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26 주일설교
아히야와 아비야
열왕기상 14:1~16
1. 신앙생활을 엉터리로 하는 사람들을 보면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이나 오늘날 한국교회 교인들이나 비슷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만 자기 마음대로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 중에 마음에 드는 부분에는 ‘아멘’하지만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은 무시하거나 부정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성경을 자기가 원하는 부분만 골라서 믿으면 우리는 그런 사람을 이단이라고 합니다. 물론 성경을 전체적으로 믿는 사람도 100% 말씀대로 살지 못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부분적으로 믿는 사람과는 전혀 다릅니다. 성경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믿는 사람들은 평소에는 제 맘대로 살다가 필요할 때는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하나님이 아니라 램프 요정 genie로 생각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그렇게 엉터리로 믿으면 어떻게 될까요? 본문에서 확인해 보십시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네 사람의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여로보암의 아내(Mrs 여로보암),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 그리고 선지자 아히야입니다.
2. 여로보암은 북 이스라엘의 왕이 된 이후 두 개의 금송아지를 만들고 가짜 제사장을 세워 금송아지를 하나님으로 섬기게 했습니다. 그래서 여로보암은 대대로 우상숭배자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열왕기 기록자는 왕들을 평가할 때에 다윗의 길로 행하였다, 혹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였다 하고 구별하여 평가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멸시하던 여로보암이 어느 날 여호와 하나님을 찾는 사건이 생겼습니다. 자기 아들 아비야 왕자가 중한 병에 걸리자 여로보암은 자기 아내를 실로에 있는 아히야에게 보내서 아비야가 이 병에서 나을지 물어보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정상적인 방법이 아니라 변장하고 다른 사람인 척 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어이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여로보암은 그 동안 금송아지가 여호와라고 주장했는데 필요한 것이 있으면 금송아지를 섬기는 제사장에게 물어보면 될 것입니다. 여로보암이 자기 아내를 아히야에게 보낸 것은 금송아지가 신이 아님을 자인하는 행위입니다. 또 아히야 선지자가 아비야가 나을지 못 나을지 알 수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 아내가 변장한들 그걸 몰라보겠습니까?
3. 그런데 아히야 선지자는 누구일까요? 오래 전에 솔로몬이 교만하고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않고 범죄하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나라에서 10지파를 빼앗아 여로보암에게 줄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 예언을 여로보암에게 전해준 선지자가 바로 아히야입니다.
아히야의 예언대로 여로보암은 북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여로보암이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히야를 스승으로 모시고 아히야가 시키는 대로 순종했을 것입니다. 만일 그랬다면 북 이스라엘은 영적으로 바로 서고 여호와를 잘 섬기는 나라가 되겠죠. 그랬다면 북 이스라엘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다스리는 남 유다보다 부강한 나라가 되었을 것입니다.
저에게도 아히야 같은 그런 스승 한 분이 계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여러분에게도 그런 스승이 계시면 좋겠지요? 그런데 희소식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아히야 같은 스승 대신에 하나님의 뜻이 모두 기록된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로보암이 한심하다고 생각되신다면 여러분은 온전히 성경대로 사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4. 왕이 된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이스라엘을 우상숭배의 나라로 만들어 갈 동안 아히야는 왜 등장하지 않았을까요? 기록에는 없지만 아히야가 와서 경고했으나 여로보암이 무시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여호와도 멸시한 여로보암이 여호와의 선지자 아히야를 무시하지 않았을까요? 자칫 여로보암이 싫어할 충고를 했다가는 아히야를 해쳤을지도 모릅니다. 여로보암이 경고를 듣지 않을 것이 뻔해서 아히야는 답답한 마음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그 동안 아히야는 얼마나 마음이 슬펐을까요?
하여간 그렇게 나라를 제 맘대로 다스리며 우상숭배의 나라로 만들어 버린 여로보암이 이제 와서 아히야를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로보암이 아히야를 다시 찾는 이유가 이스라엘을 바르게 다스릴 방법을 묻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기껏 자기 아들이 병에서 나을지 물어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여기서 제가 궁금한 것은 만일 아들이 나을 수 없다고 하면 어쩔 셈이었을까요? 아들을 살려달라고 빌었을까요? 살려내라고 협박을 했을까요? 여러분 생각은 어떠세요?
5. 아히야는 이미 나이가 많아서 앞을 보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앞도 못 보는 노인을 만나러오면서 변장을 하고 오는 여로보암의 아내를 상상해 보세요. 예나 지금이나 정치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웃기니 개그콘서트가 폐지할 수밖에 없지요.
아히야는 나이가 많아서 육신의 눈은 어두웠으나 영적인 눈과 귀는 더욱 민감해져 있었습니다. 변장이 아니라 성형수술을 하고 와도 하나님이 함께하는 선지자 아히야를 속일 수는 없습니다. 여로보암의 아내의 발소리만 듣고 아히야는 “미세스 여로보암이여, 어서 오시오.”라고 했습니다. 여로보암의 아내는 얼마나 놀랐을까요?
그러나 아직 놀라기에는 이릅니다. 왜냐하면 진짜 놀랄 이야기는 지금부터 들려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히야는 그 동안 저지른 여로보암의 악행을 지적하면서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가 죽을 뿐 아니라 온 가문이 망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더욱 무서운 말은 여로보암의 가문에서 정상적으로 무덤에 묻힐 사람은 지금 병으로 죽을 아비야 한 명뿐이라는 것입니다. 그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비참하게 죽고 무덤에 묻히지 못해서 짐승들이 먹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얼마나 무섭고 비참한 예언입니까?
이 예언을 하려고 아히야는 수십 년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여로보암이 아히야를 스승으로 모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성도 여러분은 목사를 스승으로 삼아 목사가 가르치는 성경 말씀대로 순종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실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6. 여로보암의 아내가 왕궁으로 돌아와서 막 지방을 밟을 때 아히야의 예언대로 아비야가 죽었습니다. 여러분, 소름이 돋지 않습니까? 아비야가 죽은 후 여로보암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른 사람을 보낼 것이 아니라 직접 아히야를 찾아가야겠죠. 그 동안의 죄를 회개하며 살려달라고 빌어야겠죠. 열왕기를 읽으면서 여러 번 발견하는 것은 어떤 악독한 왕이든지 경고를 받은 후에 뉘우치면 하나님이 심판을 유보하시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아무 반응도 하지 않을 것이었으면 자기 아내를 아히야에게 보낸 이유는 무엇일까요? 옛날에 자기에게 좋은 말을 해 준 아히야였기에 지금도 아들이 나을 것이라는 좋은 말을 해 줄 것을 기대했던 것입니다. 여로보암에게 필요한 사람은 자기에게 옳은 길을 가르쳐 줄 사람이 아니라 자기에게 무조건 찬성하고 축복해줄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목사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든지 “잘 하셨어요, 이해됩니다, 오죽하시겠어요” 그런 말만 해 주는 목사를 원하세요? 아니면 “그러시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하고 지적하고 책망해주는 목사를 원하십니까?
책망해 주는 목사를 원하신다고요? 하지만 저는 속지 않습니다. 수십 년간의 목회 경험에 의하면 지적과 책망을 좋아하는 성도는 한 명도 없습니다. 아히야가 여로보암에게 나타나서 책망하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책망해서 돌이킬 성도는 처음부터 책망 받을 행동을 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실지 싫어하실지 여러분도 다 알고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성도에게 책망은 하지 않습니다. 대신 설교 시간에 무엇이 바른 신앙생활인지 선포할 테니 여러분이 각자 바른 선택을 하시기 바랍니다.
7. 아히야의 예언 중에 좀 이상한 부분이 있습니다. 여로보암의 가문에서 정상적으로 장례식을 하고 무덤에 들어갈 사람은 지금 병으로 죽을 아들 아비야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그 나머지는 다 비참하게 죽어 장례를 치르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가문에서 아비야만 정상적인 장례를 하게 되는 이유가 무섭습니다.
13절에 보면 아비야는 여로보암의 가문에서 유일하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항하여 선한 뜻을 품었다고 합니다.
때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사람들의 생각과 같지 않습니다. 아비야가 그런 선한 마음을 가졌다면 아비야에게 건강을 주어서 이스라엘을 믿음으로 세우게 하시면 좋지 않을까요? 하지만 하나님의 방법은 반드시 사람들의 상식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왜 그렇게 하셨을지 짐작을 좀 해 보자면, 아비야가 개혁을 하려면 반대가 너무 심하거나 너무 많은 사람을 죽여야 하는 문제가 발생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차라리 그 아들을 깨끗하게 데려가시기로 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여로보암은 자기의 악행으로 사랑하는 아들을 빨리 죽게 만든 셈입니다.
세상에는 이렇게 어리석은 사람이 여로보암 하나 뿐이 아닙니다. 지금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어리석게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말씀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에게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지 말라고 강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필요할 때마다 붙였다 뗐다 하는 악세사리로 취급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8. 하나님을 램프 요정 genie처럼 생각하고 자기 종으로 부려 먹는 사람은 결국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의 특징입니다. 우상 숭배란 어떤 형상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섬기는 것입니다.
우상에게 절하는 사람은 우상을 기쁘게 해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상의 비위를 맞추어 주어 자기가 복을 받으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상 종교에는 윤리와 법도가 없습니다. 어떻게든 복만 받으면 되니까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생각만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비위를 맞추어 드린다고 헤벌레하면서 복을 주시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과 법도와 규례를 철저히 지키도록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을 섬기되 하나님이 명하신 방법으로 섬기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합신 교단의 3대 슬로건은 바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 생활입니다. 무조건 열심만 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오직 성경 말씀대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들 중에 하나님 앞에서 선한 사람은 아히야 선지자와 아비야 왕자입니다. 그리고 아히야와 아비야는 여로보암을 양쪽에서 비추어 주는 spotlight 입니다. 여로보암이 잘 나서 비추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여로보암이 얼마나 어리석고 완악한지 보라고 여로보암에게 집중 조명으로 비추면서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잘 봐라.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이렇게 하면 망한다. 내가 세워 주었더니 나를 거역하고 배신한 여로보암을 잘 보고 절대로 여로보암의 길로 가지 말거라.”
이것이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들려주셨고 오늘날 신약의 성도들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히야와 아비야가 폭로하는 여로보암의 길로 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요? 네, 다윗의 길로 행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