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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선택을 최상의 축복으로
창50:20-21
오늘도 저를 행복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언제 밥 한 번 사겠습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참으로 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갑니다.
먹는 것에서부터 입는 것까지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까지.... 사소한 것에서부터 대단한 것 까지... 그런데 우리의 선택은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닙니다.
분명히 내가 선택은 했지만 나중에 마음이 변해 후회하는 경우가 매우 많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잘 못 선택한 것 들 때문에 지금도 얼마나 많은 후회를 하며 살아갑니까?
결혼도 그렇습니다. 부모의 선택이든 자신의 선택이든 서로가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선택해서 결혼한 게 아닙니까? 그런데 이 결혼이 자칫 잘 못하면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만나 평생 원수로 지내게 됩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는 몰라도 서로에 대한 실망과 기대에 대한 거리감으로 인해 부부 사이에 금이 간 결혼 생활이 얼마나 많습니까?
'정말 내가 이런 사람을 사랑했는가?'... '내가 어쩌다가 이런 사람을 택했는가?' 어떤 일이 생길 때마다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선택에는 무거운 책임이 뒤 따릅니다. 내가 한 선택이니 내가 책임져야 한다..... 인간은 자기의 선택을 책임져야 하는 존재라고 우리는 배워 왔습니다. 그래서 그 책임을 지기 위해 오늘도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제의 잘못된 선택 때문에 오늘도 하루 하루 힘들게 급급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 살이가 파도가 요동치는 고해요 전쟁터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 중에서 지금의 삶에 만족하시는 분이 얼마나 됩니까? 만족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비록 만족은 못 할지라도 내일이면.... 미래에는 뭔가 좀 좋아지겠지... 달라지겠지.... 이런 마음.. 이런 소망 때문에 참고 살아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내일도 오늘도 똑 같다고 한다면...조금치도 변화가 없다고 한다면..... 미래에도 이런 환경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고 판단된다면... 나도 안 변하고 저 사람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면... 이런 결론이 주어진다면..... 얼마나 살아가기가 힘이 들겠습니까?
그래서 진짜 절망은 내일도 오늘과 똑 같은 것입니다....내일을 기대할 수 없는 인생...얼마나 절망스럽습니까? 뿐만 아니라 상대방도 상대방이지만 내가 절대로 변하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될 때 그때는 얼마나 답답하고 낙심이 되겠습니까?
아무리 내가 힘쓰고 노력해도 이 환경에서 이 현실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면.... 가난을 참고 사는 것도 언젠가는 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런 희망 때문이 아닙니까? 투병을 하면서 온 몸의 통증을 안고 살면서도 이 질병이 언젠가는 고침을 받는다는 그런 한 가닥 소망이 있기에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아무리 참고 인내해도 더 나아지지 않는다고 한다면 우린 낙담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요즘 칠레라는 나라가 유명해졌습니다. 지하 700미터 갱도에 69일 동안 갇혀있던 칠레의 광부 33명이 엊그제 모두 구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들 매몰 광부들 단 한 사람의 낙오도 없이 모두 건강하게 구조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지상과 지하를 연결하는 파이프를 통해 바깥 세상에서 그들의 가족을 비롯해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을 잊지 않고 구조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그들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구조되어 가족들에게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라는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희망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33명 전원 모두가 다 구조되었습니다. 조금만 참으면 이 지옥 같은 지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지하 700미터에서 69일을 버티게 한 것입니다. 희망은 어떤 환경이든지 살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합니다.
월드 비전의 긴급구호 팀장인 한비야 씨가 쓴 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한정된 구호자금 때문에 아프리카의 어느 한 마을은 씨를 분배하고 그 옆 마을은 씨를 주지 못했습니다. 씨를 얻지 못한 마을 사람들의 낙심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올해도 굶어야 하는구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런데 이 두 마을에 계속해서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씨를 받은 마을도 비가 오지 않아서 파종한 씨앗이 싹을 튀우지를 못했습니다. 두 마을 다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씨를 나누어 준 마을 사람들은 씨를 심어놓았다는 그 사실 하나 만으로도 수확기까지 한 명도 굶어죽지 않았는데 옆 마을은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했다고 합니다. 똑같이 비가 오지 않은 조건이었음에도 단지 씨앗을 뿌렸다는 그 사실 하나가 사람들을 살린 것입니다. 희망이 이런 것입니다.
희망 하나만 있어도 사람을 살 수가 있습니다. 이 희망이 사라지면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며칠 전에 한 방송인이 남편과 함께 동반 자살을 했습니다. 사회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는데 그 이유는 그녀가 평소에 어디서나 행복에 관해 말하는 행복 전도사였기 때문입니다. 방송에서도 강의에서도 책에서도 사람들에게 행복한 삶과 그 가치와 비결에 대해서 끊임없이 강조하고 말해 온 사람이기에 충격도 컸습니다.
아마 다른 사람의 행복에 대해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지만 자기에게 다가 온 불행은 이겨 낼 자신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몸이 많이 아팠답니다. 그 고통을 견디기가 힘이 들었다고 유서에 썼습니다. 지금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이 아픔이 계속 될 것이라는.... 살아있는 동안에는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그녀가 살아야 한다는 이유를 모두 앗아 가 버린 것입니다.
자신에게 닥친 현재의 고난과 시련이 세월이 아무리 지나가도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고 오늘의 이 괴로움이 영원히 계속 될 것이다.... 이렇게 판단이 되면 삶을 이어가기가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산다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괴로울 것입니다. 더구나 이런 환경이 ‘다 네가 선택한 것이 아니냐? 그 선택의 결과로 이런 일이 닥쳤으니 다 책임지고 살아야 하지 않는냐?’ 그래서 아무 말도 못하고 속으로 삭이면서 묵묵히 참고 살기를 강요를 받는다면... 그런 인생 얼마나 암담하고 참담하겠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그 방송인 처럼 삶을 포기해야 합니까? 아니면 세상을 수동적으로 무의미하게 우울하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비록 우리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잘 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지만 그런 선택 가운데서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선택과 하나님의 역사... 즉 하나님은 우리의 최악의 선택을....잘 못된 선택을.... 우리가 예상치도 않았던 최상의 축복으로 바꾸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이 오늘도 우리가 절망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너무도 가난하고 못 살아서 온 가족과 함께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갔습니다. 이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 이 나라를 떠나면 다시 올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정리하고 떠났습니다.
다른 나라에 도착한 이후에 더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이제는 환경이 바뀌었으니 더 잘 살아봐야지 새로운 각오로 더 땀 흘려 살았습니다. 그럭 저럭 아들 둘도 장가를 들게 되어 며느리를 맞았습니다. 부자는 아니지만 그런대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죽었습니다. 세상의 절반이 사라졌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들도 죽었습니다. 그것도 둘 다... 세상이 통째로 사라졌습니다. 그녀 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이 나라로 오는 것이 아닌데... 후회 막급이었습니다. 자기가 선택한 비통한 결과에 말 문이 막혔습니다. ‘내가 잘 못 생각했다... 그때 잘 못 선택했다.. ’ 이런 자책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책임을 내가 다 지고 살겠노라 결심했습니다..... 며느리들을 불렀습니다. ‘너희들 한테 무슨 죄가 있느냐? 팔자를 고쳐 새 삶을 살거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말 했습니다.
누구 이야긴줄 아시지요? 나오미이지요.. 나오미... 자신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인생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때 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었어.. 그 때 그렇게 결정하는 것이 아니야... 내가 왜 그랬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 돼....’지금의 삶이 힘들면 힘들수록 이런 후회가 더 될 겁니다.
그런데 보세요. 이렇게 모든 것이 끝난다면 너무나 허무합니다. 세상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니가 선택한 결과니까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 소리도 하지 말고 그냥 참고 살아라... 말은 맞는 것 같은데... 우리가 이렇게만 살아야 한다면 얼마나 불행합니까? 비록 선택을 내가 잘 못해서 이렇게 되었지만.....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으십니다. 룻기를 보세요..룻기가 그렇게 절망스럽게 끝나지 않잖아요... 반전이 있잖아요.. 정말 나오미로선 생각도 하지 못한 예상치도 못한 그런 놀라운 일이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 나오미가 완전히 망해서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옵니다. 이제는 그냥 조용히 아무 소리도 안 하고 숨어서 살다가 죽어야지..... 이런 마음이었을 겁니다. 이 생명이라도 부지하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으면 죽어도 할 수 없지 다 내 팔자인데.... 이렇게 아무 희망도 없이 모든 것을 체념한 그녀에게 거짓말 처럼 새로운 상황이 펼쳐집니다.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마치 그녀를 기다렸다는 듯이 보아스라는 사람을 만납니다. 하나님 예비하신 인물과 환경이 아닙니까? 그리고 우리가 아는대로 좋은 일이 연달아 생기고...나중에는 ....해피엔딩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이렇습니다... 나는 어떤 계획도 세우지 않았는데 그냥 생각도 없이 길을 가는데 누군가를 만나게 하십니다. 어떤 상황에 직면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철저하게 실패한 나오미 가정으로 하여금 다윗과 메시야의 조상이 되게 하는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최악의 선택을 최상의 축복으로 바꾸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선택을 초월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따라서 생각해 봅시다. 그녀가 모압 땅으로 가겠다는 선택을 하지 않앗다면... 그녀가 룻이라는 며느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그리고 완전히 실망한 가운데 베들레헴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이런 말들을 많이 합니다. ‘저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 직장에 다니지 않았더라면... 우리 집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이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 태어낫더라면...
우리 자신의 선택에 대해 불만이 많습니다. 이게 아닌데...그때 그러는게 아닌데... 자책하고 후회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때 내가 그런 선택을 했기 때문에 오늘 하나님의 섭리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선택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숨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봅시다. 요셉의 이야기입니다. 못된 형들에 의해 애굽으로 팔려간 요셉이 크게 성공합니다.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헤어졌던 모든 가족들을 다 애굽에서 살게 합니다. 좋은 땅에서 떵떵 거리며 살게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형들의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이런 걱정들을 주고 받습니다. ‘요셉이 아버지 야곱이 지금 살아계시니까 우리한테 아무 짓도 안 하는 것이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그 즉시로 우리에게 복수를 할꺼야... 그때 우리 중에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거야...어떡하지?’
이런 얘기들을 하면서 한 숨을 쉬며 걱정을 합니다. 요셉이 이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합니다. ‘형들이여 정말 왜 그러십니까?...... 그대들은 나를 해치려 했으나 하나님은 그 화를 복으로 바꾸어 주시사 오늘날과 같이 많은 사람들을 구원토록 하셨습니다. 그러니 절대로 그런 걱정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형들이 나를 애굽으로 보낸 것은 형들이 한 일이 아닙니다. 다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요셉은 형들의 선택에 의해 애굽으로 팔려갔지만 요셉은 이 일이 자신과 가족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는 비록 형들에 의해 애굽으로 종 살이로 왔지만 그것은 작게는 요셉의 가족을 구원하고 크게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 즉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큰 민족으로 키우시려는 하나님의 뜻이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이렇게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선택이 겉으론 실패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은 실패로 끝나게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은혜로 예상치 않은 축복으로 연결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의 삶은 고난은 있더라도 실패는 없습니다. 이 실패로 인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요즘 골프 인구가 많습니다. 전에는 골프가 부자들의 전용물이었는데 이젠 서민들도 애용하는 운동이 되었습니다. 동네의 스크린 골프나 골프 연습장 같은데서 큰 돈 들이지 않고도 얼마든지 골프를 즐길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공과는 달리 이 골프 공은 맨들맨들 하지가 않고 많은 홈들이 패여 있습니다. 약 300~500개의 홈들이 각각 각각 0.25mm의 깊이로 파여있습니다. 왜 그렇게 햇을까요? 이 골프공의 홈들이 공을 훨씬 멀리 날아가게 해주는 겁니다. 공기 저항을 무려 50%나 줄인다고 합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골프 공에 이 홈들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골프를 치다보니 공에 상처가 많이 났는데 가만히 보니 이 상처 난 헌 공들이 새 공 보다 훨씬 더 멀리 날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연구해 낸 것이 일부러 공에 수 백 개의 상처를 내서 지금의 골프공을 만든 것입니다.
실패한 줄 알았는데 그것을 끝난 줄 알았는데 하나님은 아니라고 하십니다. 괜찮다고 하십니다. 내가 도와줄 테니 다시 시작하라고 하십니다. 상처는 있을지라도 그 상처를 별로 바꾸어 주신다는 겁니다. 그러니 좌절하면 안 됩니다. 내겐 더 이상의 좋은 일은 없어... 이렇게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있고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배우자나 직업이나 학교나 친구들 등은 내가 선택할 수가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외모나 고향 이나 가문이나 혈액 부모님 등은 내가 선택할 수가 없는 것들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자신이 선택을 잘 못함으로 불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후회를 하며 자책을 합니다. 포기하고 싶기도 하고 절망도 합니다. 그러나 용기를 내십시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과 함께 하십니다. 실패를 축복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그리고 또 우리 자신들이 선택하지 않은 불행들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병약하게 태어난 사람, 장애를 입은 사람, 부모 없이 태어난 사람.. 아주 가난한 나라 아프리카나 북한에서 태어난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게도 선택의 책임을 묻지 않으십니다. 도리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미안해 하십니다.
‘얼마나 아프니? 배 고프고 힘이 드니?’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가 알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가 그들을 도와주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받은 사랑을 베풀어 주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자신의 선택하지 아니한 불행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들을 좋아하십니다.
우리는 오늘도 선택에 실패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낙심해선 안 됩니다. 비록 선택에는 실패햇지만 하나님은 좋은 것을 주시려고 준비하고 계십니다. 이 사실 믿으셔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연거푸 선택의 실패를 경험하더라도 딱 한 가지 우리의 메시야로 예수님을 선택하셨다면.... 그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가장 축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합시다... 이 선택 하나로 우리의 삶은 미래가 있습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불교계의 큰 인물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불교를 학술적으로 연구하려면 수재는 30년 걸리고, 머리가 나쁜 둔재는 300년 걸립니다. 그런데 도교는 20년, 유교는 10년이면 더 배울 것이 없습니다. 기독교는 머리가 나쁜 둔재도 3년이면 더 배울 것이 없습니다. 불경을 외우는 실력으로 성경을 외우면 넉넉잡고 석달이면 신구약을 다 외울 수도 있습니다."
최소한 300년 아니면 20년, 10년씩이나 연구해야 구원을 얻는 종교는 우리같이 머리도 안 좋고 인내심도 없는 사람이 믿을 수가 없습니다. 3년도 아닙니다. 기독교는 우리가 그냥 믿음으로 믿는 즉시 구원을 주는 종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이 풍성한 은혜로 하나님은 우리의 실패한 삶을 성공으로 인도해 가십니다.
그러니 지금 힘들더라도 조금만 견디십시오. 참으십시오. 반드시 하나님의 놀라운 반전의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최악의 선택을 최상의 축복으로 바꾸어 주시는 분이심을 확실하게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