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김씨(신라)는 흉노족의 후예가 아니다.
지금도 웬지 신라(경주김씨) 하면, 흉노족 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 이유는 몇 년 전 KBS의 역사스페셜의 영향이 가장 큰데, 문무왕 비문에 근거하고 있다.
당시 문무왕은 대 놓고 자신이 흉노족 왕자 출신인, 휴도왕 김일제의 후손이라고 밝힌 것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건 중국에서 나름 네임드 있던 '흉노족 출신 김일제 가문' 을
신라 왕실이 족보세탁 대상으로 선택하여 지금 흉노족 으로 몰리게 된 것 인 듯 하다.
당시 경주 김씨들이 엄청나게 황당해 했던 것이 생각이 난다.
내가 흉노족 이라니 ㅠㅠ
1. 신라의 정체성에 대하여...
기록에 의하면 신라의 전신인 사로6부족은 분명히 고조선의 유민들이 세웠다고 한다.(삼국사기)
그런데 외부 이민자들이 들어 온다.
외부 유이민 중 가장 먼저 온 이가, 박혁거세와 호공 이라는 자 이다.
전자는 신라를 왕국으로 만들었고, 후자는 석탈해와 김알지 세력과 같은 외부집단이 신라에 정착을 하는 것을 도왔다.
(호공은 왜국 출신이라고 하는데, 이 왜국이 일본을 뜻 하지는 않는 듯 하다.
호공에 대한 연구는 신라초기 정체성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 블로그에도 '호공에 대한 포스팅'이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박혁거세나 석탈해는 아무리 봐도 설화의 특성 상 흉노족 계열은 아니고,
김알지 역시 그리 흉노와 연결은 어렵지만 '김씨'이기에 판단을 유보한다고 해도,
신라는 기본적으로 고조선 유민 + 기타 제 세력(남방과 북방에서 온 잡탕집단)의 혼합체 라고 보는 것이 맞을 듯 하다.
아무튼 신라 신화를 분석해 보면, 북방과 남방신화가 적절히 혼합되어 있음을 볼 때, 한반도 정주민(고조선 유민)이 대다수 인 곳 에,
선진 철기기술(석탈해 등)을 가진 소수의 엘리트가 결합되어, 신라가 성립되었다고 보는 것이 가장 합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2. 경주 김씨의 잦은 족보세탁
사실 경주 김씨는 가장 늦은 미추왕 시절에 처음 왕위를 차지한 후, 박씨를 아예 왕비족으로 고정시킨 뒤에, 석씨는 자연도태 시킨다.
(석씨는 유난히 근친혼이 많은 탓 과, 석씨간의 지나친 내분으로 자연 소멸이 된다.
관련 내용은 석씨 관련 포스팅 참조)
그런데, 김씨는 자신들이 가장 늦게 왕실을 접수했다는, 열등감인지 너무 족보세탁을 많이 한다.
참고)
경주김씨에서 ㆍ김씨를 처음 사용하신 분은 진흥왕 이셨다
즉 김알지 도 미추왕도 자신이 김씨인지 몰랐다 ㆍ다만 진흥왕이 김알지가 금궤에서 나왔다고 김씨로 성씨를 정한 것 이다.
그리고는 법흥왕 이래로 주장한 석가족 드립을 체계화 한 것 이 ㆍ성골이다
그런데 성골이 근친으로 사라진 후 ㆍ진골로 왕이 된 김춘추가 진골 전통성을 위해 찾은 존재가 바로 한나라 시기 충신 김일제 였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자신들이 석가모니의 직계 후손이라고 빠득빠득 우겼다는 점 이다.
사실 '법흥~ 진덕여왕'까지 김씨는 자신들이 분명히 석가족의 후예라고 했다가,
진골인 태종무열왕이 왕위에 오르면서, 갑자기 김일제 떡밥이 김씨 사이에 떨어진다.
이 때 당나라와 교류하면서, 자신들과 같은 김씨가, 중국에도 있었음을 알았던 듯 하다,
그런데 그 김씨가 한무제의 충신이었던 김일제 라는 것을 알고,
석가족 후예라고 우겼던 기존의 주장 대신 새롭게 김일제 후손을 자칭 한 듯 하다.
사실 석가족은 성골에게나 의미있었지ㆍ진골은 자신들의 정통성을 위한 새로운 대상이 필요했다.
(이제는 불교의 석가 후예보다는, 당나라 즉 중국과의 유착이 필요하다고 여긴 듯...)
3. 이러한 경주김씨의 족보세탁은, 신라가 중국 신나라의 후예라는 설로 진화한다.
전한을 멸망시킨 왕망이 신나라를 건국하는데, 김일제 일파가 상당한 공을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이 신나라는 왕망 단 한명의 황제만을 남긴 체, 단명왕조로 끝나버렸고,
그 후 (소호금천씨) 김일제 일파는 중국을 떠나 피난을 갔다는 이야기를, 신라의 경주김씨들이 어디서 들은 것 같다.
그런데 김일제 일파가 도망간 곳이, 바로 요동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신라 김씨는 갑작스럽게 신(나라)이라는 국호와 신라 라는 이름이 비슷하고,
또 요동과 신라가 가까움을 들어 흉노의 김일제와 자신들이 같은 동족이라는 뇌피셜에 빠진다.
이게 가장 잘 들어난 유물이 있는데, 일명 ‘대당고김씨부인 비석’ 이다.
이 비석의 주인공인 김씨부인은 864년 5월29일에 32세로 사망한 신라여인 이었는데, 중국에서도 화가로 유명했던 김충의의 손녀 였다고 한다.
(그리고 김공량의 딸 이었다.)
이 비석에 의하면, 신라 경주김씨들은 (왕망의 신나라가 멸망을 해서) 난리가 나서 괴로움을 겪게 되자,
곡식을 싸들고 나라를 떠나 난을 피해 멀리 피난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요동(遼東)에 숨어살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
당시 재당 신라인들은(중국에 거주하던 신라인) 자신들이 원래 한나라 때 부터 중국에 살다가,
요동을 거쳐 신라로 갔다가 다시 중국에 왔음을 알려서,
중국인들 사이에서 재당 신라인 자신들이, 차별을 받지 않기를 원했던 듯 싶다.
4. 족보세탁은 신라의 경주김씨 만 했는가?
고려의 왕건 역시 자신의 선조가 당의 숙종(혹은 선종) 이라고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여진족 금나라는 신라인 김함보 후손이라고 우겼고,
만주족 청나라는 황당하게도 자신들이 송나라의 충신 악비의 후손이라고 우긴다.
(악비가 모함을 당할 때, 악비 아들이 송나라를 탈출해 금나라로 도망을 갔고
자신들은 그 후손이라는 말도 안되는 썰을 주장하였다)
이렇게 대부분의 국가들은 자신들의 족보를 세탁하는 경우는 아주 흔했다.
(러시아가 동로마제국 공주와 결혼 했다고 자신들이 동로마 후예라고 우기는 것 처럼...)
5. 신라가 흉노족이 아님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김일제를 시조로 들어있는, 문무왕 비문은 족보세탁 일 뿐 이다.
신라는 역사적으로 조상세탁을 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자신들을 석가의 후손이라 주장하는 등)
특히, 김일제는 이민족 출신으로 중국에서 한무제를 구한 영웅으로 등극한 입지전적인 인물로 유명하다.
우연히 그의 성씨가 김씨인 까닭에, 신라의 김씨들이 중국을 왕래하면서 금천(金天)이라는 명칭에서 김씨를 연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즉, 신라 왕실에서 중국과의 관계도 염두에 두면서(일제는 아무튼 충신이니) 적절한 숭조사업
대상을 물색하다가 김씨를 연상시키는 김일제를 조상이라고 꾸며낸 것이라는 것이다.
2) 신라의 적석목관분과 흉노족의 묘제가 완전히 다르다.
일부에서는 스키타이의 무덤인 쿠르간과 신라의 돌무지 덧널무덤이 매우 유사하다고 하지만,
두 고분의 등장시기는 워낙 큰 차이가 있으며,
쿠르간과 신라 돌무지 덧널무덤이 동일한 형태의 무덤도 아니다.(신라는 4세기 이후, 쿠르간은 기원전 7~8세기)
거기다가 쿠르칸은 흉노족 무덤이 아닌 스키타이인의 무덤이다.
또한 신라의 돌무지 덧널무덤에 부장된 유물은 ,백제, 가야계와 비슷한 유물 이 다수 발견되며, 신라의 유물이 흉노족과 관계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일부 서역식 유물은 오히려 페르시아인을 통해 해양무역으로 들어왔다는 견해도 있다)
6. 여전히 신라의 경주김씨가 흉노족 출신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의 견해
a) 문무왕이 직접 본인이 투후 김일제의 후손이라 밝혔다
b) 신라라는 국호가 김씨일족이 충성했던 왕망이 세운‘신나라’에서 온 국호이며, 신나라가 널리 퍼지라는 의미하고 한다.
c) 신라에는 페르시아식 금제 칼과 마구를 비롯한 말과 관련된 유적들이 발견되었는 데,
흉노족들이 서방과 오가면서 교류했다는 증거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페르사아 상인들이 가지고 온 것 이라는 의견이 지배적 이다)
d) 신라 김씨 세력의 대표적인 묘제인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은, 스키타이 및 쿠르간 등 북방 민족의 묘제와 비슷하다.
그러나 시기적으로, 신라의 돌무지 덧널무덤(적석목곽분)이 4세기경 이기에 시기적으로,
BC 8~7세기인 쿠르간 과는 너무 시간적 gap도 크고, 사실 구조도 같지 않다.
e) 황당한 이야기 지만, 훈족의 아틸라왕과 신라의 아달랴왕의 이름이 유사한 것도 증거로 제시되고,
김알지의 알지가 묵돌선우의 비첩(비첩의 이름이 알지 였다)에서 유래된 설까지 있다
(이 부분은 너무 황당해서 적고 싶지 도 않다)
무엇이 진실이건, 단일민족 프레임은 이제는 불가능 하다는 것을 알기에, 신라의 흉노기원설은 이 같은 다양성의 문화융합에서 찾는것을 현명할 듯 하다.
처음에 이 설이 널리 퍼지자, 모용선비 중 고구려에 패한 일부 인원이 신라로 내려왔다ㆍ 혹은 기마민족설이 증명되었다는 등 난리가 났던 기억이 난다.
확실한 건 신라인의 정체성은, 고조선 유민이 세운 터전 위에 여러 문화가 융합되어 조성된 다문화 복합체 라는 것 이다.
그리고 당연히 신라인이 흉노족의 후예도 아니다.(그냥 족보 세탁 일 뿐...)
확실한건 무열왕 계가 몰락하고ㆍ내물왕계가 신라왕실을 장악한 이 후 비문 이나 기록에 이 흉노족 드립과 김일제 스토리는 사라진다.
사실 신라인들도 무열왕계가 집권하면서 거론된 이 김일제와 흉노족ㆍ경주김씨 와의 이야기를 안믿은 듯 싶다.
마치 고려사람들이 왕건이 당숙종 후손이라는 이야기를 무시 했듯이 말이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joonho1202&logNo=221858634999
|
첫댓글 행복하려거든 감사함에 눈 떠야 한다.
내가 살아 있는 사실에 감사하고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 있어서 감사하고 건강함에 감사하다.
기쁨은 반드시 커다란 일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남의 평가에 신경쓰지 말고 내가 소중하게 여기고 보람을 찾으면 된다.
작은 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명성보다는 진실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지나간 일에 매달려 잠 못 이루지 말고 잊을 것은 빨리 잊도록 해야 한다.
"지나간 일에 슬퍼하지 않고 아직 오지 않은 일에 근심하지 않는다.
행복은 모르고 지나간답니다.
오늘도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며 감사하는 하루 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