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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2021. 8. 1(주일낮예배) 이사야 46:1-4
전주 중앙시장 노상에서 야채를 파는 차사순 할머니는 의지의 한국인으로 광고 모델까지 하신 분이다. 2005년 4월 13일부터 운전면허를 따기 위하여 시험을 쳤는데, 무려 949번 낙방을 하였다. 할머니는 밤마다 성경책도 아니고, 불경도 아닌 운전면허 문제집을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휴일을 뺀 매일을 운전면허 학원을 다녔다. 그런데 무려 949번 낙방하고, 2009년 11월 4일에 950번만에 필기시험을 통과하였다. 그렇게 할머니가 필기시험에 합격한 사실을 인터넷에 올렸는데, 그것이 해외토픽 인터넷 기사 1위에 올랐다. 그 후 할머니는 실기시험에서 9번을 더 떨어져서 결국 960번만에 면허증을 취득하였다. 할머니는 운전면허증을 취득하기까지 인지대만 500여만이 들었고, 또 학원까지 다니는 교통비를 합하면 2천만원에 가까운 거금이 들여서 69살에 운전면허를 취득하였다. 그렇게 할머니가 운전면허증을 취득하였을 때 전세계에서 축하메시지가 오고, 또 현대자동차는 차사순할머니를 모델로 하여서 자동차 광고를 찍었다. <동영상 1'49">
이상하지 않는가? 2천만원으로 편안하게 택시다고 다니면 된다. 그런데 할머니는 밤마다 힘들게 공부하여 도전에 또 도전을 한 것이다.
왜 할머니는 도전에 또 도전을 했겠는가? 할머니는 운전하는 것이 멋있게 보였다고 한다. 그리고 손주들이 보고싶을 때 언제든지 마음대로 갈 수 있기 때문에 운전면허증을 취득하려 하였다는 것이다. 사실 알고보면 별 것아닌 이유로 할머니는 열정을 품었던 것이다. 그런데 할머니의 이러한 열정과 도전정신에 전세계가 축하하고, 또 현대자동차의 모델까지 된 것이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에게 이러한 도전과 열정이 있는가? 이 시간 사도행전 8장을 함께 살펴보기 원한다. 스데반은 순교하였고, 교회의 박해는 더욱 심하였다. 그래서 사울은 교회를 잔멸하기 위하여 각 집에 들어가서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고 있었다(행 8:3). 그러한 상황에서 교회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유다와 사마리아 땅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흩어진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공통점을 사도행전 8장 4절은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라고 기록한다. 그들은 복음 때문에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박해가 심해져서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도망을 해야 했다. 그런데 그들은 흩어진 곳에서 복음을 전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집도 버릴 수 있고, 고향도 버릴 수 있지만, 복음은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흩어진 곳에서 복음의 말씀을 전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빌립이다. 사마리아로 내려가서 복음을 전한 빌립에게 아주 놀라운 일이 있었다. 그래서 사도행전 8장 6-8절은 이렇게 기록한다.
(행 8:6-8)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7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8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빌립이 복음을 증거할 때 말로만 나타나지 않았다. 예수는 주시라는 표적도 함께 나타나서 귀신이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중풍병자와 못걷는 사람이 나으므로 그 성에 큰 기쁨이 충만하였다는 것이다.
놀랍지 않는가? 제가 놀랍다고 말씀드리는 이유는 빌립이 전도할 때 귀신이 도망가고, 중풍병자가 나음을 입었기 때문이 아니다. 이러한 역사는 예루살렘교회에서 나타났던 일이기 때문이다.
보시기 바란다. 사도행전 3장에는 성전미문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표적이 있었다. 그리고 사도행전 5장에는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났는데, 예루살렘 부근의 사람들도 병든 사람과 귀신들린 사람들을 데리고 나와서 다 나음을 입었다. 아니 사람들은 베드로의 그림자라도 덮일까 바라며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로 나왔다. 이렇게 놀라운 표적들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솔로몬 행각에 모이게 되었고, 그들은 거기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말씀과 표적을 통하여 예루살렘 교회는 성장해 갔던 것이다.
그런데 사마리아에 예루살렘과 똑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그래서 빌립이 복음을 증거할 때 많은 표적이 나타나 사마리아에 큰 기쁨이 나타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겠는가? 예루살렘 교회에 많은 표적이 나타났을 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시기하여 베드로를 감옥에 가두었다. 그리고 교회는 더 심각한 박해를 당해야 했는데, 그때 예루살렘교회는 박해가 심하여서 복음의 말씀 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끝까지 말씀을 전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끝까지 복음을 전할 때 말씀과 함께 표적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런데 사마리아로 간 빌립도 똑같은 모습을 가졌다. 박해로 인하여 예루살렘을 떠나야 했지만, 박해 가운데서도 끝까지 복음의 말씀을 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끝까지 복음을 전할 때 예루살렘에서 나타났던 것과 똑같은 말씀이 증거되고, 표적이 나타났던 것이다.
이렇게 끝까지 복음의 말씀을 전하는 예루살렘교회와 빌립의 삶을 한단어로 표현하면 도전과 열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복음의 말씀을 증거하는 그 열정을 통하여 사도행전 1장 8절의 성취가 일어났다. 그래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고 약속해 주었는데, 그 약속이 성취된 것이다.
무슨 말인가? 차사순할머니는 운전하는 것이 그냥 멋있게 보였다. 그리고 운전을 할 수 있으면 손주들을 쉽게 볼 수 있겠다는 단순한 일에 열정을 보였는데, 세상은 차사순할머니가 귀감이된다고 박수를 쳤다. 그런데 초대예루살렘 교회와 빌립은 내 증인이 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체험하기 위하여 열정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의 삶에는 주의 약속이 성취되기를 사모하는 열정이 있는가? 지금 2020년 도쿄올림픽을 하고 있다. 많은 선수들이 5년동안 땀방울을 흘리며 수고한 그 기량을 전세계 앞에서 나타내면서 박수와 위로를 받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꼭 박수하고 격려해야 할 선수 중에 한명이 유도 48kg의 강유정선수이다. 오른쪽 십자인대 수술을 받은 강유정 선수는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하여 랭킹을 올려야 했다. 그런데 작년 10월 왼쪽 무릎 통증이 재발하여 고통가운데 카잔 그랜드슬램대회와 세계선수권 대회에 참여하여 올림픽 출전권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체중조절이 문제였다. 강유정선수는 경기전 날 오후 6시에 체중계에 올랐는데, 몸무게가 48.850kg가 나왔다. 그리고 오후 7시가 되기까지 강유정은 침을 삼도지 않고 뱉으면서 계속 뛰었지만, 체중은 48.750kg, 고작 100g 밖에 빠지지 않았다. 그래서 또 뛰다가 탈수가 와서 쓰러져야 했다. 그리고 저녁 7시 55분에 체중계에 올랐을 때 체중은 48.650kg이었다. 그래서 강유정은 150g을 줄이기 위하여 문구용 가위로 머리카락을 잘라서 체중을 맞추었다. 그리고 다음날 경기장에 올라온 강유정은 스탄가르마루사(슬로베니아) 선수와의 경기에서 27초만에 배대뒤치기로 절반을 따내었다. 아마 강유정선수는 자신이 고생한 결과를 이제 얻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가졌을 것이다. 그런데 2분이 경과할 때 누르기 한판으로 패하고 말았다.
강유정선수는 올림픽에 서기 위하여 많은 수고를 하였는데, 올림픽 무대에 선 시간이 고작 2분이었다. 그렇게 패배한 강유정이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그때 강유정은 머리카락 이야기가 나왔을 때 이렇게 대답한다.
머리카락은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너무 아쉬운 결과가 나왔지만, 무너지지 않고 일어나겠다.
어떻게 25살의 젊은 여청년에게 머리카락이 중요하지 않을 수 있는가? 이제 오늘 본문을 보시기 바란다. 유다는 바벨론 느부갓네살에 의하여 처참하게 무너졌다. 그래서 3차례에 걸친 바벨론 침략 앞에 유다는 예루살렘 성전 벽에 있는 금을 긁어서 바쳐야 했고, 성전의 기구와 기술자들이 다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야 했다. 그리고 결국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지고 시드기야는 눈알이 뽑힌 상태로 결박되어 바벨론에 끌려갔다. 유다는 완전히 무너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때에 하나님은 벨은 엎드러졌고, 느보는 구부러졌다(사 46:1)고 말씀하는 것이다.
이상하지 않는가? 오늘날은 전쟁에서 승리하면 정보력과 첨단기술력으로 승리하였다는 말을 한다. 그런데 고대에서는 전쟁에서 승리하였다고 하면 우리의 신이 상대방의 신과 싸워서 이겼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그 당시 전세계는 바벨론의 벨과 느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이겼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벨은 엎드러졌고, 느보는 구부러졌다고 말씀하는 것이다.
왜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가? 삼상 4장에 나오는 블레셋 전투를 기억하기 바란다. 엘리의 아들인 홈니와 비느하스가 블레셋 전투에 언약궤를 가지고 갔다. 그리고 전쟁하였을 때 3만명이 죽고 언약궤를 빼앗기는 사건이 있었다. 그때 블레셋은 자신들의 승리를 자축하면서 빼앗아온 언약궤를 다곤신전에 넣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에 패하므로 언약궤는 다곤앞에 놓여져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다음날 다곤신전에 간 블레셋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다곤신상이 하나님 앞에 엎드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세워두었더니 다음날에는 얼굴은 땅에 닿았는데, 머리와 손목이 잘라져서 문지방에 놓여져 있었다. 다곤신은 하나님 앞에 어찌할 줄 몰라 부러지고 엎드러진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싸워 승리하였다고 교만했던 블레셋 땅에 독한 종기가 돌아서 사람들이 고통받고 죽어갔다. 그래서 블레셋은 젖나는 암수 두 마리를 통하여 언약궤를 다시 이스라엘로 돌려주었다.
이 분이 우리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그 누구에게도 패하지 않는 승리의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은 유다가 패배하여 성전이 무너지고, 그 백성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을 때도 내가 졌다고 말씀하지 않고, 바벨론의 벨은 엎드러졌고, 느보는 구부러졌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승리의 하나님이다고 선포하시는 것이다.
여러분은 승리의 하나님을 믿는가? 유다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여 않아서 패배할 수는 있지만, 하나님은 패배하는 하나님이 아니시다. 그 하나님께서 패배한 유다에게 이사야 46장 3-4절으로 말씀하신다. 함께 읽어보기 바란다.
(사 46:3-4) 야곱의 집이여 이스라엘 집에 남은 모든 자여 내게 들을지어다 배에서 태어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업힌 너희여 4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
아이를 낳아서 가슴에 안아 본 경험이 있는가? 자기 발로 설 수도 없고, 손을 내밀어 먹을 것을 찾지도 못하는 아이가 무엇인가?를 먹기 위하여 입을 내미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모두 귀여워서 활짝 웃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어린 아이를 안고 기뻐하는 것처럼 연약한 이스라엘을 안고 기뻐한느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이스라엘이 노년이 되고 백발이 되어도 끝까지 품을 것이다고 약속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왜 멸망한 유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겠는가? 하나님을 버린 유다는 바벨론 앞에 참담한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러한 유다는 이제 더 이상 의지할 자도 없고, 또 유다를 도울 자도 없다. 그런데 하나님은 유다를 버리지 않으신 것이다. 그래서 부모가 연약한 아기를 가슴에 안고 기뻐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유다를 안아주시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유다를 끝까지 지키시겠다는 하나님의 열정의 모습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이 열정앞에 유다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겠는가? 창원은 코로나로 인하여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를 시행하고 있다. 그래서 수용인원의 20%만이 모여서 예배할 수 있다. 그리고 창원은 41명 이상 코로나 발생환자가 넘어서면 4단계에 들어가서 예배는 20명만 모여 예배드려야 한다. 지금 우리는 자유롭게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신앙을 둘러본다. 그리고 코로나의 상황에서 ➀나는 여전히 예수님을 믿고 있다고 괜찮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➁나는 온/오프라인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으니 내 신앙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여기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에 정말 아무런 문제가 없는가? 연약한 나를 안으시며 웃으시는 하나님은 내가 낙심하고 좌절했을 때 내가 끝까지 너를 지키겠다는 열정으로 다가오신다. 그런데 우리는 그 하나님 앞에 반응할 도전과 열정이 다 사라져 버렸다. 하나님이 베푼 구원의 은혜가 너무 좋아서 내 모든 것을 바쳐도 감사밖에 나오지 않았던 그 열정이 우리에게는 없는 것이다. 아니 주의 몸된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헌신할 수 있는 그 열정도 이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지금 저와 여러분에게 나를 사랑하는 열정의 하나님 앞에 반응하는 열정이 있는가? 예루살렘교회는 박해 가운데서도 끝까지 복음의 말씀을 증거하는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흩어진 후에도 여전히 복음을 전하였다. 그 결과 그들의 삶에는 복음이 증거되어지고, 표적이 나타나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저와 여러분의 삶에도 이러한 열정이 회복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는 패배하였지만, 패배하지 않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지켜주심을 믿고, 그 하나님 앞에 반응하여 하나님의 사심을 체험하며 사는 복된 성도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