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화접 1권 제1장 해결사(解決士)와 노인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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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노가 들어선 곳은 주방이었다.
주방 안에는 소, 돼지, 닭, 오리, 양, 생선 등... 여러 종류의 고
깃덩어리들이 천장과 연결된 갈고리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고 밀
가루를 반죽해 놓은 덩어리와 각종의 채소류가 그득히 쌓여 있었
다.
"오늘은 좀 신경을 쓰도록 해라. 어제 네가 칼질해 놓은 것은 노
부가 다시 한 번 손질을 해야 했느니라."
"그 정도면 됐지. 너무 까탈스럽게 굴지 마세요!"
도마 곁에 놓여 있는 두 자루의 식칼을 집어들며 철화접은 퉁명스
레 대꾸했다.
우노는 표정을 바꾸어 진지한 어조로 일장 훈계를 늘어놓았다.
"대충해도 된다는 마음으로 조리를 하기 때문에 음식 맛이 제대로
나지 않는 법이다. 음식이란 선료(選料), 배료(配料), 도공(刀
工), 화후(火候), 조미(調味)의 다섯 가지가 모두 최상, 최적의
상태로 이루어졌을 때에만 제 맛을 낼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육
류의 맛은 칼질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데 어제 네가
썰어 놓은 것 중에는 두께나 길이가 일정치 않은 것이 무려 일곱
개나 있었다. 그걸 노부가 일일이 다시......."
철화접은 미간을 찌푸리며 우노의 잔소리를 틀어막았다.
"알았어요. 오늘은 제대로 할 테니 잔소리는 그쯤에서 끝내는 게
어때요?"
"오냐, 기대해보마."
히쭉! 우노의 추괴한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지며 미소를 만들었다.
"오늘은 양이 많으니 그간 익힌 다섯 단계의 칼질을 모두 써보도
록 해라. 우선 덩어리를 자르는 괴도(壞刀)부터 시작하자."
철화접이 고깃덩어리 사이로 걸어 들어가자 우노가 뒷걸음질로 물
러나며 한 손을 들어 가볍게 허공을 저었다. 그러자 괴이한 일이
벌어졌다.
시뻘건 핏물을 떨구며 매달려 있던 수십여 개의 고깃덩어리들이
마치 장정이 두 손으로 밀친 듯 출렁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우노가 나직한 외침을 발했다.
"괴도!"
순간, 식칼 두 자루를 나눠 쥔 철화접의 양손이 빠르게 교차했다.
츳츳츳!
핏물과 함께 잘려나간 고깃덩어리들이 튀어올랐다.
"이단계! 토막을 내는 단도(段刀)!"
우노의 외침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양 고깃덩어리들의 움직임이 점
차 격렬해져갔다.
철화접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고깃덩어리들을 피해가며 연신 양손
을 휘저었다.
파파파팟!
"삼단계! 조각을 내는 편도(片刀)!"
신바람을 내는 우노의 외침이었다. 그는 이제 양손을 모두 써가며
덩실덩실 춤을 추어댔다. 그에 따라 고깃덩어리들도 장단을 맞추
어 격렬하게 요동을 쳐댔다.
철화접도 이에 뒤질세라 현란한 춤사위를 펼쳐갔다. 양발과 허리,
어깨를 비틀어가며 육림(肉林)을 헤집고 다니며 눈부신 칼춤을 추
어댔다.
삽시간에 육편들이 어지럽게 튀어올라 주방을 가득 메웠다.
"사단계! 네모반듯한 조각으로 잘라내는 정도(丁刀)!"
우노도 한곳에 머무르고 있지만은 않았다. 철화접을 중심으로 원
을 그려가며 두 손을 바삐 내저어갔다.
한데 방금 전까지만 해도 외다리로 뒤뚱대며 걷던 우노의 몸놀림
이 기괴했다. 바닥에서 세 치쯤 몸을 띄운 채 전광석화와 같은 속
도로 허공을 가르는 것이었다.
어느 한순간, 왜소한 체구의 우노는 흐릿한 잔상만 남긴 채 사라
져버렸다. 그러나 그의 음성만은 여전히 들려왔다.
"자, 이제 마지막 오단계다. 실처럼 가늘게 채를 썰어보아라. 사
도(絲刀)!"
소리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고깃덩어리들이 광란의 몸부림을 쳐
대기 시작했다.
더구나 그것들은 자신의 엄청난 잠력을 실은 채 철화접에게 쇄도
해 들어갔다.
현란하게 이어지던 철화접의 춤사위가 식칼에서 뿜어져 나온 창창
한 도기(刀氣)에 가려져 희미해져갔다.
태산이라도 무너뜨릴 만한 무지막지한 파괴력을 담은 수십여 개의
고깃덩어리들이 미친 듯이 날뛰며 가느다란 육질을 무수히 허공에
떠올렸다.
하얗고 붉은 가느다란 빗줄기가 어지럽게 쏟아져 내리는 가운데
고깃덩어리들은 누런 뼈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깐 사이
에 앙상한 몰골이 되어갔다.
난무하는 칼바람이 뼈들을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더 이상은 없을
것 같았던 육질이 야들야들한 실의 형상으로 떨어져 나왔다.
또한, 그 칼바람은 뼈 사이의 깊은 곳까지 낱낱이 파헤쳐 들어가
면서도 한 치의 흠집도 남기지 않았다. 놀랍도록 정교하고 깨끗한
칼질이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