은 어디 두고 白骨만 묻혔는가? 盞을 잡아 勸할 이 없으니, 그것을 슬퍼하노라.” 풀이하면 이런 말이다.
무덤에 묻혀 있는 황진이가 착상을 기발하게 하도록 했다. 시간 이동이 빈번하게 이루어져 생동감을 준다. 현재의 상황을 말하고, 과거를 회상하고,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현재는 눈에 보이고, 과거는 상상해서 그린다. “靑草”보다 “紅顔”이나 “白骨”은 색채가 더욱 강해, 상상하는 과거가 눈에 보이는 현재를 압도한다. 종장의 현재는 중장의 과거를 어떻게 할 수 없어 무력하기만 한다.

*<명산거폭(名山巨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