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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임금 운동?
불안정한 무임금 노동을 수행하며 소모품으로 취급받고 파편화되어 있는 노동자들이 단시간에 지금과 같은 현실을 타개할 방법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도시의 폐기장을 봉쇄하는 폐품 수거자들, 바퀴를 멈추고 싶지 않은 모터보이들, 그리고 아직 운동을 시작하지도 않은 미세노동자들이 저항으로 뜻한 바를 이루려면 더 넓게 연합 전선을 펼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무임금 생존은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의 숙명이 됐고,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문제를 마주하게 된다. 임금 노동의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이 과연 산업 노동자 계층만큼 강력한 운동을 벌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거대한 집단이 새로운 전략, 새로운 통합점, 새로운 연대 구조를 상상할 수 없다면 사회주의 투쟁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이들이 연합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지역, 문화, 정체성의 조각이 존재하는 경제의 퍼즐을 잘 끼워 맞춰야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혹자는 그런 연합이 결국엔 좌초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집없는노동자운동과 피케테로 같은 사례에서 보여준 전략과 요구 사항을 잘 고려하면 노동자와 실업자, 활동가 모두가 훨씬 폭넓은 무임금 운동을 벌이기 위한 청사진을 그려나갈 수 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21세기에 꾸준히 자본에 대한 투쟁이 전개된다면, 나날이 불안정성과 잉여성의 인질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에서 그 투쟁의 선봉에 서는 것은 아마도 임금 노동자가 아닌 무임금 노동자가 될 것이다.
이 같은 연합체가 당연히 형성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범북반구의 대도시에 사는 대학 졸업자들이 빈민가나 러스트벨트에 유폐된 사람들과 똑같은 작업을 수행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들 앞에 펼쳐진 인생은 민족과 인종을 경계로 갈라지고, 지금처럼 위기가 점점 고조화되는 시국에는 그 간극이 더욱더 벌어지기만 할 뿐이다. 이 스펙트럼의 한쪽 끝에는 서비스 노동자 중에서도 저널리스트 폴 메이슨Paul Mason이 “네트워크로 연결된 개인”이라고 칭한, 이른바 변덕스럽고 전 세계를 자신의 활동 무대로 여기며 불완전 취업 상태에 있는 노동자들이 있는 반면, 다른 한쪽 끝에는 국가의 탄압 대상으로 찍힌 잉여 집단이 있다.
보수가 좋은 일거리를 따내기 위한 국제적 경쟁이 벌어지고 국경을 넘으면 임금의 시세가 달라지는 상황에서는 노동의 경험이 공유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미세노동 사이트들은 성장이 정체되고 과도한 경쟁으로 얼룩진 시스템의 특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 시스템 속에서 곪고 곪은 불안정성은 분노를 낳고, 분노는 반동적 움직임에 의해 점점 더 거센 공격으로 표출될 것이다. 그 공격의 대상은 자본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쉽게 전가할 수 있는 가장 취약한 노동자 집단, 곧 여성과 이민자, 소수자다. 따라서 피박탈자들이 다시 “반동적 음모에 매수된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막으려면 불완전 취업 상태에 있는 베를린의 서비스 노동자부터 상파울루 빈민가의 프롤레타리아트까지 모두를 아우르는 더 광범위한 무임금 노동자의 연합 전선이 형성돼야 한다.
그렇다면 노동자 노동자 계층의 연대 속에서 그동안 관심 받지 못한 무임금 노동자 계층의 연대가 가능하려면, 더 나아가 이들이 전 세계적으로 연합해 이 세계를 더 궁핍하게 만들고 완전히 허물어버리려고 하는 시스템에 대항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렇게 거시적 차원에서 생각하면 요원한 일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연대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미시적 차원의 연합, 기관, 요구 사항 등은 이미 역사의 산물로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183~186)
Ⅰ.무임금 연합
실업률이 급증하는 시대에는 실업자의 조직화를 목표로 하는 운동이 강하게 형성되는 경향이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실직에 따른 빈곤율이 증가하자 영국 대도시에서는 실업자들이 건물을 점거하고 거리를 봉쇄하며 시 당국과 대립하는 사태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처음에는 그 양상이 지금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폭동과 비슷했지만, 이후 영국 공산당의 주도로 영국실직노동자운동NUWM이라는 더 광범위하고 지속성 있는 조직이 탄생했다. 그간 단속적으로 발생했던 충돌은 1922년 NUWM의 지원을 받아 전국적인 기아 행진(20세기 초 영국에서 일자리 부족으로 기아를 면하기 어려운 현실을 알리기 위해 벌인 행진-옮긴이)으로 발전했다. 그에 따라 NUWM의 회원도 급증해 10만 명에 육박했다. 이후 영국 경제가 부침을 겪으면서 참여 회원 수도 증감을 반복하다가 대공황으로 실업자가 증가하자 회원 수가 급속도로 늘어났다. 하지만 실업자 수가 다시 감소세로 돌아서면서 이 운동은 1937년에 사실상 소멸했다.
NUWM이 산발적인 소요를 지속적인 저항으로 발전시킨 방법은 오늘날에도 본받을 만하다. NUWM은 다른 피박탈자 집단들이 취한 여러 가지 행동을 차용하고 발전시켰다. 이들은 셰필드와 글래스고의 주민들로 하여금 노숙자를 증가시키는 당국의 행정에 저항하게 함으로써 세입자의 강제 퇴거를 수차례 저지했고, 강제로 퇴거당한 가정의 가구를 공실에 옮겨다놓는 식으로 빈민가 임대인들의 허를 찔렀다. 그리고 여러 노동조합과 연합해 파업을 지원하고 분쟁을 해결했다. NUWM은 일관된 정치적 입장을 견지하며 <파시즘의 위험과 실업자> 같은 소책자를 배포하는 등 반파시즘 교육과 행동으로 룸펜의 반동적 기류를 진압했다.
물론 NUWM이 지금은 해산된 영국 공산당의 전성기에 결성됐고, 회원을 모집하고 조직적 행동을 촉발하기 위해 전투적 전위당론(소수의 엘리트 혁명가들로 구성된 전위당이 상의하달식으로 다수의 노동자를 이끌어야 한다는 레닌의 혁명론-옮긴이)에 기댄 측면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지도부는 대체로 실업자 출신들로, 그중에는 노조 결성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숙련 기술자가 많았다. 지금도 이와 비슷한 성격의 운동이 우선적으로 필요하지만 그 형태는 달라져야 한다.
‘실업자’라는 정체성만으로 조성되는 운동은 단일한 집단과 운명을 같이할 뿐이다. 이는 곧 변덕스러운 노동시장에 운명을 맡기는 것으로, 만일 경제가 몸을 풀고 새로운 시장으로 진입하면서 실업자가 줄어들고 빈약한 형태로라도 ‘일자리’와 ‘안정성’에 대한 그들의 요구가 충족되면 운동은 자연스럽게 사라져버릴 것이다.
지금과 같이 성장이 둔화되고, 고용이 회복될 기미가 없는 시대에는 위기가 닥쳐 실업률이 치솟으면 보통은 실업자들이 여러 형태의 하등 취업 상태에 빠지면서 비공식 저임금 노동만 영구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말인즉 실업은 사라지지 않고 그저 허울만 바꾼 채 불안정성, 불완전 취업, 노동 빈곤의 상태가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허울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실업과 하등 취업이 노동력에 대한 수요 감소로 인해 벌어지는 현상으로 동일하게 취급되지 않고 서로 별개의 정치적 문제로 취급되기 쉽다. 그러므로 ‘실업’보다 ‘포괄적인 정체성’을 근거로 운동을 조직해야만 임금 노동으로부터 축출된 사람들을 모두 연합할 수 있다.
포괄적인 정체성에 대한 힌트는 브라질의 집없는노동자운동에서 찾을 수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운동은 ‘공식 노동자, 비공식 노동자, 불완전 취업자, 실업자’가 더 나은 주거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기치 아래 단결, 투쟁하게 만든다. 집없는노동자운동은 표면적으로는 회원들에게 공식적인 거주지를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상파울루의 저소득층을 동원해 다수의 정치적 전선에서 국가와 자본에 맞설 수 있도록 한다. 살 만한 집을 달라는 요구는 피박탈자들을 응집시키는 구심점이자 공동 투쟁을 위한 대의로 작용하고, 그것이 모터보이와 미세노동자의 생존 본능을 자극할 수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186~189)
Ⅱ.무임금 센터
이처럼 더 광범위한 연합체가 형성되려면 임금 노동으로부터 추방당한 사람들이 파업이나 시위와 별개로 물리적 공간에서 만날 수 있어야 한다. 큰 틀에서 보면 불안정한 피박탈에 속하지만 서로 이질적인 이들 집단이 직접 만나고 교감하게 할 방법은 노동자센터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 전역에서 일용직 이민 노동자를 지원하는 노동자센터는, 타국에서 저렴한 노동자로 불려와서 미국 경제의 변방으로 밀려난 사람들에게 만남의 장을 제공하며 “조합 없는 연합”을 가능케 한다. 폴 아포스톨리디스는 《시간 확보전The Fight for Time》에서 많은 지면을 할애해가며 노동자센터가 경쟁과 가변적인 근무 일정 때문에 분열될 수 있는 사람들에게 “활력과 공생적 지원”을 제공하는 비자본주의적 사교 공간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노동자센터는 현재 미국 전역에서 약 200개소가 운영중이며 노동자들이 상담을 받거나 고용주에게 대항할 방법을 모의하는 등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된다. 무엇보다 주이용자가 비공식 노동자인 만큼 정부 기관처럼 이념의 제약을 받지 않고 노동조합처럼 특정한 노동자 집단에 매이지도 않는다. 그래서 이용자들을 정치적으로 교육시킬 수 있고 실제로도 그렇게 많이 활용한다.
노동자센터는 일용직 노동자뿐만 아니라 모터보이, 티슈 장수, 온라인 작업자 등 비공식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유대감을 형성하는 장소가 될 수 있다. 이들은 다 같은 프롤레타리아트임에도 시장이 주입하는 유아론(세상에 실재하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뿐이라는 철학-옮긴이)에 빠져 자신과 비슷한 생존 투쟁을 벌이는 사람들의 존재를 잘 인지하지 못한다. 하지만 인도의 델리, 카르나타카, 마하라시트라처럼 미세노동자들이 밀집된 지역에 센터가 생긴다면 그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고립되어 있을 때보다 더 유의미하고 더 지속성 있는 형태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즉, 사람들이 직접 만날 수 있는 오프라인 센터가 세계 곳곳에 생기고 그 센터들이 온라인상에서 연계된다면 더 광범위한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필요한 공감대가 한층 쉽게 형성될 수 있다.
이런 센터는 노동자를 정치적으로 교육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오랫동안 자본에 외면당한 사람들이 서로 도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더 급진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센터에서 음식, 서비스, 주거 공간을 제공한다면 사회주의 역사에서 전설로 통하는 ‘이중 권력’ 체계를 구현하는 일도 가능할지 모른다. 본래 이중 권력은 레닌이 러시아 내에 소비에트와 임시 정부가 공존하는 현상을 두고 한 말이지만, 현재 비공식 노동자의 연대와 상호부조를 위한 단체들에서 드러나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체계다.
여기서 말하는 한계란 단체들이 대체로 자금을 대주는 기관의 이해관계나 “서비스 제공자”의 기대에 얽매여서 비정치적인 조직으로 남게 되는 문제다. 하지만 여기에 정치 교육과 조직화라는 기능이 더해진다면 인간의 필요와 욕구 해소에 대한 전권을 달라고 지겹도록 부르짖는 시장에 맞설 힘이 생길 것이다. 이렇게 상호부조와 정치력이 공존하는 이중 권력 체계가 굳건히 자리 잡으면 “권력이 연대 단체들로 이전되고, 사람들이 매일같이 그곳에서 실질적인 도움과 통솔을 받”으면서 “공식적으로 이 단체들이 법에 정해진 표면적인 국가 권력 구도에 맞서지 않으면서도 대안 정부로 기능할 것”으로 기대된다.(189~192)
Ⅲ.요구사항
범북반구 좌파들의 정치적 상상력에 다시금 불을 붙인 최근의 급진적 요구들은 주로 그들 내부에서 나오거나 임금 노동의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나왔다. 특히 코로나 위기가 최고조에 이르러 자본이 잠시 동면에 들어가고 상당수의 노동자가 어떤 형태로든 국가 지원에 의존하게 되면서 그런 요구가 빗발쳤다. 잉여로 간주되던 사람들이 바이러스 감염에 의해서든 굶주림에 의해서든 생존의 위기에 직면하자, 어제만 해도 너무 급진적이라거나 이미 옛날에 다 끝난 이야기라고 치부하던 것들을 요구하며 싸울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들의 요구는 임금 인상이 아니라 주로 복지(주거, 식량, 의료, 교육)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임금이 최대 관심사가 아니라는 점에서 인도 등지의 비공식 노동자들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따지고 보면 임금을 넘어선 세상이다. 그것은 사회주의에 가까운 수준으로 삶이 탈상품화된 세상이다.
세상에서 가장 불안정한 사람들이 질병과 봉쇄령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전기료나 집세 내기가 힘들어지고, 그래서 실제로도 납부를 거부하자 어쩔 수 없이 정부가 개입해 보조금을 지급해야만 했다. 이 파동의 중심에 주택 시장이 있다. 그러잖아도 물가 인상, 젠트리피케이션, 빈민 증가가 서서히 진행되며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 팬데믹까지 겹치자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이 집세를 감당할 수 없게 됐다. 그중에서 상당수가 집세를 내는 것과 음식을 사는 것 중에서 후자를 택하고 집세의 감면과 강제 퇴거의 일시 중단을 요구했다. 영국, 미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 스페인, 캐나다, 프랑스, 호주에서 유례없이 많은 파업이 발생했다.
한편, 소득이 감소하거나 상실되자 의료 서비스가 가장 절실한 시기에 많은 사람이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게 됐다. 스페인 정부가 2차 봉쇄령을 내리자 마드리드에서는 더 질 좋은 의료 서비스를 더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라는 시위기 일어났다. 스페인 동부의 바르셀로나에서는 시민들이 “의료 지원 확대, 군대 감축”과 “의료 지원 축소는 살인이다”라고 쓴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그만큼 격렬하진 않아도 다른 유럽 국가와 미국에서도 시민들이 비슷한 요구의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는 물론이고 민간의 식품 공급 사슬과 유통업체들은 사실상 이런 초대형 위기에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감염에 대한 공포와 봉쇄령으로 사람들이 이성을 잃고 물건을 사재기하자 전 세계적으로 대형 마트들이 재난 영화에나 나올 것처럼 텅텅 비워졌다. 가뜩이나 세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상호부조 단체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곧 영국 정부는 전 가정에 생필품을 무료로 지급하라는 압박을 받았다. 더 나아가 전 국민에게 매주 일주일치 식량을 제공하고 무료로 배달 음식과 식당을 이용할 수 있는 기본식량제를 실시하라는 요구도 터져 나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급진적인 목소리가 아우성으로 확대된 것은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에 체포되던 중 질식사당한 사건이 발단이 됐다. 흑인들은 이미 오랫동안 국가의 탄압을 받고 경제적으로도 방치돼 있었는데, 그것도 모자라 바이러스까지 기승을 부리는 와중에 다시금 흑인의 억울한 죽음을 경험하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흑인으로서 무지막지한 삶의 무게를 참아내던 사람들이 백인우월주의의 망동에 들고일어나자 역사는 시위와 폭동의 불길에 휩싸였고, 경찰 예산을 삭감하라는 요구가 불호령처럼 떨어졌다.
이 목소리는 곧 대서양을 건너 유럽으로, 다시 전 세계로 뻗어나가 자본의 행동 대원들에 의해 삶이 질식당할 위기에 처한 사람들 말고도 수많은 사람에게로 번져갔다. 그들의 요구는 경찰의 만행을 끝내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태생이 사유재산에 위협이 되는 불운한 자들의 폭동을 저지하기 위해 일하는 기관인 경찰은, 인종차별적 시각에서 잉여 인구를 범산복합체에 합류시킨다는 경제적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한 조직이다. 유죄 선고를 받은 재소자는 형벌의 일환으로 푼돈을 받거나 아무런 보수도 받지 못하고 강제 노동을 당하는 무임금 노동자가 된다. 출소 후에도 전과자는 계속해서 남들보다 적은 임금을 받고, 노동조합이나 파업에 참여할 확률은 희박하다. 따라서 경찰 조직과 교도소는 미국 임금 시스템의 필수 요소이고, 조슈어 클로버는 이를 “경찰이 자본을 만든다”라고 절묘하게 꼬집었다.
경찰예산을 삭감하라는 요구에는 그간 은밀하게 임금 파괴 공작을 일삼아온 자본의 역사가 담겨 있다. 이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가사노동에 임금에 지급하라’ 운동과 맥을 같이한다. 이 운동의 취지를 명확히 설명하기 위해 실비아 페데리치는 <가사노동에 대항하는 임금Wages against Housework>이라는 제목의 소논문으로 그 메시지를 재정립했다(페데리치는 이 논문에서 가사에 임금이 지급되면 가사가 더 이상 여성의 당연한 의무가 아닌 노동이 되고, 그러면 여성이 그 노동을 거부할 권리가 생기면서 더욱 당당한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옮긴이). 소피 루이스는 이 운동의 취지가 “청구액을 합산하는 것”, 곧 가사노동에 대한 기본소득을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임금 사회에 대한 공격”에 있다는 도발적인 주장을 펼치면서 “이것은 아주 진한 블랙 유머, 도발, 반란 모의”이고 그 최종 목표는 유토피아적 지평을 가능케 하는 것이라고 썼다. 경찰 예산 삭감에 대한 요구도 마찬가지로 명시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무임금적 지평을 지향한다.
따라서 이런 요구는 기본적인 생존 요건을 충족하기 어려운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주장이라 할 수 있다. 날로 늘어나는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의료, 수도, 전기, 집, 음식의 무료화, 그리고 불필요하고 폭력적인 제도의 척결이다. 이를 종합하면 숨어 있는 유토피아적 지평이 드러난다. 누군가는 이것을 보편적 기본 서비스라고도 부른다. 보편적 기본 서비스란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서비스가 사용 시점에 무상으로 제공되고 민주적으로 책정, 관리되는 것이다.
그러나 피박탈자들의 요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모든 사람이 단순히 생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잘 살 수 있는 수준으로 교육과 의료, 음식, 복지 혜택을 받는 세상을 원한다. 따라서 그들의 요구 하나하나는 지금처럼 소수만 풍요롭고 다수는 결핍된 세상와 정반대로 모든 사람이 필요한 것을 골고루 나눠 갖는 세상에 대한 전망의 단편들이라 할 수 있다.
피박탈자들의 행동과 요구를 구체적 유토피아의 청사진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직은 섣부른 생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 어느 시대보다도 그런 상상이 시급한 시대다. 사실상 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는 원래부터 갈등과 대립이 난무하며 언제라도 무너질 것처럼 위태로운 시스템이긴 했다. 그런데 이제는 이 시스템의 존속이 정치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존재론적 차원에서도 의문시되는 실정이다. 그 존재 자체가 지워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기후 재앙과 팬데믹이 만든 최근의 자본주의 지옥에서는 무한한 성장에 대한 약속이 그 어느 때보다도 미심쩍게 느껴진다. 제아무리 실리콘밸리가 기적에 가까운 기술을 선보이고, 비록 다수의 삶과는 무관할지언정 주식시장이 천정부지로 상승한다 해도 이제는 무한한 성장이 점점 불가능하게만 느껴진다. 지금까지는 이 시스템이 날로 적대적으로 변하며 우리 삶을 버틸 만하게 해주는 것들을 끊임없이 빼앗아 갔어도, 대다수의 사람은 저항하지 않고 인내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조만간 이 세상이 버티기 어려운 정도를 넘어 아예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에게는 상상이 필요하다. 지난 10년간 자본주의를 넘어 세상에 대한 유토피아적 상상을 한 사람은 많았다. 하지만 “누가 그런 세상을 실현할 것이냐”는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아론 베나나브는 “비전이 없는 운동은 맹목적이지만, 운동이 없는 비전은 훨씬 더 무기력하다”라고 따끔하게 충고했다.
인류는 미래를 요구하라는 말을 끊임없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 미래에 대한 비전으로 “완전히 자동화된 화려한 공산주의”라는 기술의 유토피아나 생태적으로 균형 잡힌 “그린 뉴딜” 등이 제시됐다. 그렇지만 역사의 주체에 대한 물음과 누가 인류의 선봉에서 더 나은 세상을 향해 진격할 것인가 하는 영원한 숙제에 대한 논의는 부족했다. 이제 20세기와 같은 노동운동을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우리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앞서 설명한 “살쾡이 파업”이나 “봉쇄”의 사례에서 현재 물밑에서 형성되고 있는 운동의 진동이 느껴진다. 이를 근거로 앞으로 수십 년간 정치적 행동이 어떤 성격으로 나타날지 짐작할 수 있다. 코로나 사태로 인류가 향후 진로에 대해 원대한 비전을 갖게 됐는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가 발발한 이후 다양한 차원에서 제기된 요구들을 보면 향후 무임금 운동의 구심점이 될 공통의 비전이 드러난다. 그 운동에는 잉여로 간주되는 수많은 사람이 엮여 있고, 그렇기에 실패한다면 더더욱 희망이 없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오랫동안 희망이 없다고 여겨졌던 사람들에게 희망을 걸어야 한다. 미래는 현재의 배제된 사람들 손에 달렸다.(192~199)
[출처] 노동자 없는 노동: 플랫폼 자본주의의 민낯과 미세노동의 탄생
WORK WITHOUT THE WORKER(2021)
필 존스 지음, 김고명 옮김, 롤러코스트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