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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생각나게 하는 거울 / 창 22:1-13, 유 1:5-7
부산 외국어고, 수학여행 중 참사, 장마로 물난리.
야외로 나들이 갔을 때 물가에 비치는 풍경을 보면서 참 아름답다고 느낀 적이 잇다. 사람의 모습도 물에 비추이기도 한다. 이때의 모습은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잘생기지 못했어도 아름답게 보이기 마련이다.(자기 모습에 반해서 물망초) 그러나 사람이 외모는 거울을 통해 볼 때 잘 볼 수 있다. 그래서 백설공주를 보면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라고 묻는 내용이 있다. 그렇다고 거울이 전부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거울에 비치는 모습은 자신의 외모뿐이지만 사람을 거울삼아 볼 때는 자신의 인격도 비추어진다. 모든 사람이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 될 수 있다. 저도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아, 나는 이런 점이 모자라고, 이런 점은 그런대로 괜찮구나’라고 제 자신을 점검할 때가 있다. 거울 중에서 우리의 인격과 신앙의 모습을 가장 잘 비추어 볼 수 있는 거울이 있다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거울을 자주 보아야 내 모습을 가꿀 수가 있다. 성경말씀도 거울을 보듯이 자주 보아야 한다.
남자들은 재미있고 즐겁다면서 하는 이야기를 여자들은 썰렁하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 그 설렁한 이야기가 요즘은 월드컵 때문에 많이 좋아졌지만 바로 축구 이야기라고 한다. 이보다 더 설렁한 이야기는 군대 이야기이다. 그런데 가장 썰렁한 이야기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저도 썰렁한 군대 이야기 하나 하겠다. 제가 군대 입대하여 하사로 착출되어 훈련을 받을 때는 거울을 쳐다볼 겨룰도 없었고, 볼 필요도 없엇다. 훈련을 2주 남겨놓고 1주는 유격훈련, 마지막 주는 졸업축정을 하였다. 유격훈련을 고산 대아리 유격훈련장에서 할 때였다. 면회도 안되는 곳에서 면회가 욌다고 하여 유격대장 사무실에서 면회를 하였다. 어머님이 저를 보시더니 눈물이 그렁그렁한 모습을 보인다. ‘왜 울려고 하나요? 나 이렇게 건강하게 잘 있는데요.’ 했더니, ‘네 얼굴을 보니 새까맣게 타고 말라서 그런다.’ ‘얼굴이 타긴 뭘타요, 여름도 아닌데.’ ‘이따 시간나면 거울이나 한번 보렴.’ 나중에 유격이 끝나고 제2하사관학교로 돌아와서 거울을 보니 아닌게 아니라 얼굴이 거무스름하더라고요. 거울이 있어도 비추어보지 않으면 자기 모습이 어떤지 알 수 없고 가꿀 수도 없다. 자주 보아야 한다.
우리의 기억력은 약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기억력은 감퇴한다. 그래서 노인들이 기억력은 30분이 한계라는 말이 있다. 30분 전에 한 말이나 행동을 잊어버리고 또 반복한다고 한다. 잊어버리는 것은 젊은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잘 잊어버린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기적과 복을 영원히 기억하고 감격하며 살 것 같지만 금새 잊어버리고 만다. 말씀을 자주 읽어 하나님이 행하신 이적과 은혜를 기억하며 힘을 얻어야 할 것이다.
본문에서 유다는 구약성경에 나타난 세가지 사건을 들어서 우리의 거울로 삼으라고 한다. ‘너희가 본래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라고 하면서 세[가지 사건을 예로 든다. 이 사건은 새로운 계시나 이적이나 기사가 아니다. 구약성경에 있었던 사건이다. 출애굽의 사건과 소돔과 고모라의 사건은 출애굽기와 창세기에 나오는 사건이다. 그리고 천사가 타락하여 흑암에 갇힌 사건은 여러 견해가 있다. 사 14:12절의 하늘에서 떨어진 것과, 창 6:2절의 하나님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천사라는 견해가 있다. 어쨌든 이 사건들을 통하여 우리는 많은 것을 생각할 수가 있다. 성경 속의 말씀이 우리 모습을 비추어주고 우리 생활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게 한다. 사람은 자꾸 새롭게 다듬어 가야 한다. 나에게 주어진 것을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으면 못쓰게 된다. 내 팔이 지금 건강해도 1년만 쓰지 않으면 못쓰게 된다. 건강하게 걷고 뛰지만, 1년만 다리를 쓰지 않으면 걸을 수 없게 된다.(점쟁이 - 오른쪽 눈을 잃을 수가 있다.) 모든 것은 쓰지 않으면 녹슬게 되고 둔해지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나 은사도 마찬가지이다. 여러분은 이미 받은 하나님의 말씀, 은사 복을 늘 기억하기를 바란다.
1. 출애굽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예상태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불평하고 원망하다가 멸망당한 사건을 통해 교훈을 얻는다.(불신)
애굽에서 200만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생활을 했다. 60만명의 장정들이 채찍울 맞으며 힘든 노동을 하며 비참한 생활을 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같은 강대국에서 노예생활을 청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셔서 애굽에 열가지 재앙을 내린다. 그래서 바로의 항복을 받은 후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주셨다. 이것이 굉장한 사건이다. 홍해가 가로막혀 있고 뒤에는 애굽 군사들이 쫓아오는 위급한 상황이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지팡이로 바다를 갈라 바다를 통과하게 하셨다. 광야에서 농사를 짓지 못해 식량이 없을 때 아침마다 만나를 주셔서 먹게 했다. 만나가 질리다고 원성이 있자 메추라기를 주셨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리는 사막에서 구름기둥으로 태양을 막아주셨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따뜻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셨다. 참으로 큰 이적과 기사로 구원받고 은혜를 체험한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을 잊고 원망하고 배신한 적이 많았다.
마치 어리석은 쥐들과도 같다. 쥐의 기억력은 3분이 한계라고 한다. 고양이가 쫓아오면 얼른 쥐구멍으로 들어가 피한다. 그러나 3분 정도만 지나면 고양이가 쫓아온 것을 까맣게 잊고 구멍 밖으로 쑥 나온다고 한다. 고양이는 그것을 알기 때문에 기다리고 있다가 쥐가 다시 나올 때 탁 잡는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이다. 수시로 마귀의 밥이 되고 만다. 하나님께서 내 병을 고쳐주시고, 구원해 주시고, 은사를 주시고 베푸신 기적과 은혜를 잊어버린다. 그리고 조금만 어려운 일을 당하면 불안해 하고 원망하다가 마귀의 밥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축복, 능력을 늘 기억하며 살아가기를 바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베푸신 기적을 잊어버렸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여주시는 하나님을 잊고 조금만 목말라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길이 험하면 낙심하여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말로 하나님의 마음을 섭섭하게 하였다. 그중에서도 결정적인 실수는 이것이다. 민 13-14장을 보면 가나안 땅을 눈 앞에 두고 각 지파에서 1명씩 뽑아 12명을 정탐꾼으로 보낸다. 그리고 돌아온 정탐꾼들이 보고를 한다. 10명은 부정적인 보고를 하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긍정적인 보고를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10명의 부정적인 보고를 믿고 애굽으로 돌아가자느니 불평과 원망을 쏟아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노하셨겠는가? 그래서 가나안 땅을 밟지 못하게 함, 광야에서 40년간 방랑하게 함, 여호수아와 갈렙, 그리고 출애급 이후에 태어난 자들만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거울이 되었다는 뜻이 무엇인가? 하나님께 많은 은혜와 사랑을 받고 만가지 말씀을 받아 놓고도 하나님이 없는 것같이 살고, 하나님이 없는 것같이 생각하고, 믿음없는 말을 할 때 하나님이 진노하신다는 것이다. 여러분과 저는 불신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어야겠다. 믿음의 말을 하고, 믿음의 생각을 하고, 믿음 안에서 생활하기 바란다. 늘 ‘믿습니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살기 바란다.
2. 타락한 천사의 사건을 통해 교훈을 얻는다.(교만)
자기의 자리를 지키지 않고 하나님의 권세를 욕심내다가 내쫓겨 흑암에 갇히게 된 천사들의 예이다. 천사는 하나님이 지으신 영물이다. 하나님처럼 전능하지는 않아도 엄청난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루 저녁에 앗수르 군대 18만5천명을 죽여도 피곤하지 않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 어디든 갈 수 있고 영원히 살아서 하나님의 심부름을 하며 사람을 돕는다. 그런데 천사들 가운데 한 천사장과 그 무리가 하나님께 반역을 꾀하엿다. ‘내가 이렇게 큰 능력과 군대가 있는데 하나님의 종으로만 있어서 되겠는가? 나도 하나님처럼 높아보자’라는 마음을 먹고 하나님께 대적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반역한 천사들을 용서하시지 않고 결박하여 흑암에 가두시고 심판 날까지 꼼짝 못하게 하셨다. 이들이 바로 사탄 마귀이다. 이 사건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인가? 자기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충성이라는 교훈이다.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리는 분들은 자기의 자리를 잘 지키고 있는 분들이다. 충성하고 있는 것이다. 성가대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충성이다. 구역장, 예배 안내위원, 청소 담당 등 자기에게 맡겨진 자리를 지키는 것이 충성이다.
사탄 마귀가 누구인가? 원래 하나님 옆에 있던 천사장과 그 무리들이었다. 그런데 교만한 마음이 들어서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자기 자리를 떠났다가 흑암에 떨어진 자들이다. 시 49:20절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자기 스스로 자신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은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자유를 얻어 나온 것과 같은 복이다. 세례를 받은 것은 홍해를 건너는 것 이상의 기적이다. 또한 우리 마음 속에 성령을 받았다. 이것은 기적 중의 기적이다. 은혜를 받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존귀한 아들의 자리에 있게 되었다. 이런 우리가 이 귀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불평하고 원망하면 바로 마귀와 다를 바가 없다. 주님의 일에 충성하다가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나만 힘들게 일할 필요가 없으니 이제 교회 일 그만 두겠다’라고 입으로 불평하는 것은 마귀가 하는 충동질에 넘어가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맡겨진 자리에서 죽도록 충성해야 한다고 기르치신다. 우리는 특별히 말을 조심해야 한디. 사람들의 말을 들을 때도 영적인 면에서 들어야 한다. 성령님의 말을 하는가, 마귀가 사용하는 불평이나 원망하는 말을 하는가를 분별해야 한다. 교회에서 열심히 충성하는 사람이라도 사탄의 말을 사용하고 있다면 교회의 귀중한 일꾼이 될 수 없다. 성령께서는 적은 일에도 감사하며 충성하게 하신다. 마 25:21절 ‘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이 말씀처럼 적은 일에 말없이 충성하면 하나님께서는 큰 일도 맡기시고 즐거움을 주신다. 교회 안에서나 사회에서나 큰 일이든 적은 일이든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길을 열어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우리 자리에서 감사하자.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3. 소돔과 고모라의 사건을 통해 교훈을 얻는다.(색욕, 타락)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이 동성연애를 하기까지 음란을 일삼다가 하나님께 형벌을 받았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음란하면 불의 형벌, 불의 심판을 받으므로 이것을 거울삼아 너희는 음란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들은 천사까지 폭행하려고한 악한 사람들이다. 역사를 보면 음란한 가정, 음란한 왕족, 음란한 나라는 다 망했다. 실제로 보라. 로마가 망한 것은 음란때문이었다. 남편이나 아내가 음란죄를 짓는 가정은 평안하지 못하다. 자녀들이 비뚤어진다. 하나님께서는 음란한 가정에는 복을 주시지 않는다. 처음에는 참으시지만 끝까지 음란하면 불로 멸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음란해서는 안된다.
유다가 악한 사람들과 싸우라는 유다서를 쓰게 된 동기는 영지주의자들의 음란한 유혹 때문이었다. 이들은 점잖은 교인처럼 위장하고 교회에 들어와서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유혹하였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도 영혼만 깨끗하면 된다. 그러나 육체는 원래 본능적이며 정욕적으로 살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본능에 따라 행하는 것은 죄가 되지 않고, 혹 죄를 지었어도 죄가 있는 곳에 은혜가 많다.’ 유다는 그들이 순진한 성도들에게 이러한 유혹을 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급해서 유다서를 썼다. 마귀는 교회 안에서도 어떤 매력적인 사람들을 통하여 우리를 무너지게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어떤 교회에서는 목사님이 넘어지기도 하고, 장로님이 넘어지기도 하고, 집사님이 넘어질 때도 있다.
다윗이 밧세바를 보았을 때 ‘저 여자는 나에게 행복을 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다윗의 착각이었다. 밧세바 때문에 자녀들이 얼마나 많은 살인이 있었나? 여러분을 유혹하는 매력적인 사람 뒤에는 사탄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테니스장) 믿음이 자라기 위해서는 말씀을 들으러 교회에 나와야 한다. 그러나 음란의 죄를 막기 위해서는 매력적으로 유혹하는 사람으로부터 멀리 도망가야 한다. 시 4:4절상 ‘너희는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 요셉이 자기를 유혹하는 보디발의 아내를 피하여 도망갔듯이 피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간에 세가지 거울과 교훈을 주셨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을 받아야 된다는 것, 곧 접수해야 된다는 것이다. 중국을 갔다온 목사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어떤 중국 공산당원이 예수를 믿게 되어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목사님의 설교가 끝나자 ‘아멘’을 모르는 그가 일어서더니 ‘목사님 말씀을 전적으로 접수합니다’라고 말하더랍니다. 여러분도 말씀을 접수하기 바란다. 전적으로 접수할 때 은혜가 된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지혜로운 자는 말씀으로 맞을 때 회개하기 때문에 채찍을 맞는 일없이 복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채찍으로 맞아도 돌이키지 않아서 결국 망하게 된다. 우리 모두 이 세가지 거울을 교훈삼아 말씀대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200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