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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월일/집결 : 2008년 5월 18일(일) / 1호선 가능역 2번출구 송추매표소 (10시)
◈ 산행코스 : 송추매표소-여성봉-오봉능선-우이동계곡-도봉사-도봉산매표소
◈ 참석자 : 9명 (기세환, 김용우, 김종화, 나창수, 박형채, 신원우, 이원무, 조문형, 한천옥)
◈ 동반시 : "부르면 눈물날 것 같은 그대"/ 이정하
◈ 뒤풀이 : 홍어삼합, 손두부에 막걸리 / '산두부집' (도봉산관리사무소 근처)
지리산 종주 마지막 장터목휴게소에서의 저녁회의(2008. 5. 4) 때, 다음 산행지를 도봉산으로 정하고, 김정남 전 회장님의 강력한 의견에 따라 산우들의 교통 편의를 위해 구파발과 가능역으로 1차 집결한 후 송추매표소에서 모이기로 하였다.
나는 주거지가 어린이대공원 인근 인지라 김정남 전회장님의 의견에 내심 고마워하며 회원이 된 후 첫 시산회 산행이니 마음이 들뜨고 가벼운 흥분마저 밤새 꿈틀거렸던 터라 평소대로 아침 6시에 기상하고 발바닥이 근질근질하여 07:20분에 대문을 나섰다.
도봉산역까지 지하철(#7) 탑승 시간 31분, 그리고 10여분 기다려 소요산행 지하철(#1)을 환승하고, 4번째 정거장인 가능역(2번 출구)에 내리니 8시40분. 난생 처음 와 본 가능역은 지하철 역사가 깨끗하며 분식코너. 제과점. 수유방. 천원가게 등 편의시설이 잘 배치되어 있고, 주변 가로망과 적당히 어울려 있었다.
아침을 간단히 때우긴 하였지만, 나는 어디를 가든지 그 지역의 살아 숨쉬는 나이 먹은 음식점을 좋아한다. 당연히 역사 주변을 걸으면서 “옛날 그집”이란 간판에 끌려 가보니 순대국밥 집이었고 천정과 벽들이 낙서와 글씨로 온통 난장판이었으므로 지긋한 할매의 손맛을 믿었던 터라 옛날 광주공원에서의 순대국 맛을 느끼면서 만족한 아침과 만날 수 있었다.
일기예보에 오후 늦게 비를 뿌릴 거라고 하였는데 벌써 빗줄기가 예사롭지 않다. 9시 15분 이원무 산우가 왔고, 곧 이어 한천옥 산우가 도착하였으나 9시 50분인데도 오기로 약속한 김정남 전회장님이 보이질 않아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나, 용우!”. “어! 지금 몇 시야?” 아니 지금 몇 시라니... 어제 사업현장에서 몸이 떡이 될 만큼 마셨다니 비몽사몽 그럴 수밖에...ㅉㅉㅉ 그래도 가능역과 인연을 맺어 준 장본인이 아니신가!
김 총장과 통화 후 택시를 탔다. 기사 아저씨가 여기는 ‘불곡산’이 유명하단다. 양주시 유양동/산북동 소재 해발 470 m이나 오르는 길이 오르락 내리락하여 지루하지 않고 산세와 주변 전경도 좋으니 왕복 3~4시간 코스로 적당하다고 권유하며 맛있는 음식점까지 홍보에 열을 올린다. 주말에 주차장도 무료이고 가능역에서는 5분 간격으로 시내버스가 있고 소요시간 15분이라니 언제 와 봐야 할 산이라 생각했다.
북한산국립공원 도봉사무소 송추분소에 10시 30분경, 9명이 모였다(참가 희망자 15명의 60%). 근무자의 열정적이고 세심한 안내에 귀 기울이며 조문형 산우가 내 놓은 북한산에서 캐온 쑥으로 만든 찰떡을 산의 정기를 몸 안에 느끼며 맛있게 먹었다. 마나님의 정성이 그지없을 것이 분명하다.
북한산국립공원은 세계적으로 드문 도심 속의 자연공원으로 수려한 자연경관과 문화자원을 온전히 보전하고 쾌적한 탐방 서비스 제공을 위하여 우리나라의 15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그 면적은 서울특별시와 경기도에 걸쳐 약 79.916 ㎢, 평수로 환산하면 약 2,373 만평이고 우이령을 중심으로 남쪽의 북한산지역과 북쪽의 도봉산지역으로 구분된다고 한다.
공원 전체가 도시지역으로 둘러싸여 생태적으로는 고립된 “섬” 이지만 도시지역에 대한 “녹색허파”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으며, 수도권 이천만 주민들의 자연휴식처로 크게 애용되고 있다. 수도권 어디에서도 접근이 용이한 교통 체계와 거대한 배후도시로 연평균 탐방객이 500만명에 이르고 있어 “단위 면적당 가장 많은 탐방객이 찾는 국립공원”으로 기네스북에 기록되어 있으며,
북한산 국립공원은 거대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주요 암봉 사이로 수십 개의 맑고 깨끗한 계곡이 형성되어 산과 물의 아름다운 조화를 빚어내고 있으며, 그 속에 1,300여 종의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또한 삼국시대 이래 과거 2천년의 역사가 담겨진 북한산성을 비롯한 수많은 역사, 문화유적 과 1백여 개의 사찰, 암자가 곳곳에 산재되어 있어 다양한 볼거리와 생태, 문화, 역사 학습장소를 제공하고 있다니 새삼 놀랍고 자랑스럽다.
신 이사를 알아본 후 5분도 채 안된 것 같은데 분초장이 나타났다. 떡을 먹었으니 뜨거운 물을 끓여주며 몸의 기운을 조절해 주는 초소 근무자의 세심한 배려가 고맙기 그지없다. 또한 비오는 날의 안전을 위해 신발 끈 잘 매는 방법과 마지막까지의 집중을 강조해 준다.
그칠 비가 아닌지라 완만한 여성봉으로 올라 오봉에서 도봉산 정상인 자운봉을 목표로 출발하였고, 중간지점인 커다란 바위에서 1차로 휴식하였다. 먼저 자리잡은 사람들과 돼지 머리고기와 막걸리의 나눔의 맛은 산사람들의 인정과 살 냄새였다.
어제 전라도 해남에서 올라온 고향사람들, 그 땅끝에서 눌러 온 머리고기이니 일품, 맛이 당근이고 박형채 산우는 접시에 남은 고기들을 몽땅 담고, 새우젓갈까지 챙기니 고기보다 고향사람의 마음을 담았을 것이리라. 음식 인정을 보니 어디 사람인줄 알았다는 기 회장님의 말 한마디가 압권이다.
여성봉에 오르니 바람이 유별나게 거세고 사납다. 지리산 천왕봉에 못지않을 정도다. 참으로 여성봉이라는 이름에 걸맞으니 자연이 만들어내는 작품의 수준에 그저 감탄밖에 없다. 도봉산 하면 자운봉, 만장봉, 선인봉을 연상하지만 오봉이나 여성봉이 알려진 것은 불과 몇 년이 되지 않는단다.
도봉산의 한 봉우리인 여성봉은 이름도 없던 숨은 한 바위에 불과하였지만 경기도에서 개발하면서 ‘여성봉’이라고 명명하여 이름이 널리 알려진 곳이다. 그 여성봉 위에 10시 방향으로 누워있는 소나무가 측은하게 보인다. 오죽하면 몸을 뉘어서라도 가까이 하고 싶었을까. 참으로 인내할 수 없는 고통이기도 하였을 것이고.
그 샘에 엎드려 사진 한 장을 증거로 남긴 조문형 산우와 오르면 격발될까 봐 아예 오르기를 포기했을 거라는 이원무 산우. 기 회장의 추측발언을 떠올리며 혼자 빙긋 웃어야 했다.
도봉산 주능선에서 뻗어 내린 지능선인 오봉능선은 주능선에서 오봉에 이르고, 오봉에서 송추쪽으로 뻗어 내린 송추 남능선에 오봉이 솟아있다. 오봉이 우람한 남성을 상징한다면 오봉에서 뻗어 내린 여성봉은 수줍은 듯 오봉을 올려다보는 형세이다. 여성봉을 오르는 암반은 여성의 엉덩이를 상징하는 모양이란다.
드디어 오봉에 올랐다. 송추역에서 보면 앞쪽으로 툭 튀어나와 돌출 모양이며, 그 뒤로 오봉의 5개 봉우리가 선명하게 하늘금을 긋고 서 있다. 해발 490 m 정도, 산행거리도 송추에서 2.5 km, 약 1시간 반이면 손쉽게 올라갈 수 있는 아주 평탄한 등산코스 이다.
북한산국립공원 지킴이가 “근무중 이상무~!” 한다. 비가 오고 바람이 찬데도 웃으며 힘들여 올라오는 등산객들에게 오봉을 설명하는 입담을 과시하고 있다.
도봉산 주능선에서 바라보면 북서쪽으로 나란히 놓인 다섯 봉우리가 있다. 마치 다섯 손가락을 펼친 것 같은 오봉은 봉우리 위에 누가 바위를 올려놓은 듯 얹혀 있다. 클라이머들의 요람이기도 한 오봉, 위에서 내려 보아도, 아래서 올려 보아도 그 절경이 멋있다. 이 다섯 봉우리를 클라이머는 오르지만 우리들은 보기만 할 뿐 오를 수는 없다는 게 아쉽다.
도봉산 정상에는 최고봉인 자운봉, 만장대, 선인봉의 3개 암봉이 솟아 있다. 이 정상부의 암봉 다음에 오봉이 도봉산의 절경을 더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산 지킴이의 오봉에 대한 전설과 4번째 봉우리가 안 보이는 이유와 부처님이 몸을 숨긴 채 여성봉을 훔쳐보고 있다는 바위의 얼굴이 오히려 인간답게 느껴진다.
지킴이 아저씨가 훤칠하고 너무 잘생긴 얼굴로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올라왔으니 시 한 수를 선물 한다며 시집을 꺼내들고 엄숙한 얼굴로 낭송한다. 고은 시인의 “그 꽃”,『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 올땐 보지 못한 그 꽃』 딱 두 줄 뿐인 시 이지만, 그 꽃이라는 의미에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저 올라가기 바빴었다. 그저 정상에만 오르면 되는 줄 알았다. 모든 게 참말로 모든 게 거기에 다 있는 줄 알았다. 앞뒤 돌아볼 여유도 없이 땀을 뻘뻘 흘리며 무작정 올랐었다. 산 정상 바위꼭대기 위에서 야~호! 하면서 산 아래 멀리 내다보면서 잠시 잠깐 기분에 도취되었다. 천천히 내려오면서 호젓한 길 옆에서 지친다리를 만지는데, 문득 눈에 들어오는 순박한 야생화 한 송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반환점을 한참이나 돈 인생.
누가 말 했던가! 우리는 브레이크 없는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길을 마구 내려가고 있다고. 정말 그런가! 이제 더욱 더 천천히 내려가야 한다. 그 꽃을 지나면서 이런 의미가 아닐까 하는 마음이다. 아~하! 우리가 시산회 아닌가! 장단이 맞춰지고 얼~쑤! 흥까지 잡아주었으니 김 총장이 즉시 준비된 시가 배낭에서 나오고 한천옥 산우가 낭낭하게 빗소리에 달아 메었다.
“부르면 눈물 날것 같은 그대”/ 이정하
내 안에 그대가 있습니다
부르면 눈물이 날 것 같은
그대의 이름이 있습니다.
별이 구름에 가렸다고해서
반짝이지 않는 것이 아닌 것처럼
그대가 내 곁에 없다고 해서
그대를 향한 내 마음이
식은 것은 아닙니다.
돌이켜보면 우리 사랑엔
늘 맑은 날만 있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찌 보면
구름이 끼여 있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난 좌절하거나 주저앉지 않습니다.
만약 구름이 없다면
어디서 축복의 비가 내리겠습니까
어디서 내 마음과 그대의 마음을
이어주는 무지개가 뜨겠습니까
내 안에 그대가 있습니다
시 낭송이 끝나자 빗줄기가 굵어지고 세차게 뿌려댄다. 12시 30분경, 모두 배낭 덮개도 입히고, 우의를 꺼내 입고 자운봉 정상을 포기한 채 도봉계곡으로 하산하기로 하고, 도봉산 매표소로 내려오니 14시 30분. 관리소장 일행이 마중나와 있고, 안내하는 ‘산두부집’으로 무거워진 몸을 옮기고 따끈한 방을 잡았다.
하산하는 도중에 가져온 점심을 간단히 처리하자는 의견이 대다수였음에도 완전히 비가 그친 것도 아니고 우의입고 배낭을 풀기에는 품격이 부적절하다는 나 원장의 다소 강력한 주장에 절대다수의 산우들이 양보했었고 하산길의 오봉샘 이전까지는 물 한 모금 안마셨으니 명색이 일명 식산회(먹산회)이기도 한 산우들 얼마나 배가 고팠을 것인가?
홍어삼합에 두부가 나오자 너도나도 준비해 온 배낭 속의 맛자랑이 선을 보인다. 신 이사 마나님이 새벽에 쪘다는 고슬고슬한 찰밥. 며칠 전 덕유산에서 가져온 산삼만큼이나 몸에 좋다는 곰치 등 산나물에 쌈을 하고 김 총장이 가져온 가시오가피 새순으로도 쌈하고 넉넉하고 맛이 깔끔한 유부초밥, 조문형 산우의 찰밥, 그리고 박형채 산우의 양파절임과 고추절임, 무우김치에 허기진 배를 채우고, 두부와 버섯을 매콤하게 끓인 국물을 더하니 이제야 온몸이 달아오르고 가시오가피주가 보약처럼 진하고 향기롭다(이번에도 국립공원관리사무소에 신세를 졌으니, 신 이사님께 고맙기도 하지만, 미안함이 더 크다). 아무튼 고맙게 잘 먹었나이다.
조금은 서운했던지 다음 산행도 북한산으로 정하였으니 오랜만에 백운대를 오를 것 같아 오히려 기다려진다. 시산회에 등업하여 처음 산행의 날씨가 좋지 못하였으나 비를 맞으며 마음을 함께하는 즐거움이 이리도 포만하고 행복했으니 우리 산우들이 모두 내 몸 안에 있는 그대임이 분명하다. 만약 구름이 없다면 어디서 축복의 빗방울이 내려 올수 있겠는가!
동창회 총무를 맡게 되어 시산회 관악산 산행에 참여했다가 김종화 총장을 존경하게 되었고, 지리산 종주를 하면서 시신회원들의 넉넉한 마음에 감동받아 회원으로 가입하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인연이었다.
시산회 회원이 되어 불과 세 번째 산행인데, 사전 언질(?)도 없이 산행후기를 지명해 준 김 총장님에게 감사를 드리면서 몇 마디 양해를 구하고자 한다. 산행후기에 대하여 부담도 없지 않았으나 자기가 하고 싶은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게 아닌가 싶다.
하여 시산회의 막내로서 순서를 기다려야 오는 이런 기회에 오랜만이지만, 친구에게 그리고 내 자신에게 느끼고 말해보고 싶은 조그만 보따리라도 풀어보고자 하는 욕심이니, 부족하고 기우뚱거려도 혜량하여 주시길 부탁드린다. 시산회의 무궁하고 영원한 발전을 믿고 확신한다! 산우들아! 부디 더불어 같이 건강하시고, 풀잎에 배인 마음으로 행복하기를 바란다.
< ※ 추신 >
내 컴에 수록하고 있는 이름 모르는 글이니 그냥 읽어 주게나!
우린 아직 인생이 무척 긴 것으로 생각하나, 늙은 뒤에는 살아온 젊은 날이 얼마나 짧았던 가를 깨닫는다. 젊음은 두 번 다시 오지 아니하며, 세월은 그대를 기다려주지 아니한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
자고이래(自古以來)로 모은 재물(財物)을 지니고
저승까지 간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삼계(三界)의 윤회(輪廻)하는 고통(苦痛) 바다의
대죄인(大罪人)으로 보잘 것 없는 이 몸뚱이.
다만 먹고 입는 세상사(世上事)에 항상 분주하여
구원(救援)을 찾지 않네.
그대여!
일체 세간사(世間事) 모든 애착을 놓으라.
세상일 즐거워 한가롭더니 고운 얼굴 남 몰래 주름 잡혔네.
서산(西山)에 해 지기를 기다리느냐?
인생(人生)이 꿈같음을 깨달았느냐?
하룻밤 꿈 하나로 어찌 하늘에 이르리요?
몸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지 않아 허물어지고
정신이 떠나 모두 흙으로 돌아가리니 잠깐 머무는 것.
무엇을 탐(貪)하랴?
오늘은 오직 한 번뿐이요, 다시는 오지 않으리니
우리 인생(人生)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이 몸이 늙고 병들어 떠나기 전(前)에
오늘을 보람 있게 살자.
사람은, 남의 잘잘못을 비판하는 데는 무척 총명하지만,
자기비판에 있어서는 어둡기 마련인 것.
남의 잘못은 꾸짖고 자기의 잘못은 너그럽게 용서한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마음의 죄(罪)를 지은 사람이다.
죄인은 현세에서 고통받고 내세에서도 고통 받나니 죄를 멀리하라.
죄(罪)가 없으면 벌(罰)도 없음이요.
시간이란 누구에게나 똑같이 부여되는 것
느끼기에 따라 길고 짧은 차이가 있나니
즐거운 시간은 천년(千年)도 짧을 것이며
괴로운 시간은 하루도 천년 같은 것.
그러므로
시간이 짧게 느껴지는 사람은 오히려 행복한 것.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사람이
어찌 행복하다 하겠는지요?
2008년 5월 18일(일) 김용우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