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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일 / 집결장소 : 2014년 2월 22일(토) / 길음역 3번출구 (10시)
▣ 산행코스 : 4구간 솔샘길, 북한산생태숲 앞-빨래골공원지킴터-삼성암-칼바위능선-칼바위 밑-구천폭포하단-아카데미탐방지원센터-아카데미하우스-국립4.19민주묘지-뒷풀이 장소(수유리)
▣ 참석자 : 12명 (용우, 정남, 종화, 진오, 윤환, 경식, 재웅, 삼환, 전작, 정한, 문형, 근호)
▣ 동반시 : "풀리는 한강 가에서" / 서정주 < "동백꽃" / 문정희 - 한양기 산우 추천 >
▣ 뒷풀이 : 주꾸미 중간맛에 막걸리 및 소주 / "사월의 주꾸미"(수유점) - 이재웅 산우 찬조
아침부터 비에 젖은 솜이불을 짊어진 당나귀처럼 몸이 지쳐 있고, 마음마저 바위만큼 무겁다. 아니 울적하고 동굴 같은 휑한 얼굴일 것 같아 걱정인데다가 더욱이 이번 북한산 둘레길의 기자라서 내심 근심이 커진다.
사실 요즘 회사일이 신규 사업으로 너무 힘들고 정신적으로 어려운 사정인데다 오늘 사무실을 이전하는 날이라 이번 산행 참석이 곤란하다고 삼환 총장에게 전화하려고 문자를 보니 내가 이번 산행의 기자가 아닌가! 하루 앞두고 기자를 부탁하는 일이 쉽지 않아 직원들에게 이사를 잘하도록 당부하고 산행에 참석하기로 했다.
2월 하순이면 마지막 추위가 마지막 기승을 부릴 시절인데 오늘은 바람 한 점 없는 날씨로 섭씨 4도/영하 4도의 기온인데 벌써부터 초봄의 기운이 완연하다. 10시 10분전 길음역 3번 출구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밖으로 접하는 순간 문형 회장님과 진오 산우가 손을 들어 반긴다. 생굴을 사오는 정남 산우를 마지막으로 기다리는데 정한 산우가 언제나처럼 집에서 내린 커피포트를 꺼내들고 한잔씩 권한다. 맛이 정갈하고 향내가 은근하게 무릎까지 내려갈 듯이 느껴진다.
오늘의 산행은 정릉에 거주하는 재홍 산우가 추천하였는데 지인의 결혼식으로 부득이 불참하여 산우들이 아쉬워하는데 버스이동과 코스에 대하여 계속해서 문자가 오는 걸 보니 마음은 산우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동행의 확인과 동시에 감동의 물결이 일렁인다. 들머리까지는 걸어 내질러 가기는 상당히 부담되는 거리여서 1114번 마을버스에 자리 잡고 있는데 진오 친구가 “용우!”서울시장 애인 차가 저기 가네“하여 쳐다보니 노란색 승합용 서울시 장애인 택시가 아닌가! 한글 띄어쓰기가 만들어 주는 웃음의 미학이다. 진오 산우는 평소 마음의 여유가 깊고 넓어 긍정적이며 소박하고 인간다운 사고와 행동이 구수하다. 가끔 진오 산우의 가슴은 소년의 심장일 것이라는 상상을 해보면서 진오 산우의 해맑은 장난기에 맞절을 보냈다 .
종점까지 편안하게 이동하여 하차한 후, 잘 그려진 산행 코스 지도를 보며 산우들의 의견이 조율되었는데 일단 칼바위 방향으로 가서 대동문을 지나 우이동이나 소귀천계곡으로 하산할 수도 있고 내친김에 백운대를 인수 할 수도 있지 않겠냐는 정남 산우의 고견을 따르기로 하였다. 이러는 사이에 무겁던 몸도 지쳐있던 마음도 산우들과 하나가 되는 시간을 가진 탓인지 정신이 맑고 발걸음도 가벼워진 것 같다. 산우들의 따뜻한 마음이 흐르는 교감과 안정된 호흡이 주는 치유의 위대한 에너지이고 강력한 우정의 힘이 분명하다.
북한산 둘레길은 강북구, 성북구, 종로구, 서대문구, 은평구, 고양시 덕양구, 양주시 장흥면에 걸친 12개 구간과 우이동에서 교현리 우이령 구간길을 경계로 도봉산 지구의 8개 구간을 합하여 총 21개 구간이며 전체길이가 71.5KM로 2010. 9. 7.에 45.7KM를 개통하고 2011. 6. 30.에 나머지 25.8KM를 개통하였는데 사람과 자연이 하나되어 걷는 둘레길은 물길, 흙길, 숲길, 마을길, 산책로의 형태에 각각의 21가지 테마를 구성한 길이라 한다. 한국인의 열정과 속도의 힘으로 섬과 육지, 산과 강이 모두 둘레길로 이어질 모양이니 대한민국은 둘레길 공화국이라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닐 성 싶다.
10:30, 4구간인 솔샘길로 들어서니 생태숲인 빽빽한 소나무의 향내가 붉은 흙길위로 가득하고 상단 지역에는 잣나무를 심어 조망이 시원해 마음이 덩실거린다. 삼림욕의 효능은 첫째 스트레스와 불면증을 완화하고, 둘째 치매예방과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며, 셋째 아토피와 피부질환에 개선효과가 있다는 표지판을 보니 장성 축령산 편백나무 군상의 전경들이 주마등처럼 순간 스쳐간다.
솔샘 터널을 우측으로 흰 구름길 방향의 둔지이며 예전 재홍 산우가 안내해주고 부득한 사정으로 되돌아 간 마당을 지나고 3구간 칼바위 지킴터를 경유하여 대동문 방향을 마주하는 바위언덕에 잠시 땀을 식히는데 재웅 산우가 배낭에서 감귤을 박스 채 꺼내어 3개씩 배급하고 전작 산우가 초콜릿을 한 움큼씩 나누어 준다.
진오 산우도 마나님이 마련해준 오이 그릇을 모두에게 돌리며 그릇을 다 비운다. 고마운 산우들이 있어 모두의 뱃속이 행복한 탄성을 올린다. 누군가 요즘은 교도소에서 흰 쌀밥이 주식이란다. 콩밥 먹이다 보리밥을 주었는데 보리 값이 쌀보다 비싼 세상이 되었으니 죄지은 감옥 수감자에게 비싼 걸 먹일 이유가 없을 것이다. 정한 산우 아는 분이 높은 담장 안 생활을 마치고 출소하여 하는 말이 쌀밥만 먹어 혈당치가 높아져 건강이 나빠졌다고 하더란다. 꽁보리밥이 주식이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보니 창자가 낄낄 웃는다. 세상 많이 변했다.
우측 삼성암과 좌측 내원사를 사이로 제법 가파른 길을 한참 오르니 이제부터는 둘레길이 아닌 산행의 길로 접어들어 칼바위 길로 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갈림길인데 시간이 정오를 조금 지났다. 편편하고 널찍한 자리를 찾아 자리를 펴고 가져온 먹거리를 내 놓는다.
어김없이 문형 회장의 홍어무침, 정남 산우의 생굴과 한과, 근호 산우의 넉넉한 달꺌찜, 종화 산우의 굴전과 과일, 재웅 산우의 묵을 비롯하여 각자 가져온 음식을 함께 먹기 전 시 낭송을 하게 되었다. 오늘의 시는 전번 설경에 즐거웠던 수리산 산행기자 한양기 산우가 추천한 문정희 시인(1947년생, 전남 보성출신, 현 고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동국대 석좌교수)의 '동백꽃'을 기자가 낭송하고 국보급 시인이므로 별다른 언급이 적절하지 않다는 정남 산우가 추천한 미당 서정주의 '풀리는 한강 가에서'는 위윤환 산우에게 부탁하여 낭송하게 되었는데 오늘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나는 그런 사람이려나' (인터넷에서 검색하였으나 작가명과 시 내용을 확인 할 수 없어 소개하지 못해 아쉬웠음)를 카톡 사진으로 찍어와 낭송했으니 오늘은 윤환 산우의 발기된 시심을 응원해 보는 모양이 되었다.
가져온 막걸리가 4병인지라 오래지 않아 바닥을 보이고 술이 부족하다고 아쉬워하는 소리에 삼환 총장이 큼직한 오가피주 한 병을 꺼내 놓으니 술 고픔도 다소 진정된 듯한 분위기가 되었다.
여기에서 2.2KM를 가면 대동문인데 오늘따라 멀리 느껴진다는 산우들의 엄살이 나오니 기세등등했던 솔샘 길 입산 때의 의욕은 꼬리를 감추고 별다른 이견 없이 2구간 순례길인 수유동 아카데미하우스로 날머리를 정하고 13시 30분에 하산을 시작한다. 구천계곡을 끼고 바윗길이 대부분인 내리막길은 경사도 완만하고 햇빛을 받으며 걷는 길이라 산우들과의 담소도 풍성하고 곡선의 발걸음도 가볍다. 술 이야기가 한참이라 귀를 세워 들어보니 삼환 총장이 사위와 마주하는 술자리에서의 뒷담화를 털어 놓는다. 요즘 젊은이들은 술잔을 가득 채우지도 않고 권하는 맛이 술 마시는 재미인데 지켜야 할 전통문화의 계승이 단절되는 것 같아 많이 서운하다고 이야기 한다.
며칠 전에는 사위와의 술자리에서 “야~ 사람아 술잔 넘치게 따라 봐!”라고 호방하게 소리 질렀더니 사위가 많이 어색해 하며 낯선 표정으로 놀라더라고 한다. 정남 산우도 막걸리를 별나게 좋아 하는 편인데 잔 가득 철철 넘치게 채우는 선비 마음을 닮은 막걸리의 담백한 기개와 온온한 정감이 이 세상 어떤 술보다도 으뜸이라고 강조하는데 뒤따르던 윤환 산우도 한마디 한다.
80~90년대에는 일 년 365일 동안 술 안 마시는 날이 2~3일인 경우도 있었다고. 술 안 마신 며칠마저도 술에 취해 깨어나지 못하거나 아파서 마시기가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라고~. 술의 종류를 불문하고 한 잔정도가 치사량이 되는 기자로서는 호연지기로 술 마시는 산우들이 부럽기만 하다. 알콜 분해효소가 몸 안에 아예 생산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적은 량의 알콜에도 눈알 돌출. 급열, 심장 박동 제멋대로. 발바닥까지 불덩이가 된다. 이번 기회에 기자의 괴롭고 힘든 고충을 조금 이해해 주기를 송구한 마음으로 바래본다
문형 회장에게 금천구청장 출마를 준비 중인 정영모 선배님의 가능성은 어떠냐면서 새정치연합의 세와 광주광역시장 선거 등 정치이야기가 나왔는데 지방선거가 6월 4일인 이유를 진오 산우는 선거일을 육사(육군사관학교)출신들이 정한 날이냐고 묻는다. 선거는 날짜도 날씨도 관계는 되겠지만 결정적인 건 그 시대의 바람이 운명을 좌우한다고 문형 회장이 마무리 한다.
한 번의 휴식도 없이 곧장 내려가다 보니 아카데미하우스에 도착하였고 좌측으로 이준 열사, 신익희, 신하균 등과 광복군 합동묘소가 있으며 그 뒤 진달래 능선 길에 김병로 선생의 묘소도 기억이 가물거리긴 하지만 느낌은 새롭다. 수유분소를 지나니 신숙선생의 묘소와 보광사 뒤편에 김도연, 김창숙선생의 묘소의 표지석을 지나 백련공원과 참배를 빼서는 안 되는 4.19 민주묘지에 들어선다.
내 키보다 더 큰 하얀 바위에 '民主聖域'이라 휘호가 새겨져 있고 2006.7.27.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7649호'에 의거 4.19혁명 사망자, 부상자, 관련 유공자 337기와 예비묘역 149기 규모로 조성하였다 하니 원혼의 영령들을 생각하니 그나마 다행이라 위안해본다. 맨 위로 유영봉안소가 보이고 기념탑을 지나 수호신 옆 참배 길로 들어서니 안장되어있는 묘소마다 태극기가 고요하게 움직이는 듯 마치 죽은 영혼의 손짓 같은 울컥함이 느껴진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앞줄에는 서울의 대학교를 비롯한 대학생이 대부분이고 뒷줄에는 지방의 대학생과 여고생 그리고 초등학생도 있어 화들짝 놀란다. 살아 있으면 우리의 아줌마, 아저씨 그리고 누나 형이 될 사람들인데 저기 잠들어 있는 여고생이나 초등학생은 어쩌다가 다 피지도 못한 생의 주검을 저토록 허망하게 마감한 것인지 안타깝고 통절한 마음이었지만 경건하게 예의를 갖추고 상징문 입구 계단에서 인증샷을 한 후 뒤풀이를 할 식당을 찾았다.
시간을 보니 오후 4시경인데 해가 길어졌는지 대낮같이 밝고 훤한 하늘이다. 정한 산우의 육회와 굴 등 여러 가지 희망의 메뉴가 주장되었으나 일단 나가 주변의 마땅한 집을 찾기로 하고 걸어 나가니 많은 음식점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의견 끝에 '사월의 주꾸미' 집으로 정하고 들어서니 깔끔하고 정갈한 환경이라 좋았고 종업원들의 웃는 손님맞이도 진정성이 느껴져 가벼운 마음으로 벽 쪽에 자리를 잡았다.
냉동이긴 하지만 주꾸미 양이 많은 편이라고 생각되었고 맥주와 막걸리, 소주를 주고받으며 즐거운 입담과 웃음이 넘치는 분위기속으로 빠져들었다. 경식 산우의 조폭 건배사 제안에 "많이 묵으라!"는 선창과 "예! 형님!"으로 대답하면서 배 아프게 웃어본다. 매큼하면서도 뒷맛이 깔끔한 주꾸미에 삼겹살을 익혀먹기도 하고 콩나물과 무우겹살, 깻잎쌈이 매운 맛을 완화해 주었으며 마지막으로 밥을 볶아 마무리를 하고나니 모두가 잘 먹었다며 배부른 몸짓들이다. 시간은 오후 6시이니 적당하면서 건강한 만남의 마무리인 것 같다.
산우들아!
3월 8일 산행은 우리 20회 김정남 산우가 재경 총동창회 제6대 산악회 회장으로 취임하여 시작하는 시산제이니 시산회원 모두 그리고 동기회의 많은 친구들도 동참하게 알리고 독려하여 우리 20회의 시산회의 힘과 회장단 동기들의 단합된 힘을 유감없이 보여주도록 하자고 다 같이 다짐하며 식당을 나서는 길은 각자 제자리로 돌아가야 할 또 다른 하루의 귀환이다.
산우들아!
3월 8일에는 모두 하나 되어 같이 함께하는 벅적거리는 산행이 되었으면 좋겠다. (참고로 작년부터 형성된 별도의 뒤행사로 어김없이 당구장으로 향하는데 오늘따라 김정남 산우가 합세하니 6명이 되었고, 두 팀으로 당구와 놀았다. 밤이 깊어가는 줄도 잊은채...)
2014년 2월 23일 김용우 씀.
< 동반시 >
"풀리는 한강 가에서" / 서정주
강물이 풀리다니
강물은 무엇하러 또 풀리는가
우리들의 무슨 설움 무슨 기쁨 때문에
강물은 또 풀리는가
기러기같이
서리 묻은 섣달의 기러기같이
하늘의 얼음장 가슴으로 깨치며
내 한평생을 울고 가려 했더니
무어라 강물은 다시 풀리어
이 햇빛 이 물결을 내게 주는가
저 민들레나 쑥 잎 같은 것들
또 한번 고개 숙여 보라 함인가
황토 언덕
꽃상여
떼과부의 무리들
여기 서서 또 한번 더 바라보라 함인가
강물이 풀리다니
강물은 무엇하러 또 풀리는가
우리들의 무슨 설움 무슨 기쁨 때문에
강물은 또 풀리는가
"동백꽃" / 문정희 < 한양기 산우의 추천 시 >
나는 저 가혹한 확신주의자가 두렵다
가장 눈부신 순간에
스스로 목을 꺾는
동백꽃을 보라
지상의 어떤 꽃도
그의 아름다움 속에다
저토록 분명한 순간의 소멸을
함께 꽃피우지는 않았다
모든 언어를 버리고 오직 붉은 감탄사 하나로
허공에 한 획을 긋는
단호한 참수
나는 차마 발을 내딛지 못하겠다
전 존재로 내지르는
피 묻은 외마디의 시 앞에서
나는 점자를 더듬듯이
절망처럼 난해한 생의 음표를 더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