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바 춤 / 임정자
이제 막 굳은 땅을 뚫고 새싹이 나왔다. 꽃봉오리들도 터뜨리고 있다. 꽃의 향기가 따스한 공기에 섞여 내 세포를 깨운다. 새로운 계절이 오자 나른해져서 정원을 천천히 걸었다. 덤불과 나무 그늘 밑에서 활짝 웃는 수선화가 고개를 내민다. 그 곁으로 초록 풀들이 보이지만 뽑지 않고 그냥 두었다. 봄이니까.
요즘들어 거울을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나이가 드니 피부가 탄력을 잃고 점차 얼굴 살이 처지고 있다. 팔자 주름이 도드라져 보이고 축 처진 턱선도 매끄럽지 않다. 목주름도 눈에 띈다. 머리카락은 윤기를 잃기 시작했고 눈가에는 굵은 주름이 자리를 잡았다. 미간에 11 자 주름도 거슬린다. 서글프다. 완경 전에는 세수만 하고 얼굴에 스킨로션과 자외선 차단제만 첩첩 발라도, 입술에 립스틱만 살짝 그려놓아도 어색함이 없었다. "어디부터 손대야 할까." 말하면서 얼굴은 거울 속으로 들어가 시술할 곳을 찾고 있다. "에잇, 신데렐라 마법처럼 열두 시면 풀어질 텐데 그냥 세월과 함께 흘러가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거야. 아니 그래도 보톡스라도 의술의 힘을 빌리면…." 미련이 남아 주름진 곳을 잡아당겨 보았다. 에휴, 그냥 한숨만 쉬고 말았다.
요즘 들어 건강 상태까지 예사롭지 않다. 병원에 갈 일도 점점 많아지고 눈도 침침하고 허리도 쑤신다. 깨알 글씨로 써진 상품 설명서가 잘 보이지 않는다. 스마트폰 셀카봉 삼각대를 조립하는데 목덜미를 잡고 한참을 끙끙거리다 내동댕이친 적도 있다. 간단한 것조차도 쉽지 않다. 새벽에 일어나는 일도 잦다. 몸은 이불 속에 있고 머리는 공든 탑을 세웠다. 이런저런 상상에 <사운드 오브 뮤직> 영화 여자 주인공인 마리아가 생각났다. 넓은 초원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이. 노래를 배워볼까. 아니 춤을 춰볼까. 가무에 소질이 없어 여태껏 생각지도 못했다. <외로운 수업> 김민식 작가도 외로우며 춤을 춘단다. 그분도 헬스하다가 용기를 얻어 줌바 춤을 시작했단다. 남자도 할 수 있는 춤이라면, 운동한다 셈 치고 해보자. 마음먹었다.
줌바 춤을 배운다는 지인이 있어 어디서 하느냐 물었다. 그녀도 헬스장에서 여러 운동을 해보고 줌바 를 한 지 3년 되었단다. 건강 때문에 시작했는데 춤을 추다 보니 즐겁더라 했다. 헬스, 에어로빅, 요가, 스피닝, 줌바 등 선택해서 할 수 있고 시간이 되면 주말도 저녁에도 할 수 있는 곳이라 춤이 안되면 러닝이라도 하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1월22일 지인을 그곳에서 만나기로 했다. 일단, 6개월 해보고 혹시나 내 안에 춤의 유전자가 있다면 연장할 마음이다.
둘째 날은 에어로빅도 했다. 역시나 강사와 세 박자가 맞지 않는다. 안무가 상당히 빠르고 음악은 신나지만 느린 내 몸이 따라가지 못한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웃고 말았다. 다음은 줌바 시간이다. 화려한 옷차림으로 여자들이 등장했다. 서로가 잘 아는지 인사를 하고 빵을 나눠 먹으면서 옷 자랑에 정신이 없다. 이 옷은 최신상이라서 누구는 예뻐서 원피스 샀다고 수다를 떤다. 요즘 본인의 관심 분야에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는 극성팬들처럼 자신들의 춤 복을 보여주고 있다. 강사가 무대 위에 오르자, 그 여인들이 맨 앞자리에 섰다. 음악이 나오자, 그녀들의 몸동작에 생동감이 흘러넘친다. 어디선가 한 여인은 판소리의 고수처럼 장단을 맞추는 듯한 "예 에" 추임새로 분위기를 살린다. 안무가 역동적인 것은 에어로빅과 비슷했다. 한마디로 에너지가 넘친다. 신세계를 만난 듯한 낯선 곳에서 읇조린다.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인가.
봄의 향기가 내 세포를 깨우듯 완경으로 탄력 잃은 감각들이 춤으로 일어나고 무기력에서 벗어나 젊은 근육으로 활력 넘치는 일상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하지만 거울에 비친 내 춤사위가 웃긴다. 엇박자에 뻣뻣한 내 모습을 보고 웃는다. 줌바 춤은 나를 웃게 한다. 시작한 지 이제 막 26일 되어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