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수고대했다.
광주 가서 기아 타이거즈 프로야구 경기 보기를.
작은 농촌학교 학생들이라 프로야구 경기 한번 보는 것도 녹록지 않다.
옆 학교에서 순회 나오시는 체육 선생님의 제안으로 날짜를 잡고 계획을 세운다.
예산은 지역 교육청에서 지원받은 스포츠락에서 지출하기로 하고 입장권 구매, 차량 임대, 학생 식사비와 간식비, 보험료를 품의 하였다.
이번에는 우리 학교뿐만 아니라 순회 나오시는 체육 선생님이 계신 옆 학교와 연합하기로 한다.
작은 시골 학교의 연합 프로그램이다.
인구가 자꾸 소멸해 가는 시골에서 근처 작은 학교끼리의 연합 프로그램은 그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에게 체험을 통해 다양한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한다.
우리 동네뿐이 아닌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그 발판을 제공한다.
대형 버스를 빌려 우리 학생들이 먼저 타고 옆 학교에 도착하여 **중학교 학생들이 탄다.
두 학교가 연합하니 그 큰 버스가 가득하다.
옆 학교라 그런지 학생들은 만나자마자 서로 아는 체를 하며 잘 섞인다.
어른들과는 다르구나.
어른들 같으면 낯가림한다고 금방 섞이기 쉽지 않을 건데 말이다.
특히 내가 그렇다.
다행히도 옆 학교에 예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선생님이 교무부장님을 하고 계셔서 선생님 간에도 편하게 동행할 수 있었다.
그전에도 **중학교와 이런 연합 프로그램을 몇 번 같이 한 적이 있어 더욱 반가웠다.
4시 30분 학교를 마치고 오수를 출발하여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진다.
요즘 장마철이라 그런지 날씨가 정말 오락가락이다.
이 정도 비로 설마 야구 경기가 취소되진 않겠지?
20분 정도 달려 순창을 지나니 이런~~~ 비가 엄청나게 온다.
지형적 특징 때문인지 예전부터 순창에는 비도 눈도 많이 왔다.
급하게 광주에 사는 지인에게 전화하니 다행히 비는 오지 않는단다.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잡고 광주 기아 챔피언스 필드를 향해 계속 간다.
출발한 지 1시간쯤 드디어 광주에 들어서고 기아 챔피언스 필드에 도착한다.
그런데... T.T
입구 전광판에 크게 글씨가 쓰여있다.
“우천으로 인하여 경기 취소”
차에서 내리니 비가 내리고 있다.
분명 아까 비 안 온다고 하지 않았나?
이런... 이 비를 우리가 몰고 왔나 보다.
몇 달 전부터 계획하고 준비한 건데...
학생들의 실망감은 더 크다.
엄청나게 기대하며 기아 타이거즈 티셔츠에 응원봉까지 준비했는데..
하지만 어쩌랴 천재지변인 것을.
선생님들은 모여 긴급회의를 했다.
일단, 돌아가자.
그리고 가는 길에 순창 휴게소에서 싸 온 음식을(치킨, 김밥) 저녁으로 먹이자.
대체 프로그램으로 남원에 가서 영화 ‘탈주’를 보자.
다행히 영화 시간이 딱 맞았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차를 돌려 남원으로 향한다.
학생들에게는 이를 잘 설명하고 이해시켰다.
처음에는 불만을 가지던 학생들도 어쩔 수 없는 걸 인정하고 수긍해주었다.
대신 날을 다시 잡아 야구도 보고 축구도 보기로 하였다.
돌아가는 길 순창 휴게소에 들러 저녁 식사를 했다.
이젠 여기 비가 안 온다.
진짜 우리가 비를 광주로 몰고 갔나 보다.
1인 2줄 김밥에 2인 1닭을 먹고 남원 극장으로 향한다.
영화 ‘탈주’는 최근에 개봉한 영화로 자유를 찾아 떠나는 어느 북한군의 이야기이다.
학생들은 이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자유에 대해 소중함을 느꼈어요. 대한민국에 태어난 게 정말 감사해요.”라고 말한다.
비가 와서 계획이 틀어져 시간에 쫓겨 보게 된 영화였는데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줬다.
어쩌면 프로야구 경기보다 이 영화가 더 의미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의도치 않게 어쩔 수 없이 선택된 것들이 우리에게 더 큰 울림과 의미를 주기도 한다.
오늘의 우리처럼.
인생이 다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