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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소중히 여기는 나라
쿠바 체류 계획을 말하자 지인은 “쿠바? 애 많이 낳아놓고 가난해서 제대로 키우지도 못하는 그런 나라 아니야?”라고 이야기했다. 그 지인은 완전히 잘못 알고 있었다. 쿠바가 가난한 나라이긴 하지만 출산율이 높은 것도 아이를 제대로 키우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쿠바는 아이를 소중히 여기는 나라이다. 쿠바의 모자보건 정책은 쿠바가 자랑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그 덕분인지 쿠바의 유아 사망률은 비슷한 경제 수준의 국가들에 비해 현저하게 낮다. 쿠바에서 임신, 출산, 양육을 경험한 여성에게, 정책 집행자가 아닌 정책 이용자의 입장에서 쿠바의 모자보건 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귀찮을 정도로 의사를 자주 만나야 하는 쿠바 임신부
출산한 지 3개월 된 산모를 만나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어떠한 서비스를 받았는지 물었다. 32세에 첫 출산을 한 나니의 임신에서 출산까지의 경험은 이러했다.
생리가 없어 콘술토리오에 갔더니 패밀리 닥터가 검사 후 임신했다면서 출산 예정일을 알려주었다. 8주 차에 임산부 카드를 만들어주었고, 비타민을 지급했다. 또 소고기와 우유가 배급품에 추가되었다. 임신 3개월째에 기형아 검사를 했고, 임신부와 태아에게 특별한 건강 문제가 없어 12, 20, 32주 차에 초음파 사진을 찍었다. 만일 임산부나 태아에게서 건강 문제가 감지되면 훨씬 더 세밀한 검사와 진료를 받아야 한다. 고혈압, 당뇨, 빈혈, 에이즈 검사를 지속적으로 받았다.
보통 15일에 한 번씩 콘술토리오에 가야 하는데, 안 가면 의사가 사람을 보내서 오도록 하고 직접 왕진을 오기도 한다. 패밀리 닥터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32주까지는 월 1회 정도 만나고, 9개월째는 월 2회, 마지막 달은 매주 만난다고 한다.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경우에는 더 자주 만나고, 영양 문제나 저체중아 출산 가능성이 있다면 임산부는 산모의 집에 입소해야 한다.
산모의 집은 임신 중인 여성이 주거 환경이나 영양에 문제가 있을 경우 입소하는 시설이다. 그곳에서 출산 때까지 생활하면서 영양 섭취와 상담 등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임신부가 입소해 서비스를 받는다는 점에서 한국의 미혼모 시설과 유사해 보이지만 입소 대상에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는 혼인 상태, 본인의 의사가 입소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반면, 쿠바에서는 패밀리 닥터와 산부인과 의사가 임신부와 태아의 건강 상태, 임신부의 환경을 고려해 입소 여부를 결정한다. 물론 임신부가 원치 않으면 산모의 집에 입소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대부분 의사의 지시를 따르고, 입소 후 상태가 호전되면 퇴소할 수 있다. 대개 고혈압 등의 질병이 있는 임신부, 고령 임신부나 청소년 임신부, 쌍둥이 임신부, 혹은 가족의 지원을 받기 어려운 임신부가 입소한다. 산모의 집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은 출산 및 양육 교육, 운동, 심리상당, 문화 프로그램, 아빠 교육 등이 있다. 임신부는 모든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아바나 비에하에 있는 산모의 집 원장 레이날은 패밀리 닥터로 일하다가 어린이 심장전문의 자격을 취득해 산모의 집으로 일터를 옮겼다. 그녀 외에 간호사, 사회복지사, 심리상담사, 치과의사, 요리사, 세탁원, 미화원 등이 일하고 있는데, 그녀는 “우리는 모두 힘을 합해 일해요. 입소한 임신부를 돌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 가족의 상황도 살펴야 하니까요”라며 직원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했다. 가장 보람된 순간을 묻자 시설에 입소했던 임신부들이 건강한 아이를 출산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한번은 52세 여성이 시험관 수정으로 임신했는데 우리 시설에 입소해서 보살핌을 받았어요. 여기서는 출산 전까지만 보호하고 출산은 산부인과에서 하기 때문에 소식을 알 수 없었는데, 어제 10개월 된 건강한 아이를 데리고 왔답니다. 그럴 때 보람을 느끼죠.”
보통 임신부는 출산일이 다가오면 어느 병원에서 출산할지 패밀리 닥터와 상의해 결정한다. 쿠바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일반 가정에서 출산할 수 없고, 병원에서 아이를 낳아야 한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쿠바는 숙련된 의료진이 참석한 출산율이 100%이다.
출산일이 가까워지면 임신부는 산부인과 전문의와 출산 방법을 상의한다. 자연분만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제왕절개 수술을 하지만 대부분 자연분만을 한다. 나니의 경우 임신 후 간 기능에 문제가 생겨 37주 만에 출산해야만 했기에 촉진제를 맞고 자연분만 하는 방법을 택했다. 출산 방법을 결정하는 데 의사와 임신부 중 누구의 의견이 더 중요한지 묻자 나니는 “쿠바 정부는 영아 사망률이나 산모 사망률에 관심이 아주 많아요. 만약 출산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 의사는 끝장난 거나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의사들이 아주 신중히 결정하기 때문에 대부분 임신부는 의사의 제안을 따르는 편이에요”라고 대답했다.
쿠바의 산모 사망률은 10 명당 4명으로 캐나다, 영국과 같은 수준이다. 191개국 중 31번째로 낮다. 하지만 처음부터 쿠바의 산모 사망률이 낮았던 것은 아니다. 1963년에는 산모 10만 명 중 42명이 사망하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지만 공공의료 정책의 확대와 더불어 꾸준히 낮아지고 있다. 유아 사망률은 2015년 기준 4.3명으로, 아메리카 대륙 OECD 가입국의 유아 사망률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아메리카 국가의 유아 사망률
단위: 명(신생아 10만 명당 유아 사망 수)
국가-유아사망률
미국-6.0/ 캐나다-4.7/ 멕시코-18.8/ 칠레-7.2/ 쿠바-4.3
자료: 쿠바 통계청, 한국 통계청
출산 후 아이와 아이의 산모의 건강에 별문제가 없으면 3일 만에 퇴원한다. 패밀리 닥터에 따라 산모와 만나는 횟수에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베다도 지역의 패밀리 닥터는 첫 주에는 매일 산모 가정에 방문하고 이후 한 달 동안은 주 1회, 2개월부터는 한 달에 한 번씩 방문하거나 콘술토리오에 오도록 해 검진을 한다고 했다.
나니는 언제까지, 얼마나 자주 병원에 가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고, 의사가 다음 약속을 잡아주면 병원에 가는 식이라고 했다. 그리고 전날 “예방 접종하러 내일 병원에 와야 한다”는 의사의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인터뷰 내내 “정말 그렇게 자주 의사를 만나요? 정말 모든 것이 무료예요?”라며 놀라는 내게 나니는 의사를 너무 자주 만나야 해서 귀찮을 정도라고 했다.
통역을 도와주던 쿠바 거주 한국 여성은 자신의 임신 기간을 회상하면서 “쿠바 정부는 너무 심하다 싶을 만큼 산모를 관리한다”며 임신부를 위한 심리상담 프로그램을 소개해주었다. 여성이 임신을 하면 원하는 임신인지, 임신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없는지, 임신에 대한 가족의 반응은 어떤지, 가족이 잘 도와주고 있는지 등에 대해 상담을 진행한다. 상담사는 여성이 임신으로 인한 심리적 문제가 없다고 판단될 때까지 계속 상담을 진행한다.
쿠바의 마더 박스
쿠바는 아기를 출산하면 선물 꾸러미를 지급한다. 북유럽 국가에서 산모에게 지급하는 ‘마더 박스’와 같은 것이다. 아기 이불, 수건, 샴푸, 천 기저귀 10개, 배냇저고리, 비누 2개, 속옷, 베이비오일, 쪽쪽이 등이 들어 있는 박스를 주는데 약간의 돈을 지불한다. 나니는 “얼마 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주 조금 냈던 것 같아요”라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자격이 안 돼서 돈 주고 샀지만 저소득층 가정에는 아기 요람도 지급된다고 이야기했다.
쿠바에서는 대부분의 엄마가 가능한 한 오랫동안 모유 수유를 한다. 쿠바의 육아휴직이 1년으로 연장된 데도 모유 수유 기간을 보장해달라는 여성들의 주장이 한몫했다. 모유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 1개월 동안은 특수 분유를, 2개월 차부터는 일반 분유를 정부에서 지급한다.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백신 역시 모두 무료이다. 총 12종의 예방 접종을 하는데, 그중 11종은 쿠바에서 직접 개발한 백신이다. 병원에서 만들어주는 아이 수첩에는 태아 때부터 실시한 검사 결과와 예방 접종에 대한 내용이 정리되어 있다. 패밀리 닥터가 아이의 연령대에 필요한 백신을 맞을 수 있도록 안내해준다.
쿠바의 ‘당신의 아이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과 ‘엄마와 아이 프로그램’은 선진적 모자보건 사업으로 국내에도 자주 소개된다. 나니에게 이들 프로그램 참여 경험을 묻자 ‘엄마와 아이 프로그램’은 종합진료소의 산부인과 의사가 패밀리 닥터와 함께 그 지역의 산모와 아이의 건강을 관리하는 프로그램이라 일반 임산부는 별도로 의사를 만날 일이 없다고 했다. ‘당신의 아이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은 병원에 갔을 때 게시판에서 관련 내용을 보긴 했지만 전문가가 집에 방문하거나 따로 교육받은 적은 없다고 했다.
생후 6개월은 엄마가 양육하도록
쿠바는 1963년 12주간의 유급 육아휴직을 보장하는 산휴법을 제정했다. 법 개정과 함께 육아휴직 기간이 18주로 확대되었고, 이 기간에는 급여의 100%가 지급된다. 휴가를 더 원한다면 40주를 추가로 신청할 수 있는데, 이 기간에는 급여의 60%가 지급된다.
제도의 마련만큼 중요한 것이 제도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이다. 한국만 해도 부모가 각각 1년의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도록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만 휴직 기간 최대 100만 원까지만 급여가 보장되고 그마저도 15%는 복직 후에 지급되는 등의 문제를 보완할 장치와 사회적 분위기가 성숙하지 않아 제도가 활발히 이용되고 있지 않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20%대이던 육아휴직 이용률이 최근에는 40%대까지 증가하긴 했지만 아직도 절반이 넘는 부모가 육아휴직을 이용하지 않고 있다. 더욱이 전체 육아휴직 이용자 중 남성의 비율은 2014년 기준 4.5%에 불과한 실정이다.
그렇다면 쿠바는 어떠할까? 쿠바에서는 육아휴직의 사용과 직장 복귀가 매우 일반적이고 당연한 일이다. “출산 3개월 전부터 쉴 수 있고,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1년을 쉴 수 있어요. 그동안 급여가 나오는 건 물론이고, 국가가 운영하는 보육시설도 무료예요. 일하는 엄마는 시설을 이용할 권리가 있기 때문에 거기서 돌봐줘요.” 또 다른 여성의 대답도 비슷했다. “쿠바는 누구나 1년 동안 육아휴직을 쓸 수 있어요. 그런 다음에는 보육시설에 아이를 맡길 수 있어요. 엄마가 국가 기관에서 일하거나 의사나 교사이면 국가가 운영하는 보육시설 이용에 우선권이 있어요. 공공 보육시설에 맡길 수도 있지만 사설 보육시설에 맡길 수도 있어요. 한 달에 5세우세cuc(약 6,000원) 정도만 내면 돼요.”
1년 만에 직장으로 복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육아휴직이 끝나면 보육시설에 아이를 맡기고 직장에 복귀하는데, 그 조건이 아이가 걸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가 걷지 못하면 직장 복귀를 미루고 아이를 양육하도록 한다. 이때 추가로 주어지는 육아휴직 기간은 3개월이다. 하지만 1년이 지나지 않았어도 본인이 일하고 싶다면 출근할 수 있다.
쿠바 육아휴직 제도의 특징은 한 아이를 기준으로 육아휴직을 신청할 수 있는 사람이 여섯 명이라는 점이다. 아이의 부모 외에 조부모, 외조부모도 손주 양육을 위해 육아휴직을 신청할 수 있다. 단, 이들 중 한 명만 육아휴직을 쓸 수 있다. 2003년부터 아이의 아빠도 육아휴직을 신청할 수 있도록 했는데, 남성은 생후 6개월 이후부터 1년간 육아휴직을 쓸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주로 여성이 육아휴직을 사용한다. 남성의 육아휴직이 가능하도록 법이 개정된 2003년 이후 2016년 9월까지 육아휴직을 사용한 남성은 196명뿐이다. 쿠바 여성연맹 국제관계부 아시아·유럽 담당자인 다이나 로드리게스는 아직 쿠바인들에게는 육아가 여성의 몫이라는 인식이 강해 남성의 육아휴직 이용률이 낮다고 설명했다.
임신과 출산 때문에 경력이 단절되지 않는다
출산과 육아가 경제활동을 그만둬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는 한국의 상황을 이야기했더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당신 나라에는 육아휴직 제도가 없어요? 아니면 한국은 엄마가 아이를 직접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라며 반문했다. 주변에 자녀 양육을 위해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를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아직 한 번도 그런 경우를 본 적이 없어요. 원래 전업주부였다면 모를까, 아직 육아휴직 기간이 많이 남았지만 지금 당장이라도 나가서 일하고 싶은데요?”라고 대답했다.
노동자 권리 보호 업무를 맡고 있는 사회복지사의 얘기를 들으며 모성 보호에 대한 쿠바의 의지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쿠바에서는 임신을 사유로 여성을 해고한 사실이 밝혀지면 출산과 육아에 든 비용 모두를 고용주나 회사가 부담해야 한다. 기본적 비용이 아니라 아기를 위해 산 기저귀, 요람, 옷 등 모든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러한 제도와 제도 이용을 당연시하는 문화 때문인지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의 증거라 할 수 있는 M자형 여성 경제 활동 참여율 그래프가 쿠바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쿠바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율은 연령 증가와 함께 상승한다. 출산과 육아 연령대에 대폭 감소하다가 다시 증가하는 M자형 그래프가 아니다. 정년인 55세까지 지속적으로 상승하다가 이후 급감하는 양상이다.
한국과 쿠바의 유사점 중 하나가 낮은 출산율이다. 쿠바(1.46명)가 한국(1.24명)보다 높긴 하지만 193개국 중 108번째로 낮은 출산율을 보이고 있다. 국가가 임신 확인 순간부터 출산까지 책임지고 관리하고 산후 관리, 무상 보육, 무상 교육, 무상 의료가 이뤄짐에도 쿠바의 출산율은 낮다. 한국의 출산과 양육 지원, 교육, 의료 정책을 고려해볼 때 현재 한국의 출산율은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간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이었던 출산 장려 정책들을 생각하면 앞으로 갈 길이 멀기만 하다.(56~66)
〔출처〕 거꾸로 가는 쿠바는 행복하다 - 저성장 고복지, 쿠바 패러독스의 비밀을 찾다
배진희, 시대의창 2019
작년 육아휴직 4명 중 1명은 아빠···그중 70%는 대기업 다니는 아빠 - 경향신문 (kha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